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정훈 기자] 이주 후 철거가 이뤄지지 않은 정비구역 내 폐·공가가 우범지대로 전락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려 정비사업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면서 사업이 중단돼 방치된 구역이 늘어남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업계 한편에서 관할 행정청, 나아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정비사업 침체로 방치 사업장 늘어
全지역 망라 범죄 발생도 덩달아 ↑
정비사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뒤 사업이 중단돼 방치된 사업장이 늘고 있다. 이에 맞춰 이들 구역에서의 범죄 발생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경기도 안양 D재개발 구역에서는 지난해(2012년) 12월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의 주인공이 재개발에 반대하며 홀로 지내다 숨진 주민으로 확인되면서 정비구역 내 빈집이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 사건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같은 구역에서 올해 초 또다시 시신이 발견돼 충격을 줬다. 이곳 주민이 아니라 추위를 피해 빈집에 들어왔던 노숙자가 병사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충격의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D구역은 2011년 12월 이주가 시작된 이래 `유령마을`로 변했다. 지난 2월 기준 전체 4300여 가구 중 300여 가구가 남아 있지만 낮에도 인적이 드물어 주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사업시행자 측이 고용한 경비들이 교대로 순찰을 돌고 있고, 인근 지구대도 치안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구역 면적이 워낙 넓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지부진한 사업 탓에 철거되지 않은 정비구역 내 폐·공가는 청소년 탈선·비행 및 강력 범죄의 소굴이 될 수 있어 지역을 망라하는 사회문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뿐만이 아니다. 화재와 붕괴를 비롯한 각종 사고 발생 시 인명 피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실제로 2010년 서울 마포구 A재개발 구역에선 익사 사고로 청소년 1명이 숨지기도 했다.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경기도 내 폐·공가 등 범죄·사고에 취약한 건물의 수는 1만2000가구에 달한다. 인천도 지난 2일 기준 정비구역 내 폐·공가 850여 곳을 포함해 시내 전체에 1351개의 빈집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역시 최근 10여 년간 261개 구역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했으나 조합설립인가 후 시행이 멈춰 방치된 곳만 4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이나 서울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2002년 10월 시범사업 지역 3곳(길음·은평·왕십리뉴타운)의 지구 지정 이후 우후죽순 늘어난 뉴타운사업지구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 따른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곳곳에 산재한 정비(예정)구역의 수가 1300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 표류로 방치된 사업장이 늘면서 정비(예정)구역 내 빈집이 서울에만 80여 곳 1만80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단독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아파트로 바꾸는 재개발·재건축이 무분별하게 시행됐다가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이를 포기한 채 방치하는 곳이 늘면서 빈집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사업성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뤄진 정비사업이 불황과 더불어 직격탄을 맞았다"면서 "특히 지방의 경우 중도에 사업을 포기하는 곳이 많아 정비구역 내 빈집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게다가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국에 산재한 폐·공가는 79만3348가구에 달한다. 이는 2005년(72만7814가구) 대비 6만5534가구(9%)나 늘어난 수치이다. 정비구역이 아닌 곳에 있는 폐·공가를 모두 합친 것이지만, 정비구역 내 빈집과 달리 개인 재산이라 철거·관리 방안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반면, 정비구역 내 빈집은 관계 법령에 의거해 사업시행자가 철거할 수 있다.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제2항은 `사업시행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기존 건축물의 소유자의 동의 및 시장·군수의 허가를 얻어 해당 건축물을 철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음 각 호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주택법`, `건축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기존 건축물의 붕괴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경우 ▲폐·공가의 밀집으로 우범지대화의 우려가 있는 경우가 포함됐다.
`도시정비법 제48조의2`는 문제투성이?!
법제 개선 `시급`… 해법 위해 衆志 모아야
그렇다고 정비구역 내 방치된 빈집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건물을 `철거`해 버리는 일인데, 유명무실한 법제 탓에 이것조차 쉽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제1항에 따르면, 관리처분인가 후에나 철거가 가능하다. 그 이전에 사업이 지지부진해 방치된 폐·공가의 철거는 사실상 손댈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
동법 제48조의2제2항에 따라 관리처분인가 전에 `철거`가 가능하다고 해도 해당 건축물 소유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비구역 이외 지역에 있는 빈집과 별반 차이가 없다.
법에 단서 조항으로 `철거에도 불구하고 토지등소유자로서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고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집만 먼저 철거할 순 없다`는 집주인들의 인식이 강한 데다 그들이 타 지역에 있어 연락을 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다.
사업시행자나 관할 행정청 처지에서도 적극적으로 집주인들을 설득할 동인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우선 관리처분인가 후에 이주를 거쳐 철거를 하면 그만인데,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먼저 (부분) 철거를 할 필요성이 떨어진다.
또 `선행 철거` 자체에 비용이 수반되는데, 사업시행자로서는 이것 역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때문에 한때 법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제2항에 의해 건축물을 철거하는 경우 그에 소용되는 비용을 국비 및 시·도비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려 했으나 아직까지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정비법 제48조의2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2012년 2월 1일 개정 이후 이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9월 현재까지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인 도시정비법 개정안 10개에는 관련 내용이 담겨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 자체의 `맹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업계 한편에서 흘러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행 도시정비법상 철거 공사에 관한 사항은 시공자 선정 후 사업시행자-시공자 간 계약 체결 때 포함토록 규정돼 있다"면서 "그런데 법 제48조의2제2항에 의거해 `선행 철거`를 하려면 개별 철거 때마다 별도의 철거업자를 선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시공자 선정 후에 해야 하는지 등의 여부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도시정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는 관련 내용이 거의 없다. 법이 시·도조례로 위임한 것도 아닌 만큼 사실상 법제 미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게 업계의 다수 의견이다.
통상적으로 철거와 관련된 이야기가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대두될 수밖에 없는 것도 현행법의 `한계`로 꼽힌다. 건축물을 철거하려면 일종의 계획서가 필요한데 `기존 주택의 철거 계획서`는 사업시행계획에 포함돼야 할 사항이다. 철거 공사 관련 사항도 시공자 선정과 연관돼 있는데, 서울만 해도 공공관리제도 전면 시행 후 시공자 선정 시기가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늦춰진 상태라 그 이전까진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업계 한편에선 시행령에서 정한 제반 `선행 철거` 절차가 되레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52조의2제1항은 `사업시행자는 법 제48조의2제2항에 따라 건축물을 철거하기 전에 관리처분계획의 수립을 위해 기존 건축물에 대한 물건조서와 사진 또는 영상 자료를 만들어 이를 착공 전까지 보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어 동조 제2항엔 `제1항에 따른 물건조서를 작성할 때 (관리처분인가 등을 다룬) 법 제48조제1항제4호에 따른 종전 건축물의 가격 산정을 위해 건축물의 총면적, 그 실측 평면도, 주요 마감재 등을 첨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제2항의 입법 취지가 관리처분인가 전이라도 정비구역 내 발생하는 폐·공가를 철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시행키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며 "그런데 법 시행령에선 해당 조항에 따른 철거 진행 시 물건조서 등의 작성 및 보관을 강제해 사실상 사업시행자의 `선행 철거` 의지를 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숲은 있는데 나무가 없는 형국인 데다 당근은 없는데 채찍만 있다"고 비유한 뒤 "상황이 이런 데 누가 자발적으로 구역 내 폐·공가를 관리처분인가 전에 철거하려 하겠나"라고 되물었다.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에 대한 성토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상황에서 해법으로 철거 시기를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현행법 상 철거 시기는 단순히 `관리처분인가 후`로 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를 법에 `철거는 관리처분인가 후 어느 시점까지`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시 종전 관리처분인가를 취소한다`는 식으로 일종의 `일몰제`를 적용하자는 게 이러한 주장의 핵심이다.
하지만 업계 한편에선 이 같은 주장이 현실을 무시하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나왔다.
업계 전문가 A씨는 "철거 시기를 법제화하려면 그 전에 이주 시기도 명문화해야 하는데 이주에 소요되는 시간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철거 시기를 강제하고 위반 시 제재를 가하자는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폐·공가 내 범죄·사고를 막자고 정비사업을 망치자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땅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업계 이해관계인을 아우르는 중지(衆志)를 모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철거되지 않고 방치된 정비구역 내 폐·공가 문제를 현행법이 해결할 수 없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라며 "이제는 이를 개선키 위한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개발이 시작된 후 빈집이 늘어나 문제를 겪었던 인천 남구 숭의동 109 일대가 2011년 10월부터 동 주민센터의 지원을 받은 지역 예술인들에 의해 `예술인 마을`로 탈바꿈한 `우각로 문화마을` 사례나 정부가 나서 빈집을 보수한 뒤 이를 독거노인을 위한 공동 주거 공간으로 제공한 일본의 `그룹 리빙` 등도 참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아유경제=정훈 기자] 이주 후 철거가 이뤄지지 않은 정비구역 내 폐·공가가 우범지대로 전락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려 정비사업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면서 사업이 중단돼 방치된 구역이 늘어남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업계 한편에서 관할 행정청, 나아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정비사업 침체로 방치 사업장 늘어
全지역 망라 범죄 발생도 덩달아 ↑
정비사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뒤 사업이 중단돼 방치된 사업장이 늘고 있다. 이에 맞춰 이들 구역에서의 범죄 발생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경기도 안양 D재개발 구역에서는 지난해(2012년) 12월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의 주인공이 재개발에 반대하며 홀로 지내다 숨진 주민으로 확인되면서 정비구역 내 빈집이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 사건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같은 구역에서 올해 초 또다시 시신이 발견돼 충격을 줬다. 이곳 주민이 아니라 추위를 피해 빈집에 들어왔던 노숙자가 병사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충격의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D구역은 2011년 12월 이주가 시작된 이래 `유령마을`로 변했다. 지난 2월 기준 전체 4300여 가구 중 300여 가구가 남아 있지만 낮에도 인적이 드물어 주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사업시행자 측이 고용한 경비들이 교대로 순찰을 돌고 있고, 인근 지구대도 치안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구역 면적이 워낙 넓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지부진한 사업 탓에 철거되지 않은 정비구역 내 폐·공가는 청소년 탈선·비행 및 강력 범죄의 소굴이 될 수 있어 지역을 망라하는 사회문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뿐만이 아니다. 화재와 붕괴를 비롯한 각종 사고 발생 시 인명 피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실제로 2010년 서울 마포구 A재개발 구역에선 익사 사고로 청소년 1명이 숨지기도 했다.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경기도 내 폐·공가 등 범죄·사고에 취약한 건물의 수는 1만2000가구에 달한다. 인천도 지난 2일 기준 정비구역 내 폐·공가 850여 곳을 포함해 시내 전체에 1351개의 빈집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역시 최근 10여 년간 261개 구역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했으나 조합설립인가 후 시행이 멈춰 방치된 곳만 4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이나 서울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2002년 10월 시범사업 지역 3곳(길음·은평·왕십리뉴타운)의 지구 지정 이후 우후죽순 늘어난 뉴타운사업지구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 따른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곳곳에 산재한 정비(예정)구역의 수가 1300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 표류로 방치된 사업장이 늘면서 정비(예정)구역 내 빈집이 서울에만 80여 곳 1만80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단독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아파트로 바꾸는 재개발·재건축이 무분별하게 시행됐다가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이를 포기한 채 방치하는 곳이 늘면서 빈집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사업성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뤄진 정비사업이 불황과 더불어 직격탄을 맞았다"면서 "특히 지방의 경우 중도에 사업을 포기하는 곳이 많아 정비구역 내 빈집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게다가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국에 산재한 폐·공가는 79만3348가구에 달한다. 이는 2005년(72만7814가구) 대비 6만5534가구(9%)나 늘어난 수치이다. 정비구역이 아닌 곳에 있는 폐·공가를 모두 합친 것이지만, 정비구역 내 빈집과 달리 개인 재산이라 철거·관리 방안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반면, 정비구역 내 빈집은 관계 법령에 의거해 사업시행자가 철거할 수 있다.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제2항은 `사업시행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기존 건축물의 소유자의 동의 및 시장·군수의 허가를 얻어 해당 건축물을 철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음 각 호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주택법`, `건축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기존 건축물의 붕괴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경우 ▲폐·공가의 밀집으로 우범지대화의 우려가 있는 경우가 포함됐다.
`도시정비법 제48조의2`는 문제투성이?!
법제 개선 `시급`… 해법 위해 衆志 모아야
그렇다고 정비구역 내 방치된 빈집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건물을 `철거`해 버리는 일인데, 유명무실한 법제 탓에 이것조차 쉽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제1항에 따르면, 관리처분인가 후에나 철거가 가능하다. 그 이전에 사업이 지지부진해 방치된 폐·공가의 철거는 사실상 손댈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
동법 제48조의2제2항에 따라 관리처분인가 전에 `철거`가 가능하다고 해도 해당 건축물 소유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비구역 이외 지역에 있는 빈집과 별반 차이가 없다.
법에 단서 조항으로 `철거에도 불구하고 토지등소유자로서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고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집만 먼저 철거할 순 없다`는 집주인들의 인식이 강한 데다 그들이 타 지역에 있어 연락을 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다.
사업시행자나 관할 행정청 처지에서도 적극적으로 집주인들을 설득할 동인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우선 관리처분인가 후에 이주를 거쳐 철거를 하면 그만인데,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먼저 (부분) 철거를 할 필요성이 떨어진다.
또 `선행 철거` 자체에 비용이 수반되는데, 사업시행자로서는 이것 역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때문에 한때 법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제2항에 의해 건축물을 철거하는 경우 그에 소용되는 비용을 국비 및 시·도비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려 했으나 아직까지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정비법 제48조의2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2012년 2월 1일 개정 이후 이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9월 현재까지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인 도시정비법 개정안 10개에는 관련 내용이 담겨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 자체의 `맹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업계 한편에서 흘러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행 도시정비법상 철거 공사에 관한 사항은 시공자 선정 후 사업시행자-시공자 간 계약 체결 때 포함토록 규정돼 있다"면서 "그런데 법 제48조의2제2항에 의거해 `선행 철거`를 하려면 개별 철거 때마다 별도의 철거업자를 선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시공자 선정 후에 해야 하는지 등의 여부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도시정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는 관련 내용이 거의 없다. 법이 시·도조례로 위임한 것도 아닌 만큼 사실상 법제 미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게 업계의 다수 의견이다.
통상적으로 철거와 관련된 이야기가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대두될 수밖에 없는 것도 현행법의 `한계`로 꼽힌다. 건축물을 철거하려면 일종의 계획서가 필요한데 `기존 주택의 철거 계획서`는 사업시행계획에 포함돼야 할 사항이다. 철거 공사 관련 사항도 시공자 선정과 연관돼 있는데, 서울만 해도 공공관리제도 전면 시행 후 시공자 선정 시기가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늦춰진 상태라 그 이전까진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업계 한편에선 시행령에서 정한 제반 `선행 철거` 절차가 되레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52조의2제1항은 `사업시행자는 법 제48조의2제2항에 따라 건축물을 철거하기 전에 관리처분계획의 수립을 위해 기존 건축물에 대한 물건조서와 사진 또는 영상 자료를 만들어 이를 착공 전까지 보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어 동조 제2항엔 `제1항에 따른 물건조서를 작성할 때 (관리처분인가 등을 다룬) 법 제48조제1항제4호에 따른 종전 건축물의 가격 산정을 위해 건축물의 총면적, 그 실측 평면도, 주요 마감재 등을 첨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제2항의 입법 취지가 관리처분인가 전이라도 정비구역 내 발생하는 폐·공가를 철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시행키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며 "그런데 법 시행령에선 해당 조항에 따른 철거 진행 시 물건조서 등의 작성 및 보관을 강제해 사실상 사업시행자의 `선행 철거` 의지를 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숲은 있는데 나무가 없는 형국인 데다 당근은 없는데 채찍만 있다"고 비유한 뒤 "상황이 이런 데 누가 자발적으로 구역 내 폐·공가를 관리처분인가 전에 철거하려 하겠나"라고 되물었다.
도시정비법 제48조의2에 대한 성토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상황에서 해법으로 철거 시기를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현행법 상 철거 시기는 단순히 `관리처분인가 후`로 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를 법에 `철거는 관리처분인가 후 어느 시점까지`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시 종전 관리처분인가를 취소한다`는 식으로 일종의 `일몰제`를 적용하자는 게 이러한 주장의 핵심이다.
하지만 업계 한편에선 이 같은 주장이 현실을 무시하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나왔다.
업계 전문가 A씨는 "철거 시기를 법제화하려면 그 전에 이주 시기도 명문화해야 하는데 이주에 소요되는 시간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철거 시기를 강제하고 위반 시 제재를 가하자는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폐·공가 내 범죄·사고를 막자고 정비사업을 망치자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땅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업계 이해관계인을 아우르는 중지(衆志)를 모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철거되지 않고 방치된 정비구역 내 폐·공가 문제를 현행법이 해결할 수 없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라며 "이제는 이를 개선키 위한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개발이 시작된 후 빈집이 늘어나 문제를 겪었던 인천 남구 숭의동 109 일대가 2011년 10월부터 동 주민센터의 지원을 받은 지역 예술인들에 의해 `예술인 마을`로 탈바꿈한 `우각로 문화마을` 사례나 정부가 나서 빈집을 보수한 뒤 이를 독거노인을 위한 공동 주거 공간으로 제공한 일본의 `그룹 리빙` 등도 참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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