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도정법의 본래 목적에는 불량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공익적 성격이 강하게 담겨 있다. 또한 개인의 재산권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나름 개인의 권익을 위해 여러 장치들이 규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조합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서로 공익과 사익의 접점에서 현실성의 문제로 판단이 애매한 경우가 있다. 그만큼 도정법에 빈틈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최종 법을 적용하여 판단하는 판사들마저 제각기 다른 해석과 판결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도정법 제46조, 제47조는 분양신청에 관한 절차로 분양신청을 하지 않거나 철회한 자에 대해서는 조합원의 지위가 상실되어 현금청산자로 전환되는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 분양신청은 관리처분계획을 위하여 조합원들의 재산권에 대한 종전자산평가의 비례율을 정함으로써 대략적인 분담금을 어느 정도 구체화할 수 있는 출발선이다.
따라서 분양신청은 사업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조합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미리 예측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절차이다.
이처럼 정비사업의 안정성을 위해 조합원은 분양신청을 하지 않으면 분양대상자의 지위를 잃어 조합원의 지위도 상실되며 분양신청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분양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 후에 사업시행계획이 변경되더라도 다시 분양신청 기회를 부여받을 수 없다(서울고등법원 2013년 8월 29일 선고).
또한 조합원별 분담금 변동, 일반분양에 따른 수입 추산액의 변동 등 관리처분계획을 변경할 때마다 분양신청을 철회하거나 아파트의 평형을 변경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법률관계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게 사법부의 판단이다(서울행정법원 2013년 3월 29일 선고 2012구합 9444 판결).
즉,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분양신청기간 종료 후 새로운 분양신청이나 철회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정법의 취지와 달리 예외적으로 분양신청을 철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바로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표준정관 제44조제5항이 그 근거로 작용한다.
해당 조항은 `조합원은 관리처분인가 후 정해진 기일 내에 분양계약을 체결하여야 하며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경우 제4항(현금청산)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분양계약을 포기한 자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현금청산자로 전환하여 스스로 조합원의 자격에서 빠져나가도록 하는 아주 융통성이 있고 탄력적인 규정이라 할 것이다.
누군가가 이 조합 정관이 도정법 제46조 및 제47조에 위배된다며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대법원(2011년 7월 28일 선고 2008다91364 판결)은 이러한 규정에 대해 조합원으로 하여금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된 이후라도 조합원의 지위에서 이탈하여 현금청산을 받을 기회를 추가적으로 부여하기 위한 취지이므로 도정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부동산 경기의 호황으로 정비사업의 사업성이 있는 경우 현금청산분은 곧 일반분양분으로 전환돼 그로 인한 수익이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게 오히려 득이 되었기에, 떠나는 현금청산자나 남아 있는 조합원 모두에게 실익인 결과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길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즉, 동전의 한쪽 면만 보고 국토부 표준정관 제44조제5항에 면죄부를 준 꼴이다. 또 표준정관상 규정은 과거 부동산 경기의 호황으로 사업성이 양호한 상황에서만 전제되는 것이어서 지금처럼 사업성이 불확실한 시점에서는 오히려 조합을 딜레마에 빠뜨려 큰 혼란을 야기하는 `악법`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과연 지금도 이 정관 규정이 도정법에 위배되지 않고 효력이 있다 할 수 있을지에 상당한 의문이 든다. 만약 이 정관 규정이 다시 논란이 된다면 대법원 판례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최근 인천의 어느 조합은 2/3 이상의 조합원들이 공사 도중 현금청산자로 빠져나가 비례율이 반 토막으로 떨어져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게 모든 리스크를 안겼고 지금도 현금청산자들은 이주정착금을 추가 요구하며 조합과 소송 중에 있다.
이게 국토부 표준정관 제44조제5항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사업시행인가 후 분양신청을 하고 조합원의 지위를 유지하다가 관리처분인가 후 이주가 되고 착공 단계에서 사업성이 불확실하다며 너 나 할 것 없이 분양계약을 포기하면 그 사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남은 조합원들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게 될 수밖에 없고, 조합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특히 청산자에 대한 비용 부담의 문제도 현실적으로 깊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조합이라는 거대한 배가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일부 조합원들이 풍랑이 있을 것 같아 중간에 하선할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때 조합은 중간에 하선한 조합원들에게 하선하기까지의 최소한의 유류비 정도의 공동 비용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이고, 도중에 하선한 조합원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가 가질 수 있는 이익을 갖지 못하였으니 그간의 비용은 남아 있는 승객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참으로 양비론적인 주장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후자의 논리를 수용하여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현금청산자는 그간의 공동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며 상급심의 판결과 달리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볼 때 이 판결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부분이 있다. 도중에 하선하는 자는 목적지에 가는 동안에 행여 있을지 모르는 풍랑 위험성의 부담에서 벗어나겠다며 목적지에 도착하여 가질 수 있는 이익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운명에서 서로의 고통과 보람을 같이하자는 약속을 저버리고 도중에 하선한 것은 스스로 자기의 목적 이익을 포기한 것이므로 그간의 공동 비용은 부담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분양계약을 포기하는 문제도 그렇다.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어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단계에서 사업성이 나빠졌다며 현금청산을 요구하며 조합을 떠나는 경우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게 모든 리스크를 떠넘기고 가는 것인데, 이런 상황의 청산자를 구제하기 위한 표준정관 제44조제5항의 규정은 도정법 제46조 및 제47조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지금 일선 조합에서는 이 표준정관 때문에 분양계약 포기자에 대한 현금청산의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고 법원 역시 청산금에 관련한 소송에서 갈피를 못 잡고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정관 규정은 본래 조합을 떠나는 청산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으나 반대로 남아 있는 조합원들의 재산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도정법의 입법 취지에 반하며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 정관 규정이 공평성과 합리성을 가져 도정법의 취지에 부합하려면 현금청산자도 조합원의 자격이 상실되기까지 그간의 공동 비용에 대해서는 부담해야 한다는 규정을 정관에 분명하게 명시할 필요가 있고, 현재 정관에 규정되어 있는 조합원의 사업비 등의 비용 납부 의무 또한 현금청산자에게도 포괄적으로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즉, 분양계약을 포기하는 경우 그간 투입된 사업비용 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부담의 책임이 인정되어야 떠나는 조합원이나 남아 있는 조합원 간의 형평성이 유지되며 이 정관의 효력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
정비사업은 창조적인 일이다. 이 말에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예술 분야도 아니고, 더구나 실험을 해야 하는 과학 분야도 아니니 말이다. 정비사업은 정해진 사업 진행 절차에 따라 사업 추진을 하면 된다. 크게 보아 사업 준비 단계, 사업시행 단계, 관리처분 단계, 사업 완료 단계의 총 4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모든 사업장은 이런 진행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변수가 존재한다. 사업장마다 환경이나 조건이 같다면 이와 같은 절차로 매번 반복하더라도 별문제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조합원들이 불협화음의 고통을 겪었던 대표적인 사업장으로 안양의 A재개발 사업장이 있다. 이곳은 추진위원회 설립 이전부터 조합원이 3개의 세력으로 나누어져 서로 다투고 있었다.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이하 정비업자)도 선정하였지만, 창립총회를 앞두고 기존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권 때문에 또다시 서로 반목하고 다투었다. 이러한 다툼이 법정 소송으로까지 가게 되었고 1년이 넘도록 창립총회를 개최하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이런 세력들과는 관계없이 사업이 잘 추진되기를 바랐지만, 위의 세력들이 반대해서 사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때 나는, 정비업자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정비업자는 정비사업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이를 해결할 대안(對案)을 찾아야 한다. 나 역시 이 사업장을 어떻게 하면 다시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나는 3개의 세력을 일일이 찾아가 지속적으로 설득하였으며, 창립총회를 진행하여 조합원이 직접 선택한 조합장과 집행부가 사업을 추진하고, 선거에서 떨어진 세력과 사람은 더 이상 사업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합의 각서를 받았다. 그 후 창립총회가 진행되었고, 조합이 설립되어 시공자선정총회까지 마쳐 현재 사업은 정상적인 진행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사업이 보다 빨리 추진되기를 바라고, 조합원들의 이익도 많이 나기를 바란다. 정비업자는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우선시해야 한다. 조합원들의 지출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 역시 정비업자가 해야 할 역할 중 하나인 것이다.
정비업자는 어떻게 사업장을 창조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렇게 고민해서 만들어낸 사업장이 고덕의 B재건축 사업장이다. B재건축 사업장은 174%의 무상지분율을 제시한 건설사가 선정되었다. 무상지분율이란 조합원이 추가로 분담하는 금액 없이 입주할 수 있는 면적을 대지지분으로 나눈 수치이다. 무상지분율을 높게 책정한 건설사가 선정되었다는 것은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줄어들어 그만큼 조합원들이 이익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결과로 B재건축 사업장은 고덕 주변의 여러 사업장 중에서 시공자로부터 가장 높은 무상지분율을 획득한 사업장이 되었다.
이 지역의 조합원들은 무상지분율을 높게 책정한 시공자를 선정하였기 때문에 추가 분담금 없이 새 아파트에 입주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 무조건 무상지분율이 높다고 해서 조합원들이 최고의 이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끝이 났다고 하면 오산이다. 아직 사업이 완료된 것이 아니며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무상지분율이 높다는 것은 시공자가 그들의 이익을 줄이고 조합원들에게 그만큼의 이익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공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아주 적게 책정하여 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 아파트를 비싸게 분양하여 시공자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모르지만 현재와 같이 부동산경기가 침체되어 있을 때에는 시공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또한 시공자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 부담이 조합원들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B재건축 사업장 조합원들은 높은 무상지분율만 보고 시공자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 시공자가 아파트를 잘 건설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이 신뢰가 없었다면 아무리 무상지분율을 높게 책정한 시공자라고 해도 조합원들에게 선택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정비사업은 사업장마다 모두 같은 사업 추진 절차로 진행되지만, 사업장의 환경이나 조합원들의 특성 등은 사업장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정비사업이 반복적인 업무 진행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여러 사업장을 관리하면서 한 번도 똑같은 사업장을 경험한 적이 없다. 비슷하게 사업이 진행되는 사업장이 있더라도 어느 순간 완전 새로운 사업장으로 탈바꿈된다. 나는 정비업자로서 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만 했다. 물론 사업의 진행 절차가 같기 때문에 그 정도는 반복되는 업무가 아니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 진행 순서까지 겹쳐 가며 빨리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사업장도 있고, 한 번 지나간 단계를 변경하여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장도 있기에 항상 해당 사업장과 환경에 맞게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의 생활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그 설렘과 긴장은 하루, 한 달, 일 년이 지나감에 따라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익숙함과 자신감이 매번 같은 일의 반복으로 짜증과 나태함으로 바뀔 때, 나는 말하고 싶다. 오늘은 지나간 어제와 다른 하루이며, 내일은 지금 보내고 있는 오늘과 다른 하루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그냥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이다. 즉, 우리는 우리들의 시간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을 사랑하고 우리의 일을 즐기고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것이 내가 정비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조합원들과 많은 협력 업체들은 항상 같지가 않기에 난 일을 할 때 설레고 긴장이 된다. 사업장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또 어떤 창조물을 만들어 갈지 기대가 된다.
지금도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어디에 선가 창조물이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도정법의 본래 목적에는 불량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공익적 성격이 강하게 담겨 있다. 또한 개인의 재산권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나름 개인의 권익을 위해 여러 장치들이 규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조합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서로 공익과 사익의 접점에서 현실성의 문제로 판단이 애매한 경우가 있다. 그만큼 도정법에 빈틈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최종 법을 적용하여 판단하는 판사들마저 제각기 다른 해석과 판결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도정법 제46조, 제47조는 분양신청에 관한 절차로 분양신청을 하지 않거나 철회한 자에 대해서는 조합원의 지위가 상실되어 현금청산자로 전환되는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 분양신청은 관리처분계획을 위하여 조합원들의 재산권에 대한 종전자산평가의 비례율을 정함으로써 대략적인 분담금을 어느 정도 구체화할 수 있는 출발선이다.
따라서 분양신청은 사업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조합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미리 예측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절차이다.
이처럼 정비사업의 안정성을 위해 조합원은 분양신청을 하지 않으면 분양대상자의 지위를 잃어 조합원의 지위도 상실되며 분양신청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분양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 후에 사업시행계획이 변경되더라도 다시 분양신청 기회를 부여받을 수 없다(서울고등법원 2013년 8월 29일 선고).
또한 조합원별 분담금 변동, 일반분양에 따른 수입 추산액의 변동 등 관리처분계획을 변경할 때마다 분양신청을 철회하거나 아파트의 평형을 변경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법률관계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게 사법부의 판단이다(서울행정법원 2013년 3월 29일 선고 2012구합 9444 판결).
즉,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분양신청기간 종료 후 새로운 분양신청이나 철회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정법의 취지와 달리 예외적으로 분양신청을 철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바로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표준정관 제44조제5항이 그 근거로 작용한다.
해당 조항은 `조합원은 관리처분인가 후 정해진 기일 내에 분양계약을 체결하여야 하며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경우 제4항(현금청산)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분양계약을 포기한 자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현금청산자로 전환하여 스스로 조합원의 자격에서 빠져나가도록 하는 아주 융통성이 있고 탄력적인 규정이라 할 것이다.
누군가가 이 조합 정관이 도정법 제46조 및 제47조에 위배된다며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대법원(2011년 7월 28일 선고 2008다91364 판결)은 이러한 규정에 대해 조합원으로 하여금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된 이후라도 조합원의 지위에서 이탈하여 현금청산을 받을 기회를 추가적으로 부여하기 위한 취지이므로 도정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부동산 경기의 호황으로 정비사업의 사업성이 있는 경우 현금청산분은 곧 일반분양분으로 전환돼 그로 인한 수익이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게 오히려 득이 되었기에, 떠나는 현금청산자나 남아 있는 조합원 모두에게 실익인 결과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길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즉, 동전의 한쪽 면만 보고 국토부 표준정관 제44조제5항에 면죄부를 준 꼴이다. 또 표준정관상 규정은 과거 부동산 경기의 호황으로 사업성이 양호한 상황에서만 전제되는 것이어서 지금처럼 사업성이 불확실한 시점에서는 오히려 조합을 딜레마에 빠뜨려 큰 혼란을 야기하는 `악법`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과연 지금도 이 정관 규정이 도정법에 위배되지 않고 효력이 있다 할 수 있을지에 상당한 의문이 든다. 만약 이 정관 규정이 다시 논란이 된다면 대법원 판례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최근 인천의 어느 조합은 2/3 이상의 조합원들이 공사 도중 현금청산자로 빠져나가 비례율이 반 토막으로 떨어져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게 모든 리스크를 안겼고 지금도 현금청산자들은 이주정착금을 추가 요구하며 조합과 소송 중에 있다.
이게 국토부 표준정관 제44조제5항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사업시행인가 후 분양신청을 하고 조합원의 지위를 유지하다가 관리처분인가 후 이주가 되고 착공 단계에서 사업성이 불확실하다며 너 나 할 것 없이 분양계약을 포기하면 그 사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남은 조합원들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게 될 수밖에 없고, 조합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특히 청산자에 대한 비용 부담의 문제도 현실적으로 깊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조합이라는 거대한 배가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일부 조합원들이 풍랑이 있을 것 같아 중간에 하선할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때 조합은 중간에 하선한 조합원들에게 하선하기까지의 최소한의 유류비 정도의 공동 비용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이고, 도중에 하선한 조합원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가 가질 수 있는 이익을 갖지 못하였으니 그간의 비용은 남아 있는 승객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참으로 양비론적인 주장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후자의 논리를 수용하여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현금청산자는 그간의 공동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며 상급심의 판결과 달리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볼 때 이 판결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부분이 있다. 도중에 하선하는 자는 목적지에 가는 동안에 행여 있을지 모르는 풍랑 위험성의 부담에서 벗어나겠다며 목적지에 도착하여 가질 수 있는 이익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운명에서 서로의 고통과 보람을 같이하자는 약속을 저버리고 도중에 하선한 것은 스스로 자기의 목적 이익을 포기한 것이므로 그간의 공동 비용은 부담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분양계약을 포기하는 문제도 그렇다.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어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단계에서 사업성이 나빠졌다며 현금청산을 요구하며 조합을 떠나는 경우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게 모든 리스크를 떠넘기고 가는 것인데, 이런 상황의 청산자를 구제하기 위한 표준정관 제44조제5항의 규정은 도정법 제46조 및 제47조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지금 일선 조합에서는 이 표준정관 때문에 분양계약 포기자에 대한 현금청산의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고 법원 역시 청산금에 관련한 소송에서 갈피를 못 잡고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정관 규정은 본래 조합을 떠나는 청산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으나 반대로 남아 있는 조합원들의 재산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도정법의 입법 취지에 반하며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 정관 규정이 공평성과 합리성을 가져 도정법의 취지에 부합하려면 현금청산자도 조합원의 자격이 상실되기까지 그간의 공동 비용에 대해서는 부담해야 한다는 규정을 정관에 분명하게 명시할 필요가 있고, 현재 정관에 규정되어 있는 조합원의 사업비 등의 비용 납부 의무 또한 현금청산자에게도 포괄적으로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즉, 분양계약을 포기하는 경우 그간 투입된 사업비용 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부담의 책임이 인정되어야 떠나는 조합원이나 남아 있는 조합원 간의 형평성이 유지되며 이 정관의 효력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
정비사업은 창조적인 일이다. 이 말에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예술 분야도 아니고, 더구나 실험을 해야 하는 과학 분야도 아니니 말이다. 정비사업은 정해진 사업 진행 절차에 따라 사업 추진을 하면 된다. 크게 보아 사업 준비 단계, 사업시행 단계, 관리처분 단계, 사업 완료 단계의 총 4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모든 사업장은 이런 진행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변수가 존재한다. 사업장마다 환경이나 조건이 같다면 이와 같은 절차로 매번 반복하더라도 별문제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조합원들이 불협화음의 고통을 겪었던 대표적인 사업장으로 안양의 A재개발 사업장이 있다. 이곳은 추진위원회 설립 이전부터 조합원이 3개의 세력으로 나누어져 서로 다투고 있었다.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이하 정비업자)도 선정하였지만, 창립총회를 앞두고 기존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권 때문에 또다시 서로 반목하고 다투었다. 이러한 다툼이 법정 소송으로까지 가게 되었고 1년이 넘도록 창립총회를 개최하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이런 세력들과는 관계없이 사업이 잘 추진되기를 바랐지만, 위의 세력들이 반대해서 사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때 나는, 정비업자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정비업자는 정비사업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이를 해결할 대안(對案)을 찾아야 한다. 나 역시 이 사업장을 어떻게 하면 다시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나는 3개의 세력을 일일이 찾아가 지속적으로 설득하였으며, 창립총회를 진행하여 조합원이 직접 선택한 조합장과 집행부가 사업을 추진하고, 선거에서 떨어진 세력과 사람은 더 이상 사업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합의 각서를 받았다. 그 후 창립총회가 진행되었고, 조합이 설립되어 시공자선정총회까지 마쳐 현재 사업은 정상적인 진행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사업이 보다 빨리 추진되기를 바라고, 조합원들의 이익도 많이 나기를 바란다. 정비업자는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우선시해야 한다. 조합원들의 지출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 역시 정비업자가 해야 할 역할 중 하나인 것이다.
정비업자는 어떻게 사업장을 창조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렇게 고민해서 만들어낸 사업장이 고덕의 B재건축 사업장이다. B재건축 사업장은 174%의 무상지분율을 제시한 건설사가 선정되었다. 무상지분율이란 조합원이 추가로 분담하는 금액 없이 입주할 수 있는 면적을 대지지분으로 나눈 수치이다. 무상지분율을 높게 책정한 건설사가 선정되었다는 것은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줄어들어 그만큼 조합원들이 이익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결과로 B재건축 사업장은 고덕 주변의 여러 사업장 중에서 시공자로부터 가장 높은 무상지분율을 획득한 사업장이 되었다.
이 지역의 조합원들은 무상지분율을 높게 책정한 시공자를 선정하였기 때문에 추가 분담금 없이 새 아파트에 입주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 무조건 무상지분율이 높다고 해서 조합원들이 최고의 이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끝이 났다고 하면 오산이다. 아직 사업이 완료된 것이 아니며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무상지분율이 높다는 것은 시공자가 그들의 이익을 줄이고 조합원들에게 그만큼의 이익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공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아주 적게 책정하여 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 아파트를 비싸게 분양하여 시공자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모르지만 현재와 같이 부동산경기가 침체되어 있을 때에는 시공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또한 시공자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 부담이 조합원들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B재건축 사업장 조합원들은 높은 무상지분율만 보고 시공자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 시공자가 아파트를 잘 건설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이 신뢰가 없었다면 아무리 무상지분율을 높게 책정한 시공자라고 해도 조합원들에게 선택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정비사업은 사업장마다 모두 같은 사업 추진 절차로 진행되지만, 사업장의 환경이나 조합원들의 특성 등은 사업장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정비사업이 반복적인 업무 진행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여러 사업장을 관리하면서 한 번도 똑같은 사업장을 경험한 적이 없다. 비슷하게 사업이 진행되는 사업장이 있더라도 어느 순간 완전 새로운 사업장으로 탈바꿈된다. 나는 정비업자로서 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만 했다. 물론 사업의 진행 절차가 같기 때문에 그 정도는 반복되는 업무가 아니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 진행 순서까지 겹쳐 가며 빨리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사업장도 있고, 한 번 지나간 단계를 변경하여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장도 있기에 항상 해당 사업장과 환경에 맞게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의 생활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그 설렘과 긴장은 하루, 한 달, 일 년이 지나감에 따라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익숙함과 자신감이 매번 같은 일의 반복으로 짜증과 나태함으로 바뀔 때, 나는 말하고 싶다. 오늘은 지나간 어제와 다른 하루이며, 내일은 지금 보내고 있는 오늘과 다른 하루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그냥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이다. 즉, 우리는 우리들의 시간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을 사랑하고 우리의 일을 즐기고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것이 내가 정비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조합원들과 많은 협력 업체들은 항상 같지가 않기에 난 일을 할 때 설레고 긴장이 된다. 사업장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또 어떤 창조물을 만들어 갈지 기대가 된다.
지금도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어디에 선가 창조물이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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