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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후위기 시대, 지역 전통공예 생태계는 안전한가
repoter : 편집부 ( todayf@naver.com ) 등록일 : 2025-07-24 15:16:23 · 공유일 : 2025-08-01 11:46:19
정찬희 공학박사, 컬쳐앤조이 대표


 

[정찬희 공학박사, 컬쳐앤조이 대표] 전통공예는 자연과 사람, 기술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형성한 지역 생태계의 결과물이다. 
 
한 지역의 토양, 기후, 식생 조건은 재료의 품질을 결정하고, 그것에 맞춘 기술과 삶의 방식이 공예로 남는다. 
 
그러나 최근과 같은 기후위기 속에서 이 유기적 연결망이 무너지고 있다.
 
천연염색을 예로 들자. 염재는 땅에서 자라지만, 그 땅이 더는 예전 같지 않다. 
 
최근 5년 사이 전남 나주 다시면(샛골) 일대는 영산강 범람과 홍수 피해를 반복적으로 겪었고, 여름철 염료 수확 시기에 쪽밭이 침수되면서 수확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염료 추출과 발효 과정에서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인데, 기온의 급변으로 인해 공정 실패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작업의 어려움이 아니라, 지역 기반 기술의 위기를 의미한다.
 
기후의 변화는 염색공방뿐 아니라 도자기, 직조, 목공예 등 다른 전통공예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모시풀과 대마 같은 전통 섬유 원료는 생육 시기 동안 일정한 강수와 온도가 유지되어야 품질이 안정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잦은 폭우와 이상고온 현상으로 인해 잎이 썩거나 줄기가 연약해져 실로 뽑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늘고 있다. 
 
게다가 모시와 대마는 대부분 여름철 고온 속에서 수작업으로 벗기고 찢는 노동집약적 공정을 거치는데, 고령화된 농촌에서는 이를 감당할 인력 확보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농촌 지역의 장인이나 소규모 공방에서 유지되기 때문에, 재난 한 번으로도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지속가능한 공예’를 말하지만, 정작 공예가 지속되기 위한 생태 기반은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전통공예는 대체 가능성이 낮은 자원을 사용하고, 손작업에 의존하며, 기후와 땅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생태적이지만 동시에 위기에 취약하다.
 
문제는 이 생태계의 위기가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쪽풀이 자라지 않으면 쪽염색이 불가능하고, 닥이 줄면 한지도 사라진다.
 
이는 단순히 ‘재료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에서 수십 년 간 축적해 온 지식과 기술, 공동체 자체가 해체될 위험을 뜻한다.
 
공장은 기계를 바꾸면 되지만, 공방은 땅과 사람이 함께 있어야 돌아간다. 
 
따라서 전통공예의 지속가능성은 대량생산 기술 개발이나 상품화보다, 공예가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 현장의 생태 기반을 지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과 더불어 지역 공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재료 확보, 작업 공간 유지, 인력 양성 등 전 과정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완성품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지역 안에서 공예가 자립적으로 순환하고 작동할 수 있도록 구조적 생태계를 설계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재배 기술의 도입, 지역별 자생 자원의 종 다양성 확보, 장인의 체계적인 전수교육 시스템 관리가 필요하다. 
 
나아가 원재료 생산 기반의 안정화, 가공 공간 확충, 고령화 현장을 반영한 인력 확보와 교육 지원 체계 마련까지 아우르는 입체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여기에 지역의 문화기관이나 재단, 공공시설과 연계하여, 고유의 전통공예 콘텐츠를 교육, 관광, 디자인 산업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하고, 이를 문화·관광 자원으로 확장해나가는 전략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천연염색은 재료와 과정에 담긴 지역의 자연환경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치유와 감각 놀이, 교육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다.
 
전통공예는 단순한 기술이나 상품이 아니라, 지역의 자연과 기후, 삶의 방식이 축적된 문화적 서사로 발전시켜야 한다.
 
전통공예의 현대화나 세계화를 말하기에 앞서, 바로 이 ‘현장’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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