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권서아 기자]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 출입할 권리를 지니고 있나. 자라나는 아동에게, 말년을 준비하는 노인에게, 그리고 초고령사회를 앞둔 우리를 위해 성찰해보자.
지금 여의도는 이렇다. 한동안은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지나친 경험이 있다. 매일 개찰구에서 출구로 향하며 한 장애인 단체 부스를 마주쳤다. 국회 보건복지부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짧은 기간 일하며, 뜨거웠던 올해 국정감사장에 드나들던 기간 대에 말이다. 증인대에 선, 마약 질환자 연예인을 비롯해 중증 질환을 앓는 다양한 환자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파킨슨병을 아는가`, `욕창을 아는가`, `발달지연 아동의 삶을 아는가`.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의료법」과 `간호법` 제ㆍ개정 논란에 대해서 귀가 떨어지도록 들었을 거다. 그날 국회 보건복지부 증인대에 섰던 이도 뉴스에서 얼핏 봤을 수 있다. 그날 여의도의 관심은 오로지 법과 참석한 연예인이었다. 그래서 중증 질환이 있는 환자가 어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지 우린 모르고 있다.
질환을 아는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화재로 인한 장애인 사망자가 비장애인의 9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아는가. 한 장애인 시설의 대기자만 수백 명이라는 사실, 올해 9월 터널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나던 장애인이 사망한 사건, 작년 8월 반지하에 물이 차서 사망한 발달장애인 사건, 복지콜을 타려고 1시간 반 이상 기다리기가 십상이라 일상을 포기한 장애인이 다수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중증 질환을 지닌 장애인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출입증`을 받지 못했다. 김초엽의 「인지공간」이라는 소설집에서 이브라는 한 인물이 나온다. 그는 인지공간이라는 장소에 매료돼, 접근하기를 갈망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오직 "아주 낮은 층수에만 접근"할 수 있었다. 그에게 허락된 건 "공동체 생활에 필수적인 종교와 의례, 경작과 목축 같은 것들"뿐이었다. 작가는 `여기에 접근할 수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회고했다.
`출입증` 문제는 비단 소설 속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장애인은 모든 공간을 누리지 못한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사로, 승강기 등이 없으면 의료기관 접근 불가능"이라고 밝혔다. 인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 선정된 의료기관은 634곳이다. 이 중 대표적인 편의시설인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승강기, 자동문 설치가 된 장소는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의도에서는 「의료법」의 개정과 `간호법` 추진이라는 의제가 뜨겁게 다뤄진다. `의료붕괴`된 현시점에서 건설적인 신호탄이다. 그러나 원점으로 돌아가 출발점에서 보자. 그 이면에 A질환, B질환, C질환, D질환처럼 다수 중증 질환을 지닌 환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욕구와 요구 사이에는 거대한 결핍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당연하게도 장애인은 주체적이고 존엄하며 존귀한 존재다. 문제는 `그토록 희망하는 공간에 도착`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여기서의 공간은 각자 나름의 자아와 이상, 목표라고 비유하고 싶다. 여의도에서 외치는 법 개정과 필수의료 강화가 이뤄져야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들어보지도 못한, 아무도 모르게 앓고 있을 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필요조건인 관심이 필요하다.
무슨 관심인지 말해보겠다. 국회의사당역에는 장애인 권리 요구 피켓이 줄지어 있다. 마치 개찰구에서 출구를 안내해주는 지도처럼 위치해 있다. 어떤 이유로 `장애인권리보장법ㆍ장애인탈시설지원법ㆍ장애인평생교육법ㆍ중증장애인일자리지원특별법`을 외치는지 법ㆍ제도의 오류를 외치는 목소리에 한번쯤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동하고 교육하고 노동하며`라던 피켓 문구처럼 장애인도 출입할 권리가 마땅하다.
국정감사장에 나와 증인대에 섰던 이들도 기억해야 한다. 울음으로 호소했던 파킨슨병 환자는 우리에게 부탁했다. "한국에 남은 복제약은 부작용이 심해 힘이 듭니다. 유일하게 저를 살게 해준 약을 돌려주세요"라고. 발달지연 아동을 둔 증인도 울먹이며 당부했다. "우리 아이는 느린 걸음이지만 전력으로 걷는 중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약을 선택하는 어려움과 비용 부담으로 "발달지연 아동 30만 명이 치료를 포기하지 않게"라는 간청처럼 선택과 안전이라는 권리가 명실하게 보장돼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2년 말 장애인 인구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등록 장애인은 256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5.2%를 차지한다. 신규 등록 장애인은 8만 명이며, 2010년 3.3%에서 현재까지 약 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장애인은 더는 소수가 아니다.
장애는 다른 사람 이야기도 아니다. 후천적인 요인으로 인한 장애인은 88.1%에 속한다. `어느 날ㆍ하루아침에ㆍ실수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에게는 치명적이다. 65세 이상 등록장애인은 지속해서 증가세를 보이며, 2010년 37.1%에서 2022년에는 52.8%로 확인됐다.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되는 만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자라나는 아동도 걱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인해 발달지연을 겪는 아동이 늘고 있다. 2021년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집 원장 및 교사 71.6%ㆍ학부모의 68.1%가 코로나19가 아동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동, 행복한 노후를 꿈꾸는 노인. 우리들의 관심이 있어야만 일굴 수 있다.
시민이 먼저 관심을 가지면 언론과 여의도 역시, 목소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지독한 염증을 앓으며 살아가는 장애인이 사회의 출입증을 받을 수 있는 그 날까지, 인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는 적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은 격려가 되고, 격려는 그들이 다시 꿈꿀 수 있는 용기가 된다. 그렇게 언젠간 사회의 출입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유경제=권서아 기자]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 출입할 권리를 지니고 있나. 자라나는 아동에게, 말년을 준비하는 노인에게, 그리고 초고령사회를 앞둔 우리를 위해 성찰해보자.
지금 여의도는 이렇다. 한동안은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지나친 경험이 있다. 매일 개찰구에서 출구로 향하며 한 장애인 단체 부스를 마주쳤다. 국회 보건복지부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짧은 기간 일하며, 뜨거웠던 올해 국정감사장에 드나들던 기간 대에 말이다. 증인대에 선, 마약 질환자 연예인을 비롯해 중증 질환을 앓는 다양한 환자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파킨슨병을 아는가`, `욕창을 아는가`, `발달지연 아동의 삶을 아는가`.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의료법」과 `간호법` 제ㆍ개정 논란에 대해서 귀가 떨어지도록 들었을 거다. 그날 국회 보건복지부 증인대에 섰던 이도 뉴스에서 얼핏 봤을 수 있다. 그날 여의도의 관심은 오로지 법과 참석한 연예인이었다. 그래서 중증 질환이 있는 환자가 어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지 우린 모르고 있다.
질환을 아는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화재로 인한 장애인 사망자가 비장애인의 9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아는가. 한 장애인 시설의 대기자만 수백 명이라는 사실, 올해 9월 터널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나던 장애인이 사망한 사건, 작년 8월 반지하에 물이 차서 사망한 발달장애인 사건, 복지콜을 타려고 1시간 반 이상 기다리기가 십상이라 일상을 포기한 장애인이 다수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중증 질환을 지닌 장애인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출입증`을 받지 못했다. 김초엽의 「인지공간」이라는 소설집에서 이브라는 한 인물이 나온다. 그는 인지공간이라는 장소에 매료돼, 접근하기를 갈망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오직 "아주 낮은 층수에만 접근"할 수 있었다. 그에게 허락된 건 "공동체 생활에 필수적인 종교와 의례, 경작과 목축 같은 것들"뿐이었다. 작가는 `여기에 접근할 수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회고했다.
`출입증` 문제는 비단 소설 속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장애인은 모든 공간을 누리지 못한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사로, 승강기 등이 없으면 의료기관 접근 불가능"이라고 밝혔다. 인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 선정된 의료기관은 634곳이다. 이 중 대표적인 편의시설인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승강기, 자동문 설치가 된 장소는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의도에서는 「의료법」의 개정과 `간호법` 추진이라는 의제가 뜨겁게 다뤄진다. `의료붕괴`된 현시점에서 건설적인 신호탄이다. 그러나 원점으로 돌아가 출발점에서 보자. 그 이면에 A질환, B질환, C질환, D질환처럼 다수 중증 질환을 지닌 환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욕구와 요구 사이에는 거대한 결핍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당연하게도 장애인은 주체적이고 존엄하며 존귀한 존재다. 문제는 `그토록 희망하는 공간에 도착`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여기서의 공간은 각자 나름의 자아와 이상, 목표라고 비유하고 싶다. 여의도에서 외치는 법 개정과 필수의료 강화가 이뤄져야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들어보지도 못한, 아무도 모르게 앓고 있을 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필요조건인 관심이 필요하다.
무슨 관심인지 말해보겠다. 국회의사당역에는 장애인 권리 요구 피켓이 줄지어 있다. 마치 개찰구에서 출구를 안내해주는 지도처럼 위치해 있다. 어떤 이유로 `장애인권리보장법ㆍ장애인탈시설지원법ㆍ장애인평생교육법ㆍ중증장애인일자리지원특별법`을 외치는지 법ㆍ제도의 오류를 외치는 목소리에 한번쯤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동하고 교육하고 노동하며`라던 피켓 문구처럼 장애인도 출입할 권리가 마땅하다.
국정감사장에 나와 증인대에 섰던 이들도 기억해야 한다. 울음으로 호소했던 파킨슨병 환자는 우리에게 부탁했다. "한국에 남은 복제약은 부작용이 심해 힘이 듭니다. 유일하게 저를 살게 해준 약을 돌려주세요"라고. 발달지연 아동을 둔 증인도 울먹이며 당부했다. "우리 아이는 느린 걸음이지만 전력으로 걷는 중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약을 선택하는 어려움과 비용 부담으로 "발달지연 아동 30만 명이 치료를 포기하지 않게"라는 간청처럼 선택과 안전이라는 권리가 명실하게 보장돼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2년 말 장애인 인구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등록 장애인은 256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5.2%를 차지한다. 신규 등록 장애인은 8만 명이며, 2010년 3.3%에서 현재까지 약 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장애인은 더는 소수가 아니다.
장애는 다른 사람 이야기도 아니다. 후천적인 요인으로 인한 장애인은 88.1%에 속한다. `어느 날ㆍ하루아침에ㆍ실수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에게는 치명적이다. 65세 이상 등록장애인은 지속해서 증가세를 보이며, 2010년 37.1%에서 2022년에는 52.8%로 확인됐다.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되는 만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자라나는 아동도 걱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인해 발달지연을 겪는 아동이 늘고 있다. 2021년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집 원장 및 교사 71.6%ㆍ학부모의 68.1%가 코로나19가 아동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동, 행복한 노후를 꿈꾸는 노인. 우리들의 관심이 있어야만 일굴 수 있다.
시민이 먼저 관심을 가지면 언론과 여의도 역시, 목소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지독한 염증을 앓으며 살아가는 장애인이 사회의 출입증을 받을 수 있는 그 날까지, 인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는 적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은 격려가 되고, 격려는 그들이 다시 꿈꿀 수 있는 용기가 된다. 그렇게 언젠간 사회의 출입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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