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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10월의 독립운동가 이성구 선생 선정 및 특별전 개최
repoter : 정훈 기자 ( koreaaeryou@naver.com ) 등록일 : 2013-09-26 22:35:54 · 공유일 : 2014-06-10 10:44:01
[아유경제=정훈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이성구(李成九, 1896 ~ 미상) 선생을 2013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0월 한 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선생은 1896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 기간 중 이수봉이라는 이명(異名)으로 더 알려진 선생은 1919년 고향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선천면사무소 방화를 주도했다. 선생은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던 중 일제의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돼 1923년 5월 병보석으로 형 집행정지 후 일시 석방됐을 때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망명 후인 1923년 9월 상하이 독립신문사에 입사한 선생은 2년여 동안 근무하다가, 1926년 1월 의열투쟁 독립단체인 병인의용대에 참여했다. 병인의용대 일원으로 상하이 일본 총영사관 폭파의거를 결행했고, 병인의용대의 총 3차례 이뤄진 폭파 의거에 2차례 참여했다.

상하이 일본총영사관 폭파 의거 후 일제의 병인의용대에 대한 검거가 강화되자, 일시 의열투쟁의 최전선에서 물러나 1929년 1월 한국노병회 특별회원으로 가입해 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1930년 6월 상하이 한국독립당에 가입, 1933년 1월 이사로 선출됐다. 이외에도 대한교민단 간사와 그 산하의 의경대, 상하이 한국독립당의 기관지인 `상해한문(上海韓聞)`의 기자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일제의 계속되는 단속과 검거로 인해 선생은 1933년 10월 12일 체포돼, 이듬해 3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의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수감 후 선생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이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후대에 전해지지 않아 사망일 등을 확인할 수 없다.
1968년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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