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들의 자화상을 자세히 보고자 할 때 문득 바다를 주목할 지 모른다.
그 만큼 바다를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의 풍모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 먼저 흑룡만리라 하는 돌담은 제주 사람들의 삶의 절절한 애환이고 생존의 뼈아픈 노래의 절창이다. 이 절창을 온몸으로 육화해 내면서 살아온 그 내력은 바로 돌담인 것이다.
지구의 반 바퀴를 쌓아 올리면서 살아야 했던 지난 수 백 년은 또 바람과의 싸움이자 숱한 수탈의 역사였다. 외부에서 밀려드는 왜구들과 여타 해양에서 떠도는 이들의 강압은 돌이란 이 뜨거운 분노를 쌓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끝없는 변방의 날들을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으랴. 이것은 살아있는 제주 역사의 실록이다.
이 실록을 읽지 않고선 훌륭한 탐라순력도보다 더 앞선 제주 사람들의 삶의 현장성이었다. 옛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그 사료[史料]들도 영원한 보고이지만 이 돌담의 보고는 그 무엇으로 답할 수 없는 값진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탈을 당한 사람들의 한을 달리 표현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손 안에 쥐고 살았던 분노의 불을 어디로 날려보낼 수 없는 사람들이 쌓고 또 쌓았을 것이다. 흑룡만리가 되는 날까지 돌 위에 살다가 죽어서 돌 위에 잠이 드는 고단한 인생사를 이 속에서 읽을 수 밖에 없다.
제주를 대표할 빼어난 풍경을 이조 시인 묵객들이 열 곳을 선정했는데 이것을 제주 옛지명인 영주이고 뛰어난 열 곳을 가리켜 영주십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시집 11집에서 영주십경이 가곡으로 모두 작곡되어 한라대학 아트홀에서 발표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봉낙조를 제외한 영주십경을 다시금 시를 썼다.
이 시집은 그런 면에서 제주 돌담만리가 아닌 영주십경인데 후반부에 첨부해 넣었다. 사봉낙조는 가곡의 백미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곡이었고 더는 손을 댈 수 없어 그대로 실었다. 여느 때보다 영주십경을 심혈을 쏟았던 것은 이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 하는 데 있어 내 모든 것을 걸고 싶었다. 더는 손을 댈 수 없는 만큼 아름다운 가곡으로 재탄생 되는 바램 때문이었다. 돌담만리를 영주십경을 마지막에 넣고 싶은 까닭은 옛사람들이 그냥 지나쳤으나 또 하나를 첨가해 영주십일경으로 부르는 것도 마땅하다고 여긴다.
사진 속으로 들어오는 밭담 풍경은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감동의 물결이다. 인간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 라는 점이고 수많은 날들을 바람과 싸워 온 날들이 고스란히 다 들어 있어 생각하는 것이 한두 가지 아니다. 남해의 다랑논의 풍경과 비교할 수 없는 이 뛰어난 돌담의 길이는 우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시금석을 안겨주고 있다. 돌담에 피어난 유채꽃은 환상 그 자체였다. 바다와 어우러져 하늘거릴 때 인간의 오욕이 사라지고 원초적인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 풍경을 만들어낸 것은 사람이 아닌 해녀라는 점이다. 물질과 밭일을 동시에 겸하고 있는 억척스러운 제주여인들의 삶의 터전이고 생의 처절한 장소이다.
태어나자마자 물질부터 배우고 숨을 거둘 때까지 골갱이[호미]를 놓지 않는 제주 여인들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어도 밭에 나가보면 제주여인들은 손에 골갱이가 쥐어 있고 놓지 않고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돌담 안에 씨를 부리고 가꾸는 몫이 남자들의 몫 같으나 지금도 여인들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오늘 흑룡만리는 제주 여인들의 눈물 어린 집념을 집합해 놓은 산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제주 한 바퀴를 돌면 끝없이 이어지는 밭담의 풍경은 또 하나의 올레길이다. 올레꾼들은 길을 따라 제주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자신의 생을 힐링했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힐링은 아니다. 진정한 것은 저 돌담의 내력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저 숭고한 뜻이 빠져버린 단순히 배낭을 지고 걷는 정도라면 한낱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유희가 아닌 이곳 사람들의 지난 세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올레길을 걷는 참 의미에 접근하는 것이다.
올레길은 돌담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풍경만 보러 왔다면 제주도를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저 흑룡만리의 뜻을 이해하고 올레길을 접을 때는 전혀 다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쌓지도 않는 흑룡만리가 있다. 이것을 단숨에 허물어 살아 숨쉬는 실체인 이 흑룡만리를 앞에 설 때 내적치유인 이 아름다운 힐링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거대한 세월호의 심한 격랑을 겪으면서 이 시집을 묶어내는 동안 참으로 많이 걷고 또 걸었다.
흑룡만리가 보여주는 것은 끝없는 인내와 끝없는 절망을 뛰어 넘어 살아가는 자유를 손에 쥐어 주었다. 이 자유는 물질이 인간을 앞서 가는 것이 아닌
인간 다음에 오는 것을 분명하게 정의해 주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여한 명제를 어떻게 명쾌하게 풀어 주었는가를 저 흑룡만리에서 보았다.
― 이청리, <후기> 중에서
- 차 례 -
제1부
1 제주 돌담만리
2 풍경 소리 3 돌담 춤사위
4 제주돌담 유래
5 천하 기인
6 들꽃을 보시라
7 석수
8 자화상
9 태풍
10 풍상
제2부
11 눈물의 탑
12 속삭임
13 마음의 돌덩어리들
14 돌 속에 무엇이 있어
15 흑룡만리黑龍萬里
16 하늘에 내려 온 별들
17 경계석
18 바람의 행방
19 풍경 속으로
20 별들의 돌담
제3부
21 제주 풍난 1
22 제주 풍난 2
23 제주 사람들
24 황홀한 사란
25 낙관
26 흑롱만리 추사체
27 골갱이 [호미]
28 돌담길 말만 들어도
29 마음의 지성소
30 돌담 팔만대장경
제4부
31 바람의 소리
32 순백 의 눈빛들
33 바람의 경청
34 돌의 일생
35 청아한 울림
36 필법
37 더 평온하다
38 하늘과 맞닿은 곳
39 바다의 울렁거림
40 단비
제5부
41 門
42 제주 돌담 사랑
43 눈물의 순금
44 돌담이 담쟁이 덩굴에게
45 신들이 만들어 놓은 언어
46 달처럼 떠 있는 것 좀 봐
47 허물 수 없는 돌담
48 돌담은 신의 일부인 둣
49 돌담만리 빨랫줄
50 연인들의 그리움
제6부
51 바람 밧줄
52 돌담 품 속
53 해녀들은 눈부시는 돌담
54 신의 음성
55 돌들의 언약
56 돌담의 발바닥
57 집 한 채로 얹어 놓고
58 돌담 안에 피어 있는 유채꽃
59 제주 밭담
60 굴 따러 가세
61 성산일출
62 봉낙조
63 영구춘화
64 귤림추색
65 정방폭포
66 녹담만설
67영실기암
68 산방굴사
69 산포조어 / 99 70고수목마
제주 돌담만리
이청리 시집 / 이룸 신서 刊
제주 사람들의 자화상을 자세히 보고자 할 때 문득 바다를 주목할 지 모른다.
그 만큼 바다를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의 풍모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 먼저 흑룡만리라 하는 돌담은 제주 사람들의 삶의 절절한 애환이고 생존의 뼈아픈 노래의 절창이다. 이 절창을 온몸으로 육화해 내면서 살아온 그 내력은 바로 돌담인 것이다.
지구의 반 바퀴를 쌓아 올리면서 살아야 했던 지난 수 백 년은 또 바람과의 싸움이자 숱한 수탈의 역사였다. 외부에서 밀려드는 왜구들과 여타 해양에서 떠도는 이들의 강압은 돌이란 이 뜨거운 분노를 쌓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끝없는 변방의 날들을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으랴. 이것은 살아있는 제주 역사의 실록이다.
이 실록을 읽지 않고선 훌륭한 탐라순력도보다 더 앞선 제주 사람들의 삶의 현장성이었다. 옛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그 사료[史料]들도 영원한 보고이지만 이 돌담의 보고는 그 무엇으로 답할 수 없는 값진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탈을 당한 사람들의 한을 달리 표현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손 안에 쥐고 살았던 분노의 불을 어디로 날려보낼 수 없는 사람들이 쌓고 또 쌓았을 것이다. 흑룡만리가 되는 날까지 돌 위에 살다가 죽어서 돌 위에 잠이 드는 고단한 인생사를 이 속에서 읽을 수 밖에 없다.
제주를 대표할 빼어난 풍경을 이조 시인 묵객들이 열 곳을 선정했는데 이것을 제주 옛지명인 영주이고 뛰어난 열 곳을 가리켜 영주십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시집 11집에서 영주십경이 가곡으로 모두 작곡되어 한라대학 아트홀에서 발표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봉낙조를 제외한 영주십경을 다시금 시를 썼다.
이 시집은 그런 면에서 제주 돌담만리가 아닌 영주십경인데 후반부에 첨부해 넣었다. 사봉낙조는 가곡의 백미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곡이었고 더는 손을 댈 수 없어 그대로 실었다. 여느 때보다 영주십경을 심혈을 쏟았던 것은 이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 하는 데 있어 내 모든 것을 걸고 싶었다. 더는 손을 댈 수 없는 만큼 아름다운 가곡으로 재탄생 되는 바램 때문이었다. 돌담만리를 영주십경을 마지막에 넣고 싶은 까닭은 옛사람들이 그냥 지나쳤으나 또 하나를 첨가해 영주십일경으로 부르는 것도 마땅하다고 여긴다.
사진 속으로 들어오는 밭담 풍경은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감동의 물결이다. 인간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 라는 점이고 수많은 날들을 바람과 싸워 온 날들이 고스란히 다 들어 있어 생각하는 것이 한두 가지 아니다. 남해의 다랑논의 풍경과 비교할 수 없는 이 뛰어난 돌담의 길이는 우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시금석을 안겨주고 있다. 돌담에 피어난 유채꽃은 환상 그 자체였다. 바다와 어우러져 하늘거릴 때 인간의 오욕이 사라지고 원초적인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 풍경을 만들어낸 것은 사람이 아닌 해녀라는 점이다. 물질과 밭일을 동시에 겸하고 있는 억척스러운 제주여인들의 삶의 터전이고 생의 처절한 장소이다.
태어나자마자 물질부터 배우고 숨을 거둘 때까지 골갱이[호미]를 놓지 않는 제주 여인들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어도 밭에 나가보면 제주여인들은 손에 골갱이가 쥐어 있고 놓지 않고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돌담 안에 씨를 부리고 가꾸는 몫이 남자들의 몫 같으나 지금도 여인들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오늘 흑룡만리는 제주 여인들의 눈물 어린 집념을 집합해 놓은 산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제주 한 바퀴를 돌면 끝없이 이어지는 밭담의 풍경은 또 하나의 올레길이다. 올레꾼들은 길을 따라 제주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자신의 생을 힐링했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힐링은 아니다. 진정한 것은 저 돌담의 내력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저 숭고한 뜻이 빠져버린 단순히 배낭을 지고 걷는 정도라면 한낱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유희가 아닌 이곳 사람들의 지난 세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올레길을 걷는 참 의미에 접근하는 것이다.
올레길은 돌담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풍경만 보러 왔다면 제주도를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저 흑룡만리의 뜻을 이해하고 올레길을 접을 때는 전혀 다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쌓지도 않는 흑룡만리가 있다. 이것을 단숨에 허물어 살아 숨쉬는 실체인 이 흑룡만리를 앞에 설 때 내적치유인 이 아름다운 힐링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거대한 세월호의 심한 격랑을 겪으면서 이 시집을 묶어내는 동안 참으로 많이 걷고 또 걸었다.
흑룡만리가 보여주는 것은 끝없는 인내와 끝없는 절망을 뛰어 넘어 살아가는 자유를 손에 쥐어 주었다. 이 자유는 물질이 인간을 앞서 가는 것이 아닌
인간 다음에 오는 것을 분명하게 정의해 주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여한 명제를 어떻게 명쾌하게 풀어 주었는가를 저 흑룡만리에서 보았다.
― 이청리, <후기> 중에서
- 차 례 -
제1부
1 제주 돌담만리
2 풍경 소리
4 제주돌담 유래
5 천하 기인
6 들꽃을 보시라
7 석수
8 자화상
9 태풍
10 풍상
제2부
11 눈물의 탑
12 속삭임
13 마음의 돌덩어리들
14 돌 속에 무엇이 있어
15 흑룡만리黑龍萬里
16 하늘에 내려 온 별들
17 경계석
18 바람의 행방
19 풍경 속으로
20 별들의 돌담
제3부
21 제주 풍난 1
22 제주 풍난 2
23 제주 사람들
24 황홀한 사란
25 낙관
26 흑롱만리 추사체
27 골갱이 [호미]
28 돌담길 말만 들어도
29 마음의 지성소
30 돌담 팔만대장경
제4부
31 바람의 소리
32 순백 의 눈빛들
33 바람의 경청
34 돌의 일생
35 청아한 울림
36 필법
37 더 평온하다
38 하늘과 맞닿은 곳
39 바다의 울렁거림
40 단비
제5부
41 門
42 제주 돌담 사랑
43 눈물의 순금
44 돌담이 담쟁이 덩굴에게
45 신들이 만들어 놓은 언어
46 달처럼 떠 있는 것 좀 봐
47 허물 수 없는 돌담
48 돌담은 신의 일부인 둣
49 돌담만리 빨랫줄
50 연인들의 그리움
제6부
51 바람 밧줄
52 돌담 품 속
53 해녀들은 눈부시는 돌담
54 신의 음성
55 돌들의 언약
56 돌담의 발바닥
57 집 한 채로 얹어 놓고
58 돌담 안에 피어 있는 유채꽃
59 제주 밭담
60 굴 따러 가세
61 성산일출
62 봉낙조
63 영구춘화
64 귤림추색
65 정방폭포
66 녹담만설
67영실기암
68 산방굴사
69 산포조어 / 99 70고수목마
후기
[2014.08.08 초판발행. 103쪽. 정가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