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에서 이번에 대한민국 최초로 회화나무 주제의 문학 문집(앤솔러지)을 발간합니다.
시인과 수필가 등 전국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함께, 한 뜻으로 묶어 내는 이 문집에 누가 관심을 갖든 그렇지 않든 이 문집은 대한민국 문학사에 하나의 족적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느 부문을 막론하고 ‘최초’라는 수식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최초’라는 것은 ‘실험’을 의미하기도 하고 아무도 걸어가지 않았던 길을 처음으로 밟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과 함께 때론 ‘위험’ 내지 ‘실패’를 안게 되기도 합니다.
‘한국문학방송’ 역시 대한민국 최초의 문학 전문 인터넷방송이자 인터넷신문입니다. 이전까지 이런 문학관련 본격적인 ‘방송’(인터넷매체이긴 하지만) 내지 언론은 대한민국엔 없었습니다. 한국문학방송 출범 7년차에 출간하는 첫 특별 문집(앤솔러지)이 바로 이 책 『영동리 회화나무』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우선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차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며, 내용적으로도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타이틀이자 주제인 ‘영동리 회화나무’는 한국문학방송 대표인 (필자)안재동의 19대 선조(안여거 선생)께서 심은, 현 시점 수령 530년 나무이며 대한민국 천연기념물로써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하고도 유명한 회화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 문집에 참여하신 작가님들께선 모두 큰 의미와 보람, 그리고 영광을 느끼실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문집은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병행 출간되며, 한국문학방송 콘텐츠몰(contentsmall.kr)과 교보문고 등 대한민국의 대부분 서점에서 언제든지 구입이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의 안녕이 유지되는 한, 그리고 서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책은 수십 년 수백 년, 또 그 이상까지 영원히 생명을 이어갈 것이며, 그만큼 영동리 회화나무의 현재 모습과 기록도 영원히 생생할 것입니다. 이 책에 참여하신 작가님들의 작품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
끝으로, 그간 영동리 회화나무를 정성껏 잘 관리 및 보존해 주신 영동리 주민들은 물론 관할 행정관서인 칠북면사무소, 함안군청, 문화재청 등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크나큰 감사의 큰절을 올리는 바입니다.
― 안재동(한국문학방송 대표), <발간사>
한국문학방송에서 수령 530년의 영동 회화나무를 기리는 ‘특별 문학 앤솔러지(문집)’을 발간한다고 한다. 회화나무를 학자수(學者樹)라고 한다. 그 기개가 고매(高邁)하고 고관대작과 같다고 하여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회화나무를 생각하면 어린 적에 특별한 간식꺼리가 없던 시절에 즐겨 먹었던 홍시가 생각이 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이 먹어서 배변을 못해서 혼이 났던 일과 화장실에서 억지로 용을 쓰다가 찢어진 항문을 치료하기 위하여 어머님께서 회화 나뭇가지를 삶은 물을 그릇에 담아서 찢어진 부위를 적셔주시던 일이 생각난다. 회화나무는 괴목(槐木)이라고 하며 홰나무, 회나무, 괴목, 괴수, 괴화나무 등으로도 불린다. 회나무가 우리 주변에 많은 것은 이 나무가 출세에 도움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별칭으로 출세나무, 선비나무, 학자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영어권에서도 Scholar Tree라고 부른다. 귀신을 물리친다고 하여 궁궐이나 출입구 부근, 서원·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에도 심었다고 한다.
홰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槐(괴)’ 자는 나무와 귀신을 합쳐서 만든 글자로 귀신을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왔다. 회나무 꽃에는 루틴 성분의 노란색 색소가 많아 혈압을 내려주는 작용이 있고 모세 혈관을 상화 해 준다, 혈액의 응고를 촉진하는 작용도 있어서 출혈이 있을 때 씨앗을 갈아서 마시기도 했다. 또한 루틴 등의 플라보노이드류가 금속이온과 복합적으로 항염작용을 하고 혈액속의 콜레스토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작용도 한다. 회나무 꽃은 성질이 차서 열을 내려 주고 출혈을 멈추게하는 효과가 있어서 치질 출혈, 자궁출혈, 소변출혈, 코피, 안구 출혈을 치료 하고 중풍을 예방해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린 시절 마당가에, 그리고 마을 어귀에 자라던 회나무 가지를 잘라다 삶은 물을 환부에 발라주시던 어머님 생각이 난다.
회나무를 생각하면 해미읍성 옥사 앞의 그 순교자의 머리채를 매 달았다던 회화나무를 잊지 못한다.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는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해미읍성에 있는데, 충남 기념물 제 172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해미읍성 옥사 바로 앞에 있다. 수령이 300년이 넘는 老巨樹 치고는 젊은 편이지만 수형이 많이 망가져 있다. 그렇지만 많이 남지 않은 그 나뭇가지들 중에는 병인박해 때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하기 위하여 매달았던 철사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반상(班常)의 차별이 엄하던 조선시대에 ‘하느님 앞에서는 반상의 차이가 없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형제요 자매’라는 교리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그들 중의 일부가 자금을 지원하여 이승훈을 북경까지 파견하여 천주교인으로 최초로 영세를 받고 오게 하고 주문모 신부를 모셔오고,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하던 정부에 중국의 힘을 빌려서 탄압중지를 위한 압력을 요청하기 위하여 조선의 천주교 탄압 실상을 적어서 보내려던 황사영의 편지가 발각되는 등의 사건이 더욱 천주교인의 탄압을 부채질하였다.
당시의 반상의 차이가 엄연한 시대상으로 볼 때는 도저히 받아들여 질 수가 없었고 윤지충이란 사람이 부모의 상례나 장례 절차를 전래의 풍습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사회제도를 부정하고 반상의 서열이 엄존하던 시절에 도저히 용납하지 못 할 일이라고 여겼던 사대부들이, 나름 이해를 하고 지도층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했던 정조가 죽고 나서 임진왜란 이후 상업으로 입지가 확장된 중인들이나 많은 소외계층의 역할이 확장되는 반면 허울뿐이던 양반계층이 신분의 위협을 느끼고, 사도 세자를 두둔하던 시파의 숙청을 위하여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을 자행하였는데 그 당시에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하기 위하여, 철사 줄로 묶어 사람들을 옥사 앞의 회화나무에 매달아놓고 배교를 강요하고 고문을 하다가 끝까지 신앙을 지키던 사람들을 교수형을 집행하던 흔적이 지금도 그 회화나무에 남아 있다.
회화나무는 동양에서는 학자수라고 불리었다. 원산지가 동양이라 서양으로 전파가 될 때에도 그 상징도 가져간 듯 회화나무의 명명 또한 chiness scholar tree로 되어 있다. 이 나무가 학자수로 불리운 것은 가지의 뻗음이 자유롭고, 수형이 단정하여 학자의 기상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학자수란 이름에 어울리게 짜 맞춘 느낌도 들기도 한다. 회화나무가 학자수로 불리운 데는 꽤 오랜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주례(周禮)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유교 경전으로까지 꼽히는 책으로 중국 주나라 왕실의 관직 제도와 전국시대 각국의 제도를 기록한 책이다. 후대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직 제도의 기준이 되기까지 했던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중에 ‘면삼삼괴 삼공위언(面三三槐 三公位焉)’이란 말이 있다. 해석하자면 삼정승의 자리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표지로 삼는다는 뜻이다. 바로 이 부분이 회화나무를 학자수로 자리 매김한 근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유교 문화권으로 접어든 이래로 궁궐을 비롯한 곳곳에 회화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老) 거수(巨樹)만도 다섯 건이 된다.
천연기념물 제 315호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 317호 당진 삼얼리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 318호 월성 육룡리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 319호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 472호 창덕궁 회화나무군 등이다.
아마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도 학자수라는 이런 좋은 뜻으로 심어졌을 것이다.
읍성관내에 관아부지에 심겨진 탓에 이곳에 부임한 충청병마절제사 등에게 더욱 출세하여 삼정승의 벼슬에 올라가라는 축원의 의미도 담겼을 것이지만, 나이가 300년은 넘은 이 나무는 그렇게 고고한 학자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천수를 누리길 바랐을 것이다. 다른 회화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
그러나 현실로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다. 조선후기 대원군이 천주교도를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으로 1866년 천주교도 탄압의 포고령이 내리자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학살당한 것을 필두로 불과 수개월 사이에 천주교도 8천여 명이 학살 되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들이 진정으로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라기보다는 사뭇 정치적인 이유로 일어난 학살이었다. 병인박해 당시 내포지방의 천주교도들은 대부분 해미읍성으로 호송되어 이곳 해미읍성에서 처형을 당했는데 이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벋은 가지에 철사 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참혹했던 자취는 지금도 가지에 철사 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에 대한 업보일까? 예의 그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1940년대에, 그리고 가운데 줄기는 1960년대에 각각 폭풍우로 부러져서 외과 수술을 가했으나, 다시 부패되어 외과수술의 시련을 겪고 있다. 천벌은 나쁜 짓을 했던 그 사람들의 몫인데 왜 나무가 당하는지 모르는 일이다.
해미읍성의 옥사 앞 회화나무는 수령이 300년이라도 옥사 앞이라서 형틀의 오명을 쓰고 흉하게 되어 있는 반면 같은 해미읍성의 다른 나무는 400년이 넘어도 위치를 잘 잡아서 오명을 벗었으니 나무도 자리를 잘 잡아야 하는가보다. 이 옥사 앞의 나무는 흉한 모습이지만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으니 새옹지마일까. 이번에 방한하는 로마 교황이 그 당시 순교한 순교자들의 시복행사를 위하여 오는 것이라 해미읍성의 회화나무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반면에 영동리의 회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319호로서 1482년 광주안씨(廣州安氏)의 22대 손이며 성균관 훈도를 지낸 안여거라는 분이 이곳 영동리에 내려온다. 연고에 유착이 강하고 이동이 잦지 않은 조선 시대에 그가 무슨 이유로 정든 곳을 떠나 낯선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 당시에는 성종 13년 8월에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린 사건이 있었는데, 정치판에 회의를 느끼고 이곳으로 왔던 것일까, 아니면 다가올 화를 미리 피하기 위해 왔던 것일까. 아무튼 여러 가지 각오와 다짐으로 마음을 담아 마을 앞 빈터에 회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학자수(學者樹)라 했으니 그가 무슨 생각을 담아 이 회화나무를 심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그로부터 53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나무는 높이가 20여 미터, 둘레가 6미터가 되는 노(老) 거목(巨木)으로 자라서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한여름의 그늘을 만들고 있다.
성균관에 몸담았던 전력에 비추어 그는 이곳의 입향조가 되면서 마을전체를 선비의 마을로 꾸며서, 그 나름의 이상향을 건설하려고 했을까? 마침 이번에 안여거란 선조의 뜻을 기려 ‘영동리 회화나무’를 주제로 ‘특별 문학 문집’을 한국문학방송 안재동 주간이 발간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같은 회화나무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천주교 순교자들의 시복 행사를 위하여 교황의 방한이 예정된 이 시기에, 해미읍성의 회화나무에 얽힌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어처구니가 없는 슬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영동 회화나무를 테마로 하는 ‘특별 문학 문집 발간’ 소식은 오히려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다행이다. 더구나 안여거 선조가 530여 년 전에 영동리에 와서 학자수(學者樹)라는 화화나무 한 그루를 심은 그 깊은 입향 의도를 살리고 기리는 이 뜻 깊은 행사가 그의 후손인 안재동 선생의 주관으로 추진이 된다고 하니 더더욱 뜻 깊은 일이라 생각된다.
― 최해필(예비역 육군소장. 행정학 박사. 전 한서대 교수), 서문 <회화나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영동리 회화나무
최해필 외 지음 / 한국문학방송 특별 앤솔러지 / 한국문학방송 刊
한국문학방송에서 이번에 대한민국 최초로 회화나무 주제의 문학 문집(앤솔러지)을 발간합니다.
시인과 수필가 등 전국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함께, 한 뜻으로 묶어 내는 이 문집에 누가 관심을 갖든 그렇지 않든 이 문집은 대한민국 문학사에 하나의 족적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느 부문을 막론하고 ‘최초’라는 수식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최초’라는 것은 ‘실험’을 의미하기도 하고 아무도 걸어가지 않았던 길을 처음으로 밟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과 함께 때론 ‘위험’ 내지 ‘실패’를 안게 되기도 합니다.
‘한국문학방송’ 역시 대한민국 최초의 문학 전문 인터넷방송이자 인터넷신문입니다. 이전까지 이런 문학관련 본격적인 ‘방송’(인터넷매체이긴 하지만) 내지 언론은 대한민국엔 없었습니다. 한국문학방송 출범 7년차에 출간하는 첫 특별 문집(앤솔러지)이 바로 이 책 『영동리 회화나무』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우선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차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며, 내용적으로도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타이틀이자 주제인 ‘영동리 회화나무’는 한국문학방송 대표인 (필자)안재동의 19대 선조(안여거 선생)께서 심은, 현 시점 수령 530년 나무이며 대한민국 천연기념물로써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하고도 유명한 회화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 문집에 참여하신 작가님들께선 모두 큰 의미와 보람, 그리고 영광을 느끼실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문집은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병행 출간되며, 한국문학방송 콘텐츠몰(contentsmall.kr)과 교보문고 등 대한민국의 대부분 서점에서 언제든지 구입이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의 안녕이 유지되는 한, 그리고 서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책은 수십 년 수백 년, 또 그 이상까지 영원히 생명을 이어갈 것이며, 그만큼 영동리 회화나무의 현재 모습과 기록도 영원히 생생할 것입니다. 이 책에 참여하신 작가님들의 작품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
끝으로, 그간 영동리 회화나무를 정성껏 잘 관리 및 보존해 주신 영동리 주민들은 물론 관할 행정관서인 칠북면사무소, 함안군청, 문화재청 등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크나큰 감사의 큰절을 올리는 바입니다.
― 안재동(한국문학방송 대표), <발간사>
한국문학방송에서 수령 530년의 영동 회화나무를 기리는 ‘특별 문학 앤솔러지(문집)’을 발간한다고 한다. 회화나무를 학자수(學者樹)라고 한다. 그 기개가 고매(高邁)하고 고관대작과 같다고 하여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회화나무를 생각하면 어린 적에 특별한 간식꺼리가 없던 시절에 즐겨 먹었던 홍시가 생각이 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이 먹어서 배변을 못해서 혼이 났던 일과 화장실에서 억지로 용을 쓰다가 찢어진 항문을 치료하기 위하여 어머님께서 회화 나뭇가지를 삶은 물을 그릇에 담아서 찢어진 부위를 적셔주시던 일이 생각난다. 회화나무는 괴목(槐木)이라고 하며 홰나무, 회나무, 괴목, 괴수, 괴화나무 등으로도 불린다. 회나무가 우리 주변에 많은 것은 이 나무가 출세에 도움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별칭으로 출세나무, 선비나무, 학자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영어권에서도 Scholar Tree라고 부른다. 귀신을 물리친다고 하여 궁궐이나 출입구 부근, 서원·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에도 심었다고 한다.
홰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槐(괴)’ 자는 나무와 귀신을 합쳐서 만든 글자로 귀신을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왔다. 회나무 꽃에는 루틴 성분의 노란색 색소가 많아 혈압을 내려주는 작용이 있고 모세 혈관을 상화 해 준다, 혈액의 응고를 촉진하는 작용도 있어서 출혈이 있을 때 씨앗을 갈아서 마시기도 했다. 또한 루틴 등의 플라보노이드류가 금속이온과 복합적으로 항염작용을 하고 혈액속의 콜레스토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작용도 한다. 회나무 꽃은 성질이 차서 열을 내려 주고 출혈을 멈추게하는 효과가 있어서 치질 출혈, 자궁출혈, 소변출혈, 코피, 안구 출혈을 치료 하고 중풍을 예방해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린 시절 마당가에, 그리고 마을 어귀에 자라던 회나무 가지를 잘라다 삶은 물을 환부에 발라주시던 어머님 생각이 난다.
회나무를 생각하면 해미읍성 옥사 앞의 그 순교자의 머리채를 매 달았다던 회화나무를 잊지 못한다.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는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해미읍성에 있는데, 충남 기념물 제 172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해미읍성 옥사 바로 앞에 있다. 수령이 300년이 넘는 老巨樹 치고는 젊은 편이지만 수형이 많이 망가져 있다. 그렇지만 많이 남지 않은 그 나뭇가지들 중에는 병인박해 때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하기 위하여 매달았던 철사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반상(班常)의 차별이 엄하던 조선시대에 ‘하느님 앞에서는 반상의 차이가 없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형제요 자매’라는 교리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그들 중의 일부가 자금을 지원하여 이승훈을 북경까지 파견하여 천주교인으로 최초로 영세를 받고 오게 하고 주문모 신부를 모셔오고,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하던 정부에 중국의 힘을 빌려서 탄압중지를 위한 압력을 요청하기 위하여 조선의 천주교 탄압 실상을 적어서 보내려던 황사영의 편지가 발각되는 등의 사건이 더욱 천주교인의 탄압을 부채질하였다.
당시의 반상의 차이가 엄연한 시대상으로 볼 때는 도저히 받아들여 질 수가 없었고 윤지충이란 사람이 부모의 상례나 장례 절차를 전래의 풍습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사회제도를 부정하고 반상의 서열이 엄존하던 시절에 도저히 용납하지 못 할 일이라고 여겼던 사대부들이, 나름 이해를 하고 지도층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했던 정조가 죽고 나서 임진왜란 이후 상업으로 입지가 확장된 중인들이나 많은 소외계층의 역할이 확장되는 반면 허울뿐이던 양반계층이 신분의 위협을 느끼고, 사도 세자를 두둔하던 시파의 숙청을 위하여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을 자행하였는데 그 당시에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하기 위하여, 철사 줄로 묶어 사람들을 옥사 앞의 회화나무에 매달아놓고 배교를 강요하고 고문을 하다가 끝까지 신앙을 지키던 사람들을 교수형을 집행하던 흔적이 지금도 그 회화나무에 남아 있다.
회화나무는 동양에서는 학자수라고 불리었다. 원산지가 동양이라 서양으로 전파가 될 때에도 그 상징도 가져간 듯 회화나무의 명명 또한 chiness scholar tree로 되어 있다. 이 나무가 학자수로 불리운 것은 가지의 뻗음이 자유롭고, 수형이 단정하여 학자의 기상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학자수란 이름에 어울리게 짜 맞춘 느낌도 들기도 한다. 회화나무가 학자수로 불리운 데는 꽤 오랜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주례(周禮)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유교 경전으로까지 꼽히는 책으로 중국 주나라 왕실의 관직 제도와 전국시대 각국의 제도를 기록한 책이다. 후대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직 제도의 기준이 되기까지 했던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중에 ‘면삼삼괴 삼공위언(面三三槐 三公位焉)’이란 말이 있다. 해석하자면 삼정승의 자리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표지로 삼는다는 뜻이다. 바로 이 부분이 회화나무를 학자수로 자리 매김한 근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유교 문화권으로 접어든 이래로 궁궐을 비롯한 곳곳에 회화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老) 거수(巨樹)만도 다섯 건이 된다.
천연기념물 제 315호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 317호 당진 삼얼리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 318호 월성 육룡리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 319호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 472호 창덕궁 회화나무군 등이다.
아마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도 학자수라는 이런 좋은 뜻으로 심어졌을 것이다.
읍성관내에 관아부지에 심겨진 탓에 이곳에 부임한 충청병마절제사 등에게 더욱 출세하여 삼정승의 벼슬에 올라가라는 축원의 의미도 담겼을 것이지만, 나이가 300년은 넘은 이 나무는 그렇게 고고한 학자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천수를 누리길 바랐을 것이다. 다른 회화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
그러나 현실로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다. 조선후기 대원군이 천주교도를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으로 1866년 천주교도 탄압의 포고령이 내리자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학살당한 것을 필두로 불과 수개월 사이에 천주교도 8천여 명이 학살 되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들이 진정으로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라기보다는 사뭇 정치적인 이유로 일어난 학살이었다. 병인박해 당시 내포지방의 천주교도들은 대부분 해미읍성으로 호송되어 이곳 해미읍성에서 처형을 당했는데 이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벋은 가지에 철사 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참혹했던 자취는 지금도 가지에 철사 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에 대한 업보일까? 예의 그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1940년대에, 그리고 가운데 줄기는 1960년대에 각각 폭풍우로 부러져서 외과 수술을 가했으나, 다시 부패되어 외과수술의 시련을 겪고 있다. 천벌은 나쁜 짓을 했던 그 사람들의 몫인데 왜 나무가 당하는지 모르는 일이다.
해미읍성의 옥사 앞 회화나무는 수령이 300년이라도 옥사 앞이라서 형틀의 오명을 쓰고 흉하게 되어 있는 반면 같은 해미읍성의 다른 나무는 400년이 넘어도 위치를 잘 잡아서 오명을 벗었으니 나무도 자리를 잘 잡아야 하는가보다. 이 옥사 앞의 나무는 흉한 모습이지만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으니 새옹지마일까. 이번에 방한하는 로마 교황이 그 당시 순교한 순교자들의 시복행사를 위하여 오는 것이라 해미읍성의 회화나무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반면에 영동리의 회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319호로서 1482년 광주안씨(廣州安氏)의 22대 손이며 성균관 훈도를 지낸 안여거라는 분이 이곳 영동리에 내려온다. 연고에 유착이 강하고 이동이 잦지 않은 조선 시대에 그가 무슨 이유로 정든 곳을 떠나 낯선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 당시에는 성종 13년 8월에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린 사건이 있었는데, 정치판에 회의를 느끼고 이곳으로 왔던 것일까, 아니면 다가올 화를 미리 피하기 위해 왔던 것일까. 아무튼 여러 가지 각오와 다짐으로 마음을 담아 마을 앞 빈터에 회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학자수(學者樹)라 했으니 그가 무슨 생각을 담아 이 회화나무를 심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그로부터 53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나무는 높이가 20여 미터, 둘레가 6미터가 되는 노(老) 거목(巨木)으로 자라서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한여름의 그늘을 만들고 있다.
성균관에 몸담았던 전력에 비추어 그는 이곳의 입향조가 되면서 마을전체를 선비의 마을로 꾸며서, 그 나름의 이상향을 건설하려고 했을까? 마침 이번에 안여거란 선조의 뜻을 기려 ‘영동리 회화나무’를 주제로 ‘특별 문학 문집’을 한국문학방송 안재동 주간이 발간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같은 회화나무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천주교 순교자들의 시복 행사를 위하여 교황의 방한이 예정된 이 시기에, 해미읍성의 회화나무에 얽힌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어처구니가 없는 슬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영동 회화나무를 테마로 하는 ‘특별 문학 문집 발간’ 소식은 오히려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다행이다. 더구나 안여거 선조가 530여 년 전에 영동리에 와서 학자수(學者樹)라는 화화나무 한 그루를 심은 그 깊은 입향 의도를 살리고 기리는 이 뜻 깊은 행사가 그의 후손인 안재동 선생의 주관으로 추진이 된다고 하니 더더욱 뜻 깊은 일이라 생각된다.
― 최해필(예비역 육군소장. 행정학 박사. 전 한서대 교수), 서문 <회화나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 차 례 -
발간사 | 안재동
서문 | 회화나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_최해필
화보
화보영동리 회화나무로 가는 길 표지판
영동리 회화나무 전경
영동리 마을 전경
문학작품 <시>
영동리 회화나무 1_강지혜
영동리 회화나무 2_강지혜
회화나무는 새로운 선비를 찾고 있다 <수필>_김달호
영동리 회화나무여!_김사빈
영동리 회화나무 시제 <시조>_김소해
영동리 회화나무 <시조>_김옥중
영동리 회화나무_김지수
영동리 회화나무_김철기
회화나무_김철기
관심_김철기
영동리 회화나무 1_노태웅
영동리 회화나무 2_노태웅
영동리 회화나무_문재학
영동리 회화나무 1_문태성
영동리 회화나무 2_문태성
노거수의 삶_박명환
회화나무 전설_박영식
영동리 회화나무_박인혜
영동리 회화나무의 꿈_손용상
뿌리 깊은 회화나무_박일동
순(筍)_박일동
회화나무_박일동
회화나무 사랑_배학기
회화나무 한 그루_배학기
텃밭에서 바라보니_배학기
회화나무의 씨름도_서상규
회화나무_신종현
영동 고을의 회화나무_신종현
수호신 회화나무_신종현
영동리 회화나무_안재동
회화나무 <4행시>_안재동
영동리 회화나무_안행덕
회화나무_안행덕
회화나무 꽃송이_윤연모
길상목(吉祥木) 영동리 회화나무 <수필>_이미선
영동리 회화나무_이미선
영동리 회화나무_이옥천
숨 쉬는 괴목(槐木)_이옥천
영동리 회화나무 앞에서_이효녕
고마운 회화나무 <수필>_장병선
회화나무가 된 안여거_정성수
안여거가 회화나무를 심은 까닭은_정성수
공짜는 없다_최두환
영동리 회화나무_최두환
이런 꼴도 보다니_최두환
회화나무_최재영
회화나무 <칼럼>_최택만
회화나무_최택만
회화나무를 심은 뜻_최해필
괴목(槐木)_허용회
자랑스런 회화나무 <시조>_홍윤표
영동리 회화나무 향기_홍윤표
부록
안여거 선생 사료(관련 족보)
안여거 선생 묘소와 제궁
안여거 선생 관련 자료(영동리 광주안씨 종보 표)
광주안씨(廣州安氏) 개요
[2014.08.01 발행. 176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