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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 · http://edaynews.com
영광군(김준성 군수)은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군청광장과 영광읍 만남의 광장 그리고 회전교차로 등에 LED등으로 장식한 야간경관조명을 지난 14일부터 점등했다.   이번 점등행사는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2019 기해(己亥)년 새해를 맞이하여 군민에게 밝고 희망찬 연말연시 분위기를 조성하고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추진했다.   군청과 회전교차로의 나무, 조형물, 벤치 등에 LED 조형물을 장식하고 만남의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산타썰매와 트리장식을 설치하여 군민들이 사진을 찍고 즐길 수 있도록 포토존을 꾸며 놓았다.   군관계자는 “LED조명을 내년 1월까지 매일 17시 30분부터 자정까지 점등할 계획이며 겨울 한파로 움츠러든 연말연시를 아름답게 장식하여 군민은 물론 영광을 찾은 방문객에게 특색 있는 볼거리와 훈훈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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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단체정보
강대의 · http://edaynews.com
광주광역시는 지난 14일 광주문화재단 다목적회의실에서 ‘광주문학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 최종설명회와 공청회를 개최했다. ○ 이날 행사는 이병훈 문화경제부시장, 박향 문화관광체육실장을 비롯한 한국지역인문학인협회, 광주시문인협회, 광주전남작가회의, 서은문병란문학연구소 등 문학단체와 시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용역사 최종보고서 설명에 이어 의견수렴, 공청회 순으로 진행됐다.       ‘광주문학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용역’은 지난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 진행됐으며, 문학관 최종후지보지 선정, 건축 및 프로그램 계획, 운영․관리방안, 사업비 및 경제성 검토 등 포괄적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공청회는 이병훈 문화경제부시장이 직접 핵심사안별로 참석자의 질의에 대해 공감대를 마련하여 참석자들도 큰 이견없이 추진키로 뜻을 모았다. 참석자들과 공감한 주요 내용은 ▲건립 후보지로 북구시화문화마을 ▲ 건립추진위원회는 공무원, 언론인, 문학단체,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 14명으로 구성 ▲문학관이 안정될 때까지 광주시에서 직영 운영하는 방식이다. 건립후보지는 현실성, 접근성, 사회성, 활용성, 제약성 등 6개 입지평가 기준에 따라 15개 대상입지를 찾아 분석한 후 관련단체․시민들의 설문결과를 반영해 각 후보지별 최종 순위를 정했다. 이중 문학관 건립 1순위 후보지인 북구 시화문화마을은 2004년 아름다운 마을만들기를 전국 최초로 주민들이 스스로 추진한 곳으로, 미술관과 커뮤니티센터, 청소년문화의집 등 시설물간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크고 인근 장미공원, 각화저수지 수변공원, 천지인 문화소통길 등 다양한 녹지공간이 위치해 최적지로 평가됐다.  건립추진위원회는 관련 조례에 따라 광주시 당연직 공무원 2명과 시의회․언론․시민단체․타시도 문학관 추천 등 6명으로 하고, 지역 문학단체는 공모를 통해 6명을 단체별로 적정 안배하는 등 총 14명으로 구성된다. 그동안 광주시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13년간 문학단체간의 의견차이로 매번 추진하지 못하는 등 전국에서 문학관이 없는 도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앞으로 용역 결과를 토대로 지하1층 지상4층 시설규모의 문학관 건립계획을 마련하고, 건립추진위원회 구성, 문체부 설립협의 및 실시설계 등 제반 행정절차를 거쳐 2022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이병훈 문화경제부시장은 “광주문학관이 빠른 시일 내 건립될 수 있도록 뜻을 모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광주시가 인문도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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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시상식
강한빛 · http://edaynews.com
한 해 동안 고창문학발전에 기여한 문인에게 수여하는 제19회 고창문학상 시상과 고창문인들의 연간 활동작품을 엮은 제51호 고창문학 출판기념회가 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의 주관으로 지난 13일 오후 고창 목화웨딩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유기상 고창군수, 김영호 고창군의회부의장, 기관사회단체장과 지역 문인 등 100여명이 참석하여 뜻깊은 자리를 축하했다.   사)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는 이상인 초대지부장을 시작으로 창설됐고, 현재 문인순지부장 및 70여명의 문인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학단체다. 해마다 꽃무릇 시화전시, 문학상 시상, 문학지 발간 등 꾸준한 문학행사를 열고, 고창지역의 문학적 기반을 견고히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올해로 51호를 맞이하는 ‘고창문학’은 회원들의 시, 수필 등 다수 작품과 꽃무릇 시화전시 공모 우수작 등을 수록 발간해 지역민이 문학의 향기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제19회 고창문학상 수상자는 ‘안재운 작가’로 고창에서 출생해 문예사조 신인상(수필), 제3회 마한문학상, 익산예술문화대상 공로상 등 수상했다. 발간시집으로는 ‘고향’, ‘한페이지의 추억’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문인순 지부장은 “제19회 고창문학상 시상식과 고창문학 제51호 출판기념회를 통해 고창문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하고 회원들이 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기상 고창군수는 “문학의 향기와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나눔과 봉사 기부의 기운을 북돋아 주신 안재운 시인의 수상을 축하 드린다”며 “지역문화발전을 위하여 좋은 뜻을 펴는 마음이 차곡차곡 담긴 ‘고창문학’이 군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훌륭한 마음의 양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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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김세곤 · http://edaynews.com
#1. 1590년 2월28일에 선조는 창덕궁 인정전에서 헌부례(獻俘禮  포로를 바치는 의식)를 거행했다. 진도 사람 사을화동(沙乙火同)이 왜구의 향도(嚮導) 노릇을 해왔는데 일본 사신인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宗 義智)가 조선의 요구에 의해 잡아왔다. 일본 사신은 선조에게 통신사 파견을 요청하면서 공작새 한 쌍과 조총(鳥銃)을 바쳤다. 그런데 선조는 조총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군기시에 보관토록 지시했다. 1543년에 일본 규슈 근처의 종자도에 도착한 포르투갈 상인이 종자도 영주에게 조총을 바쳤다. 이 신무기는 일본각지로 퍼져 기존의 전투양상을 바꾸었다. 조총의 위력을 실감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수 양성에 진력했다. 그는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조총으로 최강의 기마군단 다케다 가쓰요리를 이겼다. 노부나가는 3교대 연속 사격 전술을 썼다. 조총의 장전 시간이 꽤 걸리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총수를 3열로 배치시켜 연속 사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노부나가는 1582년에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역으로 교토 혼노시(本能寺)에서 자결했다. 노부나가의 심복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는 당시에 원정 중이었는데 노부나가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회군하여 교토의 야마자키 전투에서 미쓰히데를 토벌했다. 1585년에 히데요시는 관백이 되고 1590년에는 100년간의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일본을 통일했다. #2. 1592년 2월에 선조는 신립과 이일을 파견하여 각 도의 병기를 점검토록 했다. 신립은 경기도와 황해도로, 이일은 전라도와 충청도로 갔다가 한 달 뒤에 돌아왔는데, 그 점검이라는 것이 활·화살·창과 칼뿐이고 대포나 화약은 없었다. 그나마 장부로 점검할  뿐이었다. 신립은 1583년 온성부사일 때 여진족을 무찔러 명성이 높았는데 잔인하고 난폭하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을 죽여 자기의 위엄을 세웠다. 수령들은 신립을 두려워 해 백성들을 동원해 길을 닦았으며 극진히 접대했다. 대신의 행차도 이만 못했다. 1592년 4월1일(임진왜란 발발 13일전)에 신립은 선조 임금께 복명한 뒤 류성룡를 찾았다. 류성룡은 신립과 국방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징비록』에 나온다. “멀지 않아 변고가 생기면 공이 마땅히 그 일을 맡아야 할 텐데 공의 생각으로는 오늘날 적의 형세로 보아 그 방비가 충분하나요?” 내 물음에 신립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지 않소. 예전에는 왜적이 창·칼만 믿고 있었지만, 지금은 조총과 같은 우수한 병기가 있으니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요” 신립은 황급히 “비록 조총이 있다고는 하나 그 조총이라는 게 쏠 때 마다 사람을 맞힐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다시 말했다. “태평세월이 너무 길었소. 그래서 병사들은 겁이 많고 나약해졌으니 급변이 일어날 때 그에 항거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외다. 내 생각으로는 몇 해 뒤 사람들이 군사 일에 익숙해진다면 난리를 수습할 수 있겠으나 지금 같아서는 매우 걱정스럽소.” 그래도 신립은 전혀 반성하거나 깨달은 기미 없이 돌아갔다. (김문수 엮음, 류성룡 지음, 징비록, p 48-49)  #3. 1592년 4월28일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패하여 전사했다. 신립은 험준한 요새  조령을 지키지 않고, 기마병이 싸울 수 있는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기마병이 조총으로 단련된 왜군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월28일 저녁에 선조는 신립의 패전 소식을 접했다. 4월30일 새벽에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개성으로 도망쳤다. 이를 보고 성난 백성들은 경복궁과 창덕궁에 불을 지르고 장예원의 노비문서를 불태웠다. 5월3일에 왜군은 한양에 무혈 입성했다. 왜군이 부산 땅을 밟은 지 20일만이었다.  임진왜란은 예고된 전쟁이었다.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임금의 무능, 집권당 동인과 김성일의 잘못된 정세 판단, 일본에 대한 무지, 그리고 장수들의 오만이 조선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국가는 안전한가? 정의롭고 청렴한가? 경제는 국가비상사태인가?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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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시상식
김 선 · http://edaynews.com
 (재)전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원장 직무대행 김명원, 이하 ‘진흥원’)이 최근 전남콘텐츠기업육성센터에서 ‘2018년 전라남도 콘텐츠 창작 공모전’ 우수작품 총 17편을 선정해 시상했다.    ‘문학에 디자인을 더+하다’를 주제로 진행된 이번 공모전은 전남도 내 주요 문학관의 문화자원 상품화를 통한 지역문화 브랜딩 기반 마련을 위해 개최됐으며, 지난달 15일부터 29일까지 접수한 결과 총 87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공모전 대상은 보성 태백산맥 문학관의 소설 ‘태백산맥(조정래作)’을 모티브로 휴대폰 케이스, 머그컵, 책갈피 등의 문화상품을 디자인 한 김경조(35)씨가 수상했다. 김씨는 트렌디한 디자인과 일상생활에서 바로 사용이 가능한 상품들을 다양하게 기획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대상에게는 전라남도지사 상장과 상금 600만원이 수여됐다.    최우수상에는 ▲태백산맥(조정래作, 보성 태백산맥문학관 연계)의 찻잔(김경애) ▲소쩍새 울 때(장만영作, 강진 시문학파기념관 연계)의 도어벨(양동욱 외 1명), 우수상에는 ▲향수(정지용作, 강진 시문학파기념관 연계)의 향수 및 향수케이스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윤식作, 강진 시문학파기념관 연계)의 시간차와 온도차 프로젝트(이정현) ▲풀잎(박성룡作, 해남 땅끝순례문학관 연계)의 립밤(최주희)이 선정되었으며, 이외에도 장려상 5팀, 창작상 6팀 등 총 16개 작품이 선정됐다.    대상을 수상한 김경조(35)씨는 “약간은 낯설 수 있는 고전 문학작품을 문화상품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기획했다.”며, “향후 기획한 아이템의 사업화를 통해 문학이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로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으며, 진흥원 관계자는 “이번 공모전은 전남의 주요 문학관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자원을 브랜드화 할 수 있는 우수한 작품들이 다수 선정됐다.”며 “선정된 작품들이 실제 문화상품으로 개발돼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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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안정민 · http://www.itfocus.kr
  2018 동계올림픽의 도시 강원도 평창에서 평창송어축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개최된다. 평창송어축제위원회(위원장 김영구)가 제12회 평창송어축제를 22일(토)부터 내년 1월 27일(일)까지 평창군 진부면 오대천 일원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2007년 처음 열린 평창송어축제는 ‘눈과 얼음, 송어가 함께 하는 겨울 이야기’라는 주제로 매년 열리고 있어 한국 겨울철 대표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게다가 평창군은 한국에서 1965년에 최초로 송어 인공양식이 성공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평창군은 국내 최대 송어 양식지가 되었다. 19세기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송어(松魚)라는 이름은 몸에서 소나무 향기가 난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송어는 연어과에 속하는 소하형 냉수어종으로 평균 수온 7℃~13℃의 깨끗하게 흐르는 물에서만 사는 물고기다. 한국의 동해와 동해로 흐르는 일부 하천에서 주로 서식한다. 평창의 맑은 물에서 자란 송어는 유난히 부드럽고 쫄깃쫄깃해 씹히는 맛이 일품인데 주홍빛 붉은 살은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한 감칠맛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평창송어축제에는 다양한 먹거리, 즐길 거리들이 즐비하다. 대표적으로 오대천을 막아 설치한 4개 구역 총 9만여㎡의 축제장 송어얼음낚시터는 동시에 5000명이 얼음낚시를 즐길 수 있다. 4개 구역 중 1개 구역에는 텐트낚시터가 준비돼 있다. 텐트낚시터는 온라인 예약으로 참여 가능하다. 어린이들은 어린이 전용 실내 낚시터에서 송어를 낚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 송어맨손잡기는 야외 행사장에서 진행된다. 1일 2~3회 운영하며 한 번에 50명이 선착순으로 참여할 수 있다. 게다가 111돈의 황금을 경품으로 내걸 계획이어서 참가자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한다. 잡은 송어는 즉석에서 회 또는 구이로 맛볼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눈썰매장은 길이 120미터 폭 40미터로 대폭 확장해 더 많은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했다. 눈썰매장 바로 옆에는 얼음썰매장을 조성해 시범운영한다. 눈썰매, 전통썰매, 스케이트, 스노우래프팅, 얼음자전거, 범퍼카, 얼음카트 등 얼음과 눈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놀이들이 준비돼 있다.   축제장에서는 지역 특산품 판매와 지역 예술인들의 다채로운 공연도 함께 펼쳐진다. 2018 평창올림픽 개최에 따라 새로 연결된 KTX경강선을 이용할 경우 서울역에서 진부역(오대산역)까지 1시간 40분, 청량리역에서는 1시간 20분, 상봉역에서는 1시간 10분이면 도착한다. 역에서는 택시나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김영구 평창송어축제위원회 위원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으로 평창은 이제 세계적인 겨울축제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며 “외국 손님들을 비롯해 더 많은 방문객이 오실 것을 예상하고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 송어를 주제로 한 겨울축제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제공:뉴스와이어](ITFOCUS ⓒ www.itfocus.kr)이 뉴스는 아이티포커스(www.itfocus.kr) 공유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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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2018년 한 해 동안 도 산하 전 부서에서 추진한 주요 시책 34건을 평가해 ‘전남을 빛낸 올해의 시책 TOP10’을 선정했다.   심사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1차 내부심사와 2차 외부심사로 이뤄졌으며, 창의성과 도정발전 기여도, 효과성, 노력도, 파급효과, 도민(조직)수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심사결과 최우수 시책으로 ‘2018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개최’가 선정됐으며, ‘고용․산업 위기지역 지정 및 지원 총력’, ‘주거약자를 위한 행복둥지사업 추진’, ‘모두가 행복한 즐거운 직장만들기’, ‘전국 최초, 노인 결핵 전수검진’ 등 4건이 우수 시책에 이름을 올렸다.   전통회화를 테마로 국내서 개최된 국제수묵비엔날레는 2개월 동안 29만여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등 ‘예향 전남’의 문화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수묵의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아울러 437명의 고용창출을 비롯해 직접적인 경제효과가 210여억원에 달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한몫한 점이 심사위원의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산업 위기지역 지정 및 지원 총력’은 조선업 침체로 고용․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맞춤형 지원을 통한 조선산업 경기 회복에 크게 기여했으며, ‘주거약자를 위한 행복둥지사업 추진’은 주거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 주택 개․보수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제공해 도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모두가 행복한 즐거운 직장만들기’는 직원들이 도정을 위해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의 과감한 혁신을 추진했으며, ‘전국 최초 노인 결핵 전수검진’은 결핵 발병 고위험군의 발 빠른 전수검진으로 어르신 결핵환자 발생의 최소화를 위해 노력한 점이 인정받았다.   이밖에 장려 시책으로 ‘전남 일자리 플랫폼 구축’, ‘남도한바퀴 운영’, ‘지역항공사 ㈜에어필립 유치’, ‘낙지 자원량 증대를 위한 목장 조성’, ‘농촌인력지원센터 운영’ 등 5건이 선정됐다.   고광완 전라남도 기획조정실장은 “올해는 어느 한쪽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관광문화부터 경제일자리, 복지, 농수산, 내부행정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고르게 선정됐다”며 “민선7기 ‘내 삶이 바뀌는 전남 행복시대’를 위해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보다 혁신적이고 도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시책을 발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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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김종영 · http://edaynews.com
내년에 버스도착안내단말기(BIT) 130여 대가 추가 설치된다. 광주광역시는 2022년까지 전체 버스정류장의 50%에 해당하는 1155곳에 버스도착안내단말기를 설치한다고 16일 밝혔다. 사업이 완료되면 연간 버스 이용객수가 2만명 이상인 버스정류장 대부분에 설치되게 된다.  광주시는 버스노선안내판과 도착안내단말기 일체형인 절약형 버스도착안내단말기에 미세먼지 상태와 현재 온도 등 유용한 기능을 추가해 다양한 정보를 표출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광주시는 2007년부터 버스정보시스템(BIS)을 운영해 실시간 버스운행정보를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버스도착안내단말기는 12월 현재 625대로 27%의 설치율을 보이고 있다. 버스도착안내단말기가 설치되지 않은 정류장에서는 모바일광주앱, 광주버스운행정보 홈페이지(bus.gwangju.go.kr), ARS(613-5700)로 버스도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시내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장비를 지속적으로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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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진원 · http://edaynews.com
- 신비하고 엑티비티한 세계로의 여행, ‘정원 속 동화나라’ - - 리얼 야생의 세계를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나이트사파리’ - -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가족뮤지컬 ‘팡쇼’, ‘오즈를 찾아서’,‘우카탕카 코믹쇼’ 등 - 이데이뉴스 전남동부지역본부장 강진원 기자 순천만국가정원의 겨울밤을 수놓을 ‘2018 별빛축제’가 오는 21일부터 내년 2월 6일까지 한국정원, 서문광장, 습지센터 일원에서 ‘정원에서 겨우내 놀자’를 주제로 가족·연인들이 겨울정원에 머물며 즐길 수 있도록 개최된다.. 주요프로그램은 야생의 세계를 미디어아트로 표현한 ‘나이트사파리’, 신비하고 재밌는 ‘정원 속 동화나라 전시・공연・체험전’, 가족뮤지컬 ‘팡쇼’, ‘오즈의마법사’,  ‘우카탕카 코믹쇼’, 별빛 아래 펼쳐지는 빛의 향연 ‘라이트 가든’ 등이다. ‣ 신비하고 엑티비티한 ‘정원 속 동화나라’ 전시・공연・체험전 순천만습지센터 내 1~2층에 설치될 ‘정원 속 동화나라’는 대형 키즈카페를 연상할 만한 놀이터가 조성된다. 어린이 동화를 모티브로 한 정원 속 동화나라는 캐릭터 전시존(포토존), 아트・직업 체험존, 놀이존, 부모님들을 위한 북카페를 동화속 세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직업체험은 과자집 만들기, 레이싱, 연예인 등 인기 있는 체험으로 진행되며 빛 축제인 만큼 빛을 이용한 블랙라이트, 동화 캐릭터 그리기 등 아트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이용료는 무료이며 현장 선착순 접수를 통해 체험이 가능하다. ‣ 별빛 아래 펼쳐지는 리얼한 야생의 세계 체험 속으로 ‘나이트사파리’ 한국의 명당을 수호하는 ‘HERO’의 이야기로 구성된 6개의 존은 백두대간을 넘어 순천만에 등장한 HERO를 시작으로 정원의 최정상에서 표효하는 야생의 HERO로 마무리 된다. 운영은 매일 저녁 5시 30분부터 8시 30분 까지다.      ‣ 크리스마스·연말연시 가족공연 ‘풍성’ 올해 별빛축제는 역동적인 가족형 축제로 진행되는 만큼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는 가족 관람객을 위한 특별기획 공연도 진행되며 특히,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는 22일 ~ 25일까지는 난타, 댄스, 아크로바틱 등 다양한 퍼포먼스로 구성된 ‘팡쇼’가 진행된다. 특히 팡쇼는 다양한 볼거리외에 빵만들기 체험이 공연 중 함께 진행돼 또 다른 흥미를 유발한다. 연말연시 연휴가 시작되는 29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는 어린이들의 창의력과 협동심을 자극하는 관객 참여형 공연 ‘오즈를 찾아서’ 가 진행된다. 공연은 17시30분과 19시 2회 운영된다 ‣ 별빛 아래 펼쳐지는 빛의 향연 ‘라이트 가든’ 별빛축제 동안 순천만국가정원은 빛의 향연으로 물든다. 눈꽃, 크리스마스, 눈사람 등 상상 속 산타마을을 테마로 환상적인 빛의 세계로 초대할 라이트 가든은 순천만국가정원에서 가족, 연인, 친구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꿈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트리와 5M 높이의 대형 에어조형물로 설치되는 스노우빅맨은 인생샷을 건질 포토 스팟으로 추천한다. 시 관계자는 “이번 겨울축제는 특히 가족단위의 관람객을 타깃으로 정원에서 즐길거리를 선사하고자 노력했다”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연말연시에 가까운 정원에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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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진원 · http://edaynews.com
∙ 명인건축 대표 겸 경남대 대학원 겸임교수인 정종민 교수의 평생 力作 ∙호남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승평지(昇平誌)』이후   ‘순천의 역사·문화를 제대로 집대성한 『건축사의 눈으로 본 다시 읽는 순천인문학(P534) 』 ∙ ‘(재)한국학 호남진흥원’ 전남 문화원형 조사 발굴 지원 사업 분야 공모 보조금 지원 간행도서 [‘건축사의 눈으로 본 다시 읽는 순천인문학’ 도서 사진] 이데이뉴스 전남동부지역본부장 강진원 기자 명인건축 대표 겸 경남대 대학원 겸임교수인 정종민 교수(58세)의 평생 力作인『건축사의 눈으로 본 다시 읽는 순천인문학(P534) 』출판기념회가 2018년 12월 15일(토). 오후 2시 순천시문화건강센터 삼산도서관 3층 시청각실에 시민 200여명(방문 책자수령자 기준)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오늘 출판기념회는 ‘아고라순천공연추진위원회 운영감독·전문MC 임태수’의 사회로 ① 정종민 특강 ‘전통건축과 인문학의 만남!’,  ② 팝페라 가수 공연, ③ 출판기념회 본행사 ‘순천인문학 출판기념회 및 저서 소개’ 순서로 진행Œ÷만 오늘 참석자들에게 책자 1권씩을 편저자 정종민 교수가 서명하여 배포 했다. [‘편저자 정종민 교수’ 사진] 順天市는 역사적으로 삼한시대 마한(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경), 백제시대 감평군, 통일신라시대경덕왕 16년(757)에 승평군이라 불릴 정도로 약 2천 3백여 년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역사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소홀했다.  그나마 호남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읍지로 1618년(광해군 10년)에 편찬된 순천읍지(順天邑志)인 『승평지(昇平誌)』, 18세기(정조 연간) 순천부읍지(順天府邑誌), 1784년(정조 8년) 조현범(趙顯範)의 강남악부(江南樂府)라는 향토사가 간행되었으나 한문학자가 아닌 한글세대는 읽고 이해할 수가 없는 서고에 쌓여있는 소장도서에 불과했다.   이에  편저자 정종민 교수는 이렇게 어려운 향토사를 현대인이 읽을 수 있는 살아있는 지역역사를 누구나 읽고 이해 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승평지(昇平誌)』이후 처음으로 ‘순천의 역사·문화·종교·설화·민속·명소’를 한권의 책에 담은 ‘순천의 역사·문화 총서(叢書)’ 『건축사의 눈으로 본 다시 읽는 순천인문학(P534) 』을 간행하였다. 순천시 도사동 출신인 정종민 교수는 건축사·공학석사·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동양사상과 철학을 공부하여 ‘동양철학사’ 자격도 취득한 碩學(석학)으로 대학 강단과 각종 시민강좌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인이 읽고 이해하기 힘든 과거에 간행된 향토사에 아쉬움을 느낀 정종민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본업인 건축사업무보다는 오히려 ‘순천의 역사·문화·종교·설화·민속·명소 답사 채증과 옛 향토역사문화 문헌 등 사료를 수집하고, 순천시내 곳곳을 답사한 끝에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담은 저서를 발간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온 끝에 2015년에 “역사문화설화명소를 찾아서 ‘순천인문학(P292,  늘보기획 2025년 간행)’” 1천권을 自費(자비)로 간행하여 판매 및 무료로 배부한바 있었다. [‘편저자 정종민 교수, 순천인문학 출판기념회’ 사진1] 그러나 2015년 출판 도서에 관한 사료에 무엇인가는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느껴온 정종민 교수는 2018년 8월 29일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가 출자한 ‘(재)한국학 호남진흥원’의 공모사업 △전남 문화원형 조사 발굴,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 창작 발표, △인문학 문화강좌 프로그램 운영 등 총 3개 분야 중 △ 전남 문화원형 조사 발굴 지원 사업 분야에 『건축사의 눈으로 본 다시 읽는 순천인문학』에 응모하여 선정되었다. 정교수는 그 동안 수집한 자료를 방대한 분량으로 ‘자료·사진·그림’을 대폭 수정보완하여 한문세대가 읽을 수 있는 과거의 문어체 도서를 과감하게 탈피하여 한글세대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구어체 형식의 도서 ‘순천의 역사·문화·종교·설화·민속·명소’를 한권의 책에 담은 ‘순천의 역사·문화 총서(叢書)’ 『건축사의 눈으로 본 다시 읽는 순천인문학(P534) 』을 간행하였다. 간행된 도서는 광주광역시 자치구와 전라남도 시군, 국립중앙도서관, 각 대학, 편저자의 오늘 순천 출판기념회 참석자에게 배부되었다. [‘편저자 정종민 교수, 순천인문학 출판기념회’ 사진2] 이번 출판기념회는 호남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읍지로 1618년(광해군 10년)에 편찬된 순천읍지(順天邑志)인 『승평지(昇平誌)』의 40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된 ‘구어체’ ‘한글 인문학 도서’인 ‘순천인문학’ 간행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출판을 계기로 호남지방 각 시군구에서 ‘지역의 역사·문화·종교·설화·민속·명소’를 담은 ‘인문학’이나  ‘향토사’ 간행이 활발하게 연구 간행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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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하늘아름 · http://edaynews.com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 정일영)는 연말을 맞아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인천공항 겨울 정기공연 'SHARE YOUR HEART CONCERT'를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1층 그레이트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동욱, 박기영, 민우혁, 크러쉬 등 인기 아티스트 대거 출연... 화려한 무대 펼쳐 이번 정기공연은 특히 인천공항공사가 이번달 1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하고 있는 '동전모아 사랑나눔 기부 캠페인'과 연계해 진행된다. 공사는 공항 이용객과 인천공항공사를 비롯한 상주기관-업체의 참여로 모금된 '동전모아 사랑 나눔 기부 캠페인' 기부금을 이번 정기공연 기간 중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공항가족과 여객이 참여하는 '사랑나눔 기부 캠페인'과 연계... 어려운 이웃에 기부금 전달 한편 공연기간을 포함해 이달 1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되는 '동전모아 사랑나눔 기부 캠페인'은 2터미널 공연장과 인천공항 곳곳에 위치한 모금함을 통해 참여할 수 있으며, 참여자에게는 소정의 기념품과 행운권 등이 증정된다. 정기공연 첫날인 19일 공연에 앞서 인천공항공사의 기부금 전달식이 개최되며, 캠페인 전 기간 모금된 기부금은 장애아동과 의료취약계층의 재활치료를 지원하는 대한적십자사의 'Happy Move' 프로그램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번 정기공연은 19일부터 22일까지 매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되며, 공항을 찾은 방문객 누구나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인천공항 홈페이지(airport.kr)와 아트포트 홈페이지(artport.kr)를 통해 선착순으로 무료 좌석예약 신청이 가능하며, 자세한 사항은 해당 홈페이지 또는 제2여객터미널 문화예술사무국(032-741-7882)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일영 사장은 "이번 겨울 정기공연은 인천공항에서 가슴 따뜻한 연말을 위해 진행 중인 기부 캠페인과 연계해 소외계층과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특별행사"라며 "인천공항을 찾은 방문객들이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예술공연을 즐기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부천사로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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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신동범 · http://edaynews.com
8월 어느 무더운 여름날 거창읍의 한 마을을 찾았다. 우리가 방문한 집은 부부가 모두 지적장애이며 25살 난 아들은 뇌병변 1급 장애로 휠체어에 의지하여 겨우 생활하는 장애인 가구였다.   마당과 집안에는 온갖 쓰레기가 쌓여 있고 방안의 도배와 장판은 언제 했는지 모를 정도이며, 부엌은 땔감으로 난방을 하는 재래식 아궁이에 벽과 천정은 시커멓게 낀 그을음으로 낮인데도 어두운 밤을 방불케 했다. 방은 전기장판이 보일러를 대신했고 대문 곁의 재래식 화장실은 장애를 가진 아들에겐 차라리 고난의 순례길 이었다.   그동안 복지업무를 맡으며 현장을 수없이 다녀봤지만 최악의 상태로 어떻게 하면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년도 ‘120 사랑의 집짓기’ 대상자로 추천해서 집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나을까? 상의해보니 부모님과 얼마 전까지 함께 살아온 주택을 허물지 않으려는 부부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주택의 실제 소유자는 서울 사는 형수였고 집수리 허락을 받는데도 한 달 가까이 걸렸다.   다음은 어떻게 주거환경개선을 진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지원할 수 있는 올해의 주거환경개선 관련 여타 사업은 이미 종료돼 마땅한 방안이 없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고 다행히 지난 7월 거창군 공무원노조의 복지사업인 지역주민을 위한 주거환경개선사업에 기 추천한 대상자가 사업을 앞두고 요양원에 입소를 하여 대상자를 장애인 가구로 변경하게 되었다. 막상 주거환경개선을 시작하려니 공무원노조의 지원예산인 400만원으로 인건비는 제외했음에도 전체 견적 1,600만원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거창군 공무원노조와 노조의 복지사업을 재능기부로 수행하는 봉사단체인 청송회에서는 자체 긴급회의를 열어 노조에서 지원금 500만원, 청송회 자체기금 500만원과 회원 개인들의 기부 500만원, 그리고 축협정육회 회원들의 100만원 기부로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첫날 공사는 11월 18일 일요일 아침 8시부터 시작한 공사가 어둠이 내린 저녁 늦게 서야 마쳤는데 청송회원과 공무원노조회원, 거창읍 직원, 축협정육회원 등 30여명이 직접 재능기부를 하였고 청소년운영위원회 청소년들은 대상 가구를 직접 방문하여 소중한 전자레인지를 기증했다.   4주에 걸쳐 진행된 장애인 가구의 따뜻한 겨울나기 공사에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열정적으로 참여해 준 공무원노조회원과 청송회와 축협정육회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재능기부 봉사가 있었기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거동이 불편한 아들을 바라보며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기가 갖추어진 집에서 살아 보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는 장애인 어머니의 울음석인 감사의 말에 진행과정에 있어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작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모든 일을 제쳐 놓고 현장으로 달려와 헌신적인 재능기부 봉사를 해주신 모든 봉사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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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 http://edaynews.com
1498년 7월13일에 연산군은 『실록』 열람에 대하여 전교하였다.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에서 『실록』을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는데, 평시라면 이 말이 타당하다. 그러나 지금 큰일을 상고하려고 하는데 완강히 불가하다고 하니, 이는 반드시 어떤 사정(事情)이 있어서다. 의금부(義禁府)에 내리어 국문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러자  대간(臺諫 사헌부와 사간원)이 합사(合司)하여 아뢰기를, “예로부터 임금은 사초(史草)를 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홍문관·예문관은 직책이 사관(史官)을 겸대하였으므로 주상께서 사초를 보시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직분이오니, 국문이 온당치 않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연산군일기 1498년7월13일 4번째기사) 그랬다. 실록과 사초를 담당한 춘추관의 관직은 전임(專任)이 하나도 없고, 모두 겸직하였는데 예문관의 봉교 2명, 대교 2명, 검열 4명 등 8명은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하였다. 홍문관(弘文館)의 관원도 사관을 겸직하였다. 이런 사관들이 사초나 실록을 보라고 할 리 없었다.  7월14일에 대간이 아뢰기를, “홍문관·예문관 관원을 가두고 국문하는 것은 부당하옵니다.”하였으나,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4일 1번째 기사)   이제 김일손의 사초 사건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연산군과 삼사(홍문관 · 사헌부 · 사간원)가 사초 열람을 두고 한 바탕 힘겨루기를 한 것이다. 홍문관과 예문관은 사초의 내용보다는 국왕은 실록을 열람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좀 더 중시했고, 대간 또한 이에 찬동했다.   김일손의 사초가 세조의 치부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사초를 볼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한 삼사의 자세는 연산군 입장에서 보면 김일손 등을 감싸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연산군은 사초사건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발언을 남겼다. 삼사의 행동에는 “반드시 어떤 사정(事情)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일단 ‘어떤 사정’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했지만 이런 연산군의 의심은 며칠 후 좀 더 분명히 실체를 드러나면서 사화가 확대되었다. 1)  한편 1494년 12월24일에 ‘도학군주’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붕어했다. 의경세자(1438∼1457 세조의 장남, 나중에 덕종으로 추존)의 둘째 아들로 12세에 왕위에 올라 25년간 재위하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하였다. 사진 20-1  창덕궁 대조전 사진 20-2  대조전 안내판 이로써 연산군(1476∼1506, 재위 1494∽1506)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연산군은 즉위하기도 전에 삼사와 충돌이 일어났다. 수륙재(水陸齋) 실시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수륙재는 불가(佛家)에서 물과 육지의 여러 귀신에게 음식을 차려 주고 경을 읽는 제례이다. 조선 왕실은 태조 때부터 왕실은 쾌유(快癒), 장수(長壽), 명복(冥福)을 비는 등의 목적으로 수륙재를 지내왔고. 선왕을 추모하는 제례로 지냈다. 2) 성종이 붕어한 다음날인 12월25일에 예조판서 성현은 수륙재의 시행여부를 물었다. 연산군은 성종 비 정현왕후에게 판단을 구하였고, 정현왕후는 관례에 따라 재를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대행 대왕께서 불교를 좋아하지는 않으셨으나, 재를 지내지 말라는 유교(遺敎 임금의 유언)가 없었으며, 또 이전의 조종조(祖宗朝)에서 다 행하셨으니 폐기할 수 없다.”(연산군일기 1494년 12월25일 4번째 기사) 이러자 삼사(三司)는 유교적인 의례가 아니라는 이유로 즉각 반대했다.  12월26일에 사헌부 장령 강백진과 사간원 정언 이의손은 대행대왕이 불교를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수륙재를  지내는 것을 온당치 못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수륙재의 거행은 조종조로부터 이미 그러하였고, 대행 대왕께서도 그만두라는 유명(遺命)이 없었으니  폐지할 수 없다."고 전교하였다. 이어서 홍문관 부제학 성세명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대행 대왕을 위하여 불재(佛齋)를 거행하려고 홍문관으로 하여금 소(疏)를 지어 바치게 한다 하오니, 못내 놀랍습니다. 이는 효도를 다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하였으나 역시 들어주지 않았다.   사진 20-3 홍문관 (일명 옥당), 창덕궁 내에 있다.      이어서 12월27일에 사헌부 장령 강백진과 사간원 정언 이의손이 불사(佛事)의 폐해를 아뢰었다. 연산군은 "대간(臺諫)이 여러 날 논계(論啓)하니, 경(卿 대신)들이 내가 좇을 수 없다는 뜻으로 타이르는 것이 어떠하오?" 하매, 윤필상 등은 감히 타이르지 못한다고 발뺌하였다. 대신들은 미온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연산군일기 1494년 12월27일 2번째 기사) 아울러 홍문관 직제학 표연말·전한 양희지·응교 권주·부응교 홍한·부수찬 김감이 불재를 지내지 말 것을 서계하였지만 역시 듣지 않았다.  그런데 홍문관 수찬 손주가 아뢰기를, "신으로 하여금 재를 행하는 소문(疏文)을 지어 바치라 하시나, 신은 감히 명령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왕명을 거역한 것이다. (연산군일기 1494년 12월 27일 6번째 기사)    12월28일에도 수륙재 논의가 계속되었다. 홍문관 대제학 어세겸이 아뢰기를, "관원(館員)이 모두 논계하기 위하여 대궐에 들어갔으므로, 대행대왕의 행장을 짓는 것이 늦어지기에 감히 여쭙니다." 하였다. 연산군은  "정승들에게 물으라."하매, 좌의정 노사신이 아뢰기를, "일에는 늦출 것과 서두를 것이 있습니다. 지금 재를 지내는 한 가지 일이 나라의 흥망에 직결된 중대한 일이라면 말하는 것이 옳겠으나, 선왕을 위하여 재를 지내는 것은 조종조의 고사(故事)이니 이것을 가지고 불교를 숭상하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 그런데도 할 일을 버리고 대궐에 모여서 계속 논란하니, 신은 매우 그르다고 여기며 이런 일은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우의정 신승선(연산군의 장인이기도 하다)은 잠자코 말이 없다가 ‘나의 생각도 또한 노사신의 말과 같다.’고 말했다. 3) 그런데 노사신에 대한 사관의 평가는  신랄하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정시(正始)하는 처음에 절에 재 올리는 것은 이보다 더 큰 허물이 없는데, 노사신이 이것은 큰일이 아니니 답할 필요가 없다 하였으니, 노사신은 어떤 것을 큰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응교 홍한(洪澣)은 탄식하며 ‘만약 허종(許琮)이나 홍응(洪應)이 있었더라면 결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였다.” (연산군일기 1494년 12월 28일 1번 째 기사) 한편  홍문관 수찬 손주가 소문(疏文) 짓기를 거절하자 연산군은 대신들에게 의견을 구하였다. 노사신이 아뢰기를, "태조·태종·세종이 이미 다 행하셨으니, 지금 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손주는 이미 반대하였으니, 비록 죽더라도 짓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이 일은 매우 급하니, 우선 승정원을 시켜 짓게 함이 어떠하오리까?" 하였다. 연산군은 승정원에서 지어 보내라고 전교하니, 승지들이 향실(香室)에 입직(入直)한 정자(正字)를 시켜 예전에 쓰던 소문(疏文)을 베껴 보냈다. 연산군은 노사신의 지원에 힘입어 자신이 즉위한 날인 12월29일에 승지 송질을 보내어 장의사(藏義寺)에서 수륙재를 지내게 하였다. (연산군일기 1494년 12월29일 2번째 기사) 4) 1) 김범, 사화와 반정의 시대, 역사의 아침, 2015, p 110 2) 세종은 세종 4년(1422년) 5월6일에 붕어한 태종을 위해 진관사에서  수륙재를 지냈다.(세종실록 1422년 5월6일)   3) 거창부원군 신승선(1436∼1502)은 연산군의 장인이다. 그는 1495년 10월에 영의정에 제수되어 1497년 3월29일에 사직하였다.   4) 장의사(藏義寺)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절이다. 659년(신라 태종 무열왕 6)에 지어졌다는 데 지금은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235호)만 남아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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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글과 비와 문인  한국문학방송사이버 시비 특별기획 문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제1부 사이버 시비 ● 雲影 권오정 누가 이 산하(山河)를  망초꽃 향을 아시나요  바른길로 인도하옵소서  오월이 오면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 김국이 시댁 가는 길  가로등  ● 김기수 징검다리  ● 김사빈 햇살 한줌  ● 김소해 하늘에 그린 묵화  ● 예현 김숙경 섬  백지 도둑  달맞이꽃  봄 산  질항아리  잘 절여져야  석류  코스모스 핀 언덕  ● 김은자 (USA) 청춘, 그 포스트모더니즘  ● 초연 김은자 와룡산 밀어  침묵의 심장  황혼녘 눈물의 사부곡  ● 김종길 향수鄕愁  사모곡  ● 김지수 바람 부는 날  ● 김철기 만남으로 가다  ● 김태희 달래강 여울 소리  ● 김혜영 요나의 고래사냥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 나광호 상선약수(上善若水)  죽겠다는 말  ● 노유섭 아버지  파랑새와 무지개  시소를 타고  ● 노중하 그리운 친구  / 85소금  / 87행복한 삶  ● 諧蓮 류금선 목련꽃 사연  어머니의 강  하이얀 눈이고 싶어  ● 문재학 초침(秒針)의 의미  ● 민문자 그대의 향기  어머니 사랑합니다  태극기  ● 박인혜 숲으로  ● 배학기 지팡이의 이야기  ● 손용상 나의 시비(詩碑) 앞에서  ● 澐海 송귀영 야국(野菊)  어머니 젖가슴  월영소곡(月影小曲)  지하철 낭인(浪人)  햇살풀이  허수아비  황태덕장  ● 심재기 겨울들녘  선線  ● 심홍섭 아내의 맨발  ● 안재동 별이 되고 싶다  ● 양봉선 다들 모를 거예요  ● 엄원용 사과 깎기  아프게 피는 꽃잎  잔느는 모딜리아니를 사랑했다  ● 여정건 왕대추 (장편소설)  ● 윤이현 가을하늘  ● 윤행원 인덕(仁德)의 샘  햇빛 사랑  흔적  ● 이규석 아버지의 그림자  ● 이기은 무화과  ● 이수정 저무는 산문(山門)에서  ● 이영지 달래강  ● 이병두 고희(칠순)  구름이 하는 말  부부  사랑나무(연리목)  은퇴  할아버지 강(祖江)  회갑  ● 신송 이옥천 비는 내리고  시련의 척도  아직 멀었다  정상 없는 산  ● 이정님 잃어버렸습니다  ● 이찬용 물의 노래  ● 이효녕 꽃이 피어나는 동안  봉숭아꽃 앞에 서서  늦가을의 산사  ● 정선규 뚜껑  ● 정송전 내 이렇게 살다가  삶  진달래꽃  꽃이 피어나는 이유  코스모스  풀꽃  ● 조남명 동백꽃  안개꽃  ● 조성설 이슬 사랑  ● 조은재 낮꿈  ● 천향미 깡이 있어야 날제  ● 최대락 만추(晩秋)  ● 최택만 진달래  ● 쾨펠연숙 국제시장  별똥 따던 날  선잠  ● 하태수 나그네  ● 허용회 맑은 사람이 그립다  개 친구  살다 보면  ● 池松 홍윤표 어머니의 바다  제2부 사이버 시비 제작 문인의 실물 시비 ● 초연 김은자  불꽃은 영원하리  석상의 염화미소  만추의 가시버시  ● 안재동 내 안의 우주  ● 엄원용 실수  사랑의 노래  백자  ● 윤행원 은밀한 유혹  ● 신송 이옥천 초연 길  ● 이효녕  그대의 바다가 되고 싶어  ● 석란 허용회 귀춘  제3부 사이버 시비 제작 문인의 에세이 ● 글과 비(碑)와 문인 _ 송귀영  ● 글과 비(碑)와 문인 _ 초연 김은자  [2018.12.10 발행. 266쪽. 정가 5천원(전자책)] ※전자책 보기 : http://ebooks.dsb.kr/ecatalog.php?Dir=ce2f6ce84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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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 · http://edaynews.com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은 10일 오후 시청 3층 비즈니스룸에서 ‘광주형일자리 성공을 염원하는 광주 범시민사회단체 회원’ 일동으로부터 ‘완성차 공장 유치를 기원하는 서명부’를 전달받았다. 이날 전달식에는 이용섭 시장, 이병훈 문화경제부시장, 김광휘 기획조정실장 등 광주시 관계자를 비롯해 광주형일자리 성공을 염원하는 광주 범시민사회단체 대표로 시민사회단체총연합회 이정재 회장, 광주경영자총협회 최상준 회장,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김후식 회장, 5·18민주유공자 유족회 정춘식 회장, 5·18구속부상자회 양희승 회장, 오월어머니집 정현애 이사장, 광주전남총합생회협의회 의장단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범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광주형일자리를 추진하는 광주시와 현대차, 노동계에서 광주시민의 간절한 소망을 충분히 이해해 조기에 사업이 추진되도록 총력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이용섭 시장은 “광주시에서 좀 더 노력해서 지혜롭게 협약을 타결했다면 추운 날씨 속에서 시민들께서 결의대회를 갖는 상황이 빚어지지 않았을텐데 안타깝다”며 “‘비 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지듯’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협약이 타결되고 지속가능하면서 수익성을 갖춘 경쟁력이 있는 완성차 공장이 만들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염원하는 광주 범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이날 전달식에 앞서 광주시민사회단체총연합을 중심으로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빛고을체육관에서 ‘완성차 공장 유치를 기원하는 범시민 결의대회’를 갖고 현대차와의 완성차 공장 유치 성공을 기원하는 구호 제창, 광주시민의 성공 염원이 담긴 결의문 등을 채택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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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 http://edaynews.com
항상 국민들의 무한한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강 0 대표와 직원분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늦게 만나 깊이를 간직하고 알아 가고 있지만 너무 큰일을 많이 하시고 항상 강 대표께서는 아내와 자제분들을 끔찍이도 먼저 챙기는 모습에서 修身齊家(수신제가)를 먼저 떠 올립니다. 그리고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직장가족을 食率(식솔)로 생각하고 더 많은 혜택과 직장인으로서 사회보장을 생각하는 맡은바 責務(책무)에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로서의 모습도 자주 목격하였습니다. 주식회사 000 침대에 종사하는 직원여러분들에게는 새삼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社會人(사회인)으로서 부러움을 느끼는 바입니다. 두서없이 답 글을 계속 이어가지만 제가 강 0 대표를 만난 것은 불과 2년입니다. '스승의 나라 수은 강항선생과 제자의 나라 후지와라 세이카'의 선양사업이 아쉽게도 20여 년 전 그 맥이 끊겨져 傍系(방계) 손으로 분연히 일어선지 불과 5년여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2년이나 5년이나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혹자가 이런 과장된 표현의 어천가식 말을 제 면전에서 대 놓고 하더군요!!! 5년의 선양사업이 甲男乙女(갑남을녀)의 20여년과 별반 다름없는 큰 일들을 많이 이뤄 놨다고요. 사실 이런 말은 솔직히 제 입으로 말하기가 쑥스럽고 한편으로는 퍽이나 부끄럽습니다. 확실한건 姜姓(강성) 집안에서 자기네 할아버지 선양사업이라고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지금의 정, 관계에 높이 계시는 분들을 명예이사장으로 모시고 박석무 다산 연구소 이사장님을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2014년 4월에 재 창립하면서 지금까지 잘 모시려고 매사에 노력을 다하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매년 국제학술세미나를 통해 '스승의 나라 수은 강항선생과 제자의 나라 후지와라 세이카'임을 증명해 냈습니다. 영광읍내에서 내산서원이 그리 멀지 않고 일본 유교의 鼻祖(비조)인 인물이 配享(배향)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즈넉하고도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혀 관광객이나 내방객이 오래전부터 끊겨있었기에 적어도 賜額(사액)서원인 내산서원을 이렇게 놔둬선 안 되겠다 싶어 전남문화관광재단과 전남도청을 수시로 들락거려 2014년도에 '꿈다락 토요학교'로 '수은강항선생 토요학교'를 보조금을 받아 영광관내 초, 중,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서원 활성화 차원의 토요학교 자율학습과 방과후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 토요학교가 드디어 뜻있는 지방 儒林(유림)과 지역 학생들에게 먹혀 들어가기 시작했고 김영란법으로 더 유명한 청소년 멘토이며 매니페스토 실천가인 유명 검사출신의 강지원변호사께서 直孫(직손)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박석무회장께서도 영광군청에 공무원 職能(직능)교육에 오셔서 수은 강항선생의 참 선비정신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2015년에 또 학술세미나를 광양수월정의 歷史歪曲(역사왜곡)으로 한국유교대학총연합회 초대 이사장님과 함께 主導的(주도적)으로 주관해 광양시청 1층 세미나 실에서 송강 정철이 직접 지었다고 잘못 알려진 광양 수월정기문의 역사왜곡을 바로 잡기위해 그 지역 유림들 300여명과 함께해 성공적으로 광양수월정 역사왜곡 학술세미나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당시 호남지역 역사학자인 광주교대 김덕진교수는 발제자로서 鬱憤(울분)을 참지 못하고 세미나 현장에서 순천대학교 학회지에 이 사실을 발표하겠노라고 강조했습니다. 드디어 김덕진교수는 2016년도에 발제한 발제문 그대로 실천적으로 그 지역 유수대학인 순천대학교 학술지에 게재를 하였고 광양시청에서는 잘못된 歷史歪曲(역사왜곡)을 시인하고 竝行(병행)해 표기를 광양시청 공문으로 약속받았습니다. 그 다음해인 2017년에는 문화재청의 지원사업으로 내산서원활성화 사업 보조금을 선의의 경쟁을 통해 가져 올 수 있었습니다. 내산서원을 알리기위해 수십만이 찾는 상사화축제와 더불어 퓨전국악한마당을 개최해 수은강항선생을 알리고 무라까미 쓰네오회장을 모시고 내산서원에서 500여명이 모인 내산서원 앞마당 뜰에서 훌륭하게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일주일후에 영광군청 농림과 직원 28명이 종친인 종손 강0성, 강0배부회장과 함께 일본 에이매현 오즈시를 들어갑니다. 또, 한편으로는 수은강항기념관 타당성 조사비용 2,000만원도 영광군지원으로 한가람 기획사 팀 박사들이 조사팀을 꾸려 기념관건립의 필요성을 확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참 열심히 여러 가지로 이 지역 학생들에게 인성교육 차원에 반영하면서 발전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켜갔습니다. 일부에서는 아무나 그냥 따낼 수 있는 사업 보조금을 갖고 저리도 생색을 낸다고 비아냥거리듯 猜忌(시기)도 하더군요!! 그런 시선을 느끼고는 별로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고 평상심으로 프로그램에 정성을 쏟지도 않고 올해 프로그램을 그대로 반영해 놨습니다. 2017년도의 사업 그대로를 발전적으로 變形(변형)하거나 아무런 수정도 없이 문화재청에 원안 그대로 올렸습니다. 그 결과 26 : 1의 경쟁률에 치어 탈락되고 말았습니다. 그 무렵 모든 사람이 또 종회사무실에 들리거나 종친회의를 나가면 다들 2018년 문화재청 사업에 대해 꿀맛(?)을 생각하고 혼자 다 하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하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럽고 안타까움이 몰려 왔습니다!!! 벌떡 일어나 그 자리에서 作心(작심)하듯 말했습니다. 내산서원의 서원활성화사업이 2018년 문화재청 사업에서 탈락되었노라구요!!! 일순간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더군요. 그러나 그 이후에도 다른 문화사업이라도 가져오려고 포기하지 않고 다른 분야로 알아보고 노력한 부분이 문화재지킴이 교육사업이었습니다. 2017년 11월에 부랴부랴 수은강항문화재지킴이 단체를 急造(급조)하기도 하면서 신고 후 등록하고 영광내산서원보존회를 문화재지킴이 단체로 한국문화재지킴이연합회에 등록을 해 강0원회장님을 모시고 총회에 적극 참여하고 지킴이회원 등록을 활성화하면서 공격적으로 보조금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노력 결과 기본교육부문이 선정되었고 2018년에는 문화재지킴이 행사로 1. 2. 3. 4차 문화재지킴이 봉사활동을 수은 강항선생의 5대조까지 奉養(봉양)된 이흥서원과 함께 초, 중, 고등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모집해 문화재지킴이 활성화와 기념관 건립 실사 팀들에게 보라는 듯 성황을 이뤄 아름다움을 보여줬습니다. 또, 이 지역출신인 한일간의 인물인 수은강항선생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을 갖고 군수님께서는 국제학술세미나 자금을 2,000만원 지원을 확고하게 자리매김 해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강운태 전, 광주광역시장께서는 이러한 수은강항선생의 愛國愛族(애국애족)사상을 알고 영광군 공무원 직능교육에 와 내산서원을 들려 진정어린 참배를 하시며 위대한 인물에 대한 성역화사업에 보다 더 앞장서서 노력하겠노라고 말씀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강 0 대표의 집안家系(가계)를 살펴보니 先代(선대)에서 많은 활동을 아낌없이 하신 분의 자손이자 수은 강항선생의 직손이라서 제가 20여 년 전 종친회에 처음 활동하면서 애착을 갖고 창립해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모임을 갖고 있는 鳳凰(봉황)회에 가입을 하라고 慫慂(종용)해드렸고 지금은 호흡이 잘 맞아 모든 분야에 포괄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 관계입니다. 共生(공생)의 철학이 뭘까요?! 굳이 악어와 악어새를 말한다는 건 너무 도드라지는 비유이지만 微物(미물)에서도 배울 건 배워야 합니다. 사실은 20~40대에서 절실한 게 共生(공생)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그런 공생의 여유가 없이 다 자기가 잘났다는 편견을 지니는 게 대다수이고 잘난 맛에 사업도 하고 대기업에 있으면서 폼만 잡고 공무원으로 또는 에리트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상생철학은 더더욱 씨알도 먹히지 않지요. 마침내 나이가 들어가고 익어가는 5060에서 느끼는 게 共生(공생)의 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미는 견인차 역할이 곧 공생의 철학이겠지요. 그렇게 한 세상을 함께 잘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인생의 목적지, 목표의식인 푯대는 뭐겠습니까? 수은 강항선생의 선양사업인 것이지요. 그럼 姜姓(강성)을 위해서요?? 결코 그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김씨 이씨 박씨 등등으로 각 姓氏(성씨)마다 대단한 皇帝(황제)와 大王(대왕)의 祖上(조상)이 아닌 성씨가 어디 있겠습니까 마는 그런 宣揚(선양)사업이 아니라 時代精神(시대정신)에 맞는 코드를 발견해 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서 왜 우리 민족이 과거에 피눈물 나는 왜국 곧 일본에 지배를 받았고 지금도 일본은 간악하게 역사를 날조하고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고 하느냐는 사건들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숨은 역사와 날조된 역사를 가지고 간다면 우리 세대에서 나서지 않는 한 결코 두 번 다 시 역사왜곡을 바로잡기 어려운 것입니다. 꼭, 우리가 해내야하고 우리가 하지 않으면 영원히 일본은 자기우월에 빠져 역사를 속이기만 할 겁니다. 그러면 그 일본인들은 과연 계속해 그냥 주저앉아만 있을 것 같습니까? 그들은 또 諸國(제국)의 侵略(침략)질을 멈출 것 같습니까?? 일본인들이 한 두 번 우리나라를 침략한 게 아니었고 그들의 好戰(호전)성은 전 세계인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또 정확한 사실은 日本列島(일본열도)가 이 지구상에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 일본국에 일본인들이 자기 네 땅이 없어지면서 대륙인 우리나라로 또 헤게모니 [hegemony]를 안고 쳐들어올 겁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일본史記(사기)에 임나일본부설에 기록된 여러 역사왜곡에 의해 들어오게 되면 일제 36년사를 올바르게 재해석도 못하고 일어날 혼란을 생각해 보시기바랍니다. 이건 결코 아닌 것이고 우리 後孫(후손)에게 이대로 물려 줄 수 없는 역사적 현실인 것이지요. 그래서 수은 강항의 참 선비정신에 의해' 스승의 나라 강항과 제자의 나라 후지와라세이카'가 각 성씨의 왕이나 황제를 모시는 선양사업보다도 더 훨씬 중요하다는 愛國愛族(애국애족)차원의 주장입니다. 000침대 강 0 대표가 修身齊家(수신제가)하면서 직장 동료를 食率(식솔)로 생각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聯關(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바늘귀만큼이라도 이해를 해주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거듭해 말씀드리자면 지금처럼 그리고 처음처럼 결코 변치마시고 노사가 하나가 되어 한가족으로 끝까지 함께하시면 지금보다 백배 천배 더 좋은날이 성큼 다가 올겁니다. 그게 앞에서 말한 공생철학이기도 합니다. 꼬 그렇게 해주실것으로 믿고 그나마 拙筆(졸필)을 끝까지 읽어줌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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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강하늘아름 · http://edaynews.com
서천군(군수 노박래)은 국립생태원과 방문객,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상생을 목적으로 추진 중인‘국립생태원 연계 거점관광지 조성사업’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서천군은 마서면 덕암리 일원에 약 1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지난 1월부터 본격적인 국립생태원 연계 거점관광지 조성사업 추진 착공에 돌입했으며 12월 초 기준 현재 토목공사와 건축공사를 실시하고 있다.   토목공사는 사업부지의 지반조사결과 대부분이 연약층으로 단지 조성을 위한 연약지반처리가 불가피해 12월 현재 토공 후 연약지반처리 절차를 거치고 있다.   사업장을 방문해보면 공사 추진 상황에 큰 변화가 없어 보이나, 단지 내에 3∼4m 흙을 성토해 압밀침하와 계측을 하고 있다는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건축공사도 도 계약심사를 거쳐 공사를 입찰하는 과정에 있다. 이달 중 시공사 결정을 완료하고 착공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건축공사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성 문화관광과장은 “연약지반처리에 따른 지반침하량이 설계 예상치를 밑돎에 따라 당초 계획보다 조금 늦어진 감이 있지만, 이달 중 관련 시험을 진행해 침하완료를 판정 한 후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해 당초 준공계획인 9월까지 차질이 없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업을 통해 △숙박시설(9434㎡) △상업시설(4131㎡) △주차장(8381㎡) △도로(1159㎡) △완충용 녹지(9293㎡) △기타 녹지(2,301㎡) 부지에 캠핑장과 오픈마켓, 파머스마켓, 테마놀이터 등이 갖춰질 예정이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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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김세곤 · http://edaynews.com
2018년은 임진왜란(1592-1598) 7년 전쟁이 끝난 지 7주갑(420년)되는 해이다. 임진왜란을 다시 생각한다. 임진왜란은 예고된 전쟁이었다. 조짐을 알았지만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 전쟁 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아예 무시했다. 1591년 3월, 일본을 다녀 온 조선통신사는 선조를 접견했다. 정사(正使)는 황윤길, 부사(副使)는 김성일, 서장관은 허성이었는데, 이들은 1590년 7월22일에 교토에 도착하여 11월7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1591년 1월에 귀국했다. 황윤길과 김성일은 선조에게 엇갈린 보고를 했다. 황윤길은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다’라고 아뢰었고, 김성일은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된다.’고 말했다. 1) 선조가 ‘수길이 어떻게 생겼던가?’고 묻자,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고,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 할 위인이 못된다고 일축했다.   류성룡이 선조에게 보고를 마치고 나오는 김성일에게 물었다. “그대가 황윤길의 말과 고의로 다르게 말하는데, 만일 병화가 있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김성일은 “나도 어찌 왜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놀라고 의혹될까 두려워 그것을 풀어주려 그런 것입니다”라고 답변했다. 한편 조선통신사의 엇갈린 보고로 조정은 논란이 분분했다. 당시는 동인이 집권당이었기에 대세는 김성일에게 기울었고, 동인은 ‘서인들이 세력을 잃었기 때문에 인심을 동요시킨다.’고 공격했다. 마침내 선조는 ‘전쟁이 없다.’고 결론내리고 이를 국론(國論)으로 정했다. 불행하게도 1년 뒤인 1592년 4월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김성일은 ‘전쟁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없다’고 단언하여 ‘부정의 오류(false negative)’를 범했다. 마치 1997년에 IMF가 일어난 것처럼.      이런 오류는 김성일(1538∼1593)의 잘못된 일본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는 명나라를 상국(上國)으로 모시고 일본을 오랑캐의 나라로 깔보았다. 1543년에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을 받아들인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을 하찮게 보았다. 한편 1591년 11월에 홍문관 부제학 김성일등이 상소하였다. 상소 요지는 축성을 중지시키고, 이순신의 발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선조수정실록 1591년 11월1일 축성부터 살펴보자. 1591년 7월에 선조는 성읍 수축을 지시하였다. 비변사가 육지의 방어에 힘쓰기를 청하자 호남·영남의 큰 읍성을 증축하고 수리하게 했다. 축성은 경상감사 김수가 제일 열심히 했다. 그러나 태평세월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백성들은 안일에 젖어 노역을 꺼리고 원성들이 높았다. 김성일은 영남에서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폐단을 논하였다. 이는 김성일 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상당수 관리들이 김성일과 같은 의견이었다. 이러자 김수는 ‘성을 쌓는 것에 대해 도내의 사대부들이 번거로운 폐단을 싫어한 나머지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저지되고 있다’고 장계를 올렸지만 갈등만 낳았다. 이토록 왜침 대비는 속도와 힘을 잃은 채 조선은 1592년 봄을 맞았다. 임금과 집권 여당은 일부 민심을 좇았고 나라를 재앙에 빠뜨렸다.  또한 김성일은 이순신의 발탁은 잘못된 인사라고 상소했다. 1591년 2월13일에 선조는 이순신을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였다. 종6품에서 정3품으로 7계단 뛰어넘은 파격 승진이었다. 그런데 2월16일에 사간원은 이순신의 파격 승진을 문제 삼아 체차를 간청했다. 선조는 ‘논하지 말라’ 했다. 2월18일에 사간원은 다시 간언했다. 그러나 선조는 단호했다.     그런데 이순신이 전라좌수영 여수에서 근무한지 9개월이 지난 1591년 11월에 홍문관 부제학 김성일이 다시 이순신의 인사를 문제 삼은 것이다. 선조는 매우 불쾌했다. 아니 괘씸했으리라.  1592년 3월3일에 선조는 김성일을 경상우병사로 임명했다. 4월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선조는 즉시 김성일을 잡아들였다.  1) 허성은 동인임에도 불구하고 황윤길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허성은 허균의 이복형이다. (계속됩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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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하늘아름 · http://edaynews.com
관악구(구청장 박준희)가 오는 12일(수) 14시 구청 8층 대강당에서 ‘2018 관악 스타트업 포럼’을 개최한다.     성공한 창업가의 생생한 스토리와 스타트업 주체들 간 네트워킹 프로그램 진행 서울대학교 창업지원단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번 포럼은 (예비)창업자, 대학생 및 지역 스타트업 주체들이 모여 창업・벤처 생태계 현황 등 이슈가 되는 스타트업 분야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Made in Gwanak! 함께 만드는 창업도시!’를 주제로 ▲지역 창업 트렌드 특강 ▲창업 CEO 초청 특강 ▲거점 창업자간 교류기회를 위한 네트워킹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지역 창업 트렌드 특강’은 한국 벤처기업협회 설립 초대회장이며 현)창조경제이사회 이민화 이사장의 ‘창업 트렌드와 이슈’에 대한 강연으로 마련된다.     특히, 창업 주체들 간 소통‧상생협업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구성해 관내 스타트업 토양 육성에 큰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구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 8월, 벤처밸리조성팀을 신설했고, 스타트업을 지원할 ‘벤처밸리 지원센터’를 내년 10월 완공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내년에는 스타트업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지역의 스타트업 자원을 발굴하고 젊은 인재들이 창업·벤처 생태계에 유입 되도록 친화적 벤처문화를 조성하고자 한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이번 포럼은 스타트업에 꿈을 가진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울리고, 네트워크를 통한 지식 공유의 장이 되는 기회”라며, “스타트업 도시 관악 조성과 더불어 함께하는 혁신경제 관악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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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빛 · http://edaynews.com
구례군(군수 김순호)과 한국야생화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양정인)간 업무협약과 한국명인학교 창립과 명장명인 수여식이 지난 7일 구례문화예술회관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제1부 행사로 구례군과 한국야생화협동조합간 업무협약이 이뤄졌다. 양 기관은 명장명인 양성과 아크릴 식물표본제작 등 야생화 예술산업화를 위한 다각적인 협조를 강구해 나가기로 하였다. 더불어 세계평화사랑연맹과 업무협약도 가졌는데 명인학교 운영과 식물표본제작 세계화 등을 같이 협조해 나가기로 다짐하였다.   제2부 행사에서는 명장 4명과 명인 4명에 대한 인증서 수여를 하였다. 대한민국 최고권위의 명장명인 8명이 지정되어 자연생태예술이 더욱 융성하게 발전하고, 문화예술세계를 높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협동조합 부설로 설립된 한국명인학교는 초대교장으로 주순엽 명장을 선임하고, 식물표본 코디네이터, 꽃차, 야생화 등 10명의 교수진을 구성하여 2019년 3월부터 수업을 시작한다.   김순호 구례군수는“야생화생태특구인 구례가 세계적인 야생화생태와 예술산업의 중심지가 되도록 육성해 나갈 것이며 야생화생태관광과 표본화사업 등 다각적인 협력을 강구 하겠다”고 말했다.   양정인 이사장은 “명장명인을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야생화를 비롯한 식물분야 아크릴식물표본화로 학술적인 자료와 구례군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자연생태와 문화예술산업을 육성해 나가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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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사랑의 미로 하권  이효녕 장편소설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나는 사람이 이성을 만나 사랑하면서 천차만별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랑이 운명에 따라 진화되는 것인 만큼 사랑의 길은 고달픈 여정의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고 여길 뿐이다.    나는 사랑이 생명현상(生命現狀)중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또 가장 숭고한 것으로서 다 같은 사랑이라도 육체의 결합을 목적으로 하는 사랑은 일시적인 존재를 인식하는 데서 그친다고 생각한다.    육체를 떠난다는 것은 결국은 동물적 본능을 떠난다는 말로서 육체를 떠나지 않기 위하여 정신적으로 사랑할 때에 그것이 비로소 황금색을 띤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 동정, 기쁨, 슬픔 등등 아주 부드러운 감정만으로 문학적 작품을 만드는 것을 말년에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에서 많이 접하는 것을 볼 수 있어, 내가 쓴 이 소설이 영향을 받은 것하고 무관(無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1989년에 시집 ‘바람으로 누운 갈대’를 가지고 문단에 나와 30여 년 가까이 시를 쓰면서 개인시집 20권, 동인시집 22권 거의가 사랑을 주재로 각인시킨 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고 김병걸 교수님에게 사사를 받으며 쓴 소설은 한참이나 위로 거슬러 196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4년 전 학보 창간호에 ‘생의 의미’를 발표한 뒤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소설가에 꿈을 버릴 수 없어, 단편소설 ‘덫’으로 월간 한맥문학을 통해 1995년 5월호에 등단하여 중·단편소설 30여 편을 남겼다. 창작한 중·단편소설 30여 편은 10여 편으로 나누어 ‘이브의 사과를 벗기는 여자’, ‘갈대는 지금도 흔들린다’, ‘그리고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로 3권을 묶어 이미 창작집으로 발간되었다.   또한 장편소설로는 한국 최초로 에이즈에 대한 소재로 한국에이즈연맹과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서 자문을 받아 쓴 ‘집시의 연인’은 월간 한맥문학 1997년 1월호부터 1999년 5월호까지 원고지 3000매를 가지고, 한 달에 원고지 100매 분량으로 30회를 연재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이어서 북부연합신문에 ‘도요새의 비가’로 다년간 연재를 마쳤다. 그러나 월간 문예지 글사랑문학에 연재하던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는 회사가 경영으로 어려워 중도에 연재를 마치지 못 하는 비운(悲運)을 맞았지만, 지금은 그 작품도 모두 완성되어 소중하게 간직하는 등 내가 쓴 장편소설들은 연재물이라는 관념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연재소설이라는 것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제한도 없이 이번 발표하는 ‘사랑의 미로’는 최근까지 5년여 가까이 쓰고 일 년여 가까이 수정을 하였기에 이 소설을 읽고 진실한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독자가 ‘사랑의 의미’를 터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 <머리말>                        - 차    례 -   서문  □ 이효녕 장편소설 『사랑의 미로』 하권 제8부  마음의 다른 풍경  제9부  슬픔 안에 작은 풍경  제10부 사랑은 영원히 잠들고  제11부 마음으로 떠도는 아픔  제12부 눈물로 바라본 추억  제13부 아름다운 사랑의 여정  제14부 달맞이꽃처럼 피어난 사랑  [2018.12.15 발행. 283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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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책
안무월 · http://dsb.kr
사랑의 미로 상권  이효녕 장편소설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나는 사람이 이성을 만나 사랑하면서 천차만별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랑이 운명에 따라 진화되는 것인 만큼 사랑의 길은 고달픈 여정의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고 여길 뿐이다.    나는 사랑이 생명현상(生命現狀)중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또 가장 숭고한 것으로서 다 같은 사랑이라도 육체의 결합을 목적으로 하는 사랑은 일시적인 존재를 인식하는 데서 그친다고 생각한다.    육체를 떠난다는 것은 결국은 동물적 본능을 떠난다는 말로서 육체를 떠나지 않기 위하여 정신적으로 사랑할 때에 그것이 비로소 황금색을 띤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 동정, 기쁨, 슬픔 등등 아주 부드러운 감정만으로 문학적 작품을 만드는 것을 말년에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에서 많이 접하는 것을 볼 수 있어, 내가 쓴 이 소설이 영향을 받은 것하고 무관(無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1989년에 시집 ‘바람으로 누운 갈대’를 가지고 문단에 나와 30여 년 가까이 시를 쓰면서 개인시집 20권, 동인시집 22권 거의가 사랑을 주재로 각인시킨 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고 김병걸 교수님에게 사사를 받으며 쓴 소설은 한참이나 위로 거슬러 196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4년 전 학보 창간호에 ‘생의 의미’를 발표한 뒤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소설가에 꿈을 버릴 수 없어, 단편소설 ‘덫’으로 월간 한맥문학을 통해 1995년 5월호에 등단하여 중·단편소설 30여 편을 남겼다. 창작한 중·단편소설 30여 편은 10여 편으로 나누어 ‘이브의 사과를 벗기는 여자’, ‘갈대는 지금도 흔들린다’, ‘그리고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로 3권을 묶어 이미 창작집으로 발간되었다.   또한 장편소설로는 한국 최초로 에이즈에 대한 소재로 한국에이즈연맹과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서 자문을 받아 쓴 ‘집시의 연인’은 월간 한맥문학 1997년 1월호부터 1999년 5월호까지 원고지 3000매를 가지고, 한 달에 원고지 100매 분량으로 30회를 연재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이어서 북부연합신문에 ‘도요새의 비가’로 다년간 연재를 마쳤다. 그러나 월간 문예지 글사랑문학에 연재하던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는 회사가 경영으로 어려워 중도에 연재를 마치지 못 하는 비운(悲運)을 맞았지만, 지금은 그 작품도 모두 완성되어 소중하게 간직하는 등 내가 쓴 장편소설들은 연재물이라는 관념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연재소설이라는 것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제한도 없이 이번 발표하는 ‘사랑의 미로’는 최근까지 5년여 가까이 쓰고 일 년여 가까이 수정을 하였기에 이 소설을 읽고 진실한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독자가 ‘사랑의 의미’를 터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 <머리말>                        - 차    례 -   서문  □ 이효녕 장편소설 『사랑의 미로』 상권 제1부 무지갯빛으로 넘치는 사랑  제2부 사랑의 기쁨과 슬픔 사이  제3부 이별의 시간은 다가오지만  제4부 슬픔이 날리는 세월  제5부 떠도는 마음 위로  제6부 떠나가는 길에 내리는 비  제7부 귀향의 시간 앞에 서서  [2018.12.15 발행. 290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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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맛집
김종영 · http://edaynews.com
영광군(군수 김준성)은 2018년 전라남도에서 실시한 음식문화개선사업 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상 사업비로 1,000만 원을 받는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이번 평가는 도내 22개 시군을 대상으로 음식점 위생등급제 시행과 안전한 외식 환경 조성 및 건강한 식단 실천, 지역특화사업 등을 포함한 음식문화 개선 사항에 대해 평가를 실시했다.   영광군은 평가에서 좋은 식단 이행, 음식점 위생등급제 활성화, 안전한 외식환경 조성, 나트륨 저감화 사업추진, 자발적 참여유도 등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   군은 안전한 외식환경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음식점 3대(깨끗한 음식‧환경복장) 청결운동 추진을 위해 일반음식점에 위생모 지급, 위생적인 덜어먹기 용품 보급을 추진하였고 자발적 위생‧친절 서비스 참여 유도사업의 일환으로 모범음식점과 좋은 식단 실천업소 영업자에 대한 선진지 견학을 시행하였다.   영광군은 앞으로도 “위생등급제 정착을 위한 위생용품 지원, 환경개선용품 지원과 함께 음식문화 개선을 위해 홍보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등 좋은 식단 정착과 자율실천으로 군민 식품위생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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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이지혜 · http://edaynews.com
울산 남구 청소년진로직업체험센터(센터장 박혜진)는 8일 남구청 6층 대강당에서 ‘체인지메이커 우수활동을 공유회’를 열어 한 해 동안 활동했던 내용을 선뵀다.   이날로 2회를 맞이한 우수활동 공유회에는 한 학기동안 진행된 체인지메이커 활동에 참여한 10개의 우수팀과 학부모 및 지도자 150여 명이 참여해 한 해 동안 활동했던 내용을 발표했다.   체인지메이커란 사회문제를 발굴·해결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토론과 협의하는 과정을 통해 학교 및 지역사회 내 문제나 변화되었으면 하는 내용을 선정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구상․실천하는 활동이다.   이 활동에 올해에는 남구지역 중학교 6개교(서여자중, 옥현중, 삼호중, 옥동중, 대현중, 월평중)와 공업탑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등의 소속동아리 29개 팀(총 149명)이 참여해 △망가져가는 머리카락 고치기 △등하굣길 안전대책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자유학기제 개선방안 △학교 체육복 개선안 등의 프로젝트를 펼쳤다.   김진규 남구청장은 “미래는 창의적 혁신 역량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며 “유관기관들과 협력해 청소년 체인지메이커 활동을 더욱 확대해가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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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시상식
강한빛 · http://edaynews.com
고흥군(군수 송귀근)은 12월 6일 군산 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3회 어촌마을 전진대회에서 해양수산부에서 실시한 국가어항 운영·관리 평가 최우수상과 시상금 1억 원을 받았다.   국가어항 운영·관리 평가는 2018년 기획재정부 재정개혁 과제인「국가어항, 지자체 관리노력도 평가제 도입으로 지역관광 거점으로 탈바꿈」의 이행을 위하여 해양수산부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평가제도이다.   평가항목은 현지 운영·관리 실태, 환경개선 추진, 운영·관리 예산 편성 및 홍보 실적 등 8개 항목으로, 1차 서류평가를 진행한 후 심층평가 대상 항목을 선정하여 2차 심층평가를 진행했다.   고흥군은 건어물판매장 이전, 노후시설물 철거 등 내실있는 어항 운영·관리와 녹동항 야간경관 사업, 고흥장어거리, 각종 행사 개최 등 특색있는 사업 추진 및 홍보 등을 통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고흥군은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국가어항 운영·관리 평가에서 주민들이 어항관리에 적극 협조해준 덕분에 최우수상을 수상한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며 “앞으로도 깨끗하고 다시 찾고 싶은 어항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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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바람하늘지기  김규화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바람도 눈에 안 보이고 시간도 눈에 안 보인다.   그러나 바람이 불므로써 바람의 정체를 알 수 있고 생물과 무생물이 낳고 변화하고 죽으므로써 시간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우주 만물은 시간에 이끌려 흘러가고 바람은 시간을 알리는 매체가 되어 지구상의 모든 사물을 어루만지고 있다.   어루만져지는 사물들은 바람에게서 그 이름을 받기도 하고, 그 의미를 따 오기도 한다.   이러한 바람을 테마로 하여 55편의 시를 한 데 묶었다. ― <머리말>       - 차    례 -   시인의 말     □ 바람 연작시 시계-바람·1  몸-바람·2 새해 첫날-바람·3  가루-바람·4  물결-바람·5  허풍-바람·6  비밀-바람·7  자리-바람·8  소용돌이-바람·9  얼간이-바람·10  산-바람·11  속빈 강정-바람·12  기념일-바람·13  무-바람·14  달력-바람·15  바람맞다-바람·16  묘사-바람·17  창문-바람·18  요람-바람·19  풍신제-바람·20  시답다-바람·21  바람 잡다-바람·22  바람 켜다-바람·23  바람세-바람·24  보람-바람·25  결-바람·26  쏙독새-바람·27  풍편-바람·28  바람꼭지-바람·29  바람공포증-바람·30  한 바람-바람·31  바람과 함께-바람·32  바람구멍-바람·33  바람기-바람·34  아네모네-바람·35  바람꽃-바람·36  바람등칡-바람·37  바람벽-바람·38  바람막이-바람·39  바람막이숲-바람·40  바람떡-바람·41  바람만바람만-바람·42  팔랑개비-바람·43  바람받이-바람·44  마르코폴로양-바람·45  바람서리-바람·46  바람비-바람·47  마네킹-바람·48  바람잡이-바람·49  바람의 숨-바람·50  바람의 장미-바람·51  바람총-바람·52  바람칼-바람·53  바람하늘지기-바람·54  바람집-바람·55  ● 해설  바람의 다양한 이미지가 펼치는 하이퍼시의 새로운 시적 공간 _ 심상운      [2018.12.10 발행. 121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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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시상식
강대의 · http://edaynews.com
지난 달 11월 30일 대한민국 전통한복발전연구회(회장 이미승 실크하우스원장)이 ‘2018 아시아스타마케팅컨벤션’에서 ‘2018 아시아인물대상’ 예술 부문상을 수상했다고 알려져 화제를 집중시키고 있다. (사)아시아인재과학원과 (사)국가브랜드진흥원 및 한국SNS기자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주)메인피디와 (주)코그미디어가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에는 지난달 11월 29일부터 30일까지 성남시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의 국가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는 것. 이미승회장은 전남과 광주지역에서 이미 남다른 안목을 가진 한복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뿐 아니라 동남아, 베트남, 호주, 베네수엘라, 브라질, 유럽 파리에 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사교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또 이회장은 항상 대한민국 현모양처의 표상인 신사임당을 마음속에 품고 사임당의 정신세계가 육아뿐 아니라 예술세계의 경지도 그 완성도가 높아 '사임당의 정신을 닮아가고자 이 지역의 여성과 아동 그리고 지역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후계세대를 위한 봉사를 이어왔다'고 전한다. 아울러, 이날 시상식에서는 '자랑스러운 아시아 인물대상',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한국인대상', '아시아 대표기업 브랜드대상'이 구체적인 훈격별로 엄정한 심사를 거친 후 시상되었다. 한편, 이날 행사 주무대의 패션쇼에서 화려하면서도 정감있는 한복을 '대한민국 전통한복 발전 연구회와 실크하우스에서 100여벌의 작품을 협찬한 것으로 알려져 국제급 매머드 행사에 미담이 되기도 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외에도 이미승회장은 2013년 ~2015년 국악경연대회 신영희국악인 한복기증 참여, 박수관 명창 동부민요 보존회 한복 기증공연 참여, 2016년~~2018년 한복 홍보대사 위촉 한문화진흥회 2016년 아제르바이잔 부대사가족 한복기증, 세게의상페스티발 참여, 우수 디자이너상수상, 글로벌 브랜드 대상 수상 2017년 WORD-KIMA 세계대회  한복후원 행사참여, 유엔합창단 70주년 한복쇼, 파나마부통령 한복기증, 세계의상 페스타발 참여 우수디자이너상 수상, 태국 한복미인대회 심사참여, 웨딩 트렌드쇼 참여, 브라질대사 부부 한복기증, 베네수엘라 가족 한복 기증, 세계의상 페스티발 참여 등으로 모두 감사장을 수여 받았으며 특히 올해엔 큰 상으로 '2018년 서울시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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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 운영사는 중개한 배달음식에서 이물이 발견되면 식약처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회를 통과했다. 6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이 이와 같은 내용으로 대표발의한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현재 배달앱을 통해 주문된 음식에 이물질 등 위생문제가 발생하면 배달앱 운영사는 소비자와 음식점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관계당국에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고 있다. 관계당국은 배달음식 위생사고의 발생여부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실태파악조차 할 수 없어 식품안전관리에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최도자 의원은 “배달문화와 방식이 변화하는데 위생관리와 관련된 제도와 법이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개정안이 법사위와 본회의도 하루 빨리 통과되어 정부의 배달음식 위생관리의 실효성이 향상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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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공모전소식
강대의 · http://edaynews.com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청년센터 the숲이 주관하며, 광주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청년 100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행사 첫째날인 7일 오후 3시부터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하는 5·18특별 세션을 시작으로, 정책회의, 탐색회의, 미래회의, 광주청년드림수당 공유회와 청년보고회 ‘파란만장’ 등이 진행된다. 정책회의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진행되며, 진로, 갭이어, 사회참여 거버넌스, 기본소득, NEET,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청년노동, 광주형 일자리 등 다양한 주제로 의제별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며 누구든지 원하는 주제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탐색회의는 7일에 진행되며 시민과 청년이 함께 만드는 청년도시 광주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는 장으로, 원탁테이블 형식으로 운영해 청년 누구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본 컨퍼런스의 메인 세션인 미래회의는 8일 오후 3시에 열리며 ‘일의 미래와 청년도시’를 주제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과 이원재 LAB2050 대표가 키노트 발제를 한다. 발제에서는 향후 10년에서 20년간 전개될 기술진보와 일의 변화로 인해 큰 영향을 받을 청년 세대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발제에 이어 문정은 청년센터장, 한상엽 SOPOOG 대표, 최서윤 작가 등이 토론자로 참여하는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8일 오후에는 광주청년드림수당 참여자 공유회가 진행된다. 공유회는 ‘현재와 미래를 이어준 시간들’을 주제로 청년들의 고민과 삶, 드림수당으로 인한 청년들의 변화된 삶을 엿보고, 지역 주도 청년수당 사업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청년보고회 ‘파란만장’도 이틀간 진행된다. 파란만장은 ‘신비한 청년사전’을 슬로건으로 전시물과 포토존, 고민상담 테이블이 운영되는 등 광주 청년들이 1년 동안 진행한 다양한 활동들을 전시하고 체험하는 박람회로, 지역 청년들의 활동과 관심사를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2018 청년도시 컨퍼런스는 다양한 실험과 정책에 대해 토론하며, 나아가 4차 산업혁명과 기술의 진보, 일의 미래를 고민하며 청년의 삶을 둘러싼 현실에 변화를 만들기 위한 장이자 이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자리다”며 “전국의 많은 청년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년도시 컨퍼런스는 전국 청년과 청년에 관심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 참조 및 문의 :  청년도시 컨퍼런스 홈페이지(www.youthcity.kr) 광주청년센터 the 숲(062-232-1939)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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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김 선 · http://edaynews.com
(재)전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 전남콘텐츠코리아랩이 ‘크라우드 펀딩 연계 전남 콘텐츠 상품기획 공모전’을 개최한다. 이번 공모전은 전라남도 문화자원 및 특화콘텐츠를 활용한 우수 상품을 발굴하고, 경쟁력 있는 지역 콘텐츠의 사업화 지원을 위해 마련됐다.    공모전은 지정테마와 자유테마 총 2개 분야로 나뉘어 진행된다. 지정테마 분야는 전남 지역‧관광, 문화‧예술, 생태‧정원을 활용한 콘텐츠 상품을 주제로, 자유테마 분야는 앞서 지정된 3개 분야 이외에 전남 문화자원을 활용한  신규콘텐츠 상품을 주제로 진행된다.     콘텐츠 분야 창업에 관심 있는 전남지역 만 19세 이상 누구나 개인 또는 팀을 이뤄 참여가 가능하며, 기업의 경우 창업 5년 이하의 기업에게만 응모자격이 주어진다.    수상작은 제출된 서류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1차 적격심사와 기획력‧창의성‧표현력‧사업성 등을 평가하는 평가위원단의 2차 서면심사 및 3차 발표심사를 통해 최종 선정될 예정이다. 순위에 따라 총 5개 팀을 선발해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며, 상위 2개 팀에 대해서는 크라우드 펀딩 론칭 기회도 제공된다.    접수는 오는 20일까지로 전남콘텐츠코리아랩 홈페이지(www.jnckl.or.kr)를 통해 온라인으로만 접수할 수 있다. 공모전과 관련한 기타 자세한 사항은 전남콘텐츠코리아랩 공모전 운영사무국(061-755-5041)으로 문의하면 된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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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지역사회 감염병 발생 감시․분석, 역학조사 등 감염병 예방관리에 전문적이고 신속한 대응체계 구축을 위한 ‘감염병관리지원단’이 5일 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감염병관리지원단’은 박병호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화순전남대병원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도청 민원동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최근 기후변화와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메르스, 지카바이러스 등 해외 풍토병 국내 유입 위험이 커지고 있으나 지역 실정에 맞는 감염병 관리 전문적 대응 체계가 미흡해 감염병관리지원단 설치 필요성이 대두됐다.   전라남도는 올 상반기 질병관리본부에서 추진하는 ‘시도 감염병관리지원단 운영 사업’ 공모에 선정돼 그동안 사무실 설치, 인력 채용 등 개소를 준비했다.   감염병관리지원단은 화순전남대학교병원과 협약해 위탁운영하며 감염내과 전문의를 단장으로 해 예방의학, 미생물학, 보건학, 간호학 등 전문 인력 11명으로 구성됐다. 매년 운영비로 국비 3억, 도비 3억 원이 지원된다.   지원단은 평상시 주요 감염병에 대한 정보 수집, 분석 및 정책 제안, 시군, 의료기관 등 감염병 대응 요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등을 추진한다. 감염병 위기 시에는 즉각 대응조직으로 전환해 현장 역학조사 및 상황실 업무 지원 등의 역할을 한다.   박병호 부지사는 “감염병 예방․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지원단이 설치돼 전남지역 감염병 대응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됐다”며 “도민을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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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책
안무월 · http://dsb.kr
기도의 바람 성령의 불 3  박성락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2012년부터 한소망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중심으로 감사특밤, 특별새벽 기도 때 설교 내용을 소재로 시를 써 “성령의 불 기도의 바람”이란 시집을 세 번째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16.12.26~17.12.31까지 1년 동안 주일마다 그리고 신년특별 새벽기도 때 위임 목사님의 명 설교에 감동되어 부족하지만 그 때 받은 은혜를 시로 표현하여 다시 한 번 성도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 도와주신 류영모 위임 목사님과 4속 윤성필 부목사님 외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 <머리말>      - 차    례 -    시인의 말  추천사  제1부 신년 특별새벽 기도 주 뜻대로  율법과 은혜  아버지의 사랑  승리한 싸움  용서  송구영신  율법에서 자유를  새 힘을 공급 받는 삶  즐거운 교환  죄책감으로부터 자유  우울증 치유  약한 자를 강하게  선한 싸움  제2부 주일 설교 약점도 아름답다  목양  네 나이 몇 살이냐  말 한마디  반석 위 교회  오직 복음으로  복음  이 나라를 살려 주소서  십자가 영성  전환점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흔적  부활이 없으면  그래도 주 사랑  성령과 거듭남  내 아이를 받으소서  에덴의 가정  먼저 가시는 하나님  판단  연약해서 도우신다  보리떡 교회  반반세기 하루같이  눈물로 메고 가는 법퀘  시간을 아껴라  심연 깊은 감사  은혜 위에 은혜라  동행  하나님 사랑  혈루증  불공평  좁은 길로 가라  바람이 전할 수 없는 복음  할까 말까  본향 가는 사람들  이 도시를 정복하라  핵무기  주 앞에 내가 섭니다  열매  내 실수를 선으로  임마누엘 하나님  신앙의 명가문  믿음의 명가문  능력과 무능  복의 근원  엘사다이  야훼 이례  [2018.12.10 발행. 71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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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4일 목포 샹그리아비치호텔에서 해상풍력 지역 상생 및 주민 참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제5회 전남 풍력산업 육성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는 성진기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해상풍력팀장, 전응철 코람코자산운용 사장, 오시덕 블루이코노미전략연구원 대표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포럼에선 세계 풍력산업 현황과 국내 해상풍력 전망 및 추진전략, 해상풍력 PF 사례 및 진단, 전력계통 수용 확대 방안과 신․증설 계획, 해상풍력 지역상생 모델 및 주민 참여 방안이 발표됐다. 지자체와 기업체의 애로사항 수렴과 정책 발굴을 위한 토론도 진행됐다.   주제발표에 나선 성진기 에너지기술평가원 팀장은 세계풍력산업 동향, 국내 해상풍력산업의 도전 과제와 추진 전략 등을 설명했다. 오시덕 블루이코노미전략연구원 대표는 풍력사업과 관련한 주민 갈등과 수용성 제고 국내외 사례를 발표하고 주민 참여 및 지역 상생을 통해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건섭 전라남도 에너지신산업과장은 “풍력사업에 민선7기 김영록 도지사의 역점시책인 도민발전소를 도입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도민 소득도 확대되도록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으며 이번 포럼은 해상풍력발전에 대한 관심과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라남도가 역점 추진하는 풍력산업 육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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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 http://edaynews.com
7월13일에 김일손은 노산대군(단종 1441∼1457, 재위 1452∼1455)의 일에 대하여 공초하였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3일 3번째 기사)    “사초(史草)에 이른바 ‘노산(魯山)의 시체를 숲속에 던져버리고 한 달이 지나도 염습(斂襲)하는 자가 없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서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와서 시체를 짊어지고 달아났으니,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 것은  최맹한(崔孟漢)에게 들었습니다. 신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쓰기를 ‘김종직(金宗直)이 과거하기 전에, 꿈속에서 느낀 것이 있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하고, 드디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썼습니다.” 노산대군의 시신에 관한 김일손의 공초는  신숙주 · 한명회가 편찬한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1457년(세조 3) 10월21일자 세조실록에는 “이유(李瑜 금성대군)는 사사(賜死 임금이 독약을 내려 자결하게 하는 일)하고, 송현수(단종의 장인)는 교형에 처했다. 노산(魯山)이 이를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산대군이 스스로 자살을 하여 예로써 장사를 지냈다는 것이 조정의 공식 입장인데, 김일손은 사초에 노산의 시신이 한 달 이상 방치되었다고 적었으니 이는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연산군 입장에서 보면 세조를 욕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면 김일손의 사초와 세조실록 중 어느 기록이 진실일까?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1457년 6월 말에 정국은 또 다시 들끓었다. 6월27일에 안동의 관노 이동(李同)이 경상도 순흥에서 유배중인 금성대군(세종의 여섯 째 아들)의 모반을 고변했다. 7월9일에는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한 것이 발각되었다. 이러자 9월10일에 신숙주·정인지 등은 금성대군과 노산대군을 사사(賜死)토록 세조에게 청했다. 10월16일에는 종친, 충훈부(忠勳府)·육조에서 노산대군과 금성대군의 처벌을 청했고, 10월18일에는 양녕대군·효령대군까지 나서서 노산군과 금성대군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이어서 10월21일에는 양녕대군과 영의정 정인지가 주동하여 종친과 대신들을 모두 동원시켜 노산대군과 금성대군 · 송현수 · 영풍군 등을 사사(賜死)하기를 청하였다. 이러자 세조는 금성대군은 사사하고, 송현수를  교형에 처했다. 노산(魯山)이 이를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지냈다는 것이 세조실록 1457년 10월21일의 기록이다.  그러면 세조실록이 사실일까? 단종이 자살한 것이 맞는가? 세조가 단종의 시신을 예(禮)로서 장사지낸 것일까? 후세 사람들은 단종은 자살 안 했다고 말한다. 중종 때 문신 이자(1480∼1533)는 『음애일기(陰崖日記)』에서 “실록에서 ‘노산군이 금성대군의 실패를 듣고 자진(自盡)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여우나 쥐 같은 무리들의 간악하고 아첨하는 붓장난이다. ‘실록‘을 편수한 자들이 모두 세조를 던 무리들 아닌가?”라고 혹평했다. 중종 때 문신 호조참의 이맥도 ‘단종은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일찍이 듣건대, 노산이 세조께 전위(傳位)하였는데 세조께서 즉위한 뒤 인심이 안정되지 않으므로, 부득이 군(君)으로 강등하여 봉하였다가 이어 죽임을 내렸다 합니다.” (중종실록 1516년 11월23일) 또한 인조 때 문신 나만갑은 『병자록(丙子錄)』에서 세조실록과 전혀 다르게 적었다.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나장(羅將)이 시각이 늦어지다고 발을 굴렀다. 왕방연은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으나, 왕방연은 대답을 못하였다. 통인(通引) 하나가 항상 단종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겼다. 그 때 단종의 나이 17세였다. 통인이 미처 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하였다. 시녀와 시종들이 다투어 고을 동강(東江)에 몸을 던져 죽어서 둥둥 뜬 시체가 강에 가득하였고, 이날에 뇌우(雷雨)가 크게 일어나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고 맹렬한 바람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검은 안개가 공중에 가득 깔려 밤이 지나도록 걷히지 않았다.” 한마디로 비운의 왕 단종은 1457년 10월24일 영월 관풍헌 앞마당에서 죽임을 당했다. 사진 19-1   단종의 묘, 장릉 (강원도 영월군)    아울러 세조실록에 “예(禮)로써 장사지냈다”는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단종의 시신은 방치되어 있었는데 고을 향리인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는 아들 3형제와 함께 미리 준비한 관을 지게에 지고 단종의 시신을 염습하여 영월 엄씨의 선산인 동을지산(冬乙旨山 현재의 장릉)으로 향했다. 주위 사람들이 역적을 비호했다고 화를 입을 것을 염려하여 간곡히 말렸으나,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가 그 어떤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라고 말하면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 이때는 음력 10월 하순이어서 산에는 이미 함박눈이 쌓였고, 날씨는 추웠다. 엄흥도는 잠깐 쉬려고 하는데, 갑자기 노루 한 마리가 사람들의 인기척에 놀라 달아났다. 노루가 달아난 자리를 보니 눈이 녹아 있었다. 엄흥도는 이곳에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조금 있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깊은 산속으로 가려고 하자 관이 얹혀 있는 지게가 움직이지 않았다. 엄흥도는 ‘이곳이 명당인가 보다’고 생각하면서 노루가 앉아 있던 그 자리에다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묻고서 종적을 감추었다. 19-2  엄흥도 정려각 안내문    19-3  엄흥도 정려각 한편 현종실록 1669년 1월5일자는 단종 죽음에 관한 진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노산군이 살해당한 후 아무도 시신을 거두어 돌보지 않았었는데, 그 고을 아전 엄흥도가 곧바로 가서 곡하고, 관곽을 준비해 염하여 장사를 치렀으니, 지금의 노산군 묘가 바로 그 묘입니다.” 역사기록을 너무 믿지 마라. 가짜도 있다. 조선왕조실록도 때로는 사실(Fact)을 왜곡하기도 한다. 한편 노산대군의 시신에 대하여 공초한 김일손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신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쓰기를 ‘김종직(金宗直)이 과거하기 전에, 꿈속에서 느낀 것이 있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하고, 드디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썼습니다.” 조의제문은  서초패왕 항우에게 살해된 초나라 의제(義帝)를 조문하는 글인데 김종직이 1459년 과거에 급제하기 전인 1457년 10월에 지었다. 조의제문의 첫 부분을 읽어보자. ‘정축 10월 어느 날에 나는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踏溪驛)에서 자는데, 꿈에 신(神)이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손자 심(心 의제)인데,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에게 살해 되어 빈강(郴江)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김일손은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고 사초에 기록하고는 조의제문 전문을 수록했다.    충분(忠憤)은 충의분발(忠義憤發) 즉 충의로 인하여 일어나는 분한 마음 이다. 김일손이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했으니 유자광이 눈치 못 챘을 리 없다. 유자광은 ‘충분’에 착안하여 조의제문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드디어 2일 후인 7월15일에 조의제문이 전면 등장한다.       19-4 밀양 예림서원 19-5 예림서원 안내문   19-6 예림서원 입구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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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책
안무월 · http://dsb.kr
가시버시의 굴레  초연 김은자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개천절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조교로 있다가 고등학교 교사를 초빙하러 온 마산교장선생님을 만나 처음으로 제일여고에 부임한 날이라 잊지 않고 있다. 남편을 잃은 날이 이상하게도 개천절 날이다. 문병선 교수님이 외아들을 소개하시며 나를 일본 교토대학에 유학시켜 주시면서 맺어진 그를 하늘나라에 보낸 날이다. <가시버시의 굴레>를 대한민국에서 홀로 남겨진 여인이 문자로 묶은 열 번째의 시집이다. 대한민국의 대(大)는 크다는 뜻이고 한(韓)은 무한대의 의미를 담고 있듯이 슬픔도 무량하다.   그의 유학시절의 애환을 회상하면 가슴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모든 고생을 이겨내며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곳에서 정년을 마치고 79세를 살다가 모교의 장례식장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제자들과 지인들의 추모를 받으며 이승을 떠난 나의 지아비다. 그의 동료들은 아직도 살아있건만 그렇게 오랫동안 투병을 하면서 떠나야만 했던 그를 돌보던 나에게 그 고통이 문학으로 승화되는 터전을 마련하고 갔다. 포항제철의 석좌교수를 지내면서 충분한 연구비로 모교에 기여한 후광을 추모객 중에서 읽을 수 있었고, 조문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남자 분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사는 동안 잘살아온 남편이라 생각했다.   지금 49제를 지내면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도하는 중간이 되는 4제되는 아침이다. 날씨는 점점 싸늘해지는데 제단에 있는 영정사진은 이마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 보인다. 정을 떼려고 마지막 두 달은 참으로 힘들게 했던 그는 공휴일 낮에 작은 아들 부부가 문안 온 후에 임종을 지킬 수 있게 했다. 큰 아들은 전날에 왔었는데, 그렇게 싫어하던 병원이 아닌 집에서 희망하던 대로 부처님의 품으로 갔다. 그의 성품대로 좋은 날씨에 저 세상으로 갔고 주말이라 모든 일정이 순조로웠다. 자식 삼남매가 모두 짝을 맺었고 손자 손녀들이 있고, 나는 아직 건강하니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을 게다. 명복을 빌어주는 화환이 복도에 넘쳐 사회각층의 리본을 벽에 붙이는 작업을 해야 했고, 밤이 이슥토록 문상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머리 숙여 합장하며 감사드린다. 이제 창작하는 글을 지아비 삼아 남은 생을 살아야하는 숙명을 시집으로 낳는다.  ― <머리말>         - 차    례 - 머리에 두는 글  제1부 가시버시의 굴레 가시버시의 굴레  그대 사랑  그이가 남겨준 것  기도의 피안  가을의 전언  가을이 만지고 간다  곡기를 끊다  만추의 가시버시  어울림의 능선  슬픈 전동 침대  제2부 윤석환 박사의 6행시 윤석환 박사의 6행시  거짓 없는 고백  길상사 새벽기도  나를 덜어내다  마주침  오이냉국  작은 행복을 찾아  코 베어 가는 자  호박 능력  푸새하는 마음  제3부 기다립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을  혼자  임의 자리  임은 가셨다  어느 명절에  초제  바람이 스치듯이  솔릭 태풍  아들이 다녀가면  위로를 휘감고  제4부 불꽃이여 불꽃이여  수상의 기쁨  가을 통증  그가 떠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대에게  그들의 말  눈을 못 감는다는 말  단풍잎 악보  모두 멀리 있다  덫칠  제5부 빈말 빈말  묵시적 약속  비우러 간다  반갑던 손자들  산수傘壽의 문우  삼제를 지내며  수안보 온천  시아버님  언어의 두께  ‘정 구업’ 진언  제6부 수다로 때우는 고독한 가을밤 수다로 때우는 고독한 가을밤  재화의 덫  자랑 질  정포瀞浦  오늘은 2제  중간에 온 사십 구제  하나  나의 보람이 피는 아침  흑다우 성찬  해킹의 상처  ●  서평  [2015.12.05 발행. 100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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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수상소식
강대의 · http://edaynews.com
대구시는 2017회계연도 결산에 대한 시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민이 알기 쉬운 결산요약보고서’를 작성하여 시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 올해 지방선거와 제8대 시의회 구성으로 9.18.자로 결산승인  이번 결산요약보고서는 기존 결산서의 복잡한 구성과 체계를 벗어나 그림이나 그래프를 활용하여 시민들이 결산 핵심정보를 한눈에 볼수 있도록 하고, 어려운 회계용어는 사례를 통해 쉽게 설명하였다. 대구시는「시민이 알기 쉬운 결산보고서」를 통해 우리시 살림살이 규모와 재정운영 성과를 시민들에게 알려 보다 많은 시민들이 市 재정운영에 관심을 가지고 한 단계 더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추진한‘시민이 알기 쉬운 결산보고서 공모’에서 대구시가 인천, 대전, 경기, 충남과 함께 5개 우수 광역자치단체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대구시 진광식 자치행정국장은 “결산담당자가 아니면 공무원들조차 복잡한 체계와 방대한 분량의 결산서를 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권리가 있는 시민에게 이해하기 쉬운 결산자료를 제공하고, 내년에는 온라인 게재는 물론 소책자를 제작․배부하여 시민 스스로 지방재정 운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대구시는 ‘제1회 한국 지방자치단체 회계대상’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시상식은 오는 12일 행정안전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될 예정이다.        회계대상은 지방자치단체 결산서 품질향상과 공공부문 회계투명성 제고 및 지방재정을 모범적으로 운용하고 그 결과를 지역민에게 투명하게 알린 자치단체를 적극 발굴‧홍보하기 위해 지난 두 달간 추진되었다. 각 지자체별 결산관련 환경분석, 결산결과 공시품질, 결산서 활용 및 관심도 등을 설문과 구두 질문, 결산서등 공개자료 확인 등을 통하여 6개 광역, 11개 기초 자치단체를 선정하였다.   ※ 대상(제주), 우수(경기), 장려(대구, 강원, 충남, 전북) 대구시 이상길 행정부시장은 “이상 두 개의 우수기관 선정으로 우리시가 효율적 재정운용과 회계 투명성 확립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어 열악한 재정환경에서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앞으로도 회계운용 결과를 시민이 이해하기 쉽게 작성하고 알려 행복한 시민 자랑스런 대구 건설에 적극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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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농업박물관(관장 이종주)이 오는 8일 영산호관광지 농업테마공원에서 일반인과 다문화가족, 초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전국 민속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연날리기 대회’는 남도의 전통 민속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농업박물관을 널리 알려 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식전행사, 개막행사, 본 행사, 부대행사 등으로 나눠 진행된다. 식전행사에선 서울, 경남 등 전국의 전통 연 연구가 10명을 초청, 줄 연과 단독 연 5종의 창작 연날리기 시연을 벌인다.   액막이 연날리기에서는 초청 내빈 가운데 약 10여 명이 ‘내 삶이 바뀌는 전남 행복시대’나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문구가 새겨진 액막이 연을 날리며 올해의 나쁜 액을 보내고 새해 복을 기원한다.   이어 가장 관심을 끄는 연날리기 경연에선 일반부와 다문화·학생부로 나눠 일반부는 연줄 끊기, 다문화·학생부는 멀리․높이 날리기를 실시해 순위를 결정한다. 각각 A․B조로 나눠 단판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시상금은 일반부 1위 100만 원, 2위 50만 원, 3위(2명) 20만 원, 장려상(4명) 10만 원이며 왕위전(일반부) 1위는 30만 원이다. 또한 다문화부와 학생부는 1~3위 각 1명씩 10만 원 상당의 상품권과 상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부대행사로 전국에서 참여한 초등학교 1~6학년생 약 50명을 대상으로 ‘연 만들기 체험’을 한다. 이순신 신호연을 비롯한 전통 연, 호남 연 등 총 100점의 다양한 종류의 연 전시회도 열린다.   참가 접수는 개인 또는 단체로 대회 당일 현장에서 하며, 참가비는 일반부 1만 원, 다문화부·학생부는 무료이며 자세한 사항은 전라남도농업박물관 누리집(www.jam.go.kr)을 참조하거나 농업박물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이종주 관장은 “해마다 전국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우리 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전국 연 애호가는 물론 도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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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 http://edaynews.com
러시아 에르미타시 박물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림은 렘브란트(1606∼1669)의 ‘돌아온 탕자’이다.  렘브란트가 죽기 직전인 1668-1669년에 그렸다. 1) ‘돌아온 탕자’는 『신약성서』 누가복음 15장에 근거한다. 세리(稅吏)들과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 들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죄인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는 것에 못 마땅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세 가지 비유로서 말씀하셨다. 첫째는 백 마리 양에서 다시 찾은 양 한 마리, 둘째는 은전 열 닢 중 되찾은 한 닢, 셋째는 돌아온 탕자이다. 2)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을 미리 받아서 고향을 떠났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흉년까지 들어 알거지가 되어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그는 못 견디고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라고 말하며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누가복음 15장 11-25절) 그러면 그림을 자세히 보자. 빛은 아버지와 돌아온 탕자에 집중되어 있다. 소위 렘브란트 조명이다. 나머지는 거의 어둠으로 처리되어 있다. 사진 15-1 돌아온 탕자 돌아온 탕자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  누더기 옷을 입고 닳아진 신발 뒤축으로 물집 잡힌 시커먼 발바닥을 드러낸 아들의 모습은 오갈 데 없는 처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붉은 망토를 두른 늙은 눈 먼 아버지는 아들을 감싸 안으려는 듯 앞으로 몸을 굽히고 아들의 등과 어깨에 두 손을 대고 있다. 아버지 모습에는   부정(父情)과 관용이 느껴진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옷의 색상은 비슷하여 화합과 일치의 순간을 보여준다.   사진 2  탕자와 아버지 (확대 사진)   한편 맨 오른편에 붉은 망토를 하고 두 손에 지팡이를 집고 서 있는 사람은 큰 아들이다. 그는 동생을 환대하는 아버지가 매우 못 마땅한 표정이다.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항의를 했다. “아버지, 저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에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잔치를 베풀다니요!”(누가복음 15장 29–31절) 3) 한편 그림에는 세 명이 어둠 속에서 탕자와 아버지의 재회를 지켜보고 있다. 앉아서 가슴을 치고 있는 모자 쓴 남자, 뒤 쪽에 서있는 여자, 그리고 컴컴한 어둠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여인. 이들의 시선은 담담하다. ‘돌아온 탕자’의 주제는 회개와 용서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렘브란트의 삶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림은 렘브란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절제 하게 방탕하게 살다가 1656년에 파산 선고를 받아 비참하게 지낸 렘브란트. 말년의 식사는 빵과 치즈 그리고 절인 청어가 전부였다. 더구나 그는 1663년에 사랑하는 여인 헨드리케를 잃고, 1668년에는 외아들 티투스마저 죽었다. 1669년 10월4일에 렘브란트는 63세의 생을 마감한다. 그의 이젤에는 ‘아기 그리스도를 안은 시몬’이 미완성인 채로 걸려 있었다. 10월8일에 렘브란트는 조문객 없이 암스테르담의 베스테르케르크 묘지에 쓸쓸히 묻혔다. (계속됩니다.) 1) 이 그림은 예카테리나 여제(재위 1762 ~1796)가 1767년에 프랑스 파리 아메쥬네 백작으로부터  구입했다.    2)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사람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한다.  (누가복음 15장 7절) 3) 큰 아들의 투덜거림에 아버지는 말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5장 31-32절)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뉴스등록일 : 2018-12-03 · 뉴스공유일 : 2018-12-03 · 배포회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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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까미쓰네오 · http://edaynews.com
 방금 소개받은 무라카미 츠네오입니다. 이번에 저와 함께 온 저 분은 다나에 츠토무씨입니다. 일본 에히메현 오즈시에서 왔습니다.  지난해 상사화가 한창이던 내산서원에서 심포지움을 끝내고 오즈시로 돌아온 지 1주일 뒤에 한국에서 26명의 단체가 오즈시를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오즈성에 있는 강항선생 현창비를 안내하였습니다. 그 단체는 영광군의 농업관련 종사자들로 일본의 농업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일곱 번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지요. 방문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서로를 배우고 교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국제교류 및 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강항선생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고달팠지만, 교토에서 만난 후지와라 세이카로 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가르쳐드리죠"라고 답한 것은 유학자 강항선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오늘 한국 방문이 여덟 번째입니다. 모든 것이 낯익은 풍경입니다만 올해는 각별한 감격이 있습니다. 그 것은 금년이 일본에 유교를 전한 수은 강항선생이 돌아가신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항선생을 알게 된 것은 34년 전인 1984년 6월입니다. 오즈 시청에서 교육위원회 문화계를 맡고 있을 때 오사카에 사는 재일교포 신기수씨를 대표로 하는 그룹에서 강항선생 기념비를 오즈성에 세우고 싶으니 부지를 제공해 주었으면 한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강항이라는 사람이 교토에서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유교를 전한 그의 업적이 간단하게 쓰여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즈시에서 발행하는 잡지 ”'오즈시지'를 읽어보니 한자 이름은 '쿄우코'라고 일본식 후리가나가로 되어 있었으며, 오즈성 토도 다카도라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조선을 침략했을 때 포로로 잡혔던 인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오즈시내에서 제일 비싼 땅인 오즈성터의 일부분을 제공하려면 나름대로 현저한 공적이 있는 인물이어야만 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기념비 건립에 적합한 인물인지를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난처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 박물관에서 복사를 했다며 서류를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4세기 전에 강항선생이 쓴 '간양록' 이었습니다.  어려운 한문은 사전을 참고하면서 읽는 도중 내 등골이 오싹함을 느낄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인물이야말로 일본에 유교를 전파하고 일본 교육·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공로자임을 알게 된 것이죠. 저는 '유학자 강항과 오즈'라는 논문을 써서 기념비를 오즈성에 세우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강조를 하였으며 부지제공을 승인해야 한다고 기안했습니다. 다행히 시장, 교육장 그리고 의회도 이것에 찬성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기념비 건립의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건립비 모금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987년 7월 뜻밖에 한국 경주의 동국대 교수인 오영진, 장충식 교수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한일 문화교류에 대해 연구하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강항선생과 관련된 자료를 건네주고 유적을 안내하자 일본어과 오교수로부터 한국방문을 권유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여권을 발급받고 다음달 8월 대학교수의 안내로 서울에서 전주, 광주, 영광, 경주로 5일간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광주 박물관에서 이을호 관장을 만났고, 영광에서는 강씨 후손 분들을 만나 내산서원을 찾았습니다. 뒷산 있는 강항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일본 교육 문화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에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서원에 비치된 방명록의 명단을 넘기자 일본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일본에는 강항선생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한편, 현창비 건립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1990년 3월 11일, 벚꽃이 만개한 오즈성에서 한국인 참석자 32명을 포함 약 160명이 참석해 제막식을 하였습니다. 마스다 요이치 오즈시 시장은 축사를 통해 “강항선생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두 나라의 인연을 맺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즈시가 이렇게 한일 양국의 친선을 도모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공무원의 숙명으로 그 때에 발령이 나 다른 부서로 전근이 되어 다른 업무를 하였습니다만, 강항선생 연구자로서 기념식장의 맨 끝자리라도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강항선생이 여기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했다는 기록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됐습니다.  이 기념비 건립을 계기로 강항선생의 이름이 일본의 매스컴에 소개되는 일이 잦아졌으며, 한국에서도 큰 화제 거리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즈성 기념비를 찾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한국에서도 강씨 가문, 영광군, 광주시 등의 고향사람들과 학자, 연구진 등 많은 사람의 방문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윤홍식씨가 계십니다. 바로 이분이십니다.  강항선생이 쓴 일본에서의 포로생활(日本幽囚)의 기록을 편집해 출판한 제자 윤순거씨의 13대 후손이 되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윤씨는 조상의 뜻을 이어 강항선생의 공적을 현창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해 오즈시장에게 한국을 방문하도록 권했습니다. 시대를 뛰어넘고 해를 거듭하여도 은사를 현창 하려는 師弟간의 깊은 정의 모습에 감동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 도착한 편지가 이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큰 글씨로 된 초대장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글은 읽을 수 없습니다만, 이 한자라면 압니다. "明春靈光春享擧行, 責任案內安心來韓 -- 내년의 봄 영광에서 춘향제가 거행됩니다. 책임지고 안내할 테니 안심하고 한국에 오세요. 라고 읽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오즈시장이 한국행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이전의 침략자, 토도 타카토라의 출신지 사람의 방문을 받아 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보고 처음으로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동행은 시의회 대표의 오모리 부의장, 교육위원회 대표의 쿠보타 교육장, 그리고 먼저 한국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던 시민 과장인 저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인 1991년 봄 4월 15일, 저희는 김포공항에 내렸습니다. 거기에 '환영 오즈시장님'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마중을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진주 강씨 종회 회장 강기천씨로 부터 그날 밤 서울에서 환영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차로 광주시에 도착해서 코리아나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호텔 경영자이자 강자희선생의 후손인 강대직씨가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환영인사가 있었습니다. 모두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하면서도, 즐거운 밤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날 공교롭게도 비가 왔지만, 승용차로 영광군을 향해 군청을 방문했습니다. 정말 긴장의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다음 순간 우리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커다란 탁자 한가운데에 한국과 일본의 국기가 굳게 묶여 장식되어있는 것을 보았어요. 정 군수님으로 부터 환영의 인사말씀을 듣고, 간담회를 마친 후 내선서원으로 서원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에는 유림복장차림으로 참배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매스컴의 기자들도 기다리고 있어 취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식이 시작되자 우리들은 익숙해지지 않는 예법에 당황하면서도 확실한 것은 지난 400년 동안 일본인으로써 처음 참가한 식을 끝냈습니다.  마스다 시장은 답사를 하기 위해 일어나서 “일찍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오즈성 토도다카토라가 이 땅을 침략한 과오를 사죄하고 강항선생이 일본의 교육 화의 발전에 공헌한 공적을 기리고, 향후 교류를 하자고 호소했습니다. 이 말은 윤홍식씨의 통역으로 참가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인사가 끝났을 때 는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여행 중에 일본어로 안내하던 한국의 젊은 여성 가이드는 마스다 시장의 인사를 듣고 일본인을 오해했어요. 부끄럽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마스다 시장의 방문은 당일 테레비젼에 방송되고, 그 후엔 각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봇물 터지듯 한국 방문이 시작돼 행정단체, 시내학교장 등 교육관계자, 청년회의소와 함께 온 어린이 스포츠클럽, 오즈고등학교 수학여행 단체, 그리고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는 이마지시, 미에현 쯔시의 상공회의소 등등 방문이 이어졌습니다.   저에게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일본에 강항선생의 공적을 소개하는 책자가 없으니 신기수씨로 부터 제의를 받아 공동으로 집필을 하고 1991년에 “유생 강항과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아카이시출판사에서 출판했습니다. 중앙 언론에도 소개가 되어 갑자기 바빠지고, 공무원의 일과 양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해인 1992년 3월, 3년 남은 정년을 기다리지 않고 시청공무원을 의원 퇴직했습니다.    갑자기 직업도 없어지고 수입도 없어져 마누라한테 몹시 혼났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역사의 작가로써 감동과 흥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1999년, '강항·유교를 전한 포로인의 발자취'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이번을 포함해 한국을 8번 방문했지만, 2년 전에는 예상치 못한 명예를 얻었습니다. 앞서 발행했던 책이 번역되어 한국에서 출간된 데 이어 '서울언론인 클럽 상'에서 외국인 특별상'으로 선정됐습니다. 저가 이 영예로 인하여 강항선생의 공적이 한국 내에서도 널리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시상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오즈 시에서는 중학교 부독본을 제작해 일본 유학의 영향을 미쳤다는 강항선생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지방의 작은 시에서의 일입니다만, 언젠가는 일본의 교과서에 그리고 역사책에 빛나게 등장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저는 시청 직원으로써 평범한 삶의 끝자락에서 강항선생을 만나고 작은 연구를 계속하면서 오즈시와 영광, 나아가 일본과 한국의 우호친선에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더욱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2001년 3월 영광에서 개최된 심포지움 때 내빈으로 참석한 국회의원이 유창한 일본어로 저에게 말을 건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이낙연 의원님이었습니다. 저는 기쁘게도 일본어가 능숙한 분이면 읽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일본어로 된 책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 권 더 넣고, 이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드려 달라고 부탁한 결과, 이런 대답이 왔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굉장히 기뻐하셨다고 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 의원은 그 후 전라남도 지사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오즈의 강항선생 현창비를 두 번이나 방문하셨고 제가 안내를 했습니다.  고향의 대한 자부심으로 존경받고 계시리라 짐작됩니다. 그때 오즈성에서의 사진입니다.  그 지사님이 작년 5월의 정변에 의해 수상에 취임하게 된 것입니다. 국제관계가 힘든 시절이지만 언젠가 일본에 다시방문 했을 때 이 총리로부터 어떤 말이 나올까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혹시 3번째 오즈를 방문하는 일이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되면 강항선생도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날을 꿈꾸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한 번 일본의 교육, 문화를 위한 대 은인이신 수은 강항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그 고장 영광군이 평화롭고 풍요롭게 발전하기를 기원하며 여러분의 복을 기원하며 저의 인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鴻儒 睡隱 姜沆先生 顯彰碑 建立 背景 村上恒夫會長(睡隱姜沆先生日本硏究會)  御紹介いただきました村上恒夫です。一緒に参りましたのは田苗勉さんです。日本の愛媛県大洲市から参りました。  昨年、彼岸花が真っ盛りの内山書院でのシンポジュームから帰ってわずか1週間後、韓国から26人の団体が大洲を訪問され、私が大洲城の姜沆先生顕彰碑を案内しました。その団体は霊光郡の農業関係の方々で、その目的は日本の農業技術を学ぶためと聞きました。  私はこれまでに7回韓国を訪問しております。歴史を学ぶためです。目的は様々ですが、お互いに学びあって交流する――。まことに喜しい現代の国際親善の姿であります。  かつて姜沆先生が日本に渡ったその過程は、まことに悲しいものでありましたが、京都で藤原惺窩から「教えてください」と求められたとき「教えましょう」と答えた、儒学者としての姜沆先生の心が理解できるところです。  さて、今日8回目の韓国訪問を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見慣れたこの風景でありますが、今年は格別の感激があります。それというのも、本年は日本に儒教を伝えた睡隠姜沆先生が亡くなられてからちょうど四〇〇年の記念の年であるからです。  私が姜沆先生を知ったのは、34年前の1984年6月のことであります。大洲市役所に勤め、教育委員会の文化係りを担当しているとき、大阪に住む在日韓国人の辛基秀さんを代表とするグループから、姜沆先生の記念碑を大洲城に建てたいので土地を提供して欲しいとの手紙が届きました。手紙には姜沆という人物について、京都で藤原惺窩に儒教を伝えたとその業績が簡単に書いてありますが、細かな内容は分かりません。  『大洲市誌』を読むと、名前の文字に「きょうこう」と日本語読みの振り仮名がついて、大洲城主藤堂高虎が豊臣秀吉の命令で朝鮮を侵略したとき捕虜にした人物として、わずか九行の記事が載っていました。   市内の一等地である大洲城跡の一角を提供するには、それなりの顕著な功績のある人物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知る限りの資料では記念碑を建てるにふさわしいかどうか説明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私は困りました。  そこへ、韓国のソウル博物館でコピーをしたとして、この書類を持って来た人がありました。4世紀年前に出版された姜沆先生が書いた『看羊録』であります。むつかしい漢文の文字を辞書を参考にして読むうち、私は背中に冷たい水を浴びせられたような衝撃を受けました。この人物こそ日本に儒教を伝え、教育・文化の発展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功労者であることを知ったのです。  私は『儒者姜沆と大洲』と題する論文を書いて、記念碑を大洲城に建てるのは意義のあることと強調して、土地の提供を承認するよう起案しました。幸いに教育長・市長、そして議会もこれに賛同しました。こうして、記念碑建立の機運は一気に高まり、資金の募集活動が始まったのです。  その後1987年7月、思いがけなく韓国から、慶州の東国大学教授の呉英珍・張忠植両教授の訪問がありました。韓日の文化交流について研究に来られたとのことでした。私が姜沆先生について書いた資料を渡し、遺跡を案内すると、日本語科の呉教授から、韓国訪問を促されました。私は初めてパスポートを取得して、翌8月、大学教授の案内で、ソウルから全州・光州・霊光・慶州と5日間の旅に出ました。光州博物館で李乙浩館長に会い、霊光では姜家の子孫になる方と会い、内山書院を訪ねました。裏山の姜沆先生の墓を参拝して、日本の教育文化の淵源の地はここであったかと感慨深いものを覚えました。しかし、書院に備えられた見学者名簿をめくると、日本人らしき名前を見る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残念ながら、まだ日本には姜沆先生の名は知られていなかったのです。  一方、顕彰碑建立事業は順調に進み、1990年の3月11日、満開の桜が咲く大洲城に、韓国からの出席者32名を含む、およそ160名が参加して完成を祝いました。桝田与一大洲市長は祝辞を寄せ、  「姜沆先生は時代を越えて、今も両国のきずなを結ぶ役目を果たしておられるものと思います。――大洲市がこうして日・韓両国親善のはしわたしの役をになうことのなり得るならばまことに光栄なことであると思います」 と述べました。  私は公務員の宿命で、そのときには転勤になり別の職場に変わっていましたが、姜沆先生研究者として式典の末席に連なることができ、かつて姜沆先生がこの場所から西の空を眺めて慟哭した記録を思い、万感胸に迫るものを覚えました。  この記念碑建立を機会として、姜沆先生の名が日本のマスコミに取り上げられることも多くなりました。また、韓国でも大きな話題となったと聞かされました。そして、大洲城の記念碑を訪ねる人がありました。韓国からも一族の方、霊光郡、光州市など故郷の人々、学者や研究グループなど多くの来訪がありましたが、その中に尹洪植さんがありました。この方であります。  姜沆先生が書いた日本幽囚の記録を編集して出版した、弟子の尹舜擧さんの13代子孫になる方と聞きました。  尹さんは、先祖の意志を継いで、姜沆先生の功績を顕彰しようと日本を訪れ、大洲市長を尋ねて韓国を訪問するよう勧められました。時代を越え、年代を重ねて恩師を顕彰しようとする師弟愛の姿に感動させられます。  その後に届いた手紙がこれであります。私はこれまで、このような大きな立派な字の招待状を受け取ったことがありません。残念ながらハングル文字は読めませんが、この漢字であれば分かります。  「明春霊光春享挙行、責任案内安心来韓――来年の春、霊光において春の祭りが挙行されます。責任をもって案内しますから安心して韓国へ来て下さい」 と読めます。  実はそれまで、大洲市長は韓国行きをためらっておりました。かつての侵略者、藤堂高虎の出身地からの訪問が受け入れられるか、という不安があったからであります。しかしこの手紙を見て、初めて韓国行きを決心しました。同行は市議会代表の大森副議長、教育委員会代表の久保田教育長、そして先に韓国を訪問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市民課長の私も加わることになりました。  翌年、1991年春4月15日、私達は金浦空港に降りました。そこに「歓迎大洲市長様」と書いた紙を持つ人の出迎えに驚きました。晋州姜氏宗会会長姜起千氏で、その夜はソウルで歓迎を受けました。  そして翌日、車で光州市に到着してコリアナホテルに入りました。そこにはホテルの経営者であり、また姜沆先生の子孫と聞く姜大直氏が夕食の席を設けて待っていてくださいました。そして暖かい歓迎の挨拶がありました。何もかも予想外のことに戸惑いながらも、楽しい夜を過ごしました。  翌日、あいにくの雨となりましたが、車で霊光郡に向かい、郡役所を訪問しました。まさに緊張の一瞬でした。  しかし次の瞬間、私達の心はなごみました。大きなテーブルの中央に、韓国と日本の国旗が固く結んで飾ってあるのを見たのです。  丁郡主から歓迎の言葉を受け、懇談のあと内山書院に向かいました。そこには儒服で参列する人があり、また、マスコミの記者が待ち構えていて取材が始まりました。そして式が始まり、私達は慣れない作法に戸惑いながらも、まさに四〇〇年を経て、初めて日本人が参加する式典を終えました。  桝田市長は挨拶に立ち、かつて豊臣秀吉の命令で大洲城主藤堂高虎がこの地を侵略した過ちを謝罪し、姜沆先生が日本の教育文化の発展に貢献した功績をたたえ、今後の交流を呼びかけました。この言葉は尹洪植さんの通訳で参加者に伝えられました。挨拶が終わったとき、参加者から大きな拍手がありました。  私達の旅行中、日本語で案内をしていた韓国の若い女性ガイドは、桝田市長の挨拶を聞いて 「日本人を誤解していました。恥ずかしいです」 と言って涙を流したことを覚えております。  この桝田市長の訪問は当日のテレビジョン、その後の新聞で大きく報道されたと聞きました。  その後、堰を切ったように韓国訪問が始まり、行政の団体、市内の学校長など教育関係者、青年会議所に引率された子供のスポーツクラブ、大洲高等学校の修学旅行の団体、また、朝鮮の役に関係のある今治市、三重県津市の商工会などが、次々と訪問していることを知りました。  私の身にも変化がありました。まだ日本に姜沆先生の功績を紹介する図書がないとき、辛基秀さんに促されて共同で執筆して、1991年に『儒者姜沆と日本』と題して明石書店から出版しました。中央のマスコミにも紹介されたことからにわかに忙しくなり、とても公務員の仕事と両立することが不可能と知り、翌1992年3月、3年後の停年を待たずに市役所を依願退職しました。   たちまち無職無収入となり、女房には大変怒られました。しかし後悔はしておりません。歴史作家として感動と興奮の毎日を過ごしております。  そして1999年、2冊目として『姜沆・儒教を伝えた虜囚の足跡』と題して出版致しました。  先にも申し上げました通り、私は今回を含めて韓国を8回訪問しましたが、2年前には予想もしていない名誉を受けました。先の著書が翻訳されて韓国で出版され、さらに「ソウル言論人クラブ賞」の「外国人特別賞」に選ばれたのです。私はこの栄誉を受けることにより、姜沆先生の功績が韓国内にも広く認められることになると思い、喜んで授賞式に出席致しました。  大洲市では中学校の副読本を作り、「日本儒学に影響を与えた」として姜沆先生を大きく取り上げました。地方の小さな市の取り組みですが、やがて日本の教科書、そして歴史書に輝かしく登場されることを夢見ているところであります。  私は市役所の職員として平凡な人生に終わるはずのところ、姜沆先生に出会い、ささやかな研究を続けるうち、大洲と霊光、さらには日本と韓国の友好・親善にも寄与することができ、感謝をしているところであります。  さらに喜しい出来事がありました。2001年3月霊光で開催されたシンポジュームのとき、来賓として出席された国会議員から流調な日本語で話しかけられたことがありました。それが李洛議員でした。  私は喜しくなり、日本語の堪能な方なら読んでいただけると、日本語の本を送りました。そしてさらに1冊を加え、これは金大中もと大統領に差し上げて下さいとお願いしたところ、このような返事がありました。「もと大統領が大変喜ばれたそうです」と書いてあります。まことに光栄なことであります。  李議員はその後全羅南道知事になりましたが、その間、大洲の姜沆先生顕彰碑を2回尋ねられ、私が案内をいたしました。郷土の誇りとして、姜沆先生を尊敬されておられるものと拝察しました。  そのときの大洲城での写真であります。  その知事が、昨年五月の政変により首相に就任されたのです。国際関係で大変な時代ですが、いつか日本に来られたとき、李首相からどのようなお言葉があるのか楽しみです。そして、もしかすると、3度目の大洲への訪問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そうなれば姜沆先生もどんなにか喜ばれることでありましょう。その日を夢見ているところであります。  改めて、日本の教育・文化の大恩人、睡隠姜沆先生医業をたたえ、そのふるさと霊光郡が平和で豊かに発展することを願い、皆様のご多幸をお祈りして私の挨拶を終わります。カムサハムニダ。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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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 · http://edaynews.com
1. 조선 중기의 학파들  조선조 유학은 程朱의 道學을 수용하여 치밀한 개념 분석과 엄격한 실천 행위를 강조했는데, 특히 중기에 배출된 知的 巨人들을 중심으로 학문의 활동과 내용에서 일정한 연관성 혹은 공통성을 지닌 집단을 양산하였다. 이를 ‘학파’라고 부른다면, 花潭학파·退溪학파·南冥학파·栗谷학파는 이 시기를 대표한다.   趙光祖(靜庵, 1482~1519)가 道學의 뿌리를 확고하게 내린 이후, 경기도 개성에서는 徐敬德(花潭, 1489~1546)이, 파주에서는 成渾(牛溪, 1535~1598)이, 황해도 해주에서는 李珥(栗谷, 1536~1584)가, 영남 동쪽에서는 李彦迪(晦齋, 1491~1553)이, 영남 북쪽에서는 李滉(退溪, 1501~1570)이, 영남 남쪽에서는 曺植(南冥, 1501~1572)이 학파를 형성하여 도학을 전수하였다. 호남에서도 북쪽에서는 李恒(一齋, 1499~1576)이, 남쪽에서는 金麟厚(河西, 1510~1560)와 奇大升(高峰, 1527~1572) 등이 독특한 학풍을 내세워 영향력을 발휘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항·김인후·기대승 사후에도 17세기 초, 중반에 도학을 강론하여 제자들을 양성한 一群의 유학자들이 호남지역에 흩어져 있었다. 예컨대 담양 대산의 金大器(晩德, 1557~1631), 영광 유봉의 姜沆(睡隱, 1567~1618), 임실 덕촌의 趙平(雲壑, 1569~1647), 보성 우산의 安邦俊(隱峯, 1573~1654)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호남의 유학이 기축옥사와 임진·정유왜란을 거치면서 점차 학문적 기반이 약화되고, 더구나 17세기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학인들이 경기와 호서지역으로 유학을 떠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강학의 촛불을 끄지 않았다.   강항은 영광군 남쪽 불갑산 아래 유봉리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가까운 雲堤 마을로 이사했는데, 관직생활과 포로생활을 뺀 나머지 생애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강학하였다. 그는 팔대(八代) 문헌가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이미 뛰어난 문장 실력과 해박한 역사 지식을 인정받았고, 3년여의 포로생활 중에 보여준 탁월한 氣節은 일본인도 존경할 정도였다. 강항의 수제자 尹舜擧는 스승의 학행을 挽詩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아름답고 밝은 문장은 지금의 屈原이요, 추상같은 높은 절개는 옛날의 蘇武로다.” 그는 포로생활에서 탈출하여 귀국한 이후에도 죄인으로 자처하고 벼슬을 멀리한 채 스스로 불갑산에 갇혔다. 강항은 찾아주는 詩友들과 담론하는 한편 그의 문장과 기절을 흠모하여 찾아온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52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강항은 17세기 초반에 호남 유학을 이끈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간 강항에 대한 연구는 주로 시문학과 『看羊錄』, 일본에 유학전수 등 몇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으나, 아직까지 교사로서의 강학활동은 깊이 있게 탐색되지 못하였다. 필자는 강항에 대한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연구가 진행되려면, 그에게 영향을 준 스승들, 교유한 친구들,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관련 유적과 유물들까지, 그 학문적 연관성을 폭넓게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발표는 이러한 관심 하에 강항의 제자들에 관한 기초적인 정보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2. 牛溪학맥의 계승  강항은 문과에 급제한 이듬해인 1594년(28세) 校書館 正字로 있을 때에 경기도 파주로 牛溪 成渾을 찾아가 기호유학의 한 맥인 우계학맥을 계승한다. ◎ 安珦(晦軒) → 權溥(菊齋) → 李穀(稼亭) → 李穡(牧隱) → 鄭夢周(圃隱) → 吉     再(冶隱) → 金叔滋(江湖) → 金宗直(佔畢齋) → 金宏弼(寒暄堂) → 趙光祖(靜     庵) → 成守琛(聽松)/白仁傑(休庵) → 成渾(牛溪) → 姜沆(睡隱) →  성혼의 학문은 도학적 성격이 매우 짙은데 그것은 일상에 체질화되어있을 만큼 강한 실천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강항이 성혼의 문하를 찾았을 때, 그는 동인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정치적인 입지가 약화되어 제자들을 내보낸 채 은둔하고 있었다. 이러한 곤경을 잘 알면서도 자기의 문하를 찾아온 강항에게 성혼은 단아하고 진실한[端諒] 몸가짐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강항은 왜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그것도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져있던 성혼의 문하를 찾아갔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전해져오는 성혼과 강항의 문집 속에서 이 물음을 해명할만한 자료를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흔한 시 한 수, 편지 한 통, 제문 한 장, 어록 한 구절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메마른 자료 속에서 눈에 번쩍이는 글을 한 통 만나게 된다. 강항이 쓴 「坡山四賢書院察倫堂上梁文」이라는 글이다. 이 글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된 坡山書院의 察倫堂을 재건할 때 지은 상량문이다. 여기에서 강항은 파주지역은 魯나라처럼 현인이 많이 배출되어 학문 활동이 융성했던 곳임을 강조하고, 정주철학에서 발원한 조광조의 도학이념과 실천정신을 成守琛·成渾·白仁傑·李珥 등 네 현인이 이어받아 학행을 성취한 업적을 열거하고 있다. 이들 중 성수침과 백인걸은 조광조의 문인이고, 김굉필의 도통을 조광조가 잇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강항의 스승 성혼은 부친 성수침과 백인걸에게 학문적 영향을 깊게 받았고, 성혼의 道友 李珥는 성수침과 백인걸의 학행에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였다. 이 서원은 네 현인이 김굉필­조광조 계통의 도학이념을 강론했던 신성한 공간이었는데, 강항이 성혼을 찾아가 수학했던 牛溪書室과는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강항은 이 글의 말미에 자신의 소망을 다음처럼 피력하고 있다.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한 것[入孝出悌]으로 모든 행실의 근원을 삼고, 비근한 사물을 배운 뒤에 깊은 學理에 나아가는 것[下學上達]으로 평생의 일을 삼으며, 사방의 학생들이 모두 귀의할 곳으로 여기게 하고, 높은 벼슬아치와 백성들이 모두 본보기로 삼게 하며, 소인의 변덕을 배우지 말게 하고, 유학의 哲理를 이루게 하소서.  강항은 ‘입효출제’와 ‘하학상달’이라는 유교의 윤리와 학문방법이 파산서원을 통해 끊임없이 강론되어 발현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서원의 中軸인 스승 성혼을 조선조 도학의 전통을 걸머진 학자로 여겨 한평생 귀의처로 삼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항 자신의 도학에 대한 인식과 실현의 욕구가 강렬했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을 성혼의 문하로 옮기게 했고, 그 문하에서 수학함으로써 “道脈의 올바름을 얻어 마침내 大儒로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3. 衛道정신과 道義실천  강항이 태어날 무렵, 조선의 사상계는 성리학의 핵심 문제 곧 四端七情과 人心道心 등을 둘러싸고 李滉­奇大升, 成渾­李珥가 치열한 논변을 진행하여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미 거두고 있었으나, 강항은 이러한 성과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흔한 성리학의 용어들마저 추출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성리학의 이론을 철저히 분석하려는 학구적 태도에서 비껴서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항이 성리학 세계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거나 무지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조선조의 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주자학의 經學的 철학체계로 훈련을 받았고, 강항의 학문 활동도 조선조 주류 학문인 주자학의 범주 속에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문집이나 일본에서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더라도, 성리학의 주요 텍스트나 흐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성리학의 이론체계가 거의 결핍된 것에 비해, 강항의 道學에 대한 사유는 그 편린이나마 문집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다음은 강항의 道와 道學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道란 천하에 편재하여 소멸된 적이 없다. 중국이라 해서 남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외국이라 해서 부족한 것도 아니다. 오직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 드러내 밝히고 열어서 발현하기에 달려있을 뿐이다. 우리 동방에 나라가 선 지 유구하여 그 사이에 도량이 넓은 선비가 많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 중 道學으로 명분을 삼아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앎의 극치에 이르고, 뜻을 참되게 하여 마음을 바로잡는 것[格致誠正]을 공부로 여기고, 군주를 존중하여 백성을 보호하는 것[尊主庇民]을 임무로 삼은 사람을 찾는다면, 겨우 몇몇이나 있을 정도이다.  이 글은 강항이 호남 유생을 대표하여 李彦迪(1491-1553)을 공자 사당에 배향하기를 청하는 상소문의 첫 부분이다. 여기에서 강항은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道의 보편성을 시사하고, 탁월한 지혜를 갖춘 자들이 이를 천명하여 역사와 사회 속에서 진리를 실현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道를 자신의 학문으로 삼은 사람이라면, '대학'에서 제시한 조목을 따라 지식을 탐구하고 심성을 도야하는 공부를 수행하며, 이를 토대로 '資治通鑑'에서 말한 것처럼 관직에 나아가 자신의 포부를 펴서 세상을 구제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는 道學을 내면의 도덕철학과 외면의 정치철학을 결부시켜 논의하려고 하는 사유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낸 대목이다.    강항에게 道의 표상은 경전과 역사서이다. 강항은 문인 辛思孝에게 보낸 편지에서 “道를 행하고 세상을 구제하며 군주를 보필하고 사람을 살리는 방도는 본래 典·謨·訓·誥를 놓아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여, 중국 고대에 역대 제왕들의 정치철학이 들어있는 󰡔서경󰡕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맹자의 ‘호연지기’나 曾點의 ‘詠歸’하는 뜻도 六經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 억지로 짜내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또한 詞章을 통한 과거시험 응시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六經을 방치하고 앞사람의 문장에서 尋章摘句하거나 표절이나 일삼는 것은 유학자가 할 일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강항에게 六經에 기반을 둔 經學은 유학자라면 반드시 걸어야할 최선의 길이요 최고의 강령이었던 셈이다. 다시 말하면 육경은 비록 고대에 형성된 경전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진리는 그것 속에 더욱 명료하게 나타나있기 때문에, 고전의 학습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과 사회현실을 조화하고 통일시킬 수 있는 표준이요 원천이 되는 것이다.   강항은 경전 공부에 못지않게 역사서의 학습을 중시했다. 강항의 뛰어난 문인 尹舜擧(1596-1668)는 󰡔綱鑑會要󰡕(강항의 역사 저술, 17권 19책)의 서문에서 스승의 학문을 “경학에 근본을 두고 사학에서 참조했으며, 먼저 이치를 인식한 뒤에 문장으로 나아갔다”고 요약하고, 이 저술의 가치를 평론하여 “󰡔資治通鑑󰡕에 비교하면 겨우 5분의 1정도의 분량이지만 참으로 미묘한 뜻을 밝혀낸 定案이요 크게 완성한 良史이니 온 나라가 공유해야만할 것이다”고 극찬했다. 8세 무렵에 이미 '通鑑綱目'에 통달하여 茂長지역에 ‘綱目村’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렇다면 강항이 이처럼 역사서를 즐겨 읽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문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史學은 반드시 판단에 밝고 治亂에 통달해야 한다. 말하고 듣는 자료로만 활용하여 몸과 마음에 무익한 것은 우리 道가 아니다. 대개 글자가 만들어진 이후 곧 역사가 있었으니, 역사가 아니면 성인의 발자취를 고증하고 옛일을 징험할 수 없다.” 강항이 역사를 연구한 주목적은 과거의 사실 중에서 기억해둘 가치가 있는 사례와 피해야할 사례를 찾아내어 현실정치의 선악을 판별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통찰을 얻는 데 있었다. 그가 역사에서 얻고자 했던 道의 모습은 유희적인 관념이 아니라, 현실을 이끌어주는 실제적인 사례와 본보기였던 것이다.   유학이 제시한 도덕준칙을 따라 正道를 걷는 삶을 살고자한 강항의 신념과 의지는 이른 시기에 확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항은 9세에 지은 「幼成若天性賦」에서, 어려서부터 성인의 교훈에 입각하여 심성의 근원을 밝혀 천성의 덕을 바르게 배양해야 군자가 된다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讖緯策」에서는 緯說이 경전을 어지럽히고 妖言이 대중을 현혹시키는 폐단을 경계한 뒤, 그 원인을 道가 미약하고 교화가 밝지 못한 데서 찾아, 오래 전부터 이러한 사악한 언행을 배격하여 ‘옛 성인의 道를 지키기로[閑先聖之道]’ 다짐했음을 밝히고 있다. 강항은 道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다음처럼 말했다.   군주가 위에서 중심을 잡아 기준을 세우고 안으로 정밀히 살피고 오롯한 마음을 지녀, 六經을 드러내 밝히고 百家를 배격하되, 六藝의 설명이나 孔子의 학술과 관계없는 것들을 단호히 차단할 수 있다면, 교화가 곧 밝아지고 풍속이 저절로 바르게 되며, 집집마다 孔孟을 이야기하고 방마다 鄒魯를 전하게 되며, 선비가 先王의 法言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않고 聖人의 正經이 아니면 감히 읽지 않게 될 것이니, 九流·七略의 책이나 雜家·衆技의 학문은 대낮의 무지개요 한여름의 우박일 뿐이다.  강항도 한때는 博學을 추구하여 경전과 史書 뿐만 아니라, 제자백가서·천문·지리·篆刻 등을 두루 연구하여 獨得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용문에서 보듯이 강항은 자기 성찰을 거쳐 六經과 六藝로 회귀하여 孔孟의 근본정신을 국가와 사회에 실현하려는 강인한 신념을 키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강항은 포로생활 중에 만난 친구 宋檣에게 준 편지에서 “점술가의 책들이 서로 모순이 많아 열에 예닐곱은 틀린 것을 보고 그 책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운명의 길흉이야 이미 태어날 때에 정해져있는 것이니, 正道에 몸을 두어 正命을 받을 뿐이다”고 말하여, 자신의 체험을 통해 점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正道에 의탁하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강항이 자기 성찰의 체험을 통해 緯說의 기만과 결별하고 六經의 正道로 복귀하게 되는 하나의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강항의 道에 대한 인식과 관련시켜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개념은 義이다. '주역'에서는 “군자는 경건함으로써 속을 곧게 하고 의로움으로써 밖을 바르게 한다[義以方外]”고 하여 義가 내면의 곧음을 근거로 외면을 바르게 하는데 까지 관철시키는 원리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맹자가 梁惠王 앞에서 이익을 거부하고 의리를 내세웠을 때의 義는 세속적 가치를 부정하는 칼날의 예리함을 지니는 것이었다. 강항은 억류생활 중에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이 일본에 귀화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그들의 부당성을 알리는 격문 속에서 “(공자가) 管仲이 아니었다면 左袵할 뻔했다고 말한 것은 모두 왕도를 존중하고 이적을 물리친다[尊王攘夷]는 뜻을 알게 함이니, 멀리 남의 나라에 귀화하려 하지 말고 세 번 사는 것보다는 ‘義가 소중함’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여,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義라는 고귀한 윤리적 가치임을 밝히고 있다. 흔히 道義라고 불리는 것처럼, 강항의 관념 속에서도 義는 유학의 진리[道]와 이상[善]을 다양하게 변화하는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할 때에 나와 타인을 관철하는 보편적인 원리가 되는 동시에 正과 邪를 가르는 분별의 원칙이 되고 있는 것이다.   4. 강학활동과 제자들  강항은 우계 성혼의 학맥을 계승하여 강인한 道義 정신으로 무장한 관료학자였다. 그는 왜란 중인 1593년(27세)에 광해군이 전주에 주둔하면서 시행한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28세에 교서관 정자, 춘추관 기주관을 거쳐 29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30세에 성균관 전적으로 옮겼다가 공조좌랑을 거쳐 형조좌랑이 되었다. 1597년(31세) 여름에 이광정의 종사관이 되어 군량을 모집했으나 남원성이 함락되어 영광 앞바다에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 1600년(34세) 5월에 포로에서 풀려 부산에 도착한 뒤 선조 임금을 뵙고 고향으로 돌아와 칩거에 들어갔다. 강항은 포로의 신분이었으나 조선 선비의 기개를 잃지 않고 관료로서 일본의 정치 동향과 지리 환경 등을 조정에 보고했으나, 동인들의 비방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한 때 포로였다는 자괴감을 떨치지 못했다.    1600년 9월에 고향으로 돌아온 강항은 대구교수와 순천교수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함으로서, 관직생활을 통해 자신의 도학을 구현하려던 꿈을 스스로 접어버렸다. 대신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운제 마을의 서당에서 집안과 향촌의 자제들, 친구들의 자질들을 받아들여 강학활동을 시작하였다. 강항은 이곳에서 다수의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그의 뛰어난 문장과 고고한 기절은 제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강항은 일본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藤原惺窩(1561~1619, 후지하라 세이카)와 赤松廣通(1562~1600, 아카마쓰 히로미치)에게도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맡은 적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    그러나 현재 강항의 문집에는 정돈된 제자들의 명부인 ‘門人錄’이 실려 있지 않아 학맥의 전승과 교육의 파급 정도를 가늠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근 20여 년간 강학활동을 하면서 다수의 제자들을 배출했을 터인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문인록’이 문집에 실리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다행히 근래에 강항의 문하에서 배출된 제자들의 정보를 알려주는 일종의 ‘문인록’들이 성첩 문서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    첫째, 1824년에 후손 姜台煥이 작성한 『誾侍錄』(종손 강진성 소장)이다. 강태환은 발문에서, 일찍이 『晉山世考』를 기록하다가 제자들의 후손가에 탐문하기도 하고 『수은집』 속에서 뽑아 적어서 삼가 명단을 만든다고 하였다. 이 문서에는 제자로 추정한 69명의 성명, 字號, 과거시험, 관직, 본관 등 짧은 정보를 기록해 두었다.   둘째, 작자 미상의 『수은문인록』(필자가 임의로 붙임, 후손 강재원 소장)이다. 이 기록 역시 성첩 문서인데 아쉽게도 앞쪽 몇 장이 떨어져 나갔다. 누락부분을 빼고 62명의 성명, 자호, 과거시험, 관직, 거주지 등이 적혀 있고, 그 뒷부분에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지은 挽詩와 스승이 제자들에게 준 시와 만시를 『수은집』 원집과 부록, 별집에서 뽑아 사제 관계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제 관계라고 확증할 수 없는 글들도 많이 추출이 되어 있다.     셋째, 1941년에 윤영선이 편찬한 『朝鮮儒賢淵源圖』(동문당 간행)이다. 윤영선은 강항을 성혼의 학맥에 배열하고 그 문하에서 배출된 것으로 추정한 41명의 성명, 호, 본관, 관직과 품계, 생년 등을 나열하였다. 윤영선은 호남의 읍지를 위주로 강항의 제자들을 추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세 가지 자료는 모두 강항 사후 2, 3백년 뒤에 작성된 것들이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기초적인 문서이지만 문집에 문인록이 실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나마 소중한 자료들이다. 세 자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면 많은 숫자가 겹치는데 대략 85명 정도 된다. 그러나 앞으로 좀 더 세밀하게 방증자료를 대조해 보면 이 중에 강항의 제자로 볼 수 없어 삭제해야 할 인물이 약 2, 30명 정도 될 것으로 판단한다. 아래에서 인명에 밑줄을 친 인물들은 선, 후배이거나 동문, 친구, 벗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1) 강락(姜洛)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만은(晩隱)이다. 임진왜란에 의병장 고경명과 최경장에     게 의병과 군수품을 모아 보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 강시견(姜時見) : 1589~?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선세(善世)이다. 진사?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 강시량(姜時亮)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비명(丕明)이며 호는 취송정(翠松亭)이다. 진사?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 강시만(姜時萬)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동강(東岡)이다. 강항의 아들이며 참봉에 제수되었다. 병자호란에 창의하였다. (연원도에 보임) 5) 강시억(姜時億) : 1600~?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천뢰(天賚)이다. 강준(姜濬)의 아들이고 강항의 조카이다. 163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교관과 찰방을 지냈다. 병자호란에 창의하였다. 영광, 순천에 거주하였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 강시언(姜時彦)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백영(伯英), 호는 하월당(荷月堂)이다. 강계오(姜繼吳)의 아들이며 무송(茂松)에서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 강시열(姜時說) : 1625~?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은경(殷卿)이며, 호는 죽은(竹隱)이다. 강영(姜泳)의 아들이며 1651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연원도에 보임) 8) 강시회(姜時晦)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강항의 종질이다. 진사?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9) 강영(姜泳) : 1574~?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양원(養元)이며 호는 시시당(是是堂)이다. 강항의 아우이다. 1613년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영광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0) 고부립(高傅立) : 본관은 장택(長澤)이고 자는 군회(君晦)이다. 고종후(高從厚)의 아들이며 경기 전참봉에 제수되었다. 정묘·병자호란에 창의하였고 광주에 거주했다. (은시록에 보임) 11) 고부민(高傅敏) : 1577~1642. 본관은 장택(長澤)이고 자는 무숙(務叔)이며 호는 탄음(灘陰)이다. 고성후(高成厚)의 아들이며 문집으로 『탄음고(灘陰稿)』가 있다. 광주에 거주했다. (연원     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2) 구용(具容) : 1569~1601.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대수(大受)이며 호는 죽창 (竹窓)이다. 부친은 구사맹(具思孟)이며 1590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김화현감(金化縣監)을 지냈다. 『죽창유     고』가 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3) 김경철(金景哲) : 1573~?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윤보(允甫)이며 호는 은송당(隱松堂)이다. 부친은 김상(金常)이며 남원교수(南原敎授)에 제수되었다. (연원도에 보임) 14) 김기(金夔) : 본관은 서흥(瑞興)이고 호는 죽헌(竹軒)이며 강항의 사위이다. (연원록,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5) 김남수(金楠壽) : 본관은 상산(商山)이고 자는 등로(滕老)이다. 임진왜란에 종사관으로 출정했으며 영광 불갑 원당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6) 김담(金䃫) : 1599~?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자는 백석(伯石)이며 호는 백산(栢山)이다. 병자호란에 창의하였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7) 김덕수(金德秀) : 1548~?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득심(得心)이다. 부친은 김적(金適)이며1576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무안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8) 김상경(金尙敬) : 본관은 상산(商山)이고 자는 질부(質夫)이며 호는 죽재(竹齋)이다. 병자호란에 창의하였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9) 김상돈(金尙敦) :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김상경(金尙敬)을 잘못 쓴 듯하다. (문인록에 보임) 20) 김약여(金躍麗) : 본관은 상산(商山)이고 호는 원당(圓堂)이다. 부친은 김남수(金楠壽)이며 영광 원당(元塘)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1) 김여경(金餘慶) : 1577~?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호는 창주(滄洲)이며 참봉에 제수되었다. (연원도에 보임) 22) 김우급(金友伋) : 1574~1643.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사익(士益)이며 호는 추담(秋潭)이다. 부친은 김대성(金大成)이며 1612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목릉참봉에 제수되었다. 변이중(邊以     中)의 문인이고 문집으로 『추담집(秋潭集)』이 있다. 장성 황룡에 거주하였다. (은시록, 문인록     에 보임) 23) 김이강(金以剛) :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연원도에 보임) 24) 김정발(金廷潑)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계암(桂菴)이다. 임진왜란에 창의하였다. (연원도에 보임) 25) 김지수(金地粹) : 1585~1639.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자는 거비(去非)이며 호는 태천(苔川) 이다. 조부는 김제민(金齊閔)이며 1616년 문과에 급제하고 종성부사를 지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고 『태천집(苔泉集)』이 있다. 고부에서 거주하였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6) 김진(金瑱) : 1599~?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미중(美仲)이며 호는 간촌(簡村)이다. 부친은 김인택(金仁澤)이며 1635년 생원시에 급제하고 사복시 정에 제수되     었다. 영광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7) 나봉서(羅逢緖) : 1570~?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자는 언장(彦章)이며 호는 매월당(梅月堂)이다. 부친은 나덕전(羅德全)이고 증조는 나세찬이다. 1609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영광 삼서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8) 나준서(羅遵緖) :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부친은 나덕전(羅德全)이며 나통서의 아우이다. 진사?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9) 나통서(羅通緖) : 1572~1637.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자는 사장(士章)이며 호는 계봉(桂峰)이다. 부친은 나덕전(羅德全)이고 나봉서의 아우이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하고 경성판관에 제수되     었다. (연원도에 보임) 30) 나해구(羅海龜) : 1581~1660.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응주(應疇)이며 호는 석호(石壕)이다. 부친은 나덕양(羅德讓)이고 나해봉의 형이다. 나주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1) 나해륜(羅海崙) : 1583~1659.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응숙(應淑)이며 호는 송도(松島)이다. 부친은 나덕겸(羅德謙)이며 1624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효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이괄의 난     과 병자호란에 창의했으며 문집으로 『송도유적(松島遺蹟)』이 있다. 나주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2) 나해봉(羅海鳳) : 1584~1638.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응서(應瑞)이며 호는 남간(南磵)이다. 부친은 나덕양(羅德讓)이며 1606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경기전참봉, 별제(別提)에 제수되었     다. 『남간집(南磵集)』이 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3) 민희(閔喜) :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자우(子愚)이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4) 박륜(朴淪) : 문과에 급제한 것으로 적혀 있으나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5) 박숙(朴俶) : 1609~1674. 본관은 무안(務安)이고 자는 여발(汝發)이며 호는 용와(龍窩)이다. 부친은 박제(朴悌)이다. (연원도에 보임) 36) 박안제(朴安悌) : 1590~1663.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계심(季心)·계순(季順)이며 박안효의 아우이다. 1621년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영광군수, 병조참의를 지냈다. 묘는 예산현(禮山縣) 돈절리(敦節里)에 있고, 후손은 충청도 영동 거주했다. (은시록에 보임) 37) 박안효(朴安孝) : 1587~?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백심(伯心)·인백(仁伯)이며 부친은 1603~1608년에 영광군수를 지낸 박정현(朴鼎賢)이다. 1616년 문과에 급제하고 남원부사, 전라도도사를 지냈다. (은시록에 보임) 38) 박호(朴濠) : 1586~?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백유(伯遊)이다. 부친은 박동열(朴東說)이며 김장생의 제자이기도 하다. 1609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9) 반여경(潘汝慶) : 1600~?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자는 백유(伯有)이며 호는 연강(硯江)이다. 부친은 반정(潘淨)이며 1624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장성에 거주했다. (연원도에 보임) 40) 변충원(卞忠元) : 1568~?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신초(藎初)이며 호는 강음(江陰)이다. 부친은 변희겸(卞希謙)이며 160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경기도 부평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     에 보임) 41) 변효윤(邊孝胤) : 본관은 황주(黃州)이고 자는 자원(子元)이다. 부친은 변이중(邊以中)이며 장성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2) 송식(宋軾) :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자는 여첨(汝瞻)이며 호는 발산(鉢山)이다. 송흠(宋欽)의 5대손이며 병자호란에 창의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3) 신사효(辛思孝) : 본관은 영월(寧越)이고 자는 공칙(公則)이며 호는 회우(晦迂)이다. 부친은 신응순(辛應純)이며 영광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4) 신엽(辛曄) : 1598~? 본관은 영성(靈城)이고 호는 도은(桃隱)이다. 부친은 신유일(辛惟一)이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5) 신응망(辛應望) : 1595~1654. 본관은 영산(靈山)이고 자는 희상(希尙)이며 호는 한사(寒沙)이다. 부친은 신장길(辛長吉)이며 1624년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장령, 파주목사를 지냈다. (연원도에 보임) 46) 신천익(愼天翊) : 1592~1661.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백거(伯擧)이며 호는 소은(素隱)이다. 증조는 신희남(愼喜男)이고 부친은 신인(愼諲)이다. 1612년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냈다. 『소은유고』가 있다. 조찬한(趙纘韓)의 문인이며 영암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7) 신해익(愼海翊) : 1592~1616.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중거(仲擧)이며 호는 병은(病隱)이다. 신천익과 쌍둥이 형제이다. 1613년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예조좌랑을 지냈다. 흥덕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8) 신희상(辛希尙) : 희상은 앞쪽에 나오는 신응망(辛應望)의 자(字)이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9) 심광세(沈光世) : 1577~1624.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자는 덕현(德顯)이며 호는 휴옹(休翁)이다. 조부는 심의겸(沈義謙)이고 부친은 심엄(沈俺)이다. 1601년 문과에 급제하고 부안군수,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휴옹집』이 있다. (은시록에 보임) 50) 안희적(安希勣) : 1587~1626.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자는 무중(懋仲)이며 호는 권유자(倦遊子)이다. 함평 나산에 거주했다. 진사?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1) 양만용(梁曼容) : 1598~1651.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자는 장경(長卿)이며 호는 오재(梧齋) 또는 거오(據梧)이다. 부친은 양산축(梁山軸)이며 1633년 문과에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을 지냈으며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에 봉해졌다. 『오재집』이 있으며 박동열의 문인이기도 하다. (연원     도, 은시록에 보임) 52) 양인우(梁仁宇) : 본관은 제주(濟州), 호는 낭호당(朗湖堂)이다. (연원도에 보임) 53) 오정남(吳挺男) : 1563~1626.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자영(子英)이다. 부친은 오천수(吳 天壽)이며 1610년 생원시에 합격했다. 『연강집(蓮江集)』이 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4) 오희도(吳希道) : 1583~1623.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득원(得原)이며 호는 명곡(明谷)이다. 부친은 오언표(吳彦彪)이며 1623년 문과에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을 지냈다. 『명곡유고』가     있고 창평에 거주하였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5) 오희일(吳希一) : 1578~1604.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백원(百原)이다. 고인후의 사위이고 오희도의 형이다. 나주 도림(道林)에 거주했다. (연원도에 보임) 56) 오희일(吳喜馹) : 본관은 낙안(樂安)이며 귀호정(龜湖亭)을 세웠다. 나주 남평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7) 유지원(柳之元) : 진사라고 하는데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8) 유흥세(柳興世) : 1589~? 본관은 고흥(高興)이고 자는 기지(起之)이다. 회동(會洞)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9) 윤순거(尹舜擧) : 1596~1668.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노직(魯直)이며 호는 동토(童土)이다. 부친은 윤황(尹煌)이며 1633년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금구현령, 영월군수를 지냈다. 김장생의 문인이기도 하며 『동토집』이 있다. (은시록에 보임). 60) 윤민헌(尹民獻) : 1562~1628.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익세(翼世)이며 호는 태비(苔扉)이다.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609년 문과에 급제하고 전라도 도사, 공조참의를 지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1) 윤훈거(尹勛擧) : 1591~1639.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백용(伯庸)이다. 윤순거의 형이며 고산현감, 사축서별좌를 지냈다. (은시록에 보임) 62) 이덕현(李德顯) : 본관은 양성(陽城), 함평 장동에 거주했다. (문인록에 보임) 63) 이덕형(李德亨) : 본관은 양성(陽城)이고 함평 장동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4) 이덕후(李德厚) : 본관은 양성(陽城)이고 함평 장동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5) 이란(李灤) : 1582~1628.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자하(子河)이다. 부친은 이규빈(李奎賓)이며 1613년 무과에 급제하고 전라우수사,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영광 남산에 거주했     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6) 이상원(李尙元) : 1597~?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순경(舜卿)이며 호는 제월정(霽月亭)이다. 부친은 이설(李渫)이며 1624년 진사시에 급제하고 의금부도사를 지냈다. (연원도에 보임) 67) 이소(李昭) :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부친은 이홍간(李弘諫)이며 강항의 사위이다.     생원?(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8) 이안눌(李安訥) : 1571~1637.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자민(子敏)이며 호는 동악(東岳)이다. 1599년 문과에 급제하고 담양부사, 예조판서를 지냈다. 『동악집(東岳集)』이 있다. (은시      록, 문인록에 보임) 69) 이율(李瑮) :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자는 문진(文縝)이며 호는 오휴(五休)이다. 이은(李誾)의  증손이며 영광 보촌서원에 배향되었다. 『오휴당유고』가 있고 보촌(甫村)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0) 이장(李壵) : 1594~?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농아(聾啞)이다. 조부는 이응종(李應鍾)이며 병자호란에 창의했다. (연원도에 보임) 71) 이전(李㙉) : 1583~?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초당(草堂)이다. 벼슬은 충위(忠衛)이고 능주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2) 이진명(李晉明) : 본관은 양성(陽城), 함평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3) 이춘영(李春英) : 1563~1606.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실지(實之)이며 호는 체소재(體素齋)이다. 부친은 이윤조(李胤祖)이며 1590년 문과에 급제하고 예천군수를 지냈다. 성혼(成渾)의 문인이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체소집(體素集)』이 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4) 이홍간(李弘諫) : 1574~?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자는 사직(士直)이다. 부친은 이옥(李玉)이며 조부는 이만영(李萬榮)이다. 161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찰방에 제수되었다. 남산에 거주했다.(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5) 이홍심(李弘諶) :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자는 백신(伯信)이다. 부친은 이곤(李琨)이며 조부는 이장영(李長榮)이다. 남산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6) 이홍열(李弘說) : 1603~?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자는 사필(士弼)이며 호는 우수(迂叟)이다. 부친은 이광(李珖)이며 조부는 이만영(李萬榮)이다. 찰방에 제수되고 남산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7) 이훤(李晅) :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부친은 이홍간(李弘諫)이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8) 이휘(李暉) : 1597~?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자는 국서(國舒)이다. 부친은 이홍간(李弘諫)이며 164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영광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9) 임련(林堜) : 1589~1648.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동야(東野)이며 호는 한호옹(閑好翁)이다. 부친은 임서(林㥠)이고 임담의 형이다. 사헌부장령, 우승지를 지냈다. (은시록에 보임) 80) 임담(林墰) : 1596~1652.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재숙(載叔)이며 호는 청구 (淸臞)이다.  부친은 임서(林㥠)이며 1635년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판서를 지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며 박동열의 문인이기도 하다. (연원도, 은시록에 보임) 81) 정덕원(鄭德遠) : 누구인지 모르겠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82) 정수(丁燧) :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호는 영모정(永慕亭)이며 의병을 모집하였다.(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83) 정제원(丁濟元) : 1590~1647. 본관은 영성(靈城)이고 자는 백인(伯仁)이며 호는 취우당(醉愚堂)이다. 부친은 정건(丁鍵)이며 김장생의 문인이기도 하다. 『취우당집』이 있다. 정묘호란에 창의하였고 영광 용두(龍頭)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84) 정협(丁鋏) : 1565~1618.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자는 자장(子長)이며 호는 성경재(誠敬齋)이다. 정건(丁鍵)이라고도 한다. 부친은 정희맹(丁希孟)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성경재집』이 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85) 최계조(崔繼祖) : 본관은 삭녕(朔寧)이고 자는 비승(丕承)이다. 부친은 최준문(崔濬文)이다. 성혼의 문인이다. 남원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앞으로 많은 고증과 증보 과정을 거쳐 강항의 제자를 정돈해 간다면 좀 더 충실한 문인록이 작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 강항의 제자로 볼 수 있는 60여명만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먼저 지역적으로 보면, 강항의 제자들은 호남과 충청도 일부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그가 20여 동안 강학했던 거점을 영광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함평과 나주 출신의 제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강항의 제자 중에는 강항 사후에 발발한 정묘·병자호란에 창의하여 구국의 깃발 아래로 달려간 실천적 유학자가 매우 많았다는 점이다. 제자들이 스승의 道義 정신과 氣節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된다.   과거 합격의 숫자로 보면, 소과에 응시하여 생원·진사에 오른 제자들이 20여 명이고, 대과에 급제한 제자들도 7, 8명 되며, 관직에 진출하여 고위직에 오른 제자도 적지 않다. 문집을 내지는 못했지만 관료로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박안제·박안효 형제와 신응망, 임련과 임담 형제는 향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문집의 유무로 보면, 현재까지 약 9명의 제자들이 남긴 9종의 유고가 간행되었다. 고부민의  『灘陰稿』, 나해륜의 『松島遺蹟』, 나해봉의 『南磵集』, 신천익의 『素隱遺稿』, 양만용의 『梧齋集』, 오희도의 『明谷遺稿』, 윤순거의 『童土集』, 이율의 『五休堂遺稿』, 정제원의 『醉愚堂集』은 앞으로 강항과 그 제자들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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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 · http://edaynews.com
1. 머리말   강항(姜沆)은 본관은 진주, 자가 태초(太初), 호가 수은(睡隱)으로 영광에서 1567년(명종 22)에  태어났다. 1593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 공조좌랑,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지인들이 수은에게 준 시 속에 ‘원외(員外)’가 나오는데 이는 ‘랑(郞)’을 역임하여서 그런 것이다(원외는 원외랑의 준말).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피랍되어 일본에서 억류 생활하다 1600년에 돌아왔다. 이후부터 1618년(광해군 10) 생을 마칠 때까지 영광에서 19년간 살며 독서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이에 반해 정홍연(鄭弘衍)은 본관은 동래, 자는 덕일(德逸), 호가 죽창(竹窓)으로 서울에서 수은보다 2년 앞서 1565년(명종 20)에 태어났다. 그는 1593년에 “余避亂于海隅 僑居一巷”이라 하여 왜란을 피해 영광으로 내려왔다. 둘째 아들이 1580년 생인 점으로 보아 가족과 함께 왔다가 영광군 백수읍 지산리에 정착하였다. 광해군 때에 선공감 감역, 제용감 판관, 거창현감, 양천현령, 동복현감, 익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1624년부터는 관직을 그만두고 영광에서 살다 1639년(인조 17)에 생을 마쳤다. 함평 출신의 유학(幼學) 정색(鄭穡)이 죽창 만사에서 “금서(琴書)를 스스로 즐김은 타고난 소질이고, 시주(詩酒)를 무단히 바쁘게 하였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죽창은 영광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은(睡隱)과 죽창(竹窓)은 수은이 일본에서 돌아온 1600년부터 수은이 생을 마감한 1618년까지 영광에서 교유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의 교유에 관한 연구는 당시 영광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수은의 영광에서의 활동과 아직 학계에 소개되지 않은 죽창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점을 알게 해줄 것이다. 특히 수은은 일본에 주자학을 전파한 인물로 알려져서 그에 대한 연구는 꽤 많은 편이지만, 지역활동에 대해서는 연구가 일천한 수준이다. 그리하여 그의 많은 제자들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켰던 점 등 많은 사실들이 밝혀져 있지 않다. 그리고 죽창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거의 없고, 󰡔영광읍지󰡕 본조음사 조항에 “호가 죽창으로 동래인이며 대제학 사(賜)의 후손이다. 군수를 지냈으며 지산(芝山)에 사당이 세워졌다.”고(사당이란 芝山祠를 말한다), 그리고 아주 짧은 󰡔죽창집󰡕 해제만이 참고 될 따름이다.   수은과 죽창은 깊게 교유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치적으로 두 사람 다 서인(西人)으로 당색이 같았다. 수은의 제자로 서인의 대표 인물 윤순거(尹舜擧, 1596~1668)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죽창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기뻐서 지은 시가 있다. 수은과 죽창이 교유하였던 변충원, 임서, 임전, 김우급 등도 반광해군 인물이어서 한 때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지기로서 교유하였다. 이 점에 대해 수은의 큰 아들 강시만(姜時萬, 1603~1673)이 죽창의 죽음을 애도한 만사에서 “昔我先君友 追隨金石堅 習池同醉月 金谷共華筵”이라고 하였다. 즉, 죽창은 나의 아버지 친구로서 서로 상종하시기를 금석과 같이 하셨고 달빛 아래에서 흥겨운 주연을 함께 즐기셨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두 분이 매우 가까웠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두 사람의 깊은 교유는 우선 서로의 제자⋅지인을 상호 격려하고 지도하였다. 그리고 집안 간의 결혼으로도 이어졌는데 죽창의 손녀 사위, 즉 죽창 둘째 아들 광신(廣紳)의 사위로 강시경(姜時儆)이 들어왔다. 두 분이 교유한 흔적은 두 인물의 문집 속 창화 시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분석해 보겠다. 그러나 그 정도만 가지고는 교유의 폭과 내역을 밝혀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필자는 두 분의 문인록(門人錄)이나 만사록(挽詞錄)을 교차 검토하는 작업도 진행해 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은⋅죽창 지인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대외활동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 아직까지 기초적인 인적 사항마저 정리되어 있지 않아, 이 글은 후일의 수정⋅보완이 필요함을 미리 밝혀둔다. 2. 문인록 속의 교유    1) 수은 󰡔은시록(誾侍錄)󰡕과 죽창   수은은 일본에서 돌아온 후 관직 제수에도 불구하고 나가지 않고 영광에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 점과 관련하여 6대손 강태환(姜台煥)이 ‘崇禎紀元後三甲申’ 입춘일에 작성한 󰡔은시록(誾侍錄)󰡕을 살펴보자. 󰡔은시록󰡕은 수은 문인록으로 현재 수은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다. 강태환은 󰡔은시록󰡕 발문에서 일찍이 󰡔진산세고(晋山世攷)󰡕를 쓰면서 유집(遺集, 󰡔수은집󰡕) 중에서 초록하여 적고 문예가(門裔家)에 물어서 기록하여 삼가 안(案)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은시록󰡕은 수은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강태환이 󰡔진산세고󰡕를 쓰면서 수은 문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뽑아서 해당 집안에 확인한 후 만든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더러 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이 󰡔진산세고󰡕가 무엇이고 현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 하였다. 1476년(성종 7) 강희맹(姜希盟)이 편집⋅간행한 강회백(姜淮伯), 강석덕(姜碩德), 강희안(姜希顔) 등의 3대에 걸친 문집 진산세고(晉山世稿)와는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은시록󰡕에는 모두 69인의 수은 문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죽창집󰡕 속의 시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강시언(姜時彦), 박안제(朴安悌), 변충원(卞忠元), 신응망(辛應望), 유흥세(柳興世), 정제원(丁濟遠) 등이 확인된다. 그리고 수은의 󰡔은시록󰡕 속 69인 가운데는 죽창 만사록에 강시억, 강시언, 김우급, 김진, 박안제, 박안효, 신응망, 유흥세, 이율, 임련 등 10인이 보인다. 이 중에서 신응망과 정건⋅제원 부자에 대해서만 수은⋅죽창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겠다.   먼저, 신응망에 대해 알아보겠다. 신응망(辛應望, 1595~1654)은 본관은 영산, 자는 희상(希尙), 호는 한사(寒沙)로 영광에서 태어났다. 그는 “임진왜란 뒤로 가산이 탕진되었으므로 어머니가 식량을 꾸어주어 수은 강항의 문하에 가서 수업하였는데, 학문이 날로 진취되었다.”고 할 정도로 수은의 독실한 제자였다. 수은 문하에서의 수학을 토대로 1617년 사마시, 1624년 증광시 급제 후 승문원 주서를 거쳐 흥양현감(興陽縣監, 1628~1629), 공조정랑(工曹正郞), 예조정랑(禮曹正郞), 경상도사(慶尙都事, 1631), 함평현감(咸平縣監, 1634~1635), 황해도사(黃海都事, 1642), 공홍도사(公淸都事, 1645),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1646~1647), 파주목사(坡州牧使), 1649),  장흥현감(長興縣監, 1652~1654) 등을 역임하였다. 신응망의 형이 신응순(辛應純, 1572~1636)이다. 신응순은 자는 희순(希淳), 호는 성재(省齋)이고, 1603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성재집󰡕과 󰡔성재만록󰡕을 남겼다. 그의 아들 신사효(辛思孝)가 󰡔은시록󰡕에 수록되어 있으니 수은 문인이었음에 분명하다.   죽창은 신응망에게 많은 시를 지어주고 서로 창화하였다. 「送寒沙佐幕嶺南」, 「次希尙在洛韻述懷」, 「別贈辛正郎赴闕」, 「送辛希尙佐幕嶺南時赴闕之行仍述自懷」, 「送辛都事之京」, 「寄辛都事獨賞雙溪竹」, 「與寒沙及諸公唱和」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送寒沙佐幕嶺南」, 「送辛希尙佐幕嶺南時赴闕之行仍述自懷」는 신응망이 1631년(인조 9)에 영남도사로 나가는 것을 축하해준 시이다. 이는 비록 수은 사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죽창이 수은의 제자들과 널리 교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죽창과 신응순 사이에 오고간 시도 적지 않게 있다. 동생 신응망이 죽창 집에 가서 여러 날 어울리며 지은 시의 첩(帖) 형에게 보여주자, 형인 신응순이 차운한 시가 󰡔성재집󰡕에 여러 편 실려 있다.   이어, 정건⋅제원 부자에 대해 알아보겠다. 정희맹(丁希孟, 1536~1596)은 본관은 영성(영광), 자는 호연(浩然), 호는 고산(孤山)⋅선양정(善養亭)이다. 성수침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영광 수호를 위해 의병을 일으켰고, 문집으로 󰡔선양정집󰡕을 남겼다. 그의 둘째 아들이 정건(丁鍵, 1565~1618)이다. 정건은 본명은 정협(丁鋏)으로, 자는 자장(子長)‚ 호는 성경재(誠敬齋)이고, 문집으로 󰡔성경재집󰡕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하였고, 광해군 계축년에는 분산(粉山) 아래에 축실(築室)하고서 두문불출하였다고 한다. 정건은 수은보다 2년 선배인데 󰡔은시록󰡕에 수은 제자로 기록되어 있다. 정건이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자, 수은이 가을까지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겠다는 답장을 보낸 적이 있어서(「자장 정협에게 답하다」), 󰡔은시록󰡕에 수록된 것 같다. 윤운구(尹雲衢)가 영광 연흥사에서 수은과 정건이 함께 어울린 적도 있다(「연흥사에서 장보의 시를 차운하다가 정자장이 먼저 돌아감으로 끝귀절에 희롱하다」). 정건의 아들이 정제원(丁濟遠)인데 자가 백인(伯仁)으로, 역시 󰡔은시록󰡕에 수은 문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수은집󰡕에는 그와 관련된 글은 발견되지 않는다. 󰡔은시록󰡕 첫 페이지 󰡔은시록󰡕 발문    죽창은 정건에 대해 ‘經世之才’라고 평하였다(「묘갈명」). 그리고 정제원이 대곡(大谷)에 새 집을 짓자 가서 하룻밤을 자면서 축하해 주었다(「丁伯仁大谷新軒夜吟」). 그리고 정제원의 어머니 강씨(姜克讓의 딸)가 죽자 만사를 지어 애도하였는데, 평생 펼친 부도(婦道)가 자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였다(「挽丁伯仁母夫人」). 또한 정제원이 늦게 아들을 낳자 축하해주었는데, 그대 집에 경사가 겹쳐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였다(「賀丁伯仁晩得奇男子」).   󰡔죽창집󰡕을 보면, 선양정(善養亭)을 읊은 시가 꽤 많다. 선양정이란 정희맹이 용산(龍山) 북쪽에 있는 용수(龍水) 위 산록에 수칸으로 지은 누정 별서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씨들과 관련된 시 또한 다수 눈에 띈다. 󰡔성경재집󰡕에 죽창에게 보낸 편지가 4편 수록되어 있다. 죽창은 정희맹의 아들 정건의 만사를 지었다.     2) 죽창 만사와 수은   󰡔죽창집󰡕 부록에는 70 평생을 살다간 죽창에 대한 36인의 만사(挽詞)가 수록되어 있다. 만사란 가까운 사람이 읊은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만사록 수록자는 죽창의 절친이나 제자였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은시록󰡕에 이름이 수록되어 있는 인물이 여럿 있다. 강시억(姜時億), 강시언(姜時彦), 김우급(金友伋), 김전(金瑱), 박안제(朴安悌), 박안효(朴安孝), 신응망(辛應望), 유흥세(柳興世), 이율(李慄), 임련(林堜)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박안효⋅안제 형제는 본래 서울 사람이다. 박씨 형제가 수은의 제자가 된 계기는 그의 아버지 박정현(朴鼎賢)이 영광군수를 역임한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박정현은 1603년부터 1608년까지 6년간 영광군수를 역임하였다. 박안효가 1639년 죽창 만사에서 오성(筽城, 영광 별호) 고을에서 상종한 지 40여 년 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수은이 일본에서 돌아온 1600년 이후에 수은 문하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동생 박안제는 동헌(東軒)에서 다시 만나 남루(南樓)에서 헤어진 지 10여년이 지났다고 하였다. 박씨 형제가 수은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박정현의 이임으로 영광을 떠나자, 수은은 「박백심⋅계심 형제를 보내며(안효⋅안제)」라는 시에서 “총각 시절 서로 만났던 곳에서, 이제 보니 두 장부가 되었구나”라고 말하였다.    한편, 죽창이 박씨 형제와 만난 때는 수은이 세상을 떠나고, 박안제가 영광군수로 온 1628(인조 6)~1630년(인조 8)이다. 이 시기에 죽창이 박씨 형제에게 주거나 창화한 시가 상당히 많다. 「次朴使君季順韻仍呈雲錦亭中」, 「與朴使君連衾奉別」, 「朴使君季順九峀少時會」, 「次朴使君季順會風香亭韻」 등이 있다. 죽창이 박안제 군수와 운금정(수은 기문), 구수사(군 서 20리 구수산), 풍향정 등지에서 함께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與朴使君連衾奉別」을 보면, 3년 우로(雨露) 아래에서 인정(仁政)을 베풀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함께 자며 이임식까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대부분은 영광이나 그 인근 출신이다. 그 가운데 이율은 만사에서 죽창으로부터 평생 과분한 권장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죽창 문하에서 수학을 하거나 교화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우급(金友伋, 1574∼1643)은 만사에서 죽창에 대해 죽창이 동복현감(1621~1622)으로 부임하던 날 본인은 궁려(窮廬, 폐모론 반대로 유적 삭거)에 있었지만, 10년 만에 편지(만사) 한 장 보낸다고 한 것으로 보아, 친하지만 중간에 다소 소원하였던 것 같다.   여기서 한 가지 특징적인 점은 죽창에 만사를 보낸 사람 가운데는 수은 제자 외에, 강시억(姜時億, 수은 형 姜濬의 큰 아들), 강시만(姜時萬, 수은의 큰 아들), 정명달(丁名達, 수은 동생 姜泳의 사위) 등 수은 집안사람들이 상당수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강시억은 만사에서 ‘自我連家歲二周, 忘形幾度樂同遊’라 하여 이웃으로 산지가 2년이나 되었고 그 기간 동안 함께 노닌지가 여러 번이라고 하였다.   󰡔죽창집󰡕 서문 죽창 만사   이 외에 수은 친인척 가운데 죽창과 가까이 보낸 이가 있다. 󰡔수은집󰡕을 보면, 수은의 종숙인 사추(士推) 강극서(姜克恕)가 나온다. 종숙과 만나서 서울 이야기 하였다고 하니, 그는 서울 출신인 것 같다. 데릴사위가 되어 살면서 쇠미함을 퍽이나 개탄하기에, 수은이 시로써 위로해 준 적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재력을 모았는지, 한강 양화도 경치 좋은 곳에 집도 지었다.   이런 강극서에 대해 죽창 또한 많은 시를 주고받았다. 그 가운데 죽창이 양천현감일 때 꿈속에서나 보았던 강극서가 기약도 없이 배를 타고 방문하였다가 돌아갔다. 서울에서 남쪽 객들이 만나니 밝은 달빛이 양천 하늘 정자 위에서 비친다고 하였다. 동헌에서 같이 잠을 자며 객지 생활 이야기를 많이 하였던 것 같다. 이처럼 죽창에 만사를 보낸 사람 가운데 수은 문인들은 물론이고 친족들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교유도 활발하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수은과 죽창 두 분 사이의 교유가 두터웠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3. 문집 속의 교유   1) 󰡔수은집󰡕과 죽창   󰡔수은집󰡕 속에는 죽창과 교유한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죽창이 직접 거명된 시 두 편을 살펴보자. A - 鄭益山欲以醉仙弟妹試我戲寄 B - 舟中次鄭益山弘衍韻 小橋家在九峯西。聞說春魂未解迷。 居士不知雲作夢。禪心已似絮黏泥。 自慙山鳥驚檀板。忍許靑鸞伴木鷄。 茹藘縞衣聊樂我。半生曾擧案眉齊。 風輕海闊暮帆斜。已落殘陽又月華。 躑躅成山君莫算。滿船淸唱盡名花。   A는 「정익산(鄭益山)이 취선(醉仙)이란 제매(弟妹)로 나를 시험하고자 하여 희작(戲作)하여 보내다」이다. 정익산이란 익산군수를 역임한 정홍연이란 말이다. 정홍연이 익산군수를 역임한 때는 1622~1623년이다. 이때는 수은이 죽고 없는 시기이다. 따라서 본래는 정홍연의 자나 호가 적혀 있었을 텐데 후손이 문집을 편집할 때에 ‘익산’이란 말을 추가하였을 것 같다. 내용을 보면, 수은이 구봉(九峯, 구수산?) 쪽으로 놀러왔다. 구수산은 정홍연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때 죽창이 ‘여동생’(기생?)으로 하여금 수은의 수청을 들어주라고 했는데 그것을 수은이 반평생 동안 밥상 차려준 아내 생각에 거절한 내용이다.    B는 「배 안에서 정익산의 운을 차하다」이다. 수은은 영광군수의 부름을 받고 서포(西浦, 법성포)에 갔다. 때는 봄철 단오쯤 되었던 것 같다.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선유(船遊) 놀이도 예약되어 있었다. 그때 수은은 죽창과 한 배에 탔다. 죽창이 선창을 하자, 수은이 그에 차운한 것이다. A와 B는 동일 시기에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수은이 구수산이나 법성포 등 영광 서쪽 지역을 자주 방문하였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죽창과의 교유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죽창은 거명되어 있지 않지만, 죽창과 함께 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는 시도 󰡔수은집󰡕 속에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長沙의 읍재 子愼 林복(㥠로 개명)이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감을 보내다」라는 시를 검토해 보자. 장사(長沙)란 무장의 별호이고, 자신(子愼)은 임서(林㥠, 1570~1624)의 자호이다. 임서는 무장현감으로 1604년(선조 37) 부임해 와서 1609년(광해군 1)까지 6년간 근무하였다. 그 사이 수은은 임서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자주 만났던 것 같다(「사군 임자신이 이름난 미녀를 별원에다 두고 소오로 이름하였다」). 따라서 위 시는 임서가 무장을 떠나는 1609년에 수은이 지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수은은 임서의 두 아들 임련(林堜, 1589~1648, 자 東野, 호 閒好⋅夢坡), 임담(林墰, 1596~1652, 자 載叔, 호 淸臞)을 문인으로 두었다. 임련은 1604년에 아버지의 명에 의해 강항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수은 사후일텐데, 임련은 강수백(姜壽伯, 누구의 자일 것 같음)을 대하고서 스승이 살았던 운제(雲堤)를 떠올렸다. 임담의 경우 9세이던 1604년에 아버지를 따라 무장현에 가서 그곳 거사(居士) 한흡(韓洽)에게서 수학하였다. 그리고 14세이던 1609년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교관(敎官) 김경선(金慶先)에게 취학(就學)하였다.    임서가 무장현감으로 있으면서 수은을 만날 때 죽창도 함께 하였다. 죽창은 이 인연을 계기로 임서에게 「임자신이 진현(陳玄)을 보냄을 사례하다」라는 시를 지었고, 그의 아들 임련이 죽창 만사를 보냈다. 이때 수은이 「松沙 別館에서 鳴皐의 운을 차하여 거문고 퉁긴 자에게 주다」라고 하였듯이, 임전(任錪, 1560~1611. 본관 풍천, 문집 󰡔명고집󰡕)과도 교유하였다. 마찬가지로 이때 죽창 또한 임전과 교유하였다.     2) 󰡔죽창집󰡕과 수은   󰡔죽창집󰡕 속에는 수은에게 주거나 수은과 함께 한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일화를 살펴보자. 승려 현상인(賢上人, 󰡔수은집󰡕에는 義玄으로 나온다)이 봄에 수은을 찾아와서 시축(詩軸) 서문을 요청하였다. 가을에 사미승을 보내서 재촉하며 두류산⋅금강산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수은은 서문을 지어주었다. 이와 관련된 시문이 󰡔수은집󰡕 속의 「贈玄上人用玄洲韻」, 「題義林詩軸」, 「僧義玄求詩」, 「送義玄入頭流序」이다.    죽창도 수은의 ‘軸詩序’ 끝에 수은 시를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太初 姜友의 운을 차하여 賢上人 軸詩序 끝에 쓰다」라는 시에서 종소리에 암자에서 새벽잠을 깨고 보니, 스님은 향불 피워 예불을 올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죽창도 ‘軸詩序’를 썼다. 사연은 이렇다. 죽창이 영남에 있었다. 영남에 있었다는 말은 거창현감(居昌縣監)을 말한 것 같다.   󰡔거창읍지󰡕에 ‘丙辰來 丁巳去’라고 적혀 있으니, 죽창은 1616~1617년 재임하였다. 그때 현상인이 방장산을 유람하면서 찾아왔다. 죽창이 보니 총명하고 단아한데다 유학경전과 역사서까지 조금 알고 있어 가히 대화할만 하였다. 그러고 죽창은 영광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상인이 옛 정을 잊지 않고 죽창이 살고 있는 적막한 바닷가를 찾아왔다. 죽창은 그와 한담을 나누었다. 그 끝에 소매에서 수은의 편지를 내 보이니, 죽창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현상인이 스스로 율시 한편을 읊어 주면서, 죽창으로 하여금 그에 대해 창화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죽창은 인정과 의리상 안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니 사양하겠다고 말하였다. 더군다나 대선비 수은 필적 옆에 자신의 글을 댄다는 것은 더더욱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당시 수은은 문장과 인물이 높아 그의 글을 받아가려는 사람이 많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아 사양하였지만 수은의 편지까지 내보이며 간곡히 요청함을 저버릴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글을 적는다고 하였다. 󰡔죽창집󰡕에는 이 현상인에게 지어준 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4. 수은과 죽창의 지인들   수은과 죽창의 지인을 보면, 몇 가지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하나는 수은⋅죽창의 지인 가운데 영광군수가 들어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한 제자를 두 사람이 지도하였다는 점이고, 그리고 두 사람의 지인들이 호란 의병을 일으켰다는 점 등이다. 하나씩 살펴보겠다.   첫째, 영광군수는 물론이고 인근의 무장현감, 무안현감, 광주목사 등과 어울린 글이 두 문집에 많이 수록되어 있다.   󰡔수은집󰡕을 보면, 무안군수 정념(鄭恬)⋅鄭운, 무장현감 성계선(成啓善, 1602~1603 재임)⋅임서(林㥠, 1604~1609 재임) 등이 보인다. 그리고 영광군수로는 경섬(慶暹, 1600~1601 재임), 이춘기(李春褀, 1602~1603 재임), 박정현(朴鼎賢, 1603~1608 재임), 윤황(尹煌, 1609~1613 재임), 유석증(俞昔曾, 1613~1615 재임) 등이 확인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은은 1609년부터 1613년까지 5년간 영광군수로 재임한 윤황과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시기적으로는 일본에서 돌아온 후 마음이 안정된 때여서 그랬을 것 같고, 수은과 윤황 같이 우계 성혼의 제자이고, 윤황은 우계의 사위이기도 하다.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윤황에 대해 「尹侯를 보내면서」라는 시에서 수은은 윤황을 ‘斯文의 正脈’이라고 하였다. 윤황은 윤훈거(尹勳擧, 尹勛擧), 윤순거(尹舜擧), 윤상거(尹商擧), 윤문거(尹文擧), 윤성거(尹成擧), 윤선거(尹宣擧) 등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첫째와 둘째 아들 윤훈거⋅순거가 수은의 제자이다. 수은은 영광을 떠나는 윤훈거⋅순거 형제에게 내외가 명가의 후예로서 똑같이 귀한 기풍 남아 있다고 하면서, 전날에 글을 읽던 곳에서는 물소리만 졸졸 들린다고 말하였다(「윤여시⋅여관 형제와 작별하다」).   󰡔죽창집󰡕을 보면, 무장현감 임서가 보인다. 그리고 영광군수로는 정양필(鄭良弼, 1624~1628 재임), 박안제(朴安悌, 1628~1630 재임), 임광(任絖, 1630~1631 재임), 박황(朴潢, 1631~1632 재임), 윤효영(尹孝永, 1634~1635 재임), 송몽석(宋夢錫, 1635~1637) 등이 확인되고 있다. 정양필 등 영광군수는 모두 수은 사후에 재임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 영광군수를 매개로 해서는 수은 사후여서 수은과 죽창이 교유할 수는 없었지만, 무장현감 임서를 통해서는 상호 교유가 있었다. 박정현⋅안제 부자의 경우도 박안제를 통해서는 시기적으로 수은과 죽창이 교유할 수는 없었지만, 박정현을 통해서는 상호 교유가 가능하였다. 특히 󰡔수은집󰡕이나 󰡔죽창집󰡕을 보면, 영광⋅무장 두 수령과 함께 어울린 적이 있었다.     둘째, 한 사람에 대한 격려와 지도 내용이 두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한 인물로 변충원(卞忠元, 1568~?)을 들 수 있다. 변충원은 수은보다 1년 뒤 1568년(명종 22)에 태어나서 1603년(선조 36)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는데, 그 좌목에 거주지가 경기도 부평으로 기록되어 있다. 1615년(광해군 7) 7월에 반광해군 역모 혐의로 문초를 받고 10월에 영광으로 유배되었다(󰡔응천일록󰡕). 이때 수은 문하에 와서 수학을 하였을 것 같다. 유배 생활은 1624년(인조 2) 갑자년까지 이어졌다. 갑자년에 의병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쌀을 바쳤다. 해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624년 정도 추정할 수 있다. 해배 이후 김포현령을 역임하였다. 도임년은 알 수 없지만, 이임년은 1627년 또는 이 이전이다. 그런데 또 영광에 왔다가, 정묘년(1627) 10월에 영광 우사(寓舍)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따라서 변충원은 영광에서 유배 생활하고 있던 1615~1624년 또는 재차 내려온 1627년 무렵에 수은과 죽창을 따랐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은시록󰡕에 수은의 문인으로 나와 있는 인물인데, 󰡔죽창집󰡕을 보면 죽창의 문인으로도 보여진다.   󰡔수은집󰡕을 보면, 변충원과 관련하여 다섯 편의 시가 있다. 수은은 「卞江陰의 운을 차하다」에서 나도 3년 동안 이역만리에 있었다고 하면서 현재를 너무 탓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보아, 변충원은 영광에서 유배 생활 중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벽지에 오는 이 없는 터에 일부터 찾아오니 고맙다고 말하였다. 「藎初가 찾아와 그 운을 차하다」에서도 앞 시와 비슷한 내용을 읊었다. 「변신초의 시를 차운하다」에서는 밤에 연회가 있었고, 「변신초의 운을 차하다」에서는 북객(北客)이 가려 한다고 보아, 수은 생전에 해배 시도도 있었던 것 같다.   󰡔죽창집󰡕에도 변충원과 관련된 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변시초에게 차운하여 주다」를 보면, ‘昔年交契在皇州, 此日重逢碧海頭’라고 하였다. 전에 서울에서 만난 적 있었는데, 오늘 바닷가 영광 땅에서 다시 본다고 하였다. ‘聖代卽今多雨露, 願君休道逐臣愁’라고 하였다. 성대, 즉 광해군이 물러나고 인조가 즉위하여 지금 은혜(사면복권)가 많으니, 곧 해배될 것이니 축신, 즉 유배객이라고 신세를 한탄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변군 운에 차하여 重陽을 읊으다」를 보면, 바닷가 산봉우리에 올라간 것 같다. 총상인(聰上人)도 있었으니, 장소는 어느 절(구수사?)이었을 것 같다. 바다입구 흰 모래에 석양이 비추니 더욱 밝게 보이는 좋은 경치였다. 잔을 주고받아 취기가 오르자 시를 지었던 것 같다.    셋째, 수은과 죽창을 따랐던 사람들은 나중에 의병을 일으킨다. ①이괄의 난 때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사람들을 수록한 문건이 󰡔호남모의록󰡕이다. 여기에는 영광 출신으로 신유일, 신응순, 이극람, 정박, 이인영, 정전, 이홍겸, 이홍기, 이민겸, 정의달, 정제원, 이극찬, 이경운, 신응망, 강시윤, 정서, 정수, 신사효, 신종효, 이훤(李晅), 이휘(李暉), 신순거, 신엽, 신준, 정신달, 이돈, 이치순, 김섬, 김적, 박후립, 진효신 등이 수록되어 있다. ②󰡔정묘거의록󰡕을 보면,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켰던 영광인으로 강환(姜渙), 김여경(金餘慶), 김진(金瑱), 신유일(辛惟一), 신응순(辛應純), 이홍기(李弘記), 정전(丁錢), 정제원(丁濟元) 등이 있다.   ③󰡔호남병자창의록󰡕을 보면,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영광인으로 이희웅, 김여옥, 이척, 이민겸, 이구, 송식, 김담, 강시억, 정명국, 강시만, 강시건, 이휘, 김경백, 김상경, 나통서, 박담련 등이 보인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총 48인이 창의에 나섰다. 이 가운데 강시건, 강시만, 강시억, 김담, 김상경, 김진, 송식, 신사효, 신엽, 신응망, 이극람, 이홍겸, 이훤, 이휘, 정명국, 정수 등 16인이 수은의 문인이거나 죽창에게 만사를 보낸 사람이다. 이 외에 무장의 강시언, 고창이 유철견, 고부의 김지수, 함평의 정색⋅정적 등도 수은⋅죽창의 지인들이다. 이렇게 보면, 정치적으로는 서인계인 수은⋅죽창의 지인들이 중심되어 인조 정권 아래에서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에 영광에서 의병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5. 맺음말 : 수은과 죽창   죽창에게 수은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죽창 선생 사우 축문」을 지은 강진 출신의 동강 이의경(李毅敬, 1704~1778)은 죽창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면 그 친구를 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사(寒沙, 신응망), 이송(二松, 김인흡), 성재(省齋, 신응순), 수은(睡隱, 강항) 등 4인을 들었다. 죽창이 이들 4인과 도의로 사귀었다고 하였다. 김영한(金甯漢, 1878~1950)이 지은 「지산강당중건기(芝山講堂重建記)」를 보면, 광해군의 정치가 혼란에 빠지자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서 강수은, 임명고 등의 선비들과 왕래하며 시를 주고받았다고 하였다. 비슷한 내용은 이종택(李鍾宅)이 지은 「지산강당중수기」에도 들어 있다.    이상을 보면, 객지에 새 터전을 잡은 죽창에게 수은은 매우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사실 만력33년(1605, 선조 38)에 작성된 영광 향안(鄕案)에 죽창은 들어가지 못하였고, 5년 뒤 향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영광 내 지인들은 모두 향안에 입록되어 있는 상황에서 죽창은 수은에게 크게 의지했을 것 같다. 이는 죽창이 보인당(補仁堂) 주인 김주천(金柱天)에게 준 연작시 속에 들어 있는 다음의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다.       나이 칠십 되가는데 친구는 없고(年來七十故人空)     수은은 어디 갔나 물만 동쪽으로(睡隱何歸水浙東)     오직 그대만 있어서 어울렸더니(唯有吾君同調友)     생각하니 응당 꿈에서나 만나겠지(相思應想夢魂通).     이 시는 죽창이 수은 사후 본인 말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다정한 친구 수은이 없음을 허전해하며 지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죽창 사우 상량문에 죽창이 가지산(歌芝山)에서 노래하면 강수은이 화답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은과 죽창이 가까웠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생각된다. 또한 수은이 새 터전으로 일군 불갑면 운제(雲堤) 마을 이름을 죽창이 지어주었다는 문중 전언도 두 분 사이의 돈독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문헌> 󰡔거창읍지󰡕 󰡔김포시사󰡕 󰡔노사집󰡕(기정진) 󰡔동래정씨문집󰡕 󰡔석촌유고󰡕(임서) 󰡔선양재집󰡕(정희맹) 󰡔성경재집󰡕(정건) 󰡔성재집󰡕(신응순) 󰡔소은유고󰡕(신천익) 󰡔수은집󰡕(강항) 󰡔영광속수향안󰡕 󰡔영광읍지󰡕 󰡔은시록󰡕 󰡔익산군지󰡕 󰡔정묘거의록󰡕 󰡔죽창집󰡕(정홍연) 󰡔한정유고󰡕(임담) 󰡔호남모의록󰡕 󰡔호남병자창의록󰡕   김경숙, 「이괄의 난과 󰡔호남모의록󰡕」, 󰡔숭실사학󰡕 28, 숭실사학회, 2012. 김경옥, 「수은 강항의 생애와 저술활동」, 󰡔도서문화󰡕 35,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2010. 김덕진, 「전라도 광양 수월정의 기문 지은이 분석」, 󰡔남도문화연구󰡕 30, 순천대 남도문화연구소, 2016. 김덕진, 「정묘호란과 호남의병」, 󰡔전쟁과 전라도 지역사󰡕, 선인, 2018.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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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박윤정 · http://www.itfocus.kr
  홍콩관광청(HKTB)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제10회 ‘Great Outdoors’ 캠페인을 공동 전개한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캠페인에는 권위있는 가이드북과 함께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속 포토그래퍼 및 트레일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담은 협업 콘텐츠가 포함될 예정이다. 홍콩관광청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관광객들이 ‘다채로운 매력의 홍콩’이라는 시각으로 홍콩을 바라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자연 속 동식물이 함께하는 푸른 산과 전통 마을들에 대한 대조적인 시각을 통해 홍콩이 가진 환상적인 양면을 보여준다. 캠페인에서는 홍콩 전 국토 가운데 3/4이 시골 지역이고 홍콩 어디에서나 하이킹 트레일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공개된다.     </center>   앤서니 라우 홍콩관광청장은 “여행과 모험을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강력한 브랜드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협력하게 되어 기쁘다”며 “이번 캠페인은 환상적인 포토그래피와 더불어 세계적 포토그래퍼들이 담아내는 인상적인 스토리를 통해 홍콩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새롭고 신선한 시도다. 이를 통해 1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이어지는 하이킹 시즌을 맞아 방문객들이 세계적 도시인 홍콩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아시아 및 중동 지역 사업을 총괄하는 콘 아포스톨로폴루스 부사장은 “우리는 끝없는 호기심을 가진 용감한 탐험가들이 모인 집단인 만큼 항상 전 세계 곳곳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여주고자 한다”며 “홍콩관광청과의 협업을 통해 훌륭한 포토그래퍼들과 탐험가들의 시선을 토대로 도시 및 농촌 지역의 대조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홍콩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환상적인 기회를 가졌다”고 설명했다.[자료제공:뉴스와이어](ITFOCUS ⓒ www.itfocus.kr)    이 뉴스는 아이티포커스(www.itfocus.kr) 공유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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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신평강 · http://edaynews.com
강진군보건소가 신혼부부와 예비부부를 위한 건강검진 지원사업을 추진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강진군과 전라남도가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신혼(예비)부부 건강검진 지원사업은 결혼연령 상승과 고령 출산의 증가에 따라 임신과 출산에 미치는 질병을 조기발견하고 건강한 출산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신혼부부와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임신관련 건강검진비를 지원해주는 사업.     신혼부부 건강검진은 부부의 건강은 물론 임신부 태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건이 있는지 미리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신혼부부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는 건강한 결혼 생활과 앞으로 태어날 2세의 건강까지 생각해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살펴야 한다. 여성 대상 검진 항목으로는 초음파를 통한 자궁, 질, 유방관련 검사와 풍진 및 A형, B형, C형간염 검사, 당뇨, 단백뇨 등의 소변검사, 매독 에이즈 등 성병검사, 결핵, 등 폐질환을 알 수 있는 흉부 엑스선 검사 등이 있으며, 빈혈, 갑상선, 신기능 검사 등이 있다.     남성대상 검진 항목으로는 A형, B형, C형간염 검사와 당뇨, 단백뇨 등의 소변검사, 매독 에이즈 등 성병검사, 결핵 등 폐질환을 알 수 있는 흉부 엑스선 검사와 정액검사, 간기능, 신장기능, 전립선수치 검사 등이 있다.     건강검진을 계획하고 있는 결혼 3년 이내의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는 강진군에 소재한 검진기관(산부인과 등)에서 검진지정 항목의 검진을 실시하고 진료비 계산서와 영수증 등을 첨부하여 보건소로 청구하면 보건소에서는 대상자에게 건강검진비 본인부담금을 지원한도액(남성 9만원, 여성 17만원)내에서 지급하게 된다.     김영일 보건소장은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꿈꾸는 예비부부나 신혼부부는 누구나 보건소에 문의하여 건강검진을 반드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강진군은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동시에 출산친화적 환경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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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강연
강대의 · http://edaynews.com
광주광역시는 광주 북구·담양군과 공동으로 1일 전남대학교 인문대 3호관에서 ‘풍류남도 나들이’ 사업의 하나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소쇄원, 양산보의 이상’을 주제로 ▲‘철학사상의 실현, 미술사적 관점에서 본 소쇄원’(독일 베를린 대학 이정희 교수) ▲‘양산보의 생애와 교유인물’(광주교대 김덕진 교수) ▲‘양산보의 학문과 사상’(광주대 고영진 교수) ▲‘‘소쇄원사실’ 불완전하게 열린 책‘(전남대 이향준 교수) 등의 발제로 문을 열었다.   이어서 서울대 장진성 교수, 전남대 김신중 교수, 광주여대 임준성 교수,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김경호 교수가 토론자로 나서 각 발제자의 연구과제에 대한 의미 있는 문답과 보충 질의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세미나의 발제자 진행은 전남대문화전문대학원 정경운교수가 좌장으로는 전남대 사회과 김병인교수가 좌중을 차분한 분위기로 이끌면서 노련미를 과시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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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강대의 · http://edaynews.com
‘강진~광주’ 고속도로 건설로 조망권 훼손, 통풍 침해 등 피해를 우려하던 광주광역시 남구 대지마을 주민들의 고충이 해소된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박은정, 이하 국민권익위)는 11월 30일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주민센터 회의실에서 신청인 대표와 한국도로공사, 광주광역시 등 관계기관이 참석한 현장 조정회의를 열고 대지마을 주민 196명이 제기한 집단민원을 해결했다. 한국도로공사는 ‘강진~광주’ 간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수립하면서 고속도로가 대지마을을 근접하여 통과하도록 설계했다. 광주 대지마을 등 인근 주민들은 마을 앞에 약 10m 높이의 흙쌓기 공사가 진행되면 조망권이 저하되고 소음·먼지 등으로 환경 피해가 우려된다며 마을 앞 구간을 교량으로 변경하는 등 교통안전시설을 설치해 달라고 한국도로공사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는 해당구간을 교량으로 변경할 경우 사업비가 과다하게 소요돼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지마을 주민 196명은 올해 2월말 국민권익위에 집단으로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국민권익위는 수차례 현장조사와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30일 오후 14시 30분 광주광역시 대촌동사무소 회의실에서 국민권익위 권태성 부위원장 주재로 신청인 대표 등 주민들과 한국도로공사, 광주광역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 조정회의를 열고 조정안을 최종 확정했다.    이날 조정에 따라 한국도로공사는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과 총사업비 변경협의가 완료되면 흙쌓기 구간 중 마을 입구 부분을 교량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또한 교량 밑에 체육시설(게이트볼장 또는 족구장)을, 흙쌓기 구간 밑으로는 농로를 연결하는 통로박스를 설치하고 고속도로 주변에서 농경지 진입이 가능토록 부체도로*를 설치하기로 했다. 특히 마을주민들의 조망권 확보를 위해 방음벽을 투명하게 설치하고 흙쌓기 구간 일부에 나무를 심어 녹지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광주광역시는 대지마을 앞 도로의 교통량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도로폭을 확장하기로 했다. 국민권익위 권태성 부위원장은 “‘강진~광주’ 간 고속도로 건설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한 주민들의 걱정이 해결돼 다행이다.”라며 “앞으로도 국민권익위는 국민의 불편 현장을 찾아 고충민원을 적극 해소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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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시상식
강대의 · http://edaynews.com
교육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2018년도 대한민국 인재상’에 전남에서는 고교 분과 2명, 대학생‧청년일반 분과 3명이 수상 영예를 안았다.   수상 부문별로 고교 분과에 김승환(장흥 정남진산업고 3년), 장재형(해남고 3년), 대학생‧청년일반 분과에 송호영(전남대 4년), 여다솔(순천대 3년), 윤영찬(동신대 4년) 씨가 수상했다.   대한민국 인재상은 창의와 열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 발전에 기여한 인재를 매년 100명씩 발굴해 국가의 주축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도입됐다. 2001년부터 교육부가 주최하고 있다.   김성훈 전라남도 희망인재육성과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다른 열정과 도전정신, 공동체를 배려하는 인성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라며 “수상자들이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을 넘어 세계적 인재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에게는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과 상금 200만∼250만 원이 수여되고, 창의역량과 리더십 함양을 위한 연수 기회가 주어진다. 시상식은 30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렸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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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김종영 · http://edaynews.com
영광군(군수 김준성)은 지난 28일 영광군청에서 (유)영광교통 대표 최주태와 단일요금제 시행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번협약은 2019년 1월 1일부터 영광군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는 모든 주민 및 방문객들은 탑승거리에 상관없이 어른 1,000원, 초‧중‧고 학생들은 500원의 요금만 내면 영광군 농어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 현재 영광군 버스는 기본요금 1,300원에 운행거리 10km 초과 시 km당 116.14원의 초과 운임을 추가해 최고 3,000원(영광⇒두우리)까지 요금을 내야한다.   이번 협약으로 1,000원만 지불하고 전 구간을 이용할 수 있어 군민의 교통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단일요금제 시행에 따른 운수업체 수입 감소분은 영광군에서 보전하고, (유)영광교통 대표 최주태는 안전한 운행과 시간준수, 노약자 장애인 승객보호, 친절봉사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김준성 영광군수는 군민들의 발이 되어 주는 대중교통 이용의 편의성을 높이고 교통약자 보호를 위해 그동안 장애인 콜택시, 100원 택시 등을 운행해 왔다면서 이번 협약 체결로 군민들의 농어촌버스요금 부담을 덜어주고 대중교통 활성화로 영광읍 내 주차난 해소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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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남대학교와 광주광역시가 공동으로 오는 11월 30일(금) 전남대학교 용지관 광주은행홀에서 ‘공공기관과 지역사회혁신, 리빙랩에서 만나다’라는 주제로 ‘제11차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을 개최한다.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KNoLL) 포럼은 지역사회혁신을 위한 리빙랩 활동 경험이 있거나 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한다. 이를 통해 전국의 대학, 지자체, 공공기관, 연구기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사회혁신과 리빙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정보와 경험을 공유한다.  실제 생활 현장에서 사용자와 생산자가 공동으로 혁신을 만들어가는 실험실을 의미하는 리빙랩(Living Lab)은 다양한 사회 주체가 연계(Public – Private – People – Partnership)하여 과학기술, 지역사회 및 스마트시티 등에서 최종수용자인 시민의 참여 및 주도를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 대안으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는 ▲농촌마을 혁신 사례(김명일 한국농어촌공사 농촌개발처 농촌계획부장) ▲청춘창고(이재성 순천시청 경제관광국 경제진흥과장) ▲ICT를 통한 착한상상 및 다문화가족 공동체 프로젝트(이보현 ㈜엔유비즈 대표) ▲대학타운형 도시재생 사업(이경주 전남대 LINC+사업단 교수) 등을 각각 발표한다. 주제발표 후에는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좌장으로, 곽현미 광주광역시 일자리노동정책관, 권석원 한국정보화진흥원 디지털문화기획팀 팀장,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정일 광주북구사회정경제연합회 회장, 정은희 경남대학교LINC+사업단 지역사회혁신센터장, 황석연 행정안전부 정책협력팀 과장의 패널토론이 이어진다. 이번 포럼의 총괄 책임자인 김재국 전남대학교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육성사업단장은 “이번 포럼은 다양한 공공기관이 지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더 발전적인 협업전략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리빙랩을 통한 지역사회혁신과 발전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 사전등록: http://naver.me/I5lmBpnm * 문의: 062-530-0357 (전남대학교LINC+ 육성사업단)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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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28일 도청 서재필실에서 응급환자 헬기 이송체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산림청 영암산림항공관리소 등 3개 유관기관과 함께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전남지역 헬기 운영 기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보다 신속하고 안전한 응급환자 이송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했으며 참석 기관은 헬기 보유 현황, 이․착륙장 등 인계점 정보를 공유하고, 현장에서의 애로사항, 효율적 응급환자 이송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이보라미 전라남도의원이 참석해 현행 응급환자 이송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해 현장에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현재 응급환자 이송이 가능한 헬기는 전라남도의 닥터헬기 1대, 소방헬기 2대, 서해지방해양경찰청 5대, 영암산림항공관리소 3대 등 3개 기관 총 11대다.   유영후 전라남도 식품의약과장은 “각 기관 헬기의 특성과 업무를 고려해 헬기 공동 활용체계를 구축하고, 정기적인 실무 협의로 협력 방안을 계속 논의해 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인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갖춰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라남도는 2011년 9월 22일부터 응급의료 전용헬기 1대를 운용해 2018년 10월까지 섬지역을 중심으로 총 1천746회 출동하고, 1천632명의 응급환자를 이송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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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박윤정 · http://www.itfocus.kr
  홍콩관광청(HKTB)이 주관하는 각종 축제가 11월 29일부터 2019년 2월 24일까지 펼쳐진다. 올해 첫 선을 보이는 홍콩 최대 야외 조명 축제 2018 홍콩 펄스 라이트 페스티벌(Hong Kong Pulse Light Festival 2018)은 방문객들에게 놀라운 시각적 성찬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축제는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기존의 ‘심포니 오브 라이트(A Symphony of Lights)’ 행사를 한층 강화, 전 세계 예술가들이 제작한 휘황찬란한 설치품과 예술적으로 눈부신 조명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며 올겨울 홍콩 전역을 환하게 밝힐 예정이다. ◇윈터 원더랜드 전 세계 예술가들이 올겨울을 환하게 밝힐 조명 관련 설치품을 빅토리아 하버 곳곳에 선보이며 관람객들에게 매혹적으로 눈부신 경험을 선사하게 된다.   국제 라이트 아트 디스플레이(International Light Art Display) 행사는 전 세계 각종 라이트 페스티벌에서 공개되었던 최고의 작품 14점과 더불어 현지 출신 예술가들이 홍콩을 상징으로 삼아 제작한 4점의 작품을 함께 공개한다. 이를 통해 홍콩 전역은 인터랙티브 라이트 아트 플레이 그라운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밤하늘을 수놓다 빅토리아 하버 인근에서 펼쳐지는 세계적 라이트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 심야 조명쇼는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더욱 풍성하게 밝혀줄 것이다. 사전에 지정된 날 저녁마다 펼쳐질 올해 합동 공연과 옥상 불꽃놀이에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빌딩이 참여, 축제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서로 다른 크리스마스 트리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트리를 예술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품이 대관람차 인근에 설치된다. 프랑스 예술 작품 제작팀인 1024 Architecture의 ‘XTree’는 나뭇가지들을 상징하는 금속 재질 스캐폴딩을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각종 조명 장식으로 정교하게 꾸몄다. 한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 대표적 명소인 황후상 광장에는 홍콩을 상징하는 전통적 형태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마련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이밖에도 다양한 행사가 각 명소에서 펼쳐질 예정이며, 축제 시즌 이벤트와 야간 관광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자료제공:뉴스와이어](ITFOCUS ⓒ www.itfocus.kr)이 뉴스는 아이티포커스(www.itfocus.kr) 공유 뉴스입니다.
뉴스등록일 : 2018-11-28 · 뉴스공유일 : 2021-08-19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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