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란 한 섬에 두 명칭인 셈...”鬱陵島에 대나무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獨島와는 거리가 먼 이름.
repoter : 조강봉 ( yug42@naver.com )
(2) 일본 자료
위의 ③의 독도에 관한 일본자료를 바탕으로 왜인이 사용했던 독도(獨島)에 관한 문서나 지도 등에 이칭들의 출현 빈도를 표를 만들어 보이면 다음과 같이 松島, 竹島, 子山, 于山, 蔚島가 나타난다. 이를 보면 일본인들은 獨島를 주로 松島로 불렀음을알 수 있다.
異 稱
松島
竹島
子山
于山
蔚島
계
빈도수
9
3
1
1
1
15
① 于山島 (九鬼嘉隆, 朝鮮國地理圖)
1592년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 등이 제작한『조선국지리도』에 들어 있는 ‘팔도총도’와 ‘강원도별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于山島와 鬱陵島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팔도총도’를 그대로 따른 지명으로 독도를 우산도로 표기한 자료다.
② 松島 (隱州視聽合記)
일본에서는 獨島를 주로 松島라 표기하였는데 이런 자료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1667년 이즈모(出雲)의 관리 사이토 호센(齋藤豊仙)이 명에 의해 오키섬을 돌아보고 보고 느낀 바를 채록한『은주시청합기』의 기록에는 “隱州는 북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隱岐島다....북서쪽으로 이틀 낮 하룻밤을 가면 松島가 있고 또 하루를 더 가면 竹島(俗言에 耆竹島)라고 말하는데”라 하여 獨島을 松島라표기하고 있다.
1823년 大西敎保가 은주시청합기를 기초로 하고, 또 오키섬 어부 등의 실재 경험담 등에 의하여 『은주시청합기』를 증보, 수정한 ‘隱岐古記集’에 “亥의 방향으로 40여리에는 松島가 있다.”라 하여 독도를 松島로 표기하고 있다.
1870년「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에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을 조사한 항목에 竹島와 松島로 표기했다. 1876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간행한「朝鮮全圖」에 강원도 동쪽에 울릉도, 독도가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로 기록했다.
1878년 야마무라(山村淸助)가「大日本分見新圖」에 竹島가 하나, 松島를 두 개 그렸다.1882년 기무라(木村文造)가 그린 「동판조선국전도(銅版朝鮮國全圖)」는 동해상에 그려진 竹島와 松島즉, 울릉도와 독도는 모두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③ 子山島(청조일통지도)
子山島란 지명이 우리나라 자료에 맨 처음 출현한 것은 안용복의 도일을 기록한 『숙종실록』에서다. 子山은 울릉도의 부속 島嶼란 뜻으로 불렸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于山島의 ‘于’자를 ‘子’자로 잘못 사용하여 생긴 지명일 가능성도 있다. 일본 자료는 다음과 같이 한 번 나타난다.
1835년 그려진 淸朝一統地圖에는 강원도 옆에 울릉도와 독도를 鬱陵과子山을 그려 넣고 또 울릉과 子山島가 竹島와 松島인지 모르고 일본 가까이에 또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로표기한 2개의 섬을 그려 놓았다. 섬을 4개 그렸다.
④ 蔚島(조선전도)
1873년 일본 海軍水路寮에서 만든「朝鮮全圖」에 于山島와 蔚島로 기록했다. 이는 우릉도를 줄여 표기한 지명이라 생각한다.
⑤ 竹島(육지측량부발행지도구역일람도)
1904년 9월 29일 오키섬 사이고마치(西鄕町)의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는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하고, 자신에게 빌려달라”는「리앙꼬島領土編入竝貸下願」을 일본 외무성, 내무성, 농상무성에 제출하자,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은 ‘독도는 주인 없는 무인도(無主島)로서, 일본인 나카이 요사부로에 의해 실효적 경영이 있었으니, 지금부터 다케시마(竹島)로 칭하고, 일본 島根縣 隱岐島司의 관할 하에 둔다”고 결정하였다. 이후 1936년, 일본 합동참모본부 산하 陸地測量部發行地圖區域一覽圖를 만든다. 당시 가장 정확한 공신력을 자랑하던 이 지도에서 독도는 竹島로 표기되었다.
일본 자료를 보면 獨島에 대한 名稱은 대부분의 자료에 松島라 표기되었다. 竹島로 표기된 자료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표기한 사례만이 있다.
사실 竹島는 實錄에 “왜인들이 말하는 죽도란 곳은 곧 우리나라의 울릉도인데, 울릉이란 칭호는 신라, 고려의 사서와 중국 사람의 문집에 나타나 있으니 그 유래가 가장 오래 되었다.
섬 가운데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또한 죽도란 칭호가 있지마는, 실제로 한 섬에 두 명칭인 셈이다.”이라 하여 鬱陵島에 대나무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獨島와는 거리가 먼 이름이다.
(2) 일본 자료
위의 ③의 독도에 관한 일본자료를 바탕으로 왜인이 사용했던 독도(獨島)에 관한 문서나 지도 등에 이칭들의 출현 빈도를 표를 만들어 보이면 다음과 같이 松島, 竹島, 子山, 于山, 蔚島가 나타난다. 이를 보면 일본인들은 獨島를 주로 松島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異 稱
松島
竹島
子山
于山
蔚島
계
빈도수
9
3
1
1
1
15
① 于山島 (九鬼嘉隆, 朝鮮國地理圖)
1592년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 등이 제작한『조선국지리도』에 들어 있는 ‘팔도총도’와 ‘강원도별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于山島와 鬱陵島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팔도총도’를 그대로 따른 지명으로 독도를 우산도로 표기한 자료다.
② 松島 (隱州視聽合記)
일본에서는 獨島를 주로 松島라 표기하였는데 이런 자료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1667년 이즈모(出雲)의 관리 사이토 호센(齋藤豊仙)이 명에 의해 오키섬을 돌아보고 보고 느낀 바를 채록한『은주시청합기』의 기록에는 “隱州는 북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隱岐島다....북서쪽으로 이틀 낮 하룻밤을 가면 松島가 있고 또 하루를 더 가면 竹島(俗言에 耆竹島)라고 말하는데”라 하여 獨島을 松島라 표기하고 있다.
1823년 大西敎保가 은주시청합기를 기초로 하고, 또 오키섬 어부 등의 실재 경험담 등에 의하여 『은주시청합기』를 증보, 수정한 ‘隱岐古記集’에 “亥의 방향으로 40여리에는 松島가 있다.”라 하여 독도를 松島로 표기하고 있다.
1870년「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에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을 조사한 항목에 竹島와 松島로 표기했다. 1876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간행한「朝鮮全圖」에 강원도 동쪽에 울릉도, 독도가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로 기록했다.
1878년 야마무라(山村淸助)가「大日本分見新圖」에 竹島가 하나, 松島를 두 개 그렸다.1882년 기무라(木村文造)가 그린 「동판조선국전도(銅版朝鮮國全圖)」는 동해상에 그려진 竹島와 松島 즉, 울릉도와 독도는 모두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③ 子山島 (청조일통지도)
子山島란 지명이 우리나라 자료에 맨 처음 출현한 것은 안용복의 도일을 기록한 『숙종실록』에서다. 子山은 울릉도의 부속 島嶼란 뜻으로 불렸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于山島의 ‘于’자를 ‘子’자로 잘못 사용하여 생긴 지명일 가능성도 있다. 일본 자료는 다음과 같이 한 번 나타난다.
1835년 그려진 淸朝一統地圖에는 강원도 옆에 울릉도와 독도를 鬱陵과 子山을 그려 넣고 또 울릉과 子山島가 竹島와 松島인지 모르고 일본 가까이에 또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로 표기한 2개의 섬을 그려 놓았다. 섬을 4개 그렸다.
④ 蔚島 (조선전도)
1873년 일본 海軍水路寮에서 만든「朝鮮全圖」에 于山島와 蔚島로 기록했다. 이는 우릉도를 줄여 표기한 지명이라 생각한다.
⑤ 竹島 (육지측량부발행지도구역일람도)
1904년 9월 29일 오키섬 사이고마치(西鄕町)의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는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하고, 자신에게 빌려달라”는「리앙꼬島領土編入竝貸下願」을 일본 외무성, 내무성, 농상무성에 제출하자,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은 ‘독도는 주인 없는 무인도(無主島)로서, 일본인 나카이 요사부로에 의해 실효적 경영이 있었으니, 지금부터 다케시마(竹島)로 칭하고, 일본 島根縣 隱岐島司의 관할 하에 둔다”고 결정하였다. 이후 1936년, 일본 합동참모본부 산하 陸地測量部發行地圖區域一覽圖를 만든다. 당시 가장 정확한 공신력을 자랑하던 이 지도에서 독도는 竹島로 표기되었다.
일본 자료를 보면 獨島에 대한 名稱은 대부분의 자료에 松島라 표기되었다. 竹島로 표기된 자료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표기한 사례만이 있다.
사실 竹島는 實錄에 “왜인들이 말하는 죽도란 곳은 곧 우리나라의 울릉도인데, 울릉이란 칭호는 신라, 고려의 사서와 중국 사람의 문집에 나타나 있으니 그 유래가 가장 오래 되었다.
섬 가운데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또한 죽도란 칭호가 있지마는, 실제로 한 섬에 두 명칭인 셈이다.”이라 하여 鬱陵島에 대나무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獨島와는 거리가 먼 이름이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