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 문학 > 문학단체정보 / 등록일 : 2019-11-07 23:11:35 / 공유일 : 2019-11-07 23:48:25
<안내> 수은강항선생 첫 추향제 봉향
오는 11일 11시 호남지역유림 및 영광 중, 고교생들과 함께 분향(일본 사토회장 일행 포함)
repoter : 강하늘아름 ( edaynews@paran.com )

오는 11윌 1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영광내산서원보존회(회장 강재원 이하 보존회)에서는 내산서원 용계사에서 처음으로 "수은선생 추향제"를 봉향한다.


이날 수은선생 추향제의 초헌관에는 이개호 전  농림부장관(재선 국회의원), 아헌관 이장석 재선도의원, 종헌관 강성휘 전 재선의원(박지원국회의원 사무국장)과 호남지역유림 및 영광 중, 고교생들과 함께 분향한다(일본 사토회장 일행 분향, 포함)


특히 영광공업고등학생 중 제관으로 당일 추향제에 3~5명을 선발해 자유학기제 체험학습을 병행한다.

보존회에서는 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박석무 이하 기념사업회)와 함께 추향제를 봉향한후 오후에는 수은선생의 유적과 유물을 중심으로 국가지정문화재를 위한 국제학술세미나도 진행할 예정이다.

 
참석을 희망하는 보존회원과 기념사업회원을 위해 교통편으로 45인승버스 2대가 당일 9시30분에  목포시 3호광장과 광주향교 광장에서 출발한다.

한편, 한일경제제재조치이후 경색된 양국을 바라보는 매스컴의 취재열기가 높아져 지난 5일 KBS 광주방송총국 '전매청' 프로그램에서는 일본이 수은선생의 은혜를 안다면 역사앞에 속죄해야 한다며 수은선생의 일대기관련해 방영했다.

이어 11일 수은선생의 추향제에는 MBC광주방송국에서 전격 취재를 나와 이날 오후 뉴스에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편집자 주>
내산서원은 1977년 10월 20일 전라남도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으며 1635년(인조 13)에 용계사(龍溪祠)라는 이름을 사액받고, 1702년(숙종 28)에 중수하였다.

그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현재의 위치로 옮겨 다시 세워졌다.


운제마을을 앞에 두고 내산을 배경으로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외삼문과 용계사(사당)를 중심축으로 외삼문, 내산서원, 내삼문, 사당 순으로 배치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으로 아담하고 소박하며,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이다.

외삼문은 근년에 지은 것으로 유물관에는 《강감회요》 목판각과 《수은집》《운제록》 《문선》《잡지》《간양록》의 필사본 등이 보관되어 있다.

수은선생은 사숙재 강희맹선생의 5대손으로 1593년(선조 26)에 전주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박사, 성균관 전적을 거쳐 형조좌랑에 이르렀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李舜臣)의 휘하로 들어가고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왜군을 만나 투신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 가족 일부가 왜국으로 압송되었다.

수은선생은 왜에서의 유폐생활 중 왜국의 역사, 관제, 지리 등을 알아내어 《적중견문록(賦中見聞錄)》을 작성,선조에게 보냈으며 '일본 유교의 비조'가 되었다.

1600년 5월 19일에 유배에서 풀려 38명의 포로와 함꼐 귀국하였으나 사색당쟁과 백형인 저어당 강해선생의 신묘사화의 연류 등으로 스스로 자신을 죄인으로 자처하면서 귀향하여 후학 교육에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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