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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사회] 초고속 성장 ‘대우신화’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 별세… 향년 83세
repoter : 박휴선 기자 ( au.hspark92@gmail.com ) 등록일 : 2019-12-10 12:12:12 · 공유일 : 2020-01-17 16:30:02


[아유경제=박휴선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오후 11시 50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한국 산업발전을 이끈 거목이자 `세계 경영`을 주창했던 글로벌 경영인이었다. 당시 대다수의 기업들이 일제강점기 이후 불하(拂下) 자산으로 성장했던 것과 달리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1960년대 산업화 이후 대규모 기업집단을 일군 샐러리맨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김 전 회장은 1936년생 대구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김용하 전 제주도지사가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나자 5남매 장남으로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고학(苦學)을 했다. 첫 사업은 신문배달이었다. 그 무렵 신문 배달은 다른 배달원보다 먼저 신문을 사 가정에 신문을 배달하는 방식이었는데 김 전 회장은 돈을 떼어 먹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신용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배달망을 유지, 확장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경기고와 연세대를 다니면서도 열무ㆍ냉차 장사 등을 하며 사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차비를 아낀 돈으로 책을 사 공부하는 나날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60년 친척이 운영하던 한성실업에 들어가 은행 관계 업무를 맡았다. 자본이 부족하던 시대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원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던 시절, 1963년 국내 최초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킨 게 김 전 회장의 작품이다. 또한 그는 싱가포르에서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며 인도계 기업인들 설득에 성공해 37만 달러의 생산 계약을 따냈다. 한성실업이 1년 내내 공장을 돌려도 다 만들 수 없는 분량이라 다른 회사에 하청을 줄 정도였다.

1967년 자본금 500만원에 직원 5명으로 설립한 대우실업은 1960년대 말부터 내쇼날의류, 동양증권 등을 인수하고 대우건설, 대우중공업 등을 설립하며 금융ㆍ전자ㆍ중공업 등 분야로까지 몸집을 불렸다. 출범 30여년 만인 1998년에는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을 거느린 재계 2위 대우그룹으로 성장했다.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우리나라 수출액인 1323억 달러의 총 14%를 차지했다. 고인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등 유명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1호실에 마련됐다.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며, 영결식은 오는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거행된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 유족으로는 미망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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