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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현 前 부산지검장 “나의 공직생활은 오직 국민을 두려워한 시간”
“법의 정의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조직의 불합리함과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공직자
repoter : 김종성 기자 ( areyou@@@@navver.com ) 등록일 : 2015-11-03 13:06:53 · 공유일 : 2015-11-03 20:01:59


[아유경제=김종성 기자] "두 눈을 가리고 한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쥔 `정의의 여신`은 법의 불편부당(不偏不黨)함과 엄정함을 상징합니다"
석동현 변호사는 `정의의 여신상`에 대한 설명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26년을 검사로 봉직하다가 변호사가 된 후 최근 정치에 입문하고자 준비 중에 있지만 아직도 변호사로서 법조계에 한쪽 발을 딛고서 있는 그의 자부심은 대단해 보였다.
"내가 서울법대에 합격하던 날 모친은 나를 듯이 기뻐하셨고, 부친은 평소의 근엄한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셨지만 속으로는 대단히 기뻐하셨을 겁니다. 몇년뒤 검사가 되었을때, 부친께서 내게 주신 당부의 한 말씀은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해라`였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해라" 부친의 이 당부는 그의 법조인생을 관통하는 화두이자, 그를 검사다운 검사, 변호사다운 변호사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부산시 동구 부산진시장 부근의 작은 엿 공장집 둘째아들로 태어난 석동현 변호사의 어린 시절은 공장과 주택이 붙어있어 항상 시장바닥 같은 환경 속에서 자랐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부친은 엄하고 강하게 자식을 키웠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석 변호사를 학교가기 전 이른시간에 짐자전거로 엿배달도 다니게 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아침마다 문현동 동천 옆 고물상 여러군데로 엿배달을 다니면서 만난 엿장수 아저씨들의 깊게 패인 주름과 팍팍해 보였던 삶이 석변호사는 검사 재직중에도 늘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초.중고등학교 내내 석동현 변호사는 어린이 회장, 학생회장을 놓치지 않았고 학교성적도 뛰어나 재수하지 않고 곧바로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서울 법대에 진학한다.
대학 진학후에도 1980년 민주화의 봄 시절에 79학번 동기회장으로 뽑히는가 하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을 통과하였다.

현실의 법은 엄정했지만 완전무결하지는 않았다. 그가 대면한 현실의 법은 때로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혹할 때가 많았다.
검사로서 겪어 보니 단지 가지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법이 편파적이거나 불공정하다기 보다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다보니 생활이 더 치열하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법을 위반하는 경우나 법을 피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사건을 다룰때 마다 생각한 것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고 사건을 수습할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무조건 방면하자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의 입장이나 관점에서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법을 어길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고 국가가 처벌을 하기 앞서 피해자가 있는 사건은 피해 변상을 우선으로 하여 관용하더라도 이의가 없게 한 다음 당사자에게는 개과천선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후 그는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법집행"을 검사의 책무로 가슴에 새긴다.
검찰청사에서 김장을 담구어 보내고, 저소득층에 전할 연탄을 나르고, 생계형 범죄로 구속된 피의자의 가정에 쌀과 부식을 보내주기도 하고, 범죄피해자들에게 손난로를 보낸 따뜻한 검사였다.
또한, 그는 중소기업 또는 기업인에 대한 형사사건 수사 시 법원칙의 테두리 내에서 배려할 필요성에 대해 꾸준히 강조해 왔다.
그러면서도 석동현 변호사는 검사 재직기간 내내 조직의 불합리함에 엄정했고 스스로에게는 더욱 엄격했다. 검찰내 논객의 한 사람으로 검사들의 특권의식 탈피와 수사관행의 개선 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는 검찰 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두 차례나 검찰총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할 만큼 강단 있는 인물이다.

서울 동부지검장 재직시절 수습 중인 초임검사의 성추문 사건이 발생하자 관리자로서 즉시 사의를 표명하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주위에선 굳이 사퇴할 이유가 있느냐고 만류했지만 그는 자리가 갖는 무게를 알았다.
그리고 공직자라면 마땅히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석동현 변호사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아랫사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국민 여러분께 충격과 실망을 안긴 것은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시 그때로 되돌아 간다 해도 저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선택은 공직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국민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렇게 검사의 옷을 벗은 후 몇 달간 쉬다가 변호사업을 시작하면서 퇴직금의 상당부분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함으로써 공직자는 `어떠해야만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목민심서에 이르길 `청렴에는 세가지 등급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 으뜸은 봉급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먹고 남은 것 역시 가지고 집에 돌아가지 않으며,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 한 필의 말로 조촐하게 가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염리(廉吏)이다. 차선은 봉급 외에 명분이 옳은 것은 먹고 바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은 것은 집으로 보내는 것이니 이것이 중고(中古)이다. 최하는 무릇 이미 규례로 되어 있는 것이라면 비록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지만, 규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죄를 먼저 짓지 않으며 향임(鄕任)의 자리를 팔지 않으며 조세를 부과하여 나머지를 착복하는 것이니 이것이 오늘날의 이른바 염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직자라면 마땅히 으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마땅히 실천해야할 도리를 행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저의 26년 공직생활은 내내 국민이 두려웠던 시간입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공직자로서의 마땅한 도리에 대해 강조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서는 강직한 공직자로서의 자긍심이 배어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이민법, 이민정책 전문가
한편, 석 변호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이민법, 이민정책 전문가로 통한다.
현재 국내 체류중인 외국인의 수가 전체 국민의 3%가 넘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이민법학회장과 다동이(다문화, 동포, 이민자의 첫글자를 따서 만든 명칭) 이민정책 포럼대표를 맡고 있는 석 변호사는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중인 우리 여건에서 국제결혼,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외국인 투자 등의 형태로 외국인들의 국내유입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문화적 갈등, 인종갈등으로 인한 사회혼란을 미연에 막고 함께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위해서 이민정책적 준비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지역내 관광산업 관련 고용창출, 소비증대에 기여할수 있도록 해운대와 기장지역을 외국인 관광객및 휴양시설투자가 몰리는 투자이민제 적용지역으로 만든 일등공신이 석변호사임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는 이제 다시 국리민복(國利民福), 즉 국가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고 했다.
"저는 그동안 공직자로서, 또한,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법조인으로 지내면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것을 갚으려 합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현실 정치의 참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꾀하고, 지역간 균형발전을 통해 다함께 고루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합리와 무원칙, 떼법과 편법, 안전불감증 등등...정말 이대로는 안됩니다. 기본과 원칙이 바로선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나라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무가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있습니다. 지난 30년 법조인으로서 지켜온 소신과 원칙,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평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검찰고위직 까지 지냈고 지천명을 훌쩍 넘긴 그가 지금 정치를 시작하려는데 대해 세인들이 지나친 `공명심`이나 `출세욕` 때문으로 보지 않을까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는 단호히 말한다.
"저는 그동안 누릴 만큼 누렸고 지금도 남부럽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처음 법조인을 꿈꾸었을 땐 분명 저 개인의 입신양명이 목적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 제가 굳이 정치의 길을 택함은 오직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 기본과 원칙이 바로 선 나라` 를 만들기 위한 꿈,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한 도전입니다."

작년 부산 해운대 보권선거에서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의욕만으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초반에서 탈락한 후 정치와 관계 없는 동포교육지원 및 북한인권 증진 등 공익활동에 주력해왔다.
그러다가 다시 내년 총선을 위해 부산에서 도전키로 뜻을 세운후 출마지역 선택을 놓고 많은 생각 끝에 새누리당에 계속 실패한 부산 사하을 지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그간 사하을 지역은 시내 중심지에서 떨어진 지리적 약점도 있지만 그보다 야당의 3선 연임으로 집권 여당, 중앙 정부 및 지방 정부의 지원이 아무래도 뒤떨어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부산의 타지역에 비해 가정 낙후되고 발전이 더딘 지역이 되고 말았다.
이는 지역주민에 대해 기성 정치인이 정말 자책하고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 불균형 발전의 문제를 시정해 보고자 편한 지역을 관두고 모두들 험지로 평가하고 기피하는 사하 을 지역에 과감하게 도전하기로 한 그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그 첫 준비로, 석 변호사는 부산 사하구 장림동에 변호사 사무실(법무법인 대호 분사무소)을 내고 오는 29일 오후 3시에 개업식을 갖기로 했다.
또한, 사하의 주민이 되기 위해 지난달에 이미 서울서 사하구 다대동으로 주소이전 및 이사도 마쳤다고 한다.
그가 정말 사하의 사람이 되어 자신의 원칙과 약속을 바로 지켜 나가는지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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