생활/문화 > 문학 > 칼럼 / 등록일 : 2019-10-15 08:11:51 / 공유일 : 2019-10-15 08:24:50
<김세곤칼럼>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62회
김세곤 (칼럼니스트)김일손의 치헌기(癡軒記)
repoter : 김세곤 ( yug42@naver.com )

김일손의 치헌기(癡軒記)를 계속하여  읽어보자.   ]

“옛날 안회의 우(愚)와 고시의 우(愚)와 영무자의 우(愚)는 모두 공문(孔門)에서 일컫던 것이고, 주무숙의 졸(拙)은 형벌이 맑아지고 민폐가 끊어졌으니, 그렇다면 치(癡)로써 이 헌(軒)의 이름을 삼음은 결코 헌(軒)에 욕됨이 아니라 영광일 것이며, 어리석은 현감을 얻은 조물자(造物者) 역시 이 헌에서 행복할 것이다. 세상에 슬기와 교묘함으로 이름난 자는 비록 이 헌을 가지고 싶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돈이(1017∽1073)의 자는 무숙(茂叔)이다. 보통 주염계(周濂溪)라 한다. 그는  지방행정을 잘하여 형벌이 맑아지고 민폐가 사라졌다고 한다.  

한편 주돈이는 <태극도설 太極圖說〉과 〈통서 通書〉를  지어 성리학의 기초를 쌓았다. 그의 사상은 주희(朱熹 1130~1200 주자 朱子라 불림)가 보다 체계적으로 성리학을 전개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태극도설은 전체 250여 자로 되어 있는 짧은 글인데, "만물의 근원은 태극이며, 태극이 실제로 만물을 형성한다."는 사상에 근거한 일종의 형이상학을 제시했다.

특히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이라는  명문장을 남겼다.

애련설을 읽어보자
   
“물과 육지에 나는 꽃 중에는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좋아하였으나,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진흙탕에서 나와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 잔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으되 밖은 쭉 곧아,
덩굴지지도 않고 가지도 없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 깨끗하게  서 있으니
멀리서 바라봐도 만만하게 다룰 수 없노라.


내 이르노니,
국화는 꽃 중에 은일자(隱逸者)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자(富貴者)이며,
연꽃은 꽃 중에 군자(君子)라 하겠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많을 것이다.”

유학자가 연꽃을  ‘꽃 중에 군자’라니 참 흥미롭다. 불교에서 연꽃은 깨달음의 꽃이다. 석가모니와 가섭의 일화.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깨달음. 연꽃은 또한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이윽고 치헌기는 계속된다.

“자범이 ‘내가 장차 이 어리석음을 지켜서 이 몸을 마치리라.’라고 하기에, 이윽고 내가 또 말하기를 “자고가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구멍으로 드나들지 않는 것과 공자가 미복(微服)으로 송나라를 지나간 것을 비교해 보시게나.”

자고는 공자의 제자이다. 위나라에 난리가 나서 자고가 피난하여 빠져 나오는데 성문이 닫혀서 나올 수가 없었다. 문지지가 근처에 샛길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라고 하자, 자고는 “군자는 샛길로 다니지 않는다.”하고 샛길로 가지 않았다. 그러자 문지기가 다시 구멍을 가리키면서 그곳으로 가라고 하자, 자고는 또 “군자는 구멍으로 다니지 않는다.”하였다.

그런데 공자는 송나라 환퇴가 공자를 해치려 하자. 미복 차림으로 변장을 하고 송나라 땅을 지나갔다.

자고와 공자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경직성과 유연성인가? 아니면 원칙과 반칙인가?
한편 자고는 어찌되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글은 이어진다. 

“여단이 매사에 우물쭈물 한 것이 어리석은 듯하나 왕계은을 가둔 것을 보면 임금을 섬기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고, 사마백강의 형제가 진실만을 행하고 평생에 거짓이 없었으나 풍수에게 뇌물을 주어 그 족인(族人)을 속인 것을 보면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 

여단은 송나라 태종 때 정승이다. 송태종이 여단을 정승으로 삼으려 하자, 어떤 사람이 “여단은 분명치 않은 사람입니다.”하였는데, 태종은 “여단이 작은 일에는 분명치 않아도 큰일에는 분명하다”고 하였다.


이후 태종이 죽던 날에 내시 왕계은이 태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다른 왕자를 세우기 위한 음모를 꾸미려고 태후의 명을 받아 여단을 불렀다. 이에 여단은 변이 있는 줄을 짐작하고 궁중에 들어가면서 왕계은을 속여 별도 방에다 가두고, 혼자서 태후를 만나 일을 바로 잡았다. 
 
사마백강은 북송시대 정치가 사마광(1019∽1086)의 형이다. 이 형제들은 풍수설을 믿지 않았는데 그 아버지의 장삿날에 친척들이 풍수설을 주장하자, 그들은 꾀를 내어 지관에게 뇌물을 주어 자신이 정하여 둔 곳이 풍수설에 좋은 땅이라고 말하도록 하여 친척들을 속였다.    


이제 마지막 부분이다.
 
“『역경(易經)』은 기이함을 숭상하고 『예기(禮記)』는 변화를 숭상함으로써 옛 성현이 정도에 알맞게 변통을 하였다. 이러한 부류가 하나뿐만이 아니니, 그대도 전적으로 이 어리석음만 지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이에 자범이 말하기를 “나는 세상의 교묘함을 싫어하여 나의 어리석음을 지키고자 하는데, 만약 그대의 말과 같이 하려다 보면 대중(大中)의 경지에 이르기도 전에 나의 어리석음이 뒤섞일까 걱정이네”하였다. 내가 웃으면서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다”하였더니, 자범이 눈을 부릅뜨고 대답을 하지 않다가, 헌함을 의지한 채 졸고 있었다.” 1)

김일손의 치헌기는 참으로 명문이고 되새길만한  글이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란 노래가사가 생각난다.

사진 1 김일손이 배향된 자계서원 (경북 청도군)

사진 2 자계서원 강당  보인당 


1) 김일손 지음,  김학곤 · 조동영 옮김, 탁영선생 문집,  탁영선생 숭모사업회, 2012, p 18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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