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있다가 없어지거나 지나간 뒤에는 자취나 자국이 남는데,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지나가는 자리에도 흔적이 남는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흔적도 있고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추억도 있겠다. 보이지 않게 지워버릴 수 있는 것도 있겠고, 기억에서 사라지지 아니하고 오래도록 남게 되는 경우도 있겠다.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는 흔적에는 아름답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추억도 있을 것이나 잊어버리고 싶은 일도 있겠다. 나는 어느 새 소년시절, 학창시절, 청•장년 시절을 다 지내고 이제 인생의 한참 후반부에 와 있게 된 듯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역정(歷程)의 곳곳에 남겨진 흔적(痕迹)들을 정리해놓고, 볼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이 문집(文集)을 만들어서 남기고 싶은 충동을 때때로 느끼게 되었다.
군복무기간과 학창시절의 일기장들은 반세기도 더 지나온 세월을 통하여 낡을 대로 낡아서 더 보관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고, 간간이 적어서 기고하여 활자화(活字化) 되었던 글들도 스크랩해 두었으나 오랜 세월 지나고 보니 만지면 훼손될 상태가 된 것도 있다.
이대로 두면 나의 젊은 날의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어 애지중지하며 보관해온 것들이 다 폐물로 없어지게 될 것을 생각하니 아까운 생각이 들게 되었다. 재준, 재혁, 재용 그리고 호재, 이들 네 아들이 성장하고 사회에 진출하기까지 한 집에서 가족으로 함께 살던 세월 동안에는 다 제각기 주어진 과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일상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기에 서로를 얘기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 왔다.
그러다가 이제는 다 제각기 독립하여 생활하고 있으니 때로는 부모형제에 대한 생각이 나면 볼 수 있도록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나름의 귀중한 것들을 정리해 남겨줄 방안을 여러 가지로 궁리해 보았다.
우선 지난 날 간간히 적어 둔 기록들을 모아서 문집으로 만들어 나의 네 아들과 커가는 손자손녀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생각에서, 이 문집 흔적(痕迹)을 만들게 되었다.
여기에 수록한 기고글은 나와 인연이 있었던 잡지, 행보(行報), 신문 등의 정기간행물 편집 관련자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게재(揭載)하게 되었던 당시의 기고내용을 그대로 옮겨 실었으며, 일기초록(日記抄錄)은 내 인생을 준비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었던 20대 초반의 군복무 시절과 대학시절의 일기노트 중에서 주로 발췌 (拔萃)하여 실었고, 그 후에도 간간이 적어두었던 몇 편의 일기문을 수록하였다.
편지글은 군복무시절과 대학시절에 고향의 부모님께 보낸 편지와 분가(分家)하기 전의 두 분 형님께 보낸 편지들이 고향집에 그대로 남아 있어, 뒷날 모아두었던 것을 이번에 수집하여 이 문집을 만들면서 몇 장의 편지내용을 수록하였고, 그 후 훨씬 뒷날인 2천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메일(e-mail)이 일반화되어 우리 아이들 식구와 몇몇 고향출신 벗들에게 보낸 몇 편의 이메일을 여기에 또한 수록하였다.
끝으로 부록으로 하여 한은(韓銀) 조사역 시절, 한 때의 업무와 관련되었던 글을 싣게 되었다.
1975년 기준 도매물가지수 개편업무의 책임을 맡아, 동료직원들과 함께 근 한 해 동안에 걸친 작업을 마치고 나서 그 결과 보고서를 국문과 영문으로 집필하여 한은 조사월보(1977.5월, 제31권 제5호)와 영문판 계간(季刊), Quarterly Economic Review (1977.9월)에 각각 게재되었는데 당시의 게재내용을 그대로
사진판으로 옮겨, 이 또한 이번에 만드는 나의 문집에 수록하였다.
또한 부록에, 한은(韓銀) 동경사무소 근무시절(1987〜1990),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은(日銀)에서 세계 유수의 몇몇 중앙은행을 일은(日銀) 행내보(行內報)인 ‘니찌 깅'에 소개하는 특집을 기획하면서 두 번째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의 중앙은행인 한은(韓銀)을 1990.2월 발행한 ‘니찌깅’에 소개한 바 있었다. 그 내용을 당시 본점 기획부의 협조를 받아 ‘니찌깅' 편집 담당자들과 함께 작성하여 게재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당시 '니찌깅'에 소개된 내용을 그대로 사진판으로 옮겨 이 문집에 싣게 되었다.
이 문집에는 20대 초반의 생각이나 느낌이 미숙했던 시절에 썼던 일기초록을 비롯해 문집의 곳곳에, 조악한 문장력 때문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겠으나, 글을 쓰는 일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의 문집인 탓으로 돌리고자 한다.
― 한봉균, 책머리글 <문집을 내면서> 중에서
- 차 례 -
문집을 내면서
수상문(隨想文) 잊혀 지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의 선생님
구름
우리생활의 어제,오늘과 내일
외환병(外換病)과 편작(扁韻)
일은(日銀) 사람들의 이미지
OB의 변(辯)
Deadwood가 최소한인 조직
반세기를 넘게 송현 언덕에서
참된 대화의 광장이 되어 주었으면
성전의 자리
나의 신앙, 나의 가족
베다니(Bethany)의 형제자매들이여
나의 청소년기(靑少年期) - 가정 사역 숙제 1
가정 사역 숙제 2
영산교회 중등부 주일 성찬예배 기도문
김학철 대리의 결혼주례사
흔적
지역경제(地域經濟)에서의 지방은행(地方銀行)
지방은행 해외증권 발행이 의미하는 것
지역경제와 금융
부하육성의 중요성
A Brief Thought on Parents
일기문(日記文)
군복무(軍服務) 시절
학창 시절
한은 행원(韓銀 行員) 시절
퇴임후
서간문(書簡文)
군복무{軍服務) 중에 본기{本家)에
학업(學勤 중에 본가에
격지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지인(知人)에게
합본 부록(合本 附錄)
도매물가지수의 개편결과-1975년 기준
Summary of the 1975 Base Wholesale Price Index Revision
Central Banks in the World-한국은행(韓國銀行)
흔적
한봉균 문집 / 창조문학사 刊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있다가 없어지거나 지나간 뒤에는 자취나 자국이 남는데,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지나가는 자리에도 흔적이 남는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흔적도 있고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추억도 있겠다. 보이지 않게 지워버릴 수 있는 것도 있겠고, 기억에서 사라지지 아니하고 오래도록 남게 되는 경우도 있겠다.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는 흔적에는 아름답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추억도 있을 것이나 잊어버리고 싶은 일도 있겠다. 나는 어느 새 소년시절, 학창시절, 청•장년 시절을 다 지내고 이제 인생의 한참 후반부에 와 있게 된 듯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역정(歷程)의 곳곳에 남겨진 흔적(痕迹)들을 정리해놓고, 볼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이 문집(文集)을 만들어서 남기고 싶은 충동을 때때로 느끼게 되었다.
군복무기간과 학창시절의 일기장들은 반세기도 더 지나온 세월을 통하여 낡을 대로 낡아서 더 보관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고, 간간이 적어서 기고하여 활자화(活字化) 되었던 글들도 스크랩해 두었으나 오랜 세월 지나고 보니 만지면 훼손될 상태가 된 것도 있다.
이대로 두면 나의 젊은 날의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어 애지중지하며 보관해온 것들이 다 폐물로 없어지게 될 것을 생각하니 아까운 생각이 들게 되었다. 재준, 재혁, 재용 그리고 호재, 이들 네 아들이 성장하고 사회에 진출하기까지 한 집에서 가족으로 함께 살던 세월 동안에는 다 제각기 주어진 과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일상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기에 서로를 얘기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 왔다.
그러다가 이제는 다 제각기 독립하여 생활하고 있으니 때로는 부모형제에 대한 생각이 나면 볼 수 있도록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나름의 귀중한 것들을 정리해 남겨줄 방안을 여러 가지로 궁리해 보았다.
우선 지난 날 간간히 적어 둔 기록들을 모아서 문집으로 만들어 나의 네 아들과 커가는 손자손녀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생각에서, 이 문집 흔적(痕迹)을 만들게 되었다.
여기에 수록한 기고글은 나와 인연이 있었던 잡지, 행보(行報), 신문 등의 정기간행물 편집 관련자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게재(揭載)하게 되었던 당시의 기고내용을 그대로 옮겨 실었으며, 일기초록(日記抄錄)은 내 인생을 준비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었던 20대 초반의 군복무 시절과 대학시절의 일기노트 중에서 주로 발췌 (拔萃)하여 실었고, 그 후에도 간간이 적어두었던 몇 편의 일기문을 수록하였다.
편지글은 군복무시절과 대학시절에 고향의 부모님께 보낸 편지와 분가(分家)하기 전의 두 분 형님께 보낸 편지들이 고향집에 그대로 남아 있어, 뒷날 모아두었던 것을 이번에 수집하여 이 문집을 만들면서 몇 장의 편지내용을 수록하였고, 그 후 훨씬 뒷날인 2천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메일(e-mail)이 일반화되어 우리 아이들 식구와 몇몇 고향출신 벗들에게 보낸 몇 편의 이메일을 여기에 또한 수록하였다.
끝으로 부록으로 하여 한은(韓銀) 조사역 시절, 한 때의 업무와 관련되었던 글을 싣게 되었다.
1975년 기준 도매물가지수 개편업무의 책임을 맡아, 동료직원들과 함께 근 한 해 동안에 걸친 작업을 마치고 나서 그 결과 보고서를 국문과 영문으로 집필하여 한은 조사월보(1977.5월, 제31권 제5호)와 영문판 계간(季刊), Quarterly Economic Review (1977.9월)에 각각 게재되었는데 당시의 게재내용을 그대로
사진판으로 옮겨, 이 또한 이번에 만드는 나의 문집에 수록하였다.
또한 부록에, 한은(韓銀) 동경사무소 근무시절(1987〜1990),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은(日銀)에서 세계 유수의 몇몇 중앙은행을 일은(日銀) 행내보(行內報)인 ‘니찌 깅'에 소개하는 특집을 기획하면서 두 번째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의 중앙은행인 한은(韓銀)을 1990.2월 발행한 ‘니찌깅’에 소개한 바 있었다. 그 내용을 당시 본점 기획부의 협조를 받아 ‘니찌깅' 편집 담당자들과 함께 작성하여 게재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당시 '니찌깅'에 소개된 내용을 그대로 사진판으로 옮겨 이 문집에 싣게 되었다.
이 문집에는 20대 초반의 생각이나 느낌이 미숙했던 시절에 썼던 일기초록을 비롯해 문집의 곳곳에, 조악한 문장력 때문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겠으나, 글을 쓰는 일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의 문집인 탓으로 돌리고자 한다.
― 한봉균, 책머리글 <문집을 내면서> 중에서
- 차 례 -
문집을 내면서
잊혀 지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의 선생님
수상문(隨想文)
구름
우리생활의 어제,오늘과 내일
외환병(外換病)과 편작(扁韻)
일은(日銀) 사람들의 이미지
OB의 변(辯)
Deadwood가 최소한인 조직
반세기를 넘게 송현 언덕에서
참된 대화의 광장이 되어 주었으면
성전의 자리
나의 신앙, 나의 가족
베다니(Bethany)의 형제자매들이여
나의 청소년기(靑少年期) - 가정 사역 숙제 1
가정 사역 숙제 2
영산교회 중등부 주일 성찬예배 기도문
김학철 대리의 결혼주례사
흔적
지역경제(地域經濟)에서의 지방은행(地方銀行)
지방은행 해외증권 발행이 의미하는 것
지역경제와 금융
부하육성의 중요성
A Brief Thought on Parents
일기문(日記文)
군복무(軍服務) 시절
학창 시절
한은 행원(韓銀 行員) 시절
퇴임후
서간문(書簡文)
군복무{軍服務) 중에 본기{本家)에
학업(學勤 중에 본가에
격지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지인(知人)에게
합본 부록(合本 附錄)
도매물가지수의 개편결과-1975년 기준
Summary of the 1975 Base Wholesale Price Index Revision
Central Banks in the World-한국은행(韓國銀行)
[2014.02.15 발행. 361쪽. 정가 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