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를 공부할 때 마다 늘 마음속에서 깊은 민족의 역사인식과 한국교회 부흥에 관한 도전을 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김치선 박사였다. 그는 복음을 통해 민족의 부흥을 위하여 온 몸을 던졌고, 민족의 수난시절에도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있었다. 김치선 박사는 역편자에게 부흥에 대한 강력한 도전과 민족의 복음화에 대한 질문을 던져 주었다. 그는 복음전파에 생명을 걸었고 평생 교육과 목회사역을 통해 민족교회에 생동감을 주었던 인물로 기억한다.
그는 19세기 말 조선이 세계의 역사적 흐름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여 민족적인 고난을 예고하고 있었던 시대에 태어났다. 초기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말미암아 15여년이 흐름에 따라 조선 땅에는 복음이 곳곳에 전파되어 정착하고 있었다. 함흥에는 이미 캐나다 영재형 선교사와 여러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복음을 받았던 김치선 박사가 일제치하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그는 고등학교 시절 191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민족의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걸어갔었다. 그 후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평양신학교에서 1학기를 공부하였다. 한국교회 최초로 미국 텍사스주 복음주의 신학대학(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현 달라스 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서 1935년, 구약학 전공으로 신학박사(Th. D.)학위를 취득한 고봉 김치선 박사는 조국의 일제침략기와 해방 후 한국교회의 신학, 목회, 교회의 부흥운동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리고 그는 민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애국자였다. 특히 민족의 지도자로 있었던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한국사회에 귀중한 사역을 감당하신 분이었다. 그는 신학자였고, 교육자로, 그리고 목회자로서 복음 전도자의 사역을 열정적으로 감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제 1세대의 신학자로, 목회자로 백낙준, 박형룡, 박윤선, 송창근, 김재준, 한경직 등과 함께 한국교회와 신학의 형성과 목회를 위해 큰 기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사에서는 그에 대한 연구와 평가 작업이 불모지와 같아 시기적으로 매우 늦었지만 김치선 박사를 한국교회사에서 재조명하고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연구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김치선 박사가 수학했던 1930년대의 미국 달라스 신학교의 배경을 연구하던 중에 JOHN D. HANNAH의 “An uncommon Union:Dallas Theological Seminary and American Evangelicalism”(2009)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김치선 박사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PA)에서 신학석사학위(Th.M)를 취득하고, 마지막 학업을 마쳤던 달라스 신학교의 박사과정 중 재학시절에 대한 전후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역편자는 John D. Hannah의 책을 기본 자료로 하여 달라스 신학교의 문서집인 ADTS(Archival Collection of the Dallas Theological Seminary), Bradley J. Longtield의 The Presbyterian controversy:Fundamentalists, Modernists, and Moderates(1991, Oxford), Mark A. Noll의 Between Faith and criticism:Evangelicals, Scholarship, and the Bible in America(1986, Chicago), George M. Marsden의 The Soul of the American University:From Protestant Estabilishment to Estabilished Nonvelief(1994, Oxford)를 위시한 그의 다수의 저작들과 아티클들, Frank S. Mead, Sammel S. Hill에 의해 편집된 Handbook of Demominations in the United States, 10the Ed.(1996, Michigan) 그리고 Westminster와 Edinburgh의 Sinclair B. Ferguson과 David F. Wright가 편집한 NDT(1988, Leicester), Columbia의 Randall Balmer가 편집한 EE(2002) 등을 참고하여 「미국 복음주의」를 재구성했다.
본서를 통해서 1924-1952년에 이르는 미국 달라스 신학교와 미국복음주의의 궤적을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본서를 통해서 초창기 한국교회, 신학이식기(神學移植期)의 논쟁의 역사와 교단분리역사를 간접적으로 비교 조망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본서를 출간하도록 인도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바쁘신 연구사역 중에서도 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히 읽어주시고 역사신학자의 통찰력으로 세심한 조언을 해주신 Joseph J. Kang 박사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특히 본서의 출판을 허락하신 한국문학방송 대표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 최선(崔宣), <머리말>
- 차 례 -
머리말
약어표(Abreviation)
프롤로그
1. 복음주의 신학교를 위한 최초 계획
2. 복음주의 신학교의 배경
2-1. 자유주의 신학교에 대한 비평
2-2. 성경연구원에 대한 비평
2-3. 보수적 신학교에 대한 비평
2-4. 복음주의 신학대학의 고유성
3. 복음주의 신학교의 교과과정
3-1. 교리 선언서 개발
3-2. 교과과정의 주안점
3-3. 순차적 성경과정
3-4. 그리피스 토마스 강좌(Griffith Thoms Lecture)
4. 복음주의 신학대학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관점
4-1. 대학과 근본주의 운동
4-2. 대학과 주류 교파
5. 복음주의 신학대학의 등장
5-1 학교 위치
5-2. 도서관의 인수
5-3. 캠퍼스의 탄생
5-4. 초창기 대학 교수진
5-5. 초창기 학생들
5-6. 1929년 구조조정
5-7. 신학저널 「비블리오테카 세크라」의 인수
5-8. 교과과정 개정
5-9. 교명 변경
6. 복음주의 신학대학의 재정적 고충
6-1. 대학의 재정 정책
6-2. 초창기의 재정 역사
6-3. 초창기 교수진의 불안
6-4. 대학에서의 정책 조정
7. 장로교파 내부의 긴장감 증대와 비전의 재형성
7-1.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에 대한 초기 대응
7-2. 북부 비전천년주의 장로교도의 반응
7-3. 북부지역 전천년주의의 반응
7-4. 남부의 장로교 보수주의의 반응
7-5. 신학교 졸업생에게 미친 영향
8. 근본주의 운동과의 긴장감 증가:비전의 제한
9. 대표직 인계, 전쟁 시기와 학교의 성장
9-1. 학교 헌장과 정관의 변화
9-2. 인가
9-3. 전천년주의의 체계적 신학(1947)
9-4. 에드몬스가로 찾아온 슬픔
9-5. 존 월부어드(John F. Walvoord)의 등장
미국 복음주의
최선 편저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한국교회사를 공부할 때 마다 늘 마음속에서 깊은 민족의 역사인식과 한국교회 부흥에 관한 도전을 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김치선 박사였다. 그는 복음을 통해 민족의 부흥을 위하여 온 몸을 던졌고, 민족의 수난시절에도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있었다. 김치선 박사는 역편자에게 부흥에 대한 강력한 도전과 민족의 복음화에 대한 질문을 던져 주었다. 그는 복음전파에 생명을 걸었고 평생 교육과 목회사역을 통해 민족교회에 생동감을 주었던 인물로 기억한다.
한국교회 최초로 미국 텍사스주 복음주의 신학대학(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현 달라스 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서 1935년, 구약학 전공으로 신학박사(Th. D.)학위를 취득한 고봉 김치선 박사는 조국의 일제침략기와 해방 후 한국교회의 신학, 목회, 교회의 부흥운동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리고 그는 민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애국자였다. 특히 민족의 지도자로 있었던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한국사회에 귀중한 사역을 감당하신 분이었다. 그는 신학자였고, 교육자로, 그리고 목회자로서 복음 전도자의 사역을 열정적으로 감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제 1세대의 신학자로, 목회자로 백낙준, 박형룡, 박윤선, 송창근, 김재준, 한경직 등과 함께 한국교회와 신학의 형성과 목회를 위해 큰 기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사에서는 그에 대한 연구와 평가 작업이 불모지와 같아 시기적으로 매우 늦었지만 김치선 박사를 한국교회사에서 재조명하고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연구라 할 것이다.
그는 19세기 말 조선이 세계의 역사적 흐름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여 민족적인 고난을 예고하고 있었던 시대에 태어났다. 초기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말미암아 15여년이 흐름에 따라 조선 땅에는 복음이 곳곳에 전파되어 정착하고 있었다. 함흥에는 이미 캐나다 영재형 선교사와 여러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복음을 받았던 김치선 박사가 일제치하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그는 고등학교 시절 191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민족의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걸어갔었다. 그 후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평양신학교에서 1학기를 공부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김치선 박사가 수학했던 1930년대의 미국 달라스 신학교의 배경을 연구하던 중에 JOHN D. HANNAH의 “An uncommon Union:Dallas Theological Seminary and American Evangelicalism”(2009)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김치선 박사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PA)에서 신학석사학위(Th.M)를 취득하고, 마지막 학업을 마쳤던 달라스 신학교의 박사과정 중 재학시절에 대한 전후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역편자는 John D. Hannah의 책을 기본 자료로 하여 달라스 신학교의 문서집인 ADTS(Archival Collection of the Dallas Theological Seminary), Bradley J. Longtield의 The Presbyterian controversy:Fundamentalists, Modernists, and Moderates(1991, Oxford), Mark A. Noll의 Between Faith and criticism:Evangelicals, Scholarship, and the Bible in America(1986, Chicago), George M. Marsden의 The Soul of the American University:From Protestant Estabilishment to Estabilished Nonvelief(1994, Oxford)를 위시한 그의 다수의 저작들과 아티클들, Frank S. Mead, Sammel S. Hill에 의해 편집된 Handbook of Demominations in the United States, 10the Ed.(1996, Michigan) 그리고 Westminster와 Edinburgh의 Sinclair B. Ferguson과 David F. Wright가 편집한 NDT(1988, Leicester), Columbia의 Randall Balmer가 편집한 EE(2002) 등을 참고하여 「미국 복음주의」를 재구성했다.
본서를 통해서 1924-1952년에 이르는 미국 달라스 신학교와 미국복음주의의 궤적을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본서를 통해서 초창기 한국교회, 신학이식기(神學移植期)의 논쟁의 역사와 교단분리역사를 간접적으로 비교 조망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본서를 출간하도록 인도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바쁘신 연구사역 중에서도 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히 읽어주시고 역사신학자의 통찰력으로 세심한 조언을 해주신 Joseph J. Kang 박사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특히 본서의 출판을 허락하신 한국문학방송 대표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 최선(崔宣), <머리말>
- 차 례 -
머리말
약어표(Abreviation)
프롤로그
1. 복음주의 신학교를 위한 최초 계획
2. 복음주의 신학교의 배경
2-1. 자유주의 신학교에 대한 비평
2-2. 성경연구원에 대한 비평
2-3. 보수적 신학교에 대한 비평
2-4. 복음주의 신학대학의 고유성
3. 복음주의 신학교의 교과과정
3-1. 교리 선언서 개발
3-2. 교과과정의 주안점
3-3. 순차적 성경과정
3-4. 그리피스 토마스 강좌(Griffith Thoms Lecture)
4. 복음주의 신학대학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관점
4-1. 대학과 근본주의 운동
4-2. 대학과 주류 교파
5. 복음주의 신학대학의 등장
5-1 학교 위치
5-2. 도서관의 인수
5-3. 캠퍼스의 탄생
5-4. 초창기 대학 교수진
5-5. 초창기 학생들
5-6. 1929년 구조조정
5-7. 신학저널 「비블리오테카 세크라」의 인수
5-8. 교과과정 개정
5-9. 교명 변경
6. 복음주의 신학대학의 재정적 고충
6-1. 대학의 재정 정책
6-2. 초창기의 재정 역사
6-3. 초창기 교수진의 불안
6-4. 대학에서의 정책 조정
7. 장로교파 내부의 긴장감 증대와 비전의 재형성
7-1.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에 대한 초기 대응
7-2. 북부 비전천년주의 장로교도의 반응
7-3. 북부지역 전천년주의의 반응
7-4. 남부의 장로교 보수주의의 반응
7-5. 신학교 졸업생에게 미친 영향
8. 근본주의 운동과의 긴장감 증가:비전의 제한
9. 대표직 인계, 전쟁 시기와 학교의 성장
9-1. 학교 헌장과 정관의 변화
9-2. 인가
9-3. 전천년주의의 체계적 신학(1947)
9-4. 에드몬스가로 찾아온 슬픔
9-5. 존 월부어드(John F. Walvoord)의 등장
결론 | 그래도 세계는 돌고 있다:신학교와 개인적 고찰
Bibligraphy
[2015.12.15 발행. 254쪽. 정가 5천원(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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