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서승아 기자] 12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구룡마을은 건설 폐자재로 덧붙인 판잣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도시가스가 들어갈 수 없는 주택 밀집 지역으로 집집마다 프로판가스를 달고 있다. 게다가 공중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전기선들은 30년 가까이 되면서 부식과 함께 합선으로 인한 화재 위험에 놓여 있다. 대형 화재 사고는 이미 예견돼 있었던 셈이다. 거주자들은 이를 예방할 조치를 취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관할 기초자치단체인 강남구(구청장 신연희)와 서울시(시장 박원순)는 법적인 이유를 들며 이를 묵살했다. 이에 지난 9일 결국 화재가 소중한 생명을 삼켰고 130명의 보금자리도 사라졌다.
시한폭탄 안고 사는 주민들… 지난 4년간 화재 13건 발생
대책 마련 촉구에도 강남구ㆍ서울시는 "개발 방식 결정이 먼저"
지난 9일 발생한 화재는 1명의 사망자와 118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구룡마을은 대표적인 화재 취약 지역으로 꼽혀 왔다. 낡은 시설, 가옥 구조 등으로 인해 불이 날 가능성이 높고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을 항상 떠안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이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구룡마을은 2011년부터 지난 9일까지 4년간 13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구룡마을의 주택 대부분이 지붕 위에 보온 덮개와 비닐이 씌워져 있기 때문에 전기선에서 발생한 불꽃이 지붕으로 튈 경우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판잣집 한 동에 여러 가구가 붙어 있고 골목마다 배치된 LPG 가스통도 대형 화재의 원인으로 꼽힌다. 화재 발생 시 비닐 등이 연소돼 발생하는 유독가스도 문제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좁은 골목도 화재 발생 후 주민들이 대피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주민자치회에 따르면 지난 9일 발생한 화재로 숨진 주모 씨도 골목 안쪽에 거주해 미처 대피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을 주민들이 화재에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꼽은 구룡마을 6지구의 경우 골목길 폭이 1m도 안 돼 우산도 펴지 못할 정도다. 화재 시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워 진화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구룡마을 곳곳에는 화재를 대비해 소화기가 비치돼 있지만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일부 소화기는 분말 가루가 딱딱하게 굳어서 작동이 되지 않는다. 10년 가까이 된 소화기도 적지 않았다. 소화기 기한은 10년이다. 노후 시 소방방재청에서 새 소화기로 교체해준다. 하지만 화재 초기에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불길을 제압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안전 대책이 전무한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구룡마을 거주자들은 이 같은 화재 사고 예방을 위해서 지난 5월부터 지속적인 강남구에 안전 대책을 수립을 요구했지만 구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에 지난 8월 6일 3지구 카센터에서 화재가 일어났고 구룡마을 주민들은 안전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강남구는 그달 20일 "구룡마을은 대부분이 사유지인 관계로 생활기반시설을 설치하는 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 불가하며 생활기반시설 설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이 100% 수용·사용 방식으로 재추진되는 것이니 빠른 시일 내에 개발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기 바란다"는 답변서만 보내 왔다고 마을 관계자는 전했다. 구룡마을 관계자는 "소관청인 강남구는 구룡마을이 화재와 각종 재난에 취약할 뿐 아니라 주거환경이 열악한 마을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서울시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안전은 뒤로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100% 수용·사용방식에 따를 것만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불붙은 개발 논쟁… 대피소까지 이원화돼 `동상이몽` 가속화
주민들이 원하는 건 `대박`이 아니라 `안정적인 주거환경`
당초 서울시는 2012년 8월 구룡마을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해 사업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지 혼용 방식으로 개발하고자 했다. 서울시의 계획대로면 구룡마을은 2013년 하반기 이주를 시작해 2016년 개발이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허가권자인 강남구는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환지 혼용 방식은 지주 특혜와 비리의혹이 있다며 반대, 개발계획은 지난 8월 백지화됐다.
사고 이틀째인 지난 10일 현장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집을 잃은 이재민도 있는데 책임자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집을 잃은 분들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를 갈 수 있도록 임시로 제공할 것이고, (구룡마을을) 어떻게 해서든 개발을 해서 현재 주민들이 평생 살 수 있는 주거를 만드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또 "주민들의 전원 재정착을 목표로 구청(장)과 협의를 잘해서 빠른 시간 안에 개발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근본(적)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온전한 개발이기 때문에 (개발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강남구 관계자는 "구룡마을의 개발이 지연된 것은 당초 100% 수용·사용방식으로 계획돼 있던 개발계획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환지 혼용 방식으로 변경함에 따라 특혜와 비리의혹이 제기되며 발생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 같은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은 불씨가 꺼지기는커녕 붙은 꼴이 됐다. 이번 화재로 보금자리를 떠나게 된 이재민들은 임시 대피소로 피신했다. 대피소는 구룡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회관`과 인근 `개포중학교`로 이원화돼 있다. 대피소가 두 곳으로 나뉜 이유는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 때문이다. 마을회관 대피소는 주민자치회, 개포중 대피소는 마을자치회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주민자치회 쪽은 서울시의 환지 혼용 방식(토지 보상)을, 마을자치회는 강남구의 전면 수용 방식(현금 보상)을 지지하고 있다. 양측 모두 구룡마을 주민이지만 서로 자신들 쪽이 `진짜 주민대피소`라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주민 다수는 잿더미가 된 현재 거주지를 복원해줄 것을 거듭 요구 중이다. 일부 주민은 "한 번 불이 나면 복구를 못 하게 하니 구청에서 일부러 불을 낸 게 아니냐"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이어 개포중 이재민 대피소를 찾아 신연희 강남구청장, 박래한 서울시의장을 만났다. 박 시장이 "이곳이 워낙 취약해서 불이 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자 신 구청장은 "구룡마을은 어쨌든 개발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주민들 위에 있던 지주 대표도 의견을 전달했다. 지주 대표는 "거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게 협력하려 하는데 서울시와 강남구가 계속 갈등하니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 같은 이재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 21일 구룡마을 화재 이재민 전원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개발 후 임대주택에 대한 입주 우선권까지 부여키로 했다.
서울시는 향후 구룡마을 개발사업이 공영 개발로 재추진될 경우 현지에 건설되는 임대주택의 우선 공급 대상자에 화재 이재민들을 포함할 계획이다. 이재민들이 그동안 임대주택 입주를 꺼려 왔던 가장 큰 이유는 주소지 변경으로 개발 후 구룡마을 재정착이 불가능하다는 우려감에서 비롯됐다. 한 이재민은 "이번 화재로 마을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심 불안했다"면서 "개발 후 재입주가 가능해진다면 임대주택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은 현재 개포중(46가구 91명)과 주민자치회관(6가구 16명), 친척집(2가구 8명) 등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총 43가구가 「긴급복지지원법」상 임대주택을 신청한 상태다.
하지만 서울시와 강남구의 해묵은 입장 차이는 하루아침에 좁혀지지 않을 전망이다. 강남구는 근본적인 안전을 위해서는 개발사업을 빨리하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강남구가 도시개발을 핑계로 안전 대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을 인근 대모산 방화범 검거로 뒤숭숭
대책 마련엔 `뒷짐`인 官… "참사 나기 전에 머리 맞대야"
게다가 최근 구룡마을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 중턱 등을 6차례에 걸쳐 불을 지른 50대 주부 정모 씨가 검거돼 충격을 줬다. 그간 자칫 잘못했으면 더 큰 참사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재를 일으킨 정씨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9일 사이 대모산 중턱 등에서 6차례에 걸쳐 30여 곳에 불을 붙여 임야 1300여㎡와 나무 250여 그루를 태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의 범행 강도는 대담해지고 빈도는 잦아져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수사 과정에서 정씨가 지른 불씨가 구룡마을 화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논란은 더욱 불거질 전망이다.
이처럼 구룡마을의 연이은 화재로 많은 이재민들이 발생하면서 각종 매체에서 서울시와 강남구의 대립각을 비판하며 사업시행을 거듭 촉구하고 있지만 서울시와 강남구는 당장 눈앞에 놓인 사태 수습에만 급급할 뿐 실질적인 논의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아 이재민들은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이처럼 서로의 주장만 내세워 줄다리기를 지속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큰 인명 피해를 입는 대형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구룡마을이 화재경계지구(도시에 건물이 밀집한 지대로서 화재 발생 우려가 많거나 화재로 인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시장·도지사가 지정함)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화재 예방책 등에 대한 논의에서는 특별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관(官)의 수수방관 속에서 주민들만 죽어나는 구룡마을. 사고 수습 및 대책 마련보다 개발 방식을 앞에 놓고 대립각만 세우고 있는 서울시와 강남구가 주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없앨 수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맞댈 수 있을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유경제=서승아 기자] 12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구룡마을은 건설 폐자재로 덧붙인 판잣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도시가스가 들어갈 수 없는 주택 밀집 지역으로 집집마다 프로판가스를 달고 있다. 게다가 공중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전기선들은 30년 가까이 되면서 부식과 함께 합선으로 인한 화재 위험에 놓여 있다. 대형 화재 사고는 이미 예견돼 있었던 셈이다. 거주자들은 이를 예방할 조치를 취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관할 기초자치단체인 강남구(구청장 신연희)와 서울시(시장 박원순)는 법적인 이유를 들며 이를 묵살했다. 이에 지난 9일 결국 화재가 소중한 생명을 삼켰고 130명의 보금자리도 사라졌다.
시한폭탄 안고 사는 주민들… 지난 4년간 화재 13건 발생
대책 마련 촉구에도 강남구ㆍ서울시는 "개발 방식 결정이 먼저"
지난 9일 발생한 화재는 1명의 사망자와 118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구룡마을은 대표적인 화재 취약 지역으로 꼽혀 왔다. 낡은 시설, 가옥 구조 등으로 인해 불이 날 가능성이 높고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을 항상 떠안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이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구룡마을은 2011년부터 지난 9일까지 4년간 13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구룡마을의 주택 대부분이 지붕 위에 보온 덮개와 비닐이 씌워져 있기 때문에 전기선에서 발생한 불꽃이 지붕으로 튈 경우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판잣집 한 동에 여러 가구가 붙어 있고 골목마다 배치된 LPG 가스통도 대형 화재의 원인으로 꼽힌다. 화재 발생 시 비닐 등이 연소돼 발생하는 유독가스도 문제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좁은 골목도 화재 발생 후 주민들이 대피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주민자치회에 따르면 지난 9일 발생한 화재로 숨진 주모 씨도 골목 안쪽에 거주해 미처 대피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을 주민들이 화재에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꼽은 구룡마을 6지구의 경우 골목길 폭이 1m도 안 돼 우산도 펴지 못할 정도다. 화재 시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워 진화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구룡마을 곳곳에는 화재를 대비해 소화기가 비치돼 있지만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일부 소화기는 분말 가루가 딱딱하게 굳어서 작동이 되지 않는다. 10년 가까이 된 소화기도 적지 않았다. 소화기 기한은 10년이다. 노후 시 소방방재청에서 새 소화기로 교체해준다. 하지만 화재 초기에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불길을 제압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안전 대책이 전무한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구룡마을 거주자들은 이 같은 화재 사고 예방을 위해서 지난 5월부터 지속적인 강남구에 안전 대책을 수립을 요구했지만 구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에 지난 8월 6일 3지구 카센터에서 화재가 일어났고 구룡마을 주민들은 안전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강남구는 그달 20일 "구룡마을은 대부분이 사유지인 관계로 생활기반시설을 설치하는 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 불가하며 생활기반시설 설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이 100% 수용·사용 방식으로 재추진되는 것이니 빠른 시일 내에 개발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기 바란다"는 답변서만 보내 왔다고 마을 관계자는 전했다. 구룡마을 관계자는 "소관청인 강남구는 구룡마을이 화재와 각종 재난에 취약할 뿐 아니라 주거환경이 열악한 마을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서울시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안전은 뒤로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100% 수용·사용방식에 따를 것만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불붙은 개발 논쟁… 대피소까지 이원화돼 `동상이몽` 가속화
주민들이 원하는 건 `대박`이 아니라 `안정적인 주거환경`
당초 서울시는 2012년 8월 구룡마을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해 사업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지 혼용 방식으로 개발하고자 했다. 서울시의 계획대로면 구룡마을은 2013년 하반기 이주를 시작해 2016년 개발이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허가권자인 강남구는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환지 혼용 방식은 지주 특혜와 비리의혹이 있다며 반대, 개발계획은 지난 8월 백지화됐다.
사고 이틀째인 지난 10일 현장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집을 잃은 이재민도 있는데 책임자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집을 잃은 분들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를 갈 수 있도록 임시로 제공할 것이고, (구룡마을을) 어떻게 해서든 개발을 해서 현재 주민들이 평생 살 수 있는 주거를 만드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또 "주민들의 전원 재정착을 목표로 구청(장)과 협의를 잘해서 빠른 시간 안에 개발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근본(적)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온전한 개발이기 때문에 (개발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강남구 관계자는 "구룡마을의 개발이 지연된 것은 당초 100% 수용·사용방식으로 계획돼 있던 개발계획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환지 혼용 방식으로 변경함에 따라 특혜와 비리의혹이 제기되며 발생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 같은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은 불씨가 꺼지기는커녕 붙은 꼴이 됐다. 이번 화재로 보금자리를 떠나게 된 이재민들은 임시 대피소로 피신했다. 대피소는 구룡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회관`과 인근 `개포중학교`로 이원화돼 있다. 대피소가 두 곳으로 나뉜 이유는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 때문이다. 마을회관 대피소는 주민자치회, 개포중 대피소는 마을자치회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주민자치회 쪽은 서울시의 환지 혼용 방식(토지 보상)을, 마을자치회는 강남구의 전면 수용 방식(현금 보상)을 지지하고 있다. 양측 모두 구룡마을 주민이지만 서로 자신들 쪽이 `진짜 주민대피소`라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주민 다수는 잿더미가 된 현재 거주지를 복원해줄 것을 거듭 요구 중이다. 일부 주민은 "한 번 불이 나면 복구를 못 하게 하니 구청에서 일부러 불을 낸 게 아니냐"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이어 개포중 이재민 대피소를 찾아 신연희 강남구청장, 박래한 서울시의장을 만났다. 박 시장이 "이곳이 워낙 취약해서 불이 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자 신 구청장은 "구룡마을은 어쨌든 개발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주민들 위에 있던 지주 대표도 의견을 전달했다. 지주 대표는 "거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게 협력하려 하는데 서울시와 강남구가 계속 갈등하니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 같은 이재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 21일 구룡마을 화재 이재민 전원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개발 후 임대주택에 대한 입주 우선권까지 부여키로 했다.
서울시는 향후 구룡마을 개발사업이 공영 개발로 재추진될 경우 현지에 건설되는 임대주택의 우선 공급 대상자에 화재 이재민들을 포함할 계획이다. 이재민들이 그동안 임대주택 입주를 꺼려 왔던 가장 큰 이유는 주소지 변경으로 개발 후 구룡마을 재정착이 불가능하다는 우려감에서 비롯됐다. 한 이재민은 "이번 화재로 마을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심 불안했다"면서 "개발 후 재입주가 가능해진다면 임대주택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은 현재 개포중(46가구 91명)과 주민자치회관(6가구 16명), 친척집(2가구 8명) 등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총 43가구가 「긴급복지지원법」상 임대주택을 신청한 상태다.
하지만 서울시와 강남구의 해묵은 입장 차이는 하루아침에 좁혀지지 않을 전망이다. 강남구는 근본적인 안전을 위해서는 개발사업을 빨리하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강남구가 도시개발을 핑계로 안전 대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을 인근 대모산 방화범 검거로 뒤숭숭
대책 마련엔 `뒷짐`인 官… "참사 나기 전에 머리 맞대야"
게다가 최근 구룡마을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 중턱 등을 6차례에 걸쳐 불을 지른 50대 주부 정모 씨가 검거돼 충격을 줬다. 그간 자칫 잘못했으면 더 큰 참사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재를 일으킨 정씨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9일 사이 대모산 중턱 등에서 6차례에 걸쳐 30여 곳에 불을 붙여 임야 1300여㎡와 나무 250여 그루를 태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의 범행 강도는 대담해지고 빈도는 잦아져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수사 과정에서 정씨가 지른 불씨가 구룡마을 화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논란은 더욱 불거질 전망이다.
이처럼 구룡마을의 연이은 화재로 많은 이재민들이 발생하면서 각종 매체에서 서울시와 강남구의 대립각을 비판하며 사업시행을 거듭 촉구하고 있지만 서울시와 강남구는 당장 눈앞에 놓인 사태 수습에만 급급할 뿐 실질적인 논의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아 이재민들은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이처럼 서로의 주장만 내세워 줄다리기를 지속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큰 인명 피해를 입는 대형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구룡마을이 화재경계지구(도시에 건물이 밀집한 지대로서 화재 발생 우려가 많거나 화재로 인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시장·도지사가 지정함)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화재 예방책 등에 대한 논의에서는 특별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관(官)의 수수방관 속에서 주민들만 죽어나는 구룡마을. 사고 수습 및 대책 마련보다 개발 방식을 앞에 놓고 대립각만 세우고 있는 서울시와 강남구가 주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없앨 수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맞댈 수 있을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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