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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여자 혼자도 기차 여행을 해요
repoter : 문선옥 ( hkn365@naver.com ) 등록일 : 2025-03-28 17:20:01 · 공유일 : 2025-03-28 17:45:31


 

안녕하세요 저는 러시아의 소냐 게르게이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고향 러시아를 떠나 남자 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고 있는데요 저와 남자 친구의 만남은 약 1년 전 그 당시 숙박업을 하고 있던 삼촌의 호텔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한 남자를 소개받았습니다.

 

삼촌이 한국에서 일했을 때 같은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남자라구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 다들 떠나가는 가운데 한국에서 왔다는 그가 무척 신기하게 보였죠. 그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삼촌을 꼭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저는 약속을 지키려고 전쟁 중인 국가에도 오는 그의 멋진 의리를 보고 호감이 생겼고 이런 감정은 저만 있는게 아니었죠. 불꽃이 된 우리는 만난지 2주도 안 돼서 연인 사이가 됐고 남자 친구는 원래 일정보다 약 한 달 더 지내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엔 제가 남자 친구를 보러 한국으로 가서 똑같이 두 달가량 생활했는데 그때 한국에서 만든 추억이 너무 좋아 떠나고 싶지 않더군요. 하지만 저는 러시아로 돌아가야 했고 그 뒤 남자 친구가 한국에서 취직하게 되면서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정 보고 싶을 땐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제가 한국에 갈 때도 있었지만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저는 외로웠습니다.

 

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던 건 전쟁의 영향도 컸습니다. 모스크바는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는 지역은 아니었어도 뉴스를 보다 보면 점점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러시아의 상황은 저를 겁먹게 했습니다.

 

저는 남자 친구와 연락할 때마다 이런 불안함과 공포를 토로했죠. 그런데 남자 친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한국에 와서 같이 살래 남자 친구는 만난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저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확신이 생겼다면서 제가 한국에 와서 자리를 잡으면 결혼하자고 하더군요.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남자 친구를 사랑하긴 하지만 아직 결혼을 논할 단계는 아니라고 봤거든요.

 

남자 친구는 저의 부정적인 반응을 듣고 실망했지만, 꼭 결혼 문제가 아니더라도 위험한 러시아에 있는 것보다는 전 한국에 있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설득했습니다. 남자 친구는 어학당을 다니며 학생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어 자격증을 따면 취업을 준비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어요.

 

쉽지 않겠지만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저는 그의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직접 경험해 본 대한민국은 무척 살기 좋은 나라였고, 러시아보다 훨씬 나으니까요. 며칠 고민 끝에 저 는 한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고 한 달 뒤 인천공항 한복판에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친으로 터 걸려온 보이스톡은 저를 당황스럽게 했는데요. 남자 친구는 지인분의 부모님이 상을 당해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다며 공항에 못 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비행기에서는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으니 어차피 연락이 안 될 것 같아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연락했다고 했죠. 인천공항까지 다시 데리러 가려고 하면 가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 공항철도 여객 터미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올 수 있냐고 물어보더군요.

 

서울역에서 같이 만나 남자 친구가 사는 부산으로 내려가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서 표는 자기가 예약을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자 친구의 말에 충격받았습니다. 나보고 지금 혼자 기차를 타란 소리야,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제 주변에서는 정상인이라면 여자 혼자 기차 타는 것은 말리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친구들이랑 여럿이서 갈 것을 권장하거나 어른 남자와 같이 타라고 충고했고 제가 살면서 딱 한번 기차를 혼자 타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합니다. 그 당시 저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친구 네 명과 함께 기차를 타고 여행할 예정이었지만, 제가 늦잠을 자면서 친구들이 한 시간 넘게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미안하다며 먼저가 있으라고 연락했습니다. 친구들은 여자 혼자 기차를 타는 건 위험하다며 걱정했지만 저는 괜찮다고 우겼죠. 저는 그렇게 다시 예약한 기차의 3등석 들어섰습니다. 3등석은 일 이등석과 다르게 닫을 수 있는 문이 없고 말이 6인 실리지 뻥 뚫린 채로 마땅하 있는 구조라서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다 보였어요.

 

여자 혼자 타니 사람들의 시선이 확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좁은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은 저를 불쾌하게 만들었죠. 돌아다니지 않을 때도 물론 불안했습니다. 제 맞은편 자리에 있는 남자는 미친듯이 술을 마시면서 초점 없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저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니즈니노브고로드 아지는 몇 시간만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자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조금만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는데 스멀스멀 올라오는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순간 화들짝 놀라 눈을 떴더니 남자가 저를 더듬거리며 만지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소리를 지르며 남자를 밀쳤어요. 욕설을 내뱉으며 저를 밀치며 갑자기 무기를 꺼내들더군요.

 

제 비명 소리에 깬 주변 사람들도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죠. 술에 취한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칼을 들고 난동을 부렸지만 남자는 다행히 몸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취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주변 남자들이 금방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제압하는 과정에서 칼에 쓸려 상처를 입은 남자분이 있으셨고, 저는 그분께 눈물을 홀리며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사과했습니다. 남자는 중간 기착지에서 내려 연행되었습니다. 저 또한 조사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경찰서에 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아버지는 깜짝 놀라 기차를 타고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아빠는 크게 화를 내며 왜 너 혼자 기차를 타고 간다는 말을 안 했냐고 저를 질타하는 부모님은 제가 친구들 여럿이랑 여행을 가는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뒤로 혼자는 물론이고 여럿이도 기차를 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게 됐고 여행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자 친구를 보러 두 달 전 잠깐 한국에 왔던 일이 그 일이 벌어지고 난후 처음해 본 여행이었습니다. 그때도 무서웠지만 그리움이 더 커서 갔던 거였어요. 서운한 저는 섭섭한 마음을 남자 친구에게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자 친구는 오히려 자기가 더 난감하다는 말투로 여자 혼자 기차 타고 오는 게 왜 위험한 일이야 인천에서 서울까지 얼마 안 걸려라고 말했죠.

 

저는 정말 남자 친구가 저를 정말 사랑하는게 맞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본 어떤 남자도 자기 딸이나 여자 친구를 혼자 기차에 타게 내버려 두지 않았으니까요. 분노한 저는 남자 친구에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여자 혼자 기차를 태워 보낼 생각을 하는 거야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그러자 남자 친구는 싫으면 강요하지 않겠다면서 데리러 가겠다고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남친이 올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리다가 그와 만나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화를 낸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괜한 자존심에 여전히 화난 척을 했습니다. 저녁에 남자 친구 집에서 짐을 풀고 하루를 묻고, 다음날 부산에서 놀 때도 여전히 우리는 서먹서먹 습니다.

 


 

그날 저녁쯤 남자 친구가 뜬금없이 혼자 기차를 타기 싫으면 자기랑 기차를 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저번에 한국에 놀러 왔을 때 KTX 보고 타고 가고 싶어 했던 전주 한옥마을에 놀러 가자는 거예요.

 

저는 기차 때문에 그렇게 싸워 놓고도 그런 제안을 하는 남자 친구가 기가 막혔으나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참고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기껏 한국까지 온 것 친하게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차를 타보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고속버스를 이용하거나 서울에 놀러 갔을 때 지하철을 탄게 전부였으니까요. KTX 부산역에 도착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모스크바의 야로 슬라브 스키어보다 세련되고 크기도 커서, 마치 작은 공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KTX 산천은 제가 러시아에서 탔던 기차와는 많아 달랐습니다. 침대가 없었고 오로지 좌석 형태로만 존재했어요.

 


 

남자 친구가 설명해 준 내용에 따르면 한국은 어딜 가든 한국 내면 하루 안에 갈 수 있어 침대가 있을 필요 없다고 해요. 좌석은 넓고 편안했으며 뒤로 젖힐 수도 있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과 달리 복도를 지나갈 때도 쳐다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더군요.

최신식 기차가 아니면 6인실에도 콘센트가 두 개밖에 없는 구역 열차가 흔한 러시아와 달리 앞좌석 아래와 제가 앉는 좌석 아래도 각각 콘센트가 있어서 휴대폰 충전이 용이했습니다.

 

한국의 기차는 기술력이 좋아서인지 러시아의 기차와 달리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많은 러시아 열차와 달리 승객들도 무척 조용하고 점잖았다. 저는 열차 안 자판기를 처음 써보고 무척 신이 났는데, 남자 친구가 기차 안에 자판기가 있는게 그리 신기해야 할 일이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러시아는 자판기가 없는 기차가 많았어요. 자판기가 있는 열차라도 단말기가 달렸는데도 카드 결제가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죠. 한국 기차가 신기했던 저는 열차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놀랍게도 혼자 온 여자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저와 달리 전혀 불안에 떨고 있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표정으로 책을 보고 있거나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괜히 말을 걸거나 희롱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차 안을 지나가다 여자분을 마주치면 먼저 지나가라고 비켜 주며 몸이 닿지 않게 배려해 줬습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충분히 여자도 안전하게 기차를 탈 수 있겠구나 믿음이 같습니다. 오송역에서 환승하여 전주에 가기 때문에 기차를 두 번 탔지만 어떤 불편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요. 저는 남친이 왜 저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 못했던 것인지 알았습니다.

 

한국같이 안전한 나라에서는 당연히 여성 혼자 기차를 타도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는게 당연했기 때문에 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죠. 저는 남자 친구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러시아 열차처럼 한국 기차가 위험한 줄만 알고 여자 혼자 타라는게 섭섭해 했다고요 그는 빙글에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처음엔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러시아 기차의 치안에 대해서 검색해서 알아보니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술취한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흉악한 사람들까지 있다더라, 그걸 보니까 내 심정을 이해하게 됐어. 대신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기차를 타보자고 제안했던 것이라고 하네요. 저는 남자 친구의 지혜로움에 감탄했습니다. 한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보여주는게 낫다는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죠.

 

그가 존경할 만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믿음직한 남자라면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일주일 뒤 저는 남자 친구의 결혼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고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부산에서 외국인이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서 남친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차 때문에 생긴 국제 커플에 해프닝 어떻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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