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의 : T. 02-725-2930, E-mail. gallerynow@hanmail.net
[서문]
감각의 틈, After Eros
최하나는 2003년생의 22세의 젊은 작가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는 20대 초반의 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고, 그의 글은 때 더더욱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철학적인 질문들을 쏟아 내었다. ‘철학을 사랑하는 회화자’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최하나는, 회화를 단순한 시각적 표현의 차원을 넘어, 사유의 도구이자 감정의 기록으로 여긴다. 회화가 철학이 되고, 철학이 감각이 되는 교차점에서 그의 질문이 시작된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보이지 않는 균열을 감지하는 일인지 모른다. “무심코 흘려보낸 순간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그 모두는 '나'를 이루는 낯설고도 익숙한 파편들이다”.
최하나의 회화는 설명보다 응시를 요구하며, 언어가 아닌 시선으로 전달되는 사유의 무게가 전달되면서 이성적으로 읽히기보단 감정이 잔향처럼 스며든다. 그리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해지는 것과 침묵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마주하게 될 풍경은, 그런 질문 앞에 서성이는 존재들이다. 흔들리고,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는 인물들은 정체성을 고정하지 않고, 오히려 ‘흐름’과 ‘감각’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은 서로 다른 감정과 시간들이 층처럼 쌓여 있음이 보인다. 겹겹이 칠해진 붓질, 남겨진 여백, 닿지 못한 연결, 그것은 단순한 조형적 선택이 아니라, 회화로 사유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파악하기보다는, 그 감각이 우리 안에서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먼저 느끼게 될 것이다.
최하나의 시선은 급진적이지 않지만 날카롭고, 감정은 격렬하지 않지만 깊이가 있다. 작가는 자신이 겪어온 내면의 순간들 즉 혼란, 질문, 불안, 애정… 등을 회화를 통해 말한다. 따라서 그녀의 이 회화는 익숙한 형상이 뒤틀리고, 질서 있는 구도도 아니고, 정리된 결론도 아니며, 열린 문장처럼 다가온다. 감정이 흘러나온 자리, 생각이 멈춘 지점, 그 어딘가에 놓인 잔상들. 그 잔상을 ‘철학’이라고 부르는 작가는 ‘감각하는 사유’로서 자신을 다시 마주한다.
그녀는 말한다. “철학은 학문이기 전에 감정이며, 회화는 기술이기 전에 질문이다.” 라고,
이번 전시는 이 시대를 살아내는 뜨거운 젊은 육성을 만나는 자리이다.
-이순심 (갤러리나우 대표)
[작가노트]
내가 추구하는 초현실주의는 경험의 의식적 영역과 무의식적 영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수단이며, '절대적 실재, 즉 초현실' 속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적인 이성의 세계와 결합될 수 있다고 한다. 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원용하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상상력의 원천으로 간주한다. 인간의 사고는 너무도 복잡해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인식하기 힘들다. 특히 스트레스나 심리적인 불안이 가득한 상태일 때 더더욱 앞을 내다보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미술은 자아의 기록이 시각적인 이미지 안에 농축된 것으로, 자연스러운 창작활동을 하는것은 자신의 내적 경험을 표면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내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행함으로써 남모르게 철학을 알아가게 되었다. 삶을 사랑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오만가지의 감정과 사유 모두가 철학의 일환이다.
철학적 사유란 내가 만나는 다양한 상황에서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나’에서 시작해서 타자(他者), 그리고 세계로 사유의 원이 확장된다. ‘나’는 ‘너’와 상호연결돼 있으며 ‘나’와 ‘너’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세계에 대해 다층적 물음을 묻고, 무엇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판단을 하게 하고, 그 판단에 근거해서 크고 작은 행동을 취하게 한다. 즉, 이러한 사이클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철학적 사유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밤 잠들기 전 나의 하루를 돌이켜 보고, 내일의 나를 그려보는 일 또한 분명 가치 있는 철학적 사유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철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사유와 고민이 철학적 토론을 한답시고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이 무엇이냐'라는 탁상공론보다 훨씬 더 깊이 있다고 생각한다. 갑론을박은 그저 서로를 헐뜯고, 상대의 논리의 빈틈을 찾기 위한 경쟁에 불과하다. 만약 그러한 성취를 통해 본인에 대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철학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여기서 더하고 싶은 건 정답을 찾으려는 행위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결론이 없는 세상에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늘 정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건 아니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을 찾는 '과정' 중에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경험과 감정이야 말로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건강한 질료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철학을 사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니체, 한나 아렌트와 칸트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응집하고 정리해놓은 기록과 주장 또한 애정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는 과정을 향한 존경이야 말로 내가 진정으로 철학을 사랑하는 이유임을 다시 한번 새기는 바이다.
-최하나
[평론]
초현실과 균열, 감각하는 철학의 귀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균열과 공존하는 일이며, 내 회화는 그 균열을 끌어안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 최하나 작가노트 중에서
"나는 기억의 껍질 위에 존재한다." 작가가 반복하는 이 말은 시가 아니라 존재론이다. 최하나의 회화는 회화적 감각과 철학적 사유가 맞닿는 교차점에서 작동한다. 철학적 질문이 회화적 감성으로 변주되는 순간, 회화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사유의 도구가 된다. 2003년생.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최하나는 이미 도쿄 아트페어와 KIAF 등 국제 무대에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스스로를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 "내면을 사유하는 회화자"라고 명명한다. 최하나는 단지 유망한 청년 작가가 아니다. 오늘날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보기 드문 존재론적 밀도와 철학적 감각을 병치할 줄 아는 작가이며, "깨어 있는 이미지의 감각자이자 철학자"로 기능한다. 최하나의 회화는 단순한 초현실적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과 무의식, 감정과 기억, 자아와 타자 사이의 갈등과 균열을 시각화하는 한편, 이 균열에서 도리어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회복한다. 회화가 단순한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감각하고 성찰할 수 있을지를 묻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철학하는 이미지: 존재론적 사유와 회화의 언어
프랑스 철학자 퀜텡 메야수(Quentin Meillassoux, 1967~)는 대표작 『유한성 이후(Après la finitude)』에서 "신도 이성도 없는 절대적 우연성의 세계"를 말한다. 그는 인간의 인식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상관주의를 해체하며,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비결정적이라고 본다. 이 철학은 최하나의 대표작 <Coup d'état>에 깊게 투영된다. 무너진 원형 구조, 붕괴된 질서, 손을 맞잡은 인물들. 이 장면은 단순한 정치적 전복이 아니라, 존재의 내면에서 일어난 쿠데타이다. 질서였던 모든 것은 해체되고, 타자와의 연결만이 남는다. 메야수가 말한 "결정 불가능한 세계" 속에서 최하나는 내면의 모순과 비극을 가시화한다. 이와 연결되는 <Blindman's Bluff>는 맹목적 판단과 집단적 무지를 풍자적으로 그려내며 현대 사회의 왜곡된 윤리를 시각화한다. 이 감각은 독일 신표현주의가 남긴 강렬한 조형언어와 정서적 파괴성과 겹친다. 특히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는 해체된 인체 형상과 역방향 구도 등을 통해 존재의 불안과 심리적 균열을 강렬하게 드러낸 대표적 신표현주의 작가로 평가받는다.
최하나 역시 바젤리츠처럼 해체와 전복의 언어를 기반으로 하지만, 파괴 이후의 감정 윤리와 감각적 재구성에 집중한다. 작가의 회화는 단지 분열의 미학에 머무르지 않고, 그 균열을 감싸는 사유의 여백과 감정의 연대를 남긴다. 이는 철학의 회화화가 아니라, 회화의 철학화를 실현하는 진보된 시각적 실험이다. 다니엘라 발레가-노이(Daniela Vallega-Neu, 1966~)는 하이데거와 데리다의 사유를 매개로 존재의 해체적 감각을 사유한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감각, 기억, 무의식의 층위를 통해 주체가 형성된다고 보며, 언어 이전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 <After Consciousness>에서는 최하나는 발레가-노이의 사유와 깊은 공명을 이룬다. 자아가 벗겨진 껍질처럼, 존재는 고통이 아니라 무게의 흔적으로만 남는다. 인물들은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사라지고 재구성되는 감각의 지층이다. <Remnant>는 이러한 존재의 껍질성과 퇴적된 감정을 응축한 대표작으로, 마른 형상이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더 깊이 드러낸다. 이 회화의 물성과 구성은 일종의 시각적 신화로 기능하며, 존재의 파편을 감각적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서사성을 부여한다. <Hopeless Romantic> 연작은 이상과 현실, 욕망과 허무 사이의 정서적 간극을 날카롭고도 애틋하게 담아낸다. 이 시리즈는 단순히 낭만의 재해석이 아니라, 감정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새로운 미학적 언어의 구현이다. 또한 <Philosophizing>은 회화 그 자체가 철학이 될 수 있다는 선언처럼, 화면 위에서 감정과 사유의 균형을 보여준다.
한국적 감각의 조형적 실험: 여백, 파열, 윤리
독일 신표현주의(Neue Wilde)는 감정, 신화, 정치적 정서를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 격정은 때로 파괴에 머무르고, 언어를 잃은 감정은 난폭함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젤리츠 이후 독일 및 유럽 화단에서 유사한 언어를 사용한 작가로는 조나단 메세(Jonathan Meese, 1970~), 앤젤리카 마크스(Angelika Markul , 1972~), 앤서니 미칼레프(Anthony Micallef, 1975~) 등이 있다. 메세는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는 유희적 전복성과 신화의 모티프를 결합하며, 마크스는 시간성과 기억의 감각적 풍경을 섬세하게 구성한다. 미칼레프는 인간 감정의 비극성과 폭력성을 날카롭게 탐구하며 현대 회화의 새로운 감각을 제시한다. 최하나는 이들과의 계보적 연속성을 보이면서도, 이는 의도된 모방이나 이론적 귀속이라기보다 타고난 감각의 귀결에 가깝다.
작가는 감정의 윤리성과 동양적 여백미를 가미하여 보다 섬세하고 내면적인 감각의 회화를 완성한다. 작가의 회화는 서구 회화의 표현주의와 한국미의 레이어적 감각이 조응하는 드문 경우이다. 붓질의 여백, 감정의 중첩, 비워진 중심-이것은 단지 기법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동양적 태도다. 이는 한국화 전통, 특히 수묵화의 여운과 기억적 구성에서 영향을 받은 조형언어다. 윤리적 여백, 감정의 수습, 절제된 파격은 최하나 회화를 독자적인 언어로 만든다. 특히 작가는 동서양 미감의 중첩을 하나의 시각적 공간으로 융합함으로써, 조형적 실험 너머의 감각적 철학을 구축한다. 한국적인 여백 위에 서구 철학의 무게를 얹고, 물성 위에 서사의 신화를 직조한다. 최하나는 회화적으로도 매우 정교하다. 레이어링의 반복, 터치의 밀도, 색채의 층위는 감정의 무게를 구성한다. 이러한 형식적 성과는 감각적 시성과 철학적 지성의 정합을 이룬다. 특히 <Posthuman Venus>에서는 이상화된 미의 신화를 해체하고, 기계적 신체와 감정 없는 응시를 통해 비너스 이후의 존재를 상상한다. 또한 <Eyeless Witnesses>에서는 권력 속 비가시성과 윤리적 부재, <Afterimage>에서는 기억 속 잔영이 남긴 자아의 흔적을 시각화한다. <Valhalla>에서는 신화와 영혼의 종말 이후, 파편화된 인간적 명예에 대한 동시대적 우화를 구현한다. <Philosophizing>은 회화 자체가 철학적 사유의 연장선이 될 수 있음을 선언하듯, 언어와 붓질 사이의 거리를 줄인다. 이와 함께 <Blindman's Bluff>는 무비판적 시선과 집단적 판단 오류를 풍자하며, <Remnant>는 감정의 흔적이 어떻게 존재를 형성하는지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미래의 시점에서 도달한 회화: 최하나라는 가능성
최하나는 존재론적 감수성과 윤리적 초현실, 그리고 감각적 기술을 병치할 줄 아는 유일한 작가이다. 한국화의 여백성과 철학적 미감을 동시대의 언어로 전환하고, 서구 철학의 가장 첨단적인 감각적 사유들과 자연스럽게 교직한다. 이는 "회화로 철학을 쓰고, 철학으로 감정을 말하는 작가"라는 자전적 표현에서 드러난다. 작가의 작업은 감각이자 사유이며, 감정이자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스스로를 넘어 세계와 사회, 타자와 존재 전체를 향해 있다. 최하나는 지금, 한국 청년회화가 어디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교한 모범이다. 아직 작품 세계는 해석 가능한 층위가 많고, 그 본질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그 미완의 여백과 해석의 다층성은 오히려 동시대 회화가 지닌 확장성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앞으로 작가가 국제 아트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자기 언어를 지속적으로 정련해 간다면, 그 존재는 단순한 유망 작가를 넘어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확장될 것이다.
Korea Photo Broadcasting Corporation has released the Gaegwacheonseon, Cheonji Gaebyeok, and Hwalgol. With a global art platform. Get out of the well through here. Is there any other way besides the way out to the world?
# 全球艺术平台 Global Art Platform #한국사진방송 #k-arts #韩国艺术
www.koreaarttv.com =Korea image broadcasting co.
#韩国裸艺术 (Hánguó luǒ yìshù) #Korean Nude Art
전시 제목 : 최하나 _ 감각의 틈, After Eros
전시 기간 : 2025.08.06(수)-08.26(화)
관람 시간 : 화~토요일 10am~6pm
전시 장소 : 갤러리 나우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152길 16)
문 의 : T. 02-725-2930, E-mail. gallerynow@hanmail.net
[서문]
감각의 틈, After Eros
최하나는 2003년생의 22세의 젊은 작가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는 20대 초반의 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고, 그의 글은 때 더더욱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철학적인 질문들을 쏟아 내었다. ‘철학을 사랑하는 회화자’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최하나는, 회화를 단순한 시각적 표현의 차원을 넘어, 사유의 도구이자 감정의 기록으로 여긴다. 회화가 철학이 되고, 철학이 감각이 되는 교차점에서 그의 질문이 시작된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보이지 않는 균열을 감지하는 일인지 모른다. “무심코 흘려보낸 순간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그 모두는 '나'를 이루는 낯설고도 익숙한 파편들이다”.
최하나의 회화는 설명보다 응시를 요구하며, 언어가 아닌 시선으로 전달되는 사유의 무게가 전달되면서 이성적으로 읽히기보단 감정이 잔향처럼 스며든다. 그리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해지는 것과 침묵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마주하게 될 풍경은, 그런 질문 앞에 서성이는 존재들이다. 흔들리고,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는 인물들은 정체성을 고정하지 않고, 오히려 ‘흐름’과 ‘감각’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은 서로 다른 감정과 시간들이 층처럼 쌓여 있음이 보인다. 겹겹이 칠해진 붓질, 남겨진 여백, 닿지 못한 연결, 그것은 단순한 조형적 선택이 아니라, 회화로 사유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파악하기보다는, 그 감각이 우리 안에서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먼저 느끼게 될 것이다.
최하나의 시선은 급진적이지 않지만 날카롭고, 감정은 격렬하지 않지만 깊이가 있다. 작가는 자신이 겪어온 내면의 순간들 즉 혼란, 질문, 불안, 애정… 등을 회화를 통해 말한다. 따라서 그녀의 이 회화는 익숙한 형상이 뒤틀리고, 질서 있는 구도도 아니고, 정리된 결론도 아니며, 열린 문장처럼 다가온다. 감정이 흘러나온 자리, 생각이 멈춘 지점, 그 어딘가에 놓인 잔상들. 그 잔상을 ‘철학’이라고 부르는 작가는 ‘감각하는 사유’로서 자신을 다시 마주한다.
그녀는 말한다. “철학은 학문이기 전에 감정이며, 회화는 기술이기 전에 질문이다.” 라고,
이번 전시는 이 시대를 살아내는 뜨거운 젊은 육성을 만나는 자리이다.
-이순심 (갤러리나우 대표)
[작가노트]
내가 추구하는 초현실주의는 경험의 의식적 영역과 무의식적 영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수단이며, '절대적 실재, 즉 초현실' 속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적인 이성의 세계와 결합될 수 있다고 한다. 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원용하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상상력의 원천으로 간주한다. 인간의 사고는 너무도 복잡해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인식하기 힘들다. 특히 스트레스나 심리적인 불안이 가득한 상태일 때 더더욱 앞을 내다보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미술은 자아의 기록이 시각적인 이미지 안에 농축된 것으로, 자연스러운 창작활동을 하는것은 자신의 내적 경험을 표면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내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행함으로써 남모르게 철학을 알아가게 되었다. 삶을 사랑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오만가지의 감정과 사유 모두가 철학의 일환이다.
철학적 사유란 내가 만나는 다양한 상황에서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나’에서 시작해서 타자(他者), 그리고 세계로 사유의 원이 확장된다. ‘나’는 ‘너’와 상호연결돼 있으며 ‘나’와 ‘너’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세계에 대해 다층적 물음을 묻고, 무엇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판단을 하게 하고, 그 판단에 근거해서 크고 작은 행동을 취하게 한다. 즉, 이러한 사이클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철학적 사유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밤 잠들기 전 나의 하루를 돌이켜 보고, 내일의 나를 그려보는 일 또한 분명 가치 있는 철학적 사유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철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사유와 고민이 철학적 토론을 한답시고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이 무엇이냐'라는 탁상공론보다 훨씬 더 깊이 있다고 생각한다. 갑론을박은 그저 서로를 헐뜯고, 상대의 논리의 빈틈을 찾기 위한 경쟁에 불과하다. 만약 그러한 성취를 통해 본인에 대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철학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여기서 더하고 싶은 건 정답을 찾으려는 행위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결론이 없는 세상에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늘 정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건 아니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을 찾는 '과정' 중에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경험과 감정이야 말로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건강한 질료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철학을 사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니체, 한나 아렌트와 칸트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응집하고 정리해놓은 기록과 주장 또한 애정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는 과정을 향한 존경이야 말로 내가 진정으로 철학을 사랑하는 이유임을 다시 한번 새기는 바이다.
-최하나
[평론]
초현실과 균열, 감각하는 철학의 귀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균열과 공존하는 일이며, 내 회화는 그 균열을 끌어안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 최하나 작가노트 중에서
"나는 기억의 껍질 위에 존재한다." 작가가 반복하는 이 말은 시가 아니라 존재론이다. 최하나의 회화는 회화적 감각과 철학적 사유가 맞닿는 교차점에서 작동한다. 철학적 질문이 회화적 감성으로 변주되는 순간, 회화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사유의 도구가 된다. 2003년생.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최하나는 이미 도쿄 아트페어와 KIAF 등 국제 무대에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스스로를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 "내면을 사유하는 회화자"라고 명명한다. 최하나는 단지 유망한 청년 작가가 아니다. 오늘날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보기 드문 존재론적 밀도와 철학적 감각을 병치할 줄 아는 작가이며, "깨어 있는 이미지의 감각자이자 철학자"로 기능한다. 최하나의 회화는 단순한 초현실적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과 무의식, 감정과 기억, 자아와 타자 사이의 갈등과 균열을 시각화하는 한편, 이 균열에서 도리어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회복한다. 회화가 단순한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감각하고 성찰할 수 있을지를 묻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철학하는 이미지: 존재론적 사유와 회화의 언어
프랑스 철학자 퀜텡 메야수(Quentin Meillassoux, 1967~)는 대표작 『유한성 이후(Après la finitude)』에서 "신도 이성도 없는 절대적 우연성의 세계"를 말한다. 그는 인간의 인식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상관주의를 해체하며,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비결정적이라고 본다. 이 철학은 최하나의 대표작 <Coup d'état>에 깊게 투영된다. 무너진 원형 구조, 붕괴된 질서, 손을 맞잡은 인물들. 이 장면은 단순한 정치적 전복이 아니라, 존재의 내면에서 일어난 쿠데타이다. 질서였던 모든 것은 해체되고, 타자와의 연결만이 남는다. 메야수가 말한 "결정 불가능한 세계" 속에서 최하나는 내면의 모순과 비극을 가시화한다. 이와 연결되는 <Blindman's Bluff>는 맹목적 판단과 집단적 무지를 풍자적으로 그려내며 현대 사회의 왜곡된 윤리를 시각화한다. 이 감각은 독일 신표현주의가 남긴 강렬한 조형언어와 정서적 파괴성과 겹친다. 특히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는 해체된 인체 형상과 역방향 구도 등을 통해 존재의 불안과 심리적 균열을 강렬하게 드러낸 대표적 신표현주의 작가로 평가받는다.
최하나 역시 바젤리츠처럼 해체와 전복의 언어를 기반으로 하지만, 파괴 이후의 감정 윤리와 감각적 재구성에 집중한다. 작가의 회화는 단지 분열의 미학에 머무르지 않고, 그 균열을 감싸는 사유의 여백과 감정의 연대를 남긴다. 이는 철학의 회화화가 아니라, 회화의 철학화를 실현하는 진보된 시각적 실험이다. 다니엘라 발레가-노이(Daniela Vallega-Neu, 1966~)는 하이데거와 데리다의 사유를 매개로 존재의 해체적 감각을 사유한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감각, 기억, 무의식의 층위를 통해 주체가 형성된다고 보며, 언어 이전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 <After Consciousness>에서는 최하나는 발레가-노이의 사유와 깊은 공명을 이룬다. 자아가 벗겨진 껍질처럼, 존재는 고통이 아니라 무게의 흔적으로만 남는다. 인물들은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사라지고 재구성되는 감각의 지층이다. <Remnant>는 이러한 존재의 껍질성과 퇴적된 감정을 응축한 대표작으로, 마른 형상이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더 깊이 드러낸다. 이 회화의 물성과 구성은 일종의 시각적 신화로 기능하며, 존재의 파편을 감각적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서사성을 부여한다. <Hopeless Romantic> 연작은 이상과 현실, 욕망과 허무 사이의 정서적 간극을 날카롭고도 애틋하게 담아낸다. 이 시리즈는 단순히 낭만의 재해석이 아니라, 감정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새로운 미학적 언어의 구현이다. 또한 <Philosophizing>은 회화 그 자체가 철학이 될 수 있다는 선언처럼, 화면 위에서 감정과 사유의 균형을 보여준다.
한국적 감각의 조형적 실험: 여백, 파열, 윤리
독일 신표현주의(Neue Wilde)는 감정, 신화, 정치적 정서를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 격정은 때로 파괴에 머무르고, 언어를 잃은 감정은 난폭함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젤리츠 이후 독일 및 유럽 화단에서 유사한 언어를 사용한 작가로는 조나단 메세(Jonathan Meese, 1970~), 앤젤리카 마크스(Angelika Markul , 1972~), 앤서니 미칼레프(Anthony Micallef, 1975~) 등이 있다. 메세는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는 유희적 전복성과 신화의 모티프를 결합하며, 마크스는 시간성과 기억의 감각적 풍경을 섬세하게 구성한다. 미칼레프는 인간 감정의 비극성과 폭력성을 날카롭게 탐구하며 현대 회화의 새로운 감각을 제시한다. 최하나는 이들과의 계보적 연속성을 보이면서도, 이는 의도된 모방이나 이론적 귀속이라기보다 타고난 감각의 귀결에 가깝다.
작가는 감정의 윤리성과 동양적 여백미를 가미하여 보다 섬세하고 내면적인 감각의 회화를 완성한다. 작가의 회화는 서구 회화의 표현주의와 한국미의 레이어적 감각이 조응하는 드문 경우이다. 붓질의 여백, 감정의 중첩, 비워진 중심-이것은 단지 기법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동양적 태도다. 이는 한국화 전통, 특히 수묵화의 여운과 기억적 구성에서 영향을 받은 조형언어다. 윤리적 여백, 감정의 수습, 절제된 파격은 최하나 회화를 독자적인 언어로 만든다. 특히 작가는 동서양 미감의 중첩을 하나의 시각적 공간으로 융합함으로써, 조형적 실험 너머의 감각적 철학을 구축한다. 한국적인 여백 위에 서구 철학의 무게를 얹고, 물성 위에 서사의 신화를 직조한다. 최하나는 회화적으로도 매우 정교하다. 레이어링의 반복, 터치의 밀도, 색채의 층위는 감정의 무게를 구성한다. 이러한 형식적 성과는 감각적 시성과 철학적 지성의 정합을 이룬다. 특히 <Posthuman Venus>에서는 이상화된 미의 신화를 해체하고, 기계적 신체와 감정 없는 응시를 통해 비너스 이후의 존재를 상상한다. 또한 <Eyeless Witnesses>에서는 권력 속 비가시성과 윤리적 부재, <Afterimage>에서는 기억 속 잔영이 남긴 자아의 흔적을 시각화한다. <Valhalla>에서는 신화와 영혼의 종말 이후, 파편화된 인간적 명예에 대한 동시대적 우화를 구현한다. <Philosophizing>은 회화 자체가 철학적 사유의 연장선이 될 수 있음을 선언하듯, 언어와 붓질 사이의 거리를 줄인다. 이와 함께 <Blindman's Bluff>는 무비판적 시선과 집단적 판단 오류를 풍자하며, <Remnant>는 감정의 흔적이 어떻게 존재를 형성하는지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미래의 시점에서 도달한 회화: 최하나라는 가능성
최하나는 존재론적 감수성과 윤리적 초현실, 그리고 감각적 기술을 병치할 줄 아는 유일한 작가이다. 한국화의 여백성과 철학적 미감을 동시대의 언어로 전환하고, 서구 철학의 가장 첨단적인 감각적 사유들과 자연스럽게 교직한다. 이는 "회화로 철학을 쓰고, 철학으로 감정을 말하는 작가"라는 자전적 표현에서 드러난다. 작가의 작업은 감각이자 사유이며, 감정이자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스스로를 넘어 세계와 사회, 타자와 존재 전체를 향해 있다. 최하나는 지금, 한국 청년회화가 어디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교한 모범이다. 아직 작품 세계는 해석 가능한 층위가 많고, 그 본질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그 미완의 여백과 해석의 다층성은 오히려 동시대 회화가 지닌 확장성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앞으로 작가가 국제 아트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자기 언어를 지속적으로 정련해 간다면, 그 존재는 단순한 유망 작가를 넘어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확장될 것이다.
- 안현정 (미술평론가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 • 예술철학박사)
[약력]
최하나 Choi Hana (b.2003)
학력
2023–2024 인제대학교 원자력응용공학과 재학 중
전시
2025 초대개인전 갤러리나우
2025 어반브레이크 오픈콜 – 코엑스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갤러리위)
2025 초대개인전 <논 피니토> 갤러리위, 용인
2025 화랑미술제 (갤러리위)
2025 RYUNIVERSAL展 – 포스코 더샵갤러리
2025 초대개인전 <성장통: 고통 너머의 세계> 갤러리솔트
2024 도쿄 인터내셔널 아트페어 (갤러리 그라프)
2024 인천아트쇼 (갤러리 그라프)
2024 월간작가 초대개인전 <비판적 초현실주의> 갤러리 디 아르테 청담
2024 ASYAAF 2부 참여작가 선정 – 백성희장민호극장
2024 초대개인전 <Philosophizing: 철학적 사유> 갤러리유피
2024 초대개인전 갤러리빈치
콜라보레이션
2025 류현진재단 x 체육볶음Bob 프로젝트 콜라보
2025 AM1257 <논피니토; 경계에서> 라이브 퍼포먼스 및 영상 협업
2024 갤러리빈치 ‘모어댄북’ 포스터북 협업
2023 에이프릴 세컨드(ROSIE) 앨범커버 및 공연포스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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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방송이 개과천선, 천지개벽, 환골탈태했어요. 글로벌아트플랫폼으로요. 우물에서 나오세요. 세계로 나가는 길 외에 다른 방도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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