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 문학 > 칼럼 / 등록일 : 2020-03-24 15:03:09 / 공유일 : 2020-03-25 07:39:30
광주 3.15 의거를 아십니까?!
3‧15의거 4‧19혁명의 원인, 4‧19혁명 3‧15의 완결...3‧15와 4‧19 한 뿌리로 4‧19 독립법 제정해야
repoter : 강대의 ( edaynews@paran.com )

3월하면 3.1절로 시작하기에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한편으로는 마음 저변에서 부터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있다.

이율배반적인 사고로 뭔가 벅차오르는 찬란한 봄과 함께 항일운동 또는 친일파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는 춘삼월을 우리는 매년 그렇게 맞이하고 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월안에서 벌써 끝을 달려가고 있는 시점에 기자가 수소문해 찾은 곳은 공교롭게도 광주시 동구 계림동 소재 호남 4.19혁명단체 총 연합회 상임대표(4.19통일의병대장 겸직)가 상주하고 있는 사무실이었다.


광주 3.15와 마산 3.15의 관계

‘광주3.15 의거와 4.19가 무슨 연관이 있지?’라고 보통의 국민들의 머릿속 개념이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유구한 역사 속에서도 굳이 한민족의 토착화된 민주주의를 거론할 적에 광주3.15의거와 4.19혁명을 공식적으로 끌어들인다.

이 곳에 오기 전 이른바 이 시대를 앞서가는 몇몇 말재주꾼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592~1597년 임진, 정유재란에서부터 유교의 첨단을 걷는 최고의 지성인 선비들이 선비정신(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을 모토로 해 의병운동이 이 땅에 최초로 시작되었고

그 흐름에서 민초들 까지 영향을 받아 전봉준 장군(서당훈장)을 위시한 의병활동이 당시에 동학혁명으로 옮겨 붙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며 오늘날 한반도의 민주주의 토착화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표상이 된 4.19혁명을 잉태시킨 건 저 위대한 광주3.15 의거의 ‘곡 민주주의 장송’ 시민봉기가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기자가 빼곡히 정리해 놓을 정도로 찾아 논 역사적 진실과 맥을 같이해 계속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곡 민주주의 장송’ 시민봉기가 광주에서 1960년 3월 15일 12시 45분에 정확히 군중에 의해 장엄하게 집행된 이후 마치 영호남이 짜여 진 각본 속에서 행동하듯 2시간 후인 1960년 3월 15일 14시 무렵에 마산에서 군중봉기가 있었던 게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

여기까지 듣고 도착한 곳이  4.19 혁명단체 총 연합회 사무실이었다. 김영용 상임대표가 반갑게 맞이했다.

앉자마자 김 상임대표는 차를 권하자마자 곧바로 광주3.15 의거에 대해 급히 말을 이어간다.


“올해 정부주관으로 2020년 3월 15일 기념일에, 11번째로 마산에서 국가기념일 답게 내실 있게 거행했으나 그보다 더 빠른 시간에 광주시민들이 민주주의라는 횃불을 들고 ‘곡 민주주의 장송’ 시민봉기를 했건만 광주는 별도로 광주광역시 주관으로 제4회째 광주3‧15 의거 기념식을 상대적으로 조촐하게 갖고 부정선거 첫 규탄 광주3‧15 의거의 실제와 의의를 전국에 광주시 차원의 선양해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정부와 광주 지방자치 정부는 광주 ‧ 마산 두 지역의 3‧15 의거를 하루 속히 똑같은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양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 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올바로 확립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광주의 정신은 호남의 정신이요, 호남의 정신은 임진왜란 당시에도 흔들림없는 조선의 구국의 정신이었음을 상임대표께서는 너무 자명하게 인식하고 있기에 국가정체성 확립에 대한 생각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광주 3.15와 4.19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광주 3.15와 4.19의 관계

 광주 3·15의거는, 1960년 3·15부정선거에 맞서 이 땅의 민주주의 꽃을 피우게 한 4·19혁명의 도화선을 그은 이른바 광주 금남로 ‘곡 (哭) 민주주의 장송’ 시위를 말한다.

 부정선거일 이날 광주 77개 투표소에는 민주당원 출입은 일체 허용되지 않은 채,  투표용지를 요구하다가 폭행을 당해 부녀자가 병원으로 실려 가는 등 모두가 극도의 공포분위기들로 휩싸였다.


  주권을 포기하고 이른 아침부터 광주 금남로 4가 민주당 선거사무실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수많은 인파는 예상치 못했다. 


  급기야 12시45분, 1천 2백여 시민·학생·민주당원이 합세한 부정선거 규탄 시위대에 무장경찰은 무차별적 공격을 퍼부었고 소방차의 세찬 물세례에도 아랑곳없는 시위대들은 해산은 커녕 ‘우리들의 자유와 권리를 막는자 누구냐? ‘정권의 앞잡이 경찰은 물러가라’ ‘민주주의 죽었네, 아이고! 아이고! 피를 뿌려 외치’며 땅바닥에 쓰려져 구르며 나아갔다. 

 금남로 일대는 순식간에 수많은 부상자들이 흘린 피로 낭자돼 아수라장이 되고 시위를 주도했던 선봉대들은 무더기로 붙들리고 수배되었다.

 이 사실이 민주당 중앙본부에 즉시 보고됐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광주 3·15 민주주의 장송 시민봉기는 오후 3시 40분경 마산으로 피어올라 이날 밤 김주열의 주검으로 촉발된 마산 제1‧2차 대 (大) 시민봉기와 함께 양 지역에서 3·15의거를 이루어 4·19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이와 같이 광주3·15의 도화선(導火線)작용으로 마산 3·15는 마침내 분화구 (噴火口) 를 이루었고, 당시 3·15사태 책임 규명에 나섰다가 반공청년단의 기습으로 번진 4·18 고려대 집단 대 (大) 유혈 사태의 민주의거가 기폭제 (起爆濟) 가 되어 이튼 날  4·19 전국 불길이 치솟았다.


  이처럼 광주는 마산 · 서울과 함께 4·19혁명 3대 (大) 권역을 이루어 3·15선거일로부터 4·26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할 때 까지 42일 동안의 전 국민 항쟁의 첫 횃불로 메김 되었다.


4.19이후 역사왜곡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렇게 바르게 서지 않고 있다. 

 4·19혁명 제 50주년을 기해 정부는 3·15 의거일을 국가 기념일로 공포하고 2010년부터 마산시민 봉기로 국한된 행사로 금년 11회째 마산에서 치루고 있다. 여기서 광주가 또 빠진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해 호남4·19혁명단체 총연합회가 발족되고 단체 차원의 광주 3·15의거 기념식과 관련 행사를 통해 광주 3·15실체를 알리고 선양해 왔다. 아울러 광주 3·15의거로 시작된 4·19혁명의 전개 과정을 바로 정립하자는 3000만 서명의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이 시작 됐다. 

  국내외를 포괄 현재 (2019.12.31) 83만 2천여 명이 동참했다. 이 서명 운동은 광주 3·15의거가 바로 설 때까지 계속된다.

  4·19혁명 1년만의 5·16 군사 정권에 의해, 3·15의거가 4·19혁명과 별개의 사건처럼 갈라 진데서 4‧19혁명의 정체성이 바로서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역사피해를 가장 크게 입고 있는 것이 광주 3·15의거다. 4·19혁명사의 왜곡지점이 바로 광주3·15 민주주의 장송 시민봉기를 빠트린 곳이다. 

  그래서 현재 4·19는 시작이 없는 사건처럼 되어있다. 

  4‧19는 지금까지 관련법이 없다. 헌법 전문의 4·19혁명 명기는 한낮 정치적 선언적 의미에 불과 한다. 법치국가에서 법으로 보장받지 못한 채 정작 엄연했던 4‧19혁명의 시원 (始原)마저 지역주의로 함몰시켜 지역갈등만을 조장케하고 있는 것이 역대정부로 일관된 4‧19혁명의 입장이며 무책임이다.

  4년전부터 4‧19기본법을 만들자는 국민서명운동도 호남4‧19혁명단체 총연합회가 앞장서 전개해오고 있다.

  3‧15의거는 4‧19혁명의 원인이고, 4‧19혁명은 3‧15의 완결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정부는 하루속히 3‧15와 4‧19를 한 뿌리로 복원된 4‧19 독립법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광주, 호남의 심장이며 역사적 중심지

이 역사적 진실의 중심에 광주가 있다.

  역사란 바로 잡지 않으면 또다시 반복돼 그 피해가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고 국가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역에서조차 외면되어 오고 있는 광주3‧15의거를 바로 세우는데 모두가 합심해 나서야 한다. 역사복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렵다.

  광주시가 제4회째로 갖는 광주3‧15의거 기념식을 계기로 올해는 반드시 국가기념일로 진입되도록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다.

‘광주답게 광주를 건설하겠다! ’일념으로 시정을 이끌고 계신 이용섭 시장께 경의를 표하며, 광주3‧15의거의 실체와 의의를 전국에 알리는데 노력해 주신 광주시 산하 9천4백2명의 전공무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끊임없이 진실된 역사를 주장하는 상임대표께 ‘곡 민주주의 장송’ 시민봉기 광주 3.15의거는 그의 분신이었다.


상임대표님!!

끝으로 지난 3월 13일 이용섭 광주광역시장께서 광주 3.15의거 유공회원들에게 표창패를 수여하면서  광주 3.15의거 표지석 건립에 대해서도 강조하셨습니다.(시청 3층 비즈니스룸, 광주 3.15의거 유공자 표창식 참석)그렇다면 앞으로 광주 3.15의거도 국가지정 기념일이 발빠르게 진행되지않겠습니까?


김영용상임대표 :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시의회에서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걸로 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차후에라도 이용섭시장님과 담판을 짓는 날이 왔으면 한다.

내가 느낀 광주 3.15 의거는 우리 광주시민의 자긍심이고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속히 국가지정기념일로 제정되어 더 이상 부끄러운 역사로 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4.19 기념관 건물에서 나오는데 완연한 봄을 감지한다. 봄은 분명코 봄이련만 봄바람이 훈풍으로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북향이라 그렇까??


2016년 10월에 출판한 '광주 3.15의거' 책자의 칼러가 흑백사진을 사이에 두고 위와 아래로 독특하다. 더 더욱 흑백사진의 눈매가 매서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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