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유준상 기자] 2일 문화재청은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881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창의문은 한양도성 4소문(四小門) 중 하나이자 서북쪽에 있는 문으로, 1396년(조선 태조 5년) 도성 축조 시 건립됐다.
숙정문과 함께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 역할을 했으나 1416년(태종 16년) 풍수지리설에 의해 폐쇄돼 통행이 전면 금지됐다. 1506년(중종 1년)에 이르러서야 통행이 재개됐다.
창의문은 대한민국의 굴곡의 역사를 함께 겪어 온 살아 있는 유적지다.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 당시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반정군들이 창의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문루가 불에 타 없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1741~42년(영조 17~18년) 다시 중건됐다.
외관상 주요 특징이자 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큰 돌로 쌓은 성벽인 `육축`은 숭례문, 흥인지문처럼 네모난 장대석으로 축조했다. 내부에는 성으로 올라가기 위한 등성시설이 설치됐다. 북측 등성시설은 `ㄷ`자 형의 일반적인 형태이나, 남쪽은 낮아지는 지형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으로 지은 집) 지붕이며,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인 여장은 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이 없는 전돌로 축조돼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창의문은 한양도성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 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문으로, 문루는 18세기 중건 이후 큰 변형 없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도성 문루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며 "육축과 등성시설 또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전했다.
[아유경제=유준상 기자] 2일 문화재청은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881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창의문은 한양도성 4소문(四小門) 중 하나이자 서북쪽에 있는 문으로, 1396년(조선 태조 5년) 도성 축조 시 건립됐다.
숙정문과 함께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 역할을 했으나 1416년(태종 16년) 풍수지리설에 의해 폐쇄돼 통행이 전면 금지됐다. 1506년(중종 1년)에 이르러서야 통행이 재개됐다.
창의문은 대한민국의 굴곡의 역사를 함께 겪어 온 살아 있는 유적지다.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 당시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반정군들이 창의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문루가 불에 타 없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1741~42년(영조 17~18년) 다시 중건됐다.
외관상 주요 특징이자 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큰 돌로 쌓은 성벽인 `육축`은 숭례문, 흥인지문처럼 네모난 장대석으로 축조했다. 내부에는 성으로 올라가기 위한 등성시설이 설치됐다. 북측 등성시설은 `ㄷ`자 형의 일반적인 형태이나, 남쪽은 낮아지는 지형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으로 지은 집) 지붕이며,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인 여장은 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이 없는 전돌로 축조돼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창의문은 한양도성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 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문으로, 문루는 18세기 중건 이후 큰 변형 없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도성 문루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며 "육축과 등성시설 또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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