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 문학 > 수상소식 / 등록일 : 2016-03-01 00:00:00 / 공유일 : 2016-03-01 08:16:12
한국문학방송 2016 신춘문예 당선자 발표
repoter : 안무월 ( poet@hanmail.net )

한국문학방송에서 시행한 2016년도(제8회)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권오성(54) 씨가 당선됐다.

당선작은 <밤, 몽상가의 일기>, <그때, 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수수께끼변주곡>, <광염소나타> 등 5편으로, 채점제 방식인 본선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고르게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써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권 씨는 계간 《미네르바》 신인상에 당선된 바가 있다.



당선작(5편)

  


밤, 몽상가의 일기

    귀가 밝은 아버지 옆에서 죽은 바다를 생각하다가
    꽃의 휘파람 소리를, 붉은 물고기가 밤을 따라가는 소리를
    눈으로 듣는다                                     
    기적이 울리고 밤이 오고
    기차는 빠르게 꽃의 마을을 빠져나간다                        
    그런 날이면 눈발은 산책자처럼 밤을 스쳐가고
    목동은 먼 곳에서 잠든다

    귀가 밝은 아버지 옆에서 귀를 열어야 할까
    꽃의 플랫폼에서 얼어가던 구름, 술잔 속으로 날아왔던 미지의 새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똑 똑, 누가 내 귀를 두드리는 소리
    붉은 물고기를 데리고 눈이 아름다운 방랑자가 찾아왔을까
    방랑자가 바이올린을 켜 꽃의 목을 비틀거나
    마을을 지키는 붉은꼬리쥐뱀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소리일까
    마치 밤의 내장을 물고 늘어지는 짐승들처럼
    내 귀를 물고 늘어지는 꽃의 휘파람소리일까
    이런 날 일기를 쓰는 몽상가에게는
    술이 오르고 취한 새벽이 온다

    아침이 오기 전, 죽은 바다를 위한 파반느를 쓴다는 건
    기적을 울리는 일이지만,
    흰 상자를 짜는 귀가 밝은 아버지 옆에서
    방랑자의 노래는 얼마나 오래 써졌던가
    눈발은 산책자처럼 스쳐가도 상자에 담길 노래는 오래 남는다
    미지의 새가 구름을 베고 상자 속에서 잠들어간다
    그만 귀를 닫아야 한다



 
그때, 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데미안, 우리가 어린 동생과 철모르고 피던 칸나와 작은 가오리연을 두고
    집을 떠나온 것은 실수였을까?
    새점을 치던 아침과 빛나는 회초리로 우리의 등을 때리던 햇빛이
    가는 발목 안에서 둥지를 넓히고 있었는데...

    그때, 발 앞에 놓인 바다에서는 고기잡이배들이 꿈의 예감을 길어 올리고 있었고, 배에 탄 그들은 부리와 날개를 가진 자처럼 새의 냄새가 나는 어부들이었다.
 
    어둠 속의 바다를 가만히 만져보니 알을 깨고 나온 새의 피였다

    소소리바람이 어부들을 흔들 때면 우리도 흔들려, 때로는
    바다란, 가는 정맥을 끌고 도도한 폭풍 속에서 위태롭게 껍데기를 지키는 새로운 알 같은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어린 동생은 얼마나 자랐을까
    칸나와 가오리연은 아직도 밤의 겨드랑이 속으로 붉은 폭탄을 던질까?
    추락을 모르던 불꽃전사들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끝까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해안가의 경이로운 모래알이라지만
    고기잡이배들이 그물로 껍질을 부수고 새를 길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일찍, 진흙이 찾는 표정을 어떤 분이 예감했듯이
    어린 손이 어린 손을 마주잡고 새점을 치던 아침, 우리가 찾는 표정이 어두운 바다에 있을 것을 예감한 것은 새가 알 속에 있을 때였다

 

 다시 만날 때까지

 
    공이 굴러 눈사람처럼 커진다
    자꾸 커져서 밤이면 내 잠속으로 찾아온다 푸른 염소 몰고 온다

    새는 언제나 머리위에서 장미꽃을 꽂고 나를 본다

    염소가 안 올 때도 있고, 새가 울 때도 있다
    오늘처럼 염소를 몰고 왔을 때 내 몸속으로 강물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강물도 불면서 공처럼 굴러간다
    공을 따라 이대로 백 년을 내려가면 바다에 닿겠지, 우리 돌개바람 불어와도 거기서 만나자

    잠 속이 아무것도 아닌 빈 마을이었을 때,
    염소와 새는 어디서 왔을까?
    처음 눈이 내리듯이

    백로처럼 왔다가 쪽배처럼 떠난 사람아
    잠 속으로 샛바람이 새 울음처럼 섞여들어 당신 이마에서
    꽃이 지고 나비가 지고
 
    진자리마다 수염이 빠진 구멍처럼 어느 날부터 공이 되어 거리를 굴러다니는 사이
    우리가 키우던 염소는 가는 발목을 끌고 바다에 닿겠지
    우리 반은 죽어서 그렇게 만나지는 것
    반은 살아서 이렇게 헤어지는 것



 수수께끼변주곡 


    수수께끼처럼 살다간, 카론성 성주의 옷자락에 눈이 내린다

    잉카제국의 마추픽추는 지금도 눈이 내리면 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팬파이프를 불던 목신은 별들의 울음을 들으며 자란다는데

    카론성 성주가 잠든 고성에는 눈이 내려도 별들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목동의 휘파람을 들으며 자라던 양떼들은 깨지 않는다

    바람이 눈을 털고 정원 옆으로 목장의 문을 열면

    키 큰 향나무가 잠든 양들을 부르는 소리
    돌이 된 새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

    마추픽추에서는 아직도 별들이 눈 내리는 쪽으로 귀를 기울일 때
    눈 속에서 양들이 오므린 입으로 풀을 뜯다가
    목신의 팬파이프가 들리면 잠 밖으로 천천히 발을 내민다는데

    누가 성주의 옷자락 위에 독한 잠의 꽃씨를 뿌렸을까
    독을 품은 꽃들이 바람의 풀피리에 맞춰
    성주의 묘지에 깊이 발을 내리고

    잠 속까지 촘촘히 눈이 내리고

    누가 잠 속으로 내려가 목동의 휘파람으로
    수수께끼변주곡 (님로드*)을 연주하는지 고성의 바깥에는
    스스로 우는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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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로드(Nimrod)는 영국 작곡가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9번곡으로
  밝고 화사하면서도 장엄하다



 광염소나타

 
    처음 본 신의 얼굴에서 광기를 보았다
    어쩌면 절정이 오기 전부터 핏줄의 길목에서 나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피할 수 없는, 레시터티브의 경건함으로 페달을 밟는 순간, 건반에서 뜨겁게 피가 솟아올랐다
    피는 리듬을 타고 현으로 뻗어나가 어느새 불이 붙고 있었다

    악보를 태우며 불은 먼 시간으로 번져나갔다
    광기의 뼈대를 한 옥타브씩 넘어가는 화마의 성난 스케르초가 불의 천형을 견디며 밤의 지붕위로 뜨거운 순간을 틀어 올리는 동안,
    피는 마지막 한 방울을 겨누어 저만치 서있는 동백꽃을 살라먹고
 
    내 머리 위에서 착한 동백꽃물이 든 별이 죽어가는 때
    화기 낭자한 내 얼굴이 번쩍 피아노에 비친다
    활활 불타는 건반위에서 미친 듯 춤추는 손가락을 훔쳐보며 광분하던 신의 얼굴이 그만큼 빛나던 것처럼,

    불의 뿌리로 돌아가던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재가 된 십자가위에 떨어지는 새벽 종소리는 태초에 들었던 불꽃판타지였을까
 
    나는 이제야 죽음의 깃을 달고 코다로 질주해 간 아름다운 불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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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경위

  올해로 여덟 번째가 되는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다. 이번 응모자는 450여 명에 이르렀다. 

  1차 예심에서 70여 명을, 2차 예심에서 22명을 선정했다. 이 22명이 3차 예심으로 넘겨졌다. 여기서 최종적으로 본선에 올려질 7명의 작품 35편(응모자별 5편)이 가려졌다. 그 35편에 대해 각각 응모자 인적사항(성명, 연락처 등) 모두를 완전히 삭제한 다음 무작위로 불규칙하게(뒤섞어) 편철했다. 그 후 곧바로 본심으로 넘겼다. 
  본심은 채점이 종결될 때까지는 심사위원끼리도 누구인지,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도록 미공개 및 보안을 유지했다. 또한 집계(평정)된 점수에 대해 각 심사위원이 당선자 결정을 인준(이 지점까지도 본선 응모자 성명 미공개)할 때까지도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응모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심사위원 전원이 당선자를 인준한 후에야 심사위원과 당선자 및 본선진출자들의 성명을 각 심사위원에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렇듯 한국문학방송의 당선자 결정방식은 심사위원간 작품추천 및 토론 형식이 아닌 것이다.
    채점 기준은 각 심사위원별로 동일했으며, 각 작품별로 100점 만점에 하한(최저)점은 설정하지 않았다(최저 0점까지도 가능). 채점 착안점은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부합·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이었다. 당선자 선정 기준은 각 심사위원별로 각 작품 및 다섯 작품 모두의 합계점에서 차하(상위 점수를 장원, 준장원, 차상, 차하로 구분) 이상을 받은 사람 중 장원 항목이 가장 많은 사람이 당선되는 기준으로 평정이 됐다. 이번 당선자는 그 요건을 모두 충족하였으며, 총점에서도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응모자격은 기성작가(시인)와 문인(시인)8(문학도)을 가리지 않으며(남녀노소ㆍ국적 불문, 누구나 응모 가능) 신인등용문 성격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기성작가(시인)에게 주어지는 재평가의 한 방편에 더 가깝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신인등용문은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가 아니라도, 국내에만도 3백여 종이나 된다는 문예지와 중앙 및 지방 일간지(신문) 등 수없이 많다.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에는 해마다 응모자 중 상당수가 기성작가(시인)로 파악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그 벽을 넘은 문학도(미등단 신인)는 없었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본심은 김규화 시인, 문정영 시인, 이국화 시인, 이향아 시인(아래 사진, 가나다순)이, 예심 1차와 2차는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3차(예심 최종)는 조영민 시인(《현대시학》 등단)이 맡았다.

본심 / 김규화 시인
△《현대문학》 시 등단
△월간 《시문학》 발행인
△시집 『관념여행』 등 8권
본심 / 문정영 시인
△《월간문학》 시 등단
△계간 《시산맥》 발행인
△시집 『잉크』
 등 4권

본심 / 이국화 시인
△《현대시》 시 등단
△경기문인협회 자문위원 역임
△시집 『꽃나라 잠언』 등 11권

본심 / 이향아 시인
△《현대문학》 시 등단
△문학박사. 호남대 명예교수
△시집 『흐름』 등 17권

 

    올해도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한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매번 추구한다. 그래서 심사방식도 채점제인 것이다. 본선진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인비(人秘)키로 한다. 본선진출자나 낙선자 모두의 사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진심어린 큰 감사와 아울러 아쉽게도 낙선된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당선 소감

▲ 권오성   볕이 많이 달라보였습니다. 연둣빛 한 수저를 푹 떠서 김 서린 커피잔 속에 넣습니다. 커피향 저 뒤쪽에서 사과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할머니가 점점 아득해집니다. 할머니가 가시는 뒷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늘 책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곤 합니다. 오늘은 뛸 듯이 기쁜 날입니다 할머니! 이 큰 기쁨을 당신께 올립니다.

   시를 쓰면서 먼저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많이 애썼습니다. 그리고 나를 찾게 되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시가 나올 거란 믿음과 희망을 가졌던 점이 큰 행운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칼바람이 불며 살을 찢던 추위가 지나는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발 앞을 가로막던 폭설도 녹기 시작하고, 축축하게 녹아가는 눈을 밟고 웃을 수가 있습니다. 곧 꽃샘추위가 닥쳐오겠지요. 몇 번이 올지 모릅니다만 한 동안은 이 계절에서 지낼 수 있길 바랍니다.

   제 시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내일도 어둠 속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 자신을 찾아가는 일은 결국 제 발자국 위에 존재해야 하기에 먼저 저에게 따뜻한 한 잔의 차가 되고 차가운 한 모금의 냉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나만의 아픔이 아니라 세상의 아픔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시 쓰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어려운 일에 속한다.”고 하시던 어느 선생님의 말씀을 늘 책상 위에 걸고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재충전 에너지로 삼습니다. 어려운 일이란 시인으로 가져야 할 자세, 또는 정신이 될 수도 있겠으나 다루기 힘든 일(말)을 다뤄야 하는 지난한 고통의 여정을 말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춤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저를 뽑아주신 한국문학방송과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껏 저를 위해 아낌없이 격려하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권오성 프로필
△경북 안동 출생(1961)
△중앙대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전문가과정) 수료
△계간 《미네르바》 신인상(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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