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 문학 > 문인정보 / 등록일 : 2021-09-21 00:35:36 / 공유일 : 2021-09-21 00:49:06
[문인방목] 변영희 작가 
repoter : 안무월 ( poet@hanmail.net )

"21세기 대한민국 문학예술가를 만나본다" [문인방목] (제4회)
 

변영희 작가 

 

나는 왜 문인이 되었나

초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는 시설이 훌륭했다. 미술실 과학실 음악실 등이 따로 있었고, 학교에서는 매달 학급신문을 발간했다. 내 어설픈 시가 자주 학교신문에 실렸고,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는 날은 앞에 나아가 자작시를 낭송했다. C시의 중앙방송국에도 출전하여 내가 지은 시를 낭송하는 영광을 얻었으며, 3학년 갑반시절 이른바 ’작문상‘이라는 것을 받고 그때부터 글 잘 짓는 애로 소문이 났다. 중고등과정에서는 줄곧 문예반에서 활동했고, 나의 언니 덕분에 다른 친구들과는 별개로 다양한 독서를 하는 가운데 소설가의 꿈을 꾸었다. 대학시절에는 결혼에 목매는 가족을 피해 당시 일간신문에 연재소설을 기고하던 현역작가이기도 한 K대학 교수님 댁에 3년 여 기거, 공부하고 학보에 글 써내면서 소설가의 꿈이 영글어갔다. 살다보니 예기치 않은 삶의 질곡(桎梏)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뒤늦게 문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삶의 질곡이 문인으로서 성장하는 요긴한 자양분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문인이 되었다

여고시절의 내 꿈은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었다. 더 공부하면 대학교수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나의 최종 꿈이 아니고 소설가가 되려면 창작활동에 구애받지 않기 위해 경제적 자립이 필수, 선결요건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완고한 가족들의 적극적인 반대로 교사의 꿈을 이룰 수 없었고, 그들이 떠미는대로 결혼했으나 꿈은커녕 내 삶은 영혼까지 병들게 되었다. 80년 대 초 각 신문사에서 문화센터를 개설, 나는 이때다! 하고 수필반 소설반을 전전하다가 이를테면 살롱 강의라 할까. 조금 더 고급한? 문학강의에 편성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내주는 과제- 콩트, 소설을 부지런히 써내는 와중에 심사하시는 선생님에게 발탁,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쳐 84년 문학의 전당 말석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나는 문인으로서 세상에 이것을 남기고 싶다

우선 글을 쓰므로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마음이 고픈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을 전하고 싶다. 먼 바다를 항해하다가 홀연 길을 잃은 난파선에게 등대가 되어주고, 희망이 되는 글의 저작자이고 싶다. 시대가 변해도 오래도록 읽혀지는 글, 읽고 싶어지는 글, 읽고 나서 향훈이 남는 글, 영혼이 정화되는 글의 주인공. 물질의 풍요와 황금 제일주의의 세태에서 의리 도덕 윤리 인성의 괴멸로 대다수 현대인이 앓고 있는 각종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글, 즉 재미와 향훈, 정화와 치유의 글을 남기고 싶다. 인류사에 영원무궁토록 유익을 끼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변영희(邊榮姬)

△1941년 청주시에서 출생 △본관: 원주변씨 △출신고교: 청주여자고등학교 △출신대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중어중문학과) △출신대학원: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등단지: 《문예운동》 《한국수필》 △주요 문단경력: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국제펜 입회심의위원 △수상: 직지소설문학상. 손소희소설문학상 외 다수 △대표저서: 장편소설 『마흔넷의 반란』 『무심천에서 꽃 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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