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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전자책)
repoter : 안무월 ( dsb@hmb.kr ) 등록일 : 2020-02-11 00:22:06 · 공유일 : 2020-07-12 09:38:00


그냥 
최원현 수필집 / 북나비 刊

  손톱을 깎을 때가 지났다. 조금만 손톱이 길어도 그냥 놔두질 못하는 성격인데 어제, 그제 계속 깎아이지, 꺾아야지 하면서도 못 했다. 불편도 하지만 몹시 신경이 쓰인다. 오늘은 만사 재치고 손톱부터 깎아야겠다. 그런데 깎을 때는 분명 모양 예쁘고 가지런하게 잘 깎았는데 이렇게 다시 깎아야 할 때가 되어서 보면 늘 그렇지가 않다. 예쁜 초승달 같아야 할 모양도 그렇지 못하고 깎인 선은 들쑥날쑥이다. 어쩌면 내 수필들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분명 퇴고할 때 는 모가 난 곳 없이 가장 예쁘게 한다 했을 텐데 발표된 지면에서 다시 읽게 되면 영락없이 지금의 내 손톱 같았다. 어찌 문학만이었으랴. 내 삶도 그랬을 수 있다. 삶과 문학을 함께 돌아본다. 의미화와 형상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 설익은 모습으로 독자와 만났을 내 삶과 글들을 생각하면 깎지 못해 길어져 있는 내 손톱처럼 감추고 싶다. 갈수록 그런 두려움이 더 커진다.
  수필은 인생의 표현이라고 했다. 하면 수필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곧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된다. 왜 수필을 써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왜 사느냐일 수 있다. 그래서 수필 한 편을 빚어내는 일은 내 인생의 한 장을 이루는 일일지니 곧 인생의 모습이요, 생명의 진실이요, 나와 세계를 잇는 가장 진실한 의미화의 작업인 것이다.
  의미화란 대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자기화하는 개성적 눈이요 마음이다. 그래서 수필에선 그 사람의 품과 격이 나타난다 해서 독자에게 보일 때마다 두렵고 부끄럽다.
  청탁에 쫓기며 숙제하듯 써내었던 글들이 몇 년 사이 2백 편도 넘게 쌓여있다. 이미 내 이름으로 낸 책이 열네 권이나 되는데 더 책으로 펴낸다는 것에 회의가 일면서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에 내버려둔 것이다. 그러나 권유도 있고 하여 그 중 몇 편을 묶기로 했다. 그 또한 독자에 대한 의무요 예의도 될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마음은 잘 자라는 나무만 베어낸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이번 제목은 '그냥'이다. ‘그냥'이란 변화 없이 그대로 그 모양으로 줄곧, 아무런 조건이나 의미 없는 등의 뜻을 가진 부사다. 부정도 되고 긍정도 될 수 있다. 좋다도 되고 아니다도 되고, 바꿔도 좋지만 계속 놔둬도 괜찮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요즘 세상은 목소리 큰 사람이 다 옳은 것 같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다. 꼭 말을 해야만 알아듣는 것이 아니다. 소통은 자연스러운 통함이다. 교감이 먼저다. 공감은 눈으로 가슴으로 먼저 통한다. 그런 교감으로 공감으로 소통으로 이번 《그냥》을 내보낸다.
  문학은 나를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그 거울을 ‘함께 보기’로 내놓는 것이다. 수필과 함께 살아온 30년의 삶 속에서 다 보여 버린 내 모습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움이지만 그럼에도 또 한 번 용기를 낸다. 나는 기적의 사람이다. 어린 날 '이거 좀 먹어라, 먹어봐라' 권해준 엄마도 없이 컸지만 이렇게 잘 자랐으니 기적 중 기적이다. 사랑의 빚이다. 하기야 생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기적이다.
  오늘은 더욱 정성을 들여 손톱을 꺾마야겠다. 다음번 깎을 때 참 잘 깎았구나 생각이 들게끔 말이다. 요란스럽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내 자리를 지키고 싶다. 우연히 만난 들꽃이 주는 기쁨처럼 내 글도 그렇게 독자와 만나고 싶다. “잘 지 내?” “그냥.” 나는 그렇게 '그냥'을 사랑하고 그냥으로 살아 왔었음을 비로소 고백한다.

― 머리말 <또 그냥>  


      - 차    례 -

또 그냥  

1. 살아있음의 기적
그날 새벽 
나무 이야기 
손으로 쓰는 편지 
내 생각이 살아나는 곳 
사는 기적 
첫 새 손님 
살아있음의 기적 
어깨너머 
순대와 피아노 
먼저 좋아 
나의 문학 나의 직장 

2. 내 맛내기
어른 아이 
휘파람을 불며 
내 맛내기 
길눈 
그냥 
아내의 여행 
사락사락 
어처구니 
외롭지 않은 삶 
‘착한’에 대한 유감 
내버려둠에 대하여 

3. 그래도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작은 강 
선물 
허벌나게 
숨어있는 힘 
새 생명을 보며 
아픈 추억, 그리운 사람 
가벼운 만큼 맑아지게 
어림짐작 
그 여름의 피서 
떠난다는 것 
그래도 
이를 닦으며 

4. 어머니의 노래
꽃아, 꽃아 봄꽃아 
어머니의 노래 1 
어머니의 노래 2 
나중에, 다음에 
눈빛 
재봉틀 
사진 두 장이 주는 슬픔 
간이역 
말장구 맞장구 
그래도 그때가 그리운 것은 
어떤 평화 마을의 총소리 
사막에서 피운 꽃

[2015.07.15 초판발행. 279쪽. 정가 14,000원(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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