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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기자수첩] 부끄러움을 잊은 현대인… ‘경복궁 낙서 사건’
repoter : 송예은 기자 ( yeeunsong1@gmail.com ) 등록일 : 2023-12-22 17:52:16 · 공유일 : 2023-12-22 20:01:59


[아유경제=송예은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디까지인가.

경복궁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낙서한 혐의를 받는 10대 피의자 임군이 신원 미상의 인물로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에도 낙서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1일 경찰에 따르면 임군은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일하실 분에게 300만 원을 드린다"는 글을 보고 연락해 자신을 `이 팀장`이라고 소개한 A씨를 알게 됐다.

A씨는 지난 16일 오전 1시 임군이 사는 경기 수원에서 출발해 오전 2시부터 경복궁 등에 낙서를 하라며 구체적인 이동 동선과 낙서 구역 등을 지시했다. 또 착수금과 택시비 명목으로 임군의 은행 계좌로 5만 원씩 두 차례, 모두 10만 원을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군은 여자친구 김양과 함께 A씨 지시대로 경복궁 담벼락에 낙서를 하고 텔레그램으로 이를 실시간 보고했다.

A씨는 이어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에도 낙서를 지시했으나 임군은 경비가 너무 삼엄하다며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이후 A씨가 새롭게 지목한 서울경찰청 외벽에 낙서했다. 범행 인증 사진을 찍어 텔레그램으로 A씨에게 보내기도 했다. A씨는 "수원 어딘가에 550만 원을 숨겨놓겠다"고 말했으나 실제 돈을 주지는 않았다. 또 경찰이 수사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임군에게 "두 사람 망한 것 같다. 도망 다녀라"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후 귀가한 임군과 김양은 사흘만인 지난 19일 경찰에 붙잡혔다. 종로경찰서는 전날 밤 「문화재보호법」 위반 및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임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양에 대해선 범죄 가담 정도 등을 고려해 이날 석방했다. 김양은 임군과 범행을 계획하고 동행했지만 직접 낙서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임군에 대한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는 이달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경찰은 A씨 신원을 특정하기 위해 임군의 은행계좌 거래내역을 확인하고 텔레그램 계정을 추적하는 등 수사에 나섰다. 낙서에 등장한 불법 영상 사이트는 물론 전혀 무관한 인물이 임군에게 지시했는지 등 여러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임군 범행을 모방해 2차 낙서를 한 설(28)씨에 대해서도 지난 20일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설씨는 임군 범행 다음 날인 지난 17일 경복궁 영추문 왼쪽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특정 가수의 이름과 앨범 제목 등을 쓴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를 받는다. 설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문화재에 낙서를 하는 행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낙서로 인한 문화유산 훼손은 그동안 꾸준히 발생해왔는데, 이번 사건처럼 돈이 얽혀있는 것뿐만 아니라, "장난삼아 했다"는 주장부터 "악령을 쫓는 문구라 썼다" 등 황당한 동기로 인한 사건이 많았다.

2007년에는 30대 남성이 서울 송파구 삼전도비 앞면과 뒷면에 붉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철거`, `병자`, `370`이라는 글자를 쓴 사건이 대표적이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청나라에 무릎을 꿇은 것을 상징하는 문화재로 당시 복원에 3개월이 걸렸다. 당시 그는 경찰 조사에서 `치욕스러운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11년에는 세계적인 암각화 유물이자 국보인 울주 천전리 각석에 이름을 새긴 혐의로 고등학생이 붙잡혔다. 해당 고등학생은 "친구를 놀리려 장난삼아 했다"고 진술했다가 이후 진술을 번복하고 혐의를 부인했다. 결국 증거를 찾지 못해 불기소 처분됐다. 2019년에 부산 금정산성의 망루와 비석 등 곳곳에 검은 매직펜으로 이름 등을 쓴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낙서를 한 70대는 경찰에 붙잡혔는데 `등산 중 쓰러진 경험이 있어 또 쓰러졌을 경우 가족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는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표이자 그 역사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물이다. 그게 현재 우리의 뿌리임을 알고 존중한다면 단지 돈과 심심풀이를 이유로 문화재에 낙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는 단지 선대 조상들뿐만 아니라 해당 문화를 이어받은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과 같다. 심지어 이번 경복궁 낙서 사건은 성인이 10대 청소년을 사주한 사건으로, 우리 세대가 문화재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다음 세대가 답습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조상들이 식민지배 시절 우리나라 문화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쳤던 과거와 우리 스스로 문화재를 훼손하고 있는 현실을 비교해 보면 씁쓸함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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