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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갈 수 없는 이주노동자의 장례식
유대근도 유병언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repoter : 송하성 기자 ( koreaareyou@naver.com ) 등록일 : 2014-10-08 12:05:13 · 공유일 : 2014-10-08 13:03:55


[아유경제=송하성기자] 서울 신내 나들목과 남양주시 화도읍을 잇는 고가도로의 하부 어디쯤에 가설 건물들이 들어차 있다. 먼 타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고단한 몸을 누이는 이곳은 주방을 합쳐도 5평이 넘을까 말까다.
추석연휴를 앞둔 9월 4일 늦은 저녁, 이곳에서 구슬픈 음악소리가 새어 나왔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미네르바(가명, 40세) 씨와 알버드(가명, 49세) 씨가 사는 이곳에서는 장례가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방 안엔 영정사진도 시신도 없었다.
미네르바 씨는 언니가 유투브에 올려놓은 필리핀 집의 장례식 화면을 계속 틀어놓고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잘 울지 않는다는데 유투브에서는 간간이 격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인터넷에 연결된 노트북 한 대, 이것이 미네르바 씨가 돌아가신 어머니께 예를 다해 행하는 장례의 전부였다.
87세 노모가 돌아가셨는데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삶... 유병언의 아들 유대근이 구속 중에 유병언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유병언보다 더한 어떤 중범죄를 저질렀는지 의문이 들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죄는?
세월호 침몰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유병언의 장례식에 아들 유대근이 참석했다. 그마저도 도피 중 구속된 상태였지만 어느 누구도 유병언의 장례식에 유대근이 참석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며칠 뒤 미네르바 씨의 어머니가 87세를 일기로 필리핀 자택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미네르바 씨는 일주일 전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다. "어머니, 몸이 편찮으신데 못 가서 죄송해요" "괜찮다. 안다. 이해한다. 가족 위해 돈을 벌어라. 그게 더 중요하지 않니..."
어머니는 7년 전 한국으로 떠난 셋째 딸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몇 달 전 오빠마저 사고로 죽은 뒤 연이어 상을 당한 미네르바 씨는 이번에도 필리핀에 가지 못했다.
왜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미네르바 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가고 싶어요. 100% 가고 싶어요. 아들이 3명 있는데 7년째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가면 다시 올 수 없어요. 아들 둘이 대학을 다니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 어떡해요?"
그렇게 미네르바 씨는 경기도의 어느 고가도로 밑 거처에서 일주일간 문상객을 받았다. 미네르바 씨의 친구들과 지인 몇이 꾸준히 상가집을 찾아왔다. 미네르바 씨는 그들에게 노트북으로 유투브 영상만 보여줬다. 그게 미네르바 씨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글로벌 시대의 열등시민
미네르바 씨가 한국에서 겪은 불행은 그뿐만이 아니다. 2012년 12월 어느 날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데 공장에서 불이 났다. 공장 안쪽에 있었던 미네르바 씨는 불길을 피해 나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국 양 손과 얼굴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회사 사장은 처음 입원비의 50%만 지급했을 뿐 이후에는 어떤 치료비와 보상비도 주지 않았다.
미네르바 씨가 신청한 산업재해 보상마저 승인을 거부했다. 돈 벌면 치료비를 주겠다는 약속은 거짓이었다. 그는 가평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영업을 하고 있다.
공장 사장이 밉지 않느냐는 질문에 미네르바 씨는 이번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를 통해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한 법적인 노력을 하고 있어요. 잘 될 거라고 해요. 믿고 기다리고 있어요"
미네르바 씨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겪는 불이익은 또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한국 근로자 혹은 등록 이주노동자에 비해 임금이 낮고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대부분 회사에서 근속 연수가 올라가도 급여를 올려주지 않으며 휴가도 절반만 받는다.
"너희를 위한 목표가 있다"
그러고서도 미네르바 씨는 외출을 하지 못한다. 단속이 두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어떤 이주노동자가 집에서 밥을 먹다가 단속반이 들이닥쳐 끌고 갔다는 소식이 들려 집에 앉아 있는 것마저 불안해졌다.
이렇게 낯선 나라에서 고단하고 힘든 삶을 사는데도 미네르바 씨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7년 동안 보지 못한 가족들. 돌아가신 어머니를 빼면 이제 아들 셋이 남았다. 함께 사는 알버트 씨도 딸 넷이 있지만 막내는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알버트 씨가 18년 전 한국에 오기 직전 막내 딸이 엄마 뱃속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제가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을 아이들은 이해해 줍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한국에 왔고 그 아이들을 위해 살고 있어요"
아들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미네르바 씨는 "너희를 위해 일하고 있고 아직 너희를 위한 목표가 있다. 엄마는 아직 갈 수가 없다"고 힘 주어 말했다.
유병언보다 더한 죄를 말해줘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의 이정호 신부도 이런 상황이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니까 천인공노할 범죄자의 아들도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니까 유대근의 구속을 집행 정지하고 경찰들이 90명이나 쫓아나가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겁니다. 그런데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부모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범죄자입니까? 유병언보다 더한 죄를 지었습니까? 저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미네르바 씨의 집을 나서는데 그냥 일어설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기자가 대신 사과의 말을 했다. "미네르바 씨가 한국에서 겪은 많은 일들에 대해 사과합니다.(I'm sorry what you have been through in Korea)"
미네르바 씨가 괜찮다고 말하며 웃었다. 기자만 마음이 더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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