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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 발행인] 익명성을 버려라
repoter : 박재필 기자 ( pjp78@naver.com ) 등록일 : 2014-09-17 11:23:49 · 공유일 : 2014-09-17 13:03:37


[아유경제=박재필기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의 하나인 이문열의 대표작 중 하나가 <익명의 섬>이라는 단편소설이다. 30년 전인 1982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2011년 9월 미국의 권위 있는 주간지인 <뉴요커>에 작품 전문이 번역되어 실리면서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익명의 섬>은 친인척으로만 이뤄진 어느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동네 아낙들과 덜 떨어진 듯한 남자 깨철의 은밀한 관계를 다룬 소설이다. 동네 사람들과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유일한 남자인 깨철은 아낙들 대부분과 은밀한 관계를 맺는데, 일부러 모자란 듯한 반푼이 행세를 하면서 비밀을 지켜주고, 아낙들은 깨철이를 통해 억눌린 성을 분출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마을 전체가 숨김없이 기명화(記名化)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익명의 섬`으로 떠돌고 있는 깨철이의 존재가 반푼이가 아닌, 마을 아낙들의 삶에 한 위안으로도 차지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깨철은 마을 사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명화 된 세상에서 분출하지 못하는 욕망의 유일한 배출구로 형상화되어 있다.
익명(匿名)이란 이름이나 본래의 아이덴티티를 숨기는 것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숨긴다는 면에서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 익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예를 들어 연말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거금을 쾌척한 익명의 기부자 등 많은 자선 활동이 여러 이유로 익명으로 이뤄진다. 또한 범죄에 대한 증인 등 위협을 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익명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존재한다. 반면에 범죄 사실을 숨기거나 도피하기 위하여 익명을 이용하는 등 비합법적인 사례도 있다.
나쁜 짓을 하고 싶은 충동과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항상 함께 다가온다. 아무런 대가도 치를 일이 없으니 뭔가 나쁜 짓을 해도 좋다는 유혹이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나쁜 일을 하고 나서 비난을 피하려면 익명이라는 덮개를 사용하는 셈이다. 선한 일을 하고 나서 칭찬받는 것이 쑥스러워 익명을 사용하는 것과 나쁜 일을 하고 나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익명을 사용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가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자명하다.
사실 익명은 언론사의 기자들이 기사작성 과정에서 가장 자주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일간지가 됐든 전문지가 됐든 상당수의 기사에서 취재원을 표기할 때 최 모씨나 박 모씨 등 성이나 A, B 등 이니셜로만 표시하기도 하고, 국토해양부나 서울시 등 관련기관의 `관계자`로만 표시하곤 한다.
이처럼 기자들이 취재원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익명으로 처리하는 것은, 취재원 스스로가 익명으로 처리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취득은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필수 전제이다. 민주정치 체제의 구성원들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취득을 통해 올바른 견해를 갖추게 되고, 선거와 투표 과정에서 주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적 공동체를 튼튼히 형성해갈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언론의 자유를 `민주정치의 생명선`이라 칭하고, 헌법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언론자유에는 의사표현 및 전파(傳播)의 자유, 정보의 자유, 신문의 자유 및 방송·방영의 자유가 포함된다. `보도의 자유`라는 말도 흔히 쓰이는데, 이는 신문의 자유나 방송·방영의 자유를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다. 이 보도 자유의 개념에 취재의 자유가 포함되는데, 이는 취재 행위의 자유와 취재원을 숨길 수 있는 취재원 비익권(秘匿權)으로 다시 나뉜다. 기자들이 기사에서 익명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바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정보를 얻은 취재원을 숨기며 말하지 않아도 될 취재원 비익권에서 비롯된다.
법적인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기자와 언론사들은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제정한 신문윤리실천요강의 `기자는 취재원의 안전이 위태롭거나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있는 경우 그 신원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구구절절하게 익명이 어떻고 취재원 비익권이 어떻고 늘어놓은 것은 정비사업에 있어서의 `익명`이 갖는 폐해를 말하고 싶어서였다. 유독 정비사업에서는 익명이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더 발휘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추진위원장이나 조합장을 선출하는 총회, 시공회사 등 협력회사를 선정하는 총회, 정비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관리처분총회 등 중요한 안건을 다루는 총회장을 가보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총회 시작 전에 사회자는 총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참석한 조합원들에게 안건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발언권을 얻은 후 의견을 개진할 것을 요청하고, 대개의 조합원들은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막상 총회가 진행되면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안건 설명 과정에서부터 고성이 오가고, 주장만 난무한다. 안건에 대한 심의나 토론은 없다. 극소수의 사람이 자기주장만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면 여기저기서 `옳소` `발언을 막지 마라`고 소리친다. 사회자가 아무리 조합원 누구라고 밝히고 발언권을 얻어 의견을 말하라고 해도 소용없다. 군중 속에서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이러니 저러니 목소리 높이는 일부 때문에 결국 총회는 파행으로 치닫게 된다.
공개된 총회장보다 더 심각한 경우는 인터넷이나 속칭 `찌라시`라고 부르는 전단에서 벌어진다. 인터넷에서는 주로 실명보다는 닉네임 등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인터넷 유저들은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가로 막는다`며 반대한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익명의 사용자들은 더욱더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나 댓글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익명을 무기로 무책임한 말을 내뱉거나 아예 사실 자체를 호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피해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악성댓글이 사회문제화 된 지 이미 오래이건만,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비사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조합이나 추진위원회 홈페이지가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조합과 조합원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좁혀주는 것이 바로 홈페이지이다. 하지만, 이 소통의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통`이다. 집행부에 대한 각종 비난과 근거가 희박한 주장만 게시판을 가득 메운다. 그러다보니 아예 홈페이지 자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
`찌라시`라고 부르는 전단지는 더욱 심하다. 인터넷은 닉네임이라도 있지만, 전단지에는 누가 배포했는지 아예 표기되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실체가 없는 개인이나 가상의 집단이 무차별적으로 흑색선전을 일삼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문제는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흑색선전임이 분명함에도 조합원들에게 먹힌다는 데 있다. 이런 흑색선전물이나 익명의 사람이 올린 글들이 조합원들에게 `혹시?`라는 의심을 심어주게 되고, 결국 불신의 늪이 깊어지면서 정비사업이 혼탁해지는 것이다.
익명 자체가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때론 분명히 익명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설령 익명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에는 익명이 배제되어야 한다. 명확한 근거를 갖는 주장, 설득력 있는 의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익명성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익명이냐 실명이냐가 아니라 그 내용과 주장이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정비사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분쟁사례가 익명에서 비롯되고, 이 익명의 사용자들이 내놓는 무책임한 주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모든 정비사업 종사자들이 깨닫고, 정비사업 현장에서 익명성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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