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뉴스

생활/문화/문학/칼럼

건의 공유뉴스가 있습니다.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정약용은 1808년 겨울에 큰 아들 학연에게 부치는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적었다.  오늘날에 있어 시율(詩律)은 마땅히 두보(杜甫 712∼770))를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그의 시가 백가(百家)의 으뜸이 되는 까닭은 《시경》3백 편에 있는 의미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경》3백 편은 모두 충신, 효자, 열부(烈婦), 양우(良友)들의 측은하고 아픈 마음과 충후한 마음이 형상화된 것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그렇다. 시란 음풍농월이 아니다. 사회현실을 직시하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개탄하며 권선징악(勸善懲惡)해야  진실로 시이다. 사회시(社會詩)야 말로 리얼리즘이다.   다산이 시성(詩聖) 두보의 시를 언급한 것은 두보의 시에는 백성들의 아픔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현종때 안사의 난 때 겪은 것을 시로 지은  3리 3별(신안리, 동관리,석호리와 신혼별 新婚别, 수노별 垂老別, 무가별 無家別)은 사회시의 극치이다. 그래서 1481년(성종12)에 두보(杜甫)의 시 전편을 한글로 번역한 시집(詩集) ‘두시언해’를 발간하기도 했다.    다산의 3리 시 중 마지막 시는 ‘해남리(海南吏)’이다. 다산은 해남에서 도망나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도 세금 독촉을 하는 혹독한 아전이 세금을 걷어가고 있었다. 해남리 역시 두보의 ‘동관리(潼關吏)’ 시를 차운하였다. ‘동관리’ 시는 동관의 성을 쌓는 병사들의 고초를 적은 시이다. 759년 9월 곽자의를 비롯한 9명의 절도사들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상주에 있는 안사의 난의 주모자 안경서를 포위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될 무렵 상주성은 양식이 바닥나서 큰 위기가 왔다. 그러나 안사의 난의 또 다른 주동자 사사명의 원군이 오고, 포위군 측은 지휘계통이 안 서고 군기가 해이해져서 3월의 싸움은 관군의 패전으로 끝났다.    곽자의는 장안에 이르는 요충인 동관에 성을 쌓아 적의 진격을 방어하려 했다. 마침 이곳을 지난 두보는 동관의 병사들의 고충을 시로 적었다. 그러면 ‘동관리’를 읽어보자. 병사들은 이 무슨 고생인가?   동관 길목에 성을 쌓고있네.      큰 성은 철옹성 보더 견고해 보이고  작은 성은 만여 장 더 되는 높이!   동관 관리에게 물어보니           관문 만들어 오랑캐 침입에 대비한다고               나를 굳이 말에서 내리게 하여  산의  산모퉁이 가리키는데   늘어선 방책 구름에 닿아 정녕 나는 새도 넘지 못할 듯     ”오랑캐가 와도 지키면 될 뿐  어찌 장안 걱정 할 일  있으랴  저기 저 요새를 보시오 수레 하나 겨우 지날 좁은 길   전쟁 나면 긴 창 휘둘러 만고에 한 사람이면 지키지요.”   슬프도다, 도림에서의 전투여 백만 대군 물고기 밥이 되었으니     이 관문 지키는 장수여, 부디 가서한의 흉내는 내지 마시라 그러면  해남리(해남의 아전)시를 읽어보자. 나그네 한 사람 해남에서 달려와      무서운 것 피해 오는 길이라면서      한참 되어도 가쁜 숨 가라앉지 않고   아직도 겁에 질린 기색이네            이 사람 승냥이나 이리를 만난 것이 아니면  오랑캐 족속을 만난 게 분명하네.            “세금 독촉 아전들이 마을에 나타나     이리저리 다니면서 마구 짓밟고              신관 사또 명령은 더욱 엄해서               정해진 기한을 넘길 수가 없다고 하네     주교사의  만곡선이                        정월에 서울 떠나                          주교사(舟橋司)란 전국의 조운(漕運)을 관장하고 부교를 놓는 관청이고,  만곡선(萬斛船)은 지방에서 거둔 세미(稅米)를 조창(漕倉)에서 서울로 운반하는 배이다.     더 이상 지체하면 모가지가 날아감은     종전부터 있어 왔던 예이기에              여기 저기 통곡소리 시끄럽지만         그것으로는  뱃사공 끄떡도 안하네.        나는 지금 맹호를 피해왔으나             바짝 마른 물고기를 그 누가 구해주리.”  두 줄기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며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쉬네.                재해가 심하여도 세금만 걷어가는 조정, 그리고 지방 수령과 아전이 너무 원망스럽다. 이게 나라냐? 사진 1 천일각 (강진군 다산초당 근처) 사진 2  천일각 안내판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김세곤 ]

뉴스등록일 : 2020-02-17 / 뉴스공유일 : 2020-02-17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의 계절이 돌아오는 지금 새 학기를 맞이하여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입학과 개학을 준비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학교폭력 발생 우려가 되는 시기이다. 학교폭력 예방활동과 올바른 학생 선도문화를 위해 경찰은 학교전담경찰관을 필두로 하여 학교에 직접 찾아가 학교폭력 예방홍보활동을 하며 학생간의 안전체감도 제고와 학교폭력 범죄의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통계를 보자면 약13만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1.2%가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며, 초등학생의 학교폭력 피해가 중․고등학생보다 많은 것으로 보여지는 만큼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위와 같은 조사자료를 통해, 교육부 및 관련 유관기관에서는 이에 맞는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체계를 구축하고 힘써야 할 것이며, 특히 학교 내에서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을 구축하여 학생들을 상대로 잦은 교육과 홍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이 어울려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활동들을 늘리고 학교 내 폭행 취약지역을 셉테드(CPTED)를 통해 정비하고 주변 CCTV를 늘려 안전한 학교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육프로그램과 안전한 환경조성을 통해 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충분히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학교폭력의 가해학생에게는 경찰과 학교 당국이 협력하여 학교폭력자치위원회 등을 통해 학교 폭력 가해자를 선도하고 범죄 수준에 이른 학교폭력은 경찰에서 엄중히 수사하되 선도심사위원회 및 선도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하여 소년범을 구제하는 절차도 마련해 처벌과 교화 사이에 균형을 도모하고 피해학생에게는 사후 트라우마를 미리 방지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그렇기에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면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서로간에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조성하여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으로 학교폭력 근절 및 예방에 힘써야 할 것 이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백승민 ]

뉴스등록일 : 2020-02-12 / 뉴스공유일 : 2020-02-12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충청도사 김일손의 상소 26개 조목 중 18번째  조목은 “지방관이 추천하는 인재를 섞어 써서 훈도(訓導)로 삼으소서”이다. 신이 본도(本道 충청도)에 이르러 주현(州縣)의 훈도를 두루 시험하여 보니, 간혹 향교의 생도는 여러 경전(經傳)에 능통한 자가 있는데, 훈도는 한 경전에도 통하지 못하므로 스승이 생도를 가르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도가 도리어 스승을 가르칠 형편이니 진실로 탄식할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뇌물 청탁으로 말미암아 훈도의 직을 얻어서 구차하게 군역(軍役)이나 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각도 감사에게 명하여 여러 교생을 고시하여 경술(經術)에 능통한 자를 논계(論啓)하여, 회강(會講), 취재(取才)에 능통한 자를 병용하여, 교육에 공이 있는 자를 감사가 보고하고 현(縣)에서 군(郡)으로, 군(郡)에서 주(州)와 부로(府)로, 점차 옮기면서 가르치게 함으로써 사표(師表)를 장려하소서.   19번째 조목은 “사전(寺田)을 혁파하여 학전(學田)에 충당하고, 중대(重臺)를 없애서 피폐한 고을을 번성하게 하소서.”이다. 선왕(先王 성종)께서 학교를 일으키고자 하여 일찍이 학전(學田)을 주부군현(州府郡縣)에 주었는데, 다 정한 면적이 있으나 충당할 토지가 없다보니 한갓 빈 문서가 되고 말았습니다. 태종께서 사사(寺社)의 토지를 단번에 없애 버렸지만 그 뒤에 다시 차차 늘어났습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선왕의 뜻을 본받고 태종의 과단성을 본받아 사전(寺田)을 모두 혁파하여 학전(學田)으로 충당하소서. 그리고 풍수지리설에 의한 도움을 받는다는 말(비보설 裨補說)은 사실 도선(道詵)에서 시작된 것으로 진실로 황당합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재목벌채를 금하는 구역 안에 있거나, 수해를 막기 위한 곳이 아닌 사전(寺田)은 일체 학전(學田)에 충당하여 경작하게 하소서. 옛날 사람이 종의 종을 중대(重臺)라 일컬었습니다. 이제 공천(公賤)·사천(私賤)의 노비(奴婢) 송사가 있으니, 모두 읍교(邑校)의 쇄잔한 자의 소속인데, 중대(重臺)를 일체 금한다는 의논이 나왔으니 원망과 비방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백성은 전하의 처분에 달려 있으니, 어찌 그들 고조(高祖)나 증조(曾祖)에 관계되겠습니까. 중[僧]의 도(道)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출가(出家)하였으면 마땅히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는데, 행실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주지(住持) 노릇하는 자는 가만히 앉아서 관청의 조세를 받아먹기도 하고 임금의 성수(聖壽)를 축원한다고 핑계하지만 아무런 도움이 없으며, 여느 요망하고 교활한 중들은 노비(奴婢)를 차지하고 토지를 경작하는 등 비행이 한 둘이 아닙니다. 나라에 큰 근심이 생겨 백성은 고달프고 관리들은 녹초가 되어도 중들은 못 들은 척하니, 마땅히 그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공유재산으로 귀속시키고, 중의 노비 소유를 금지하소서. 이어서 20번째 조목은 “문관을 등용하여 왜노(倭奴)를 진압하소서”이다. “사람들은 다 북쪽 오랑캐를 근심하나 신은 홀로 남쪽 왜적을 걱정합니다. 신이 왜적의 실정을 살펴보니,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더욱 교만하여 이미 어전[魚箭]을 쟁탈하고 또 웅천(熊川)을 위협한 바 있으며,  요사이 충주(忠州)를 지나면서 연회를 마련하라고 재촉하며 ‘너희 나라는 국상이 났지만 우리 임금은 무사하다’라고 하였다 합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통분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애초에 변장(邊將)을 잘못 기용한데서 연유합니다. 그들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탐욕을 부리고, 간혹 뇌물을 받아서 변방(邊方)의 위엄이 서지 못하여, 통역하는 자는 특히 믿을 수 없는 무뢰배인 배부리는 군졸[般軍]로서 오랑캐와 내통하고 연도(沿道)에서 왜노를 꼬드깁니다. 왜노(倭奴)가 불만이 있으면 반드시 예조(禮曹)에 호소하는데, 예조에서는 그 말을 믿고 아뢰어 주관(州官)을 추궁하도록 보고하니, 주관(州官)은 접대하는데 더욱 애쓰게 되고 왜노의 교만은 더욱 심합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이제부터 왜노가 호소하는 일이 있으면 예관(禮官)이 좋은 말로 응대하여 다시는 주관을 추궁하도록 아뢰지 말게 하고, 통역자를 엄중히 문초하여 심한자는 목을 베소서. 이보다 먼저 내신(內臣)을 보내어 공손치 못한 오랑캐를 타이르게 해야 합니다. 만약 듣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꺼려 유독 그들의 호소만 믿고 우리 신하들을 치죄한다는 말입니까. 제포(薺浦)·부산(釜山)·염포(鹽浦)·울산(蔚山)·동래(東萊)·웅천(熊川)이 육진(六鎭)은 가장 적당한 사람을 선택해야 됩니다. 선왕께서 활 잘 쏘는 문관을 선택하여 장래 장수 재목이라고 지명하신 자가 무려 20여 인이었으며, 가만히 앉아서 늙어 가는 젊은 관료를 장차 어디에 쓸 것입니까. 신이 원하옵건대, 자격에 구애됨이 없이 이런 사람을 두루 시험하여 보아서 능히 오랑캐를 진압시킨 자에게는 서열을 따지지 말고 상을 주소서. 우리 광릉(光陵 세조)께서 이극균을 만포 첨사로 삼았는데, 마침내 크게 써서 이제 중신이 되었으니, 이것이 곧 조종(祖宗)의 고사(故事)입니다. 사람의 혈기가 쇠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공자도 내가 쇠하였다는 탄식이 있었는데, 더구나 궁마(弓馬)의 기예(技藝)는 젊을 때를 지나면 소용이 없습니다. 김일손은 1495년 5월28일의 상소에서 남쪽을 왜노를 경계하라고 간언했다. 그런데 조선 조정은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100여년 후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사진  자계서원 (경북 청도군)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김세곤 ]

뉴스등록일 : 2020-02-10 / 뉴스공유일 : 2020-02-10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다산 정약용은 1810년에 ‘용산리’ 시에 이어 ‘파지리(波池吏 파지촌의 아전)’ 시를 지었다. 파지촌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강진 군 어느 마을이리라. 이 시는 아전들이 파지마을에 들이닥쳐 마을에 농부라고는 없는데 애꿎은 고아와 과부를 결박하여 성 앞에 세워놓았다. 이윽고 도망 못 간 선비 한 사람을 잡아서 나뭇가지에다 거꾸로 매달고 마을 사람들에게 세금 독촉을 하였다.   ‘파지리’는 두보의 ‘신안리(新安吏 신안 마을)’ 시의 운을 차운하여 지었다. 두보는 759년 안사의 난 때 관군이 장안과 낙양을 수복한 후에 사공참군으로서 낙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반란군에게 대패한 관군이 신안마을(하남성 신안현)에서 보충병을 뽑아 출정시키는 장면을 목격하고 시를 지었다.  먼저 ‘신안리’의 주요 구절을 읽어보자 우연히 신안 마을을 지나가는 길 떠들썩한 병사의 점호를 보다. 그 고장 관리에게 연유 물으니 “ 저들 나이 어리고 체구 작거니 그 어찌 낙양성을 지켜 낼꼬? (중략) 관군이 상주를 수복한다기 얼마나 기다렸나. 평정할 그 날 그러나 반군의 세력이 커서 패하여 도망쳐 돌아올 줄이야!”  (후략) 그러면 다산의 ‘파지리’ 시를 읽어보자.      파지리(波池吏 파지촌의 아전) 아전들이 파지촌에  들이닥쳐        吏打波池坊 시끄럽고 소란하기 군대 점호같구나.  喧呼如點兵 역병에 죽은 시체에 굶어 죽은 시신 뒤섞여       疫鬼雜餓莩 마을에 농부라고는 한 명도 없어                 村墅無農丁 애꿎게 고아, 과부 결박하여          催聲縛孤寡 등에다 채찍질, 앞으로 끌고가니      鞭背使前行 개처럼 욕먹고  닭처럼 몰리어        驅叱如犬鷄 사람들 행렬이 성(城)까지 이었구나.  彌亙薄縣城 그 중에 가난한 선비 한 사람         中有一貧士 가장 수척하고 외로워 보이는데       瘠弱最伶俜 하늘을 우러러 죄 없음을 호소하는    號天訴無辜 구슬픈 원망소리 끝없이 이어지네.    哀怨有餘聲 하고 싶은 말일랑 감히 못하고       未敢敍衷臆 눈물만 비오듯 쏟아지는데           但見涕縱橫 아전 놈 화내며 멍청하다고           吏怒謂其頑 욕보여 다른 사람을  겁주려고        僇辱怵衆情 높은 나뭇가지 끝에 거꾸로 매달아     倒懸高樹枝 상투를 나무뿌리에 닿게 하고는        髮與樹根平 “소견없는 놈아 무서운 줄 모르고     鯫生暋不畏 네가 감히 상부의 명령을 거역해       敢爾逆上營 글을 읽었으면 의리를 알 터이니                     讀書會知義 임금에게 내는 세금은 서울에다 바쳐야 할 것 아닌가.  王稅輸王京 너에게 유월까지 말미 준 것만 해도    饒爾到季夏 너를 적잖게 은혜 베푼 일인데         念爾恩非輕 포구에 묵고 있는 큰 배가             峩舸滯浦口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 ”          爾眼胡不明 아전이 위세 부리는 건 바로 이때라     立威更何時 이리저리 지휘하는 아전들이란.         指揮有公兄 아전은 지방 관청의 실무 집행자이고 전근 없이 한 곳에서 평생 근무하여 그 지방을 소상히 알고 있어 백성 착취가 더 심했다. 다산은 『목민심서』「이전(吏典)」 ‘아전을 다스림(束吏)’에서  아전의 착취를 이렇게 적었다.  “백성은 토지로 논밭을 삼지만,  아전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을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징수하는 것을 수확으로 삼는다.  이것이 습성이 되어서 당연한 짓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다.” 아전 중에서도 전라도 아전의 착취는 지나치게 심했다. 오죽했으면 매천 황현(1855∼1910)이 『매천야록』에서  ‘전라도 아전은 조선 3대 폐단’ 중 하나라고 적었을까.   “운현(대원군)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는 세 가지 커다란 폐단이 있으니 ‘충청도 사대부, 평안도 기생과 전라도 아전이 그것이다’.(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매천야록, 서해문집, 2006, p 60)       사진   1. 정석 (다산 초당)          2. 정석 안내판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김세곤 ]

뉴스등록일 : 2020-02-09 / 뉴스공유일 : 2020-02-09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오늘은 2020년 정월 대보름이다. 필자의 선친 백산선생이 이 땅에 96년전 오신 날이라서 7남매들와 함께 민족의 명절인 설날보다 오늘을 더 부각하기로 했다. "100년도 못사는 인생!! 100년의 생을 가진거라면 모든게 신이다!!"라는 말에 공감하면서 글을 이어간다. 시나브로 잠시 눈을 감고 꿈꾸듯 회상해 보면 자식들에겐 과묵하시고 철저하게 엄격하려고 더 그러셨던 모습들이 차창칸으로 풍경이 그려지듯 지나면서 기억이 어제 일같이 새롭다. 지금도 주변에서 선친을 기억하는 일가 친척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정다감하시고 항상 미소를 띄며 어떤 말이든 끝까지 들어주며 용기를 주고  덕담을 곧잘해 주시고 술값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말한다. 그렇게 정이 많은 분이란걸 자식으로서 나중에야 알게된 게 선친이 늦은 병마아 싸우고 있을 2002년 무렵이었다. 그토록 금연을 하신 분이 어느 날 분개한 마음에서 분연히 담배를 피우시다가 필자를 보고 화들짝 놀라시며 게면쩍게 미소짓던 모습을 지금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으나 그런 선친의 모습에서 자식에게 말못할 그 얼마만큼의 왜로움이 숨어 있었을까를 지금에서야 감히 생각해 본다. 그렇게 이웃과 일가와 친척들과는 다정다감하신 분께선 항상 집에서는 엄격한 아버지셨다. 특히 성장하면서 조금 삐딱했던 불초자에겐 더 그러하신듯 싶다.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소주 한 잔 못 받아본 자식의 민망함은 굳이 삼강오륜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부자유친에서 자식의 도리를 못함을 이렇게 사후회한다. 작은 설날이라는 정월 대보름에 오신 의미를 어릴적 어머니께선 이웃주민들을 불러 소박한 상차림으로 그렇게 선친의 생신을 매년 축하해 주셨다. 다툼이 없는 삶은 인생이 아니듯 선친께서 약주를 즐기시고 밤늦게 들어오시면 두 분이 가끔 언성이 높아지시던 그러한 모습도 지금은 그 마저도 이젠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러한 애증에서도 어머니는 빈틈이 없으셨다.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누군가 선물꾸러미를 놓고 가면 우리는 온통 그 선물에 집중했고 선친께서 돌아오셔서 항상 먼저 확인하고서야 풀어보고서야 우리들 차지가 되었다. 이게 당시 우리집, 가풍의 한 맥락이었다. 뜸금없는 말이라고 퉁치고 풍선에서 바람빠지는식으로 대수롭지않은 일로 냉소할 수 있다. 그러나 동맥경화와 심근경색같이 큰 병도 실핏줄의 모세혈관의 잘못된 흐름이나 막힘에서 야기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듯 가풍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 DNA가 거의 까칠덩어리이다. 그건 대대로 내려오는 대쪽같은 선비정신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니 자꾸 의견이 갈라치고 파열음이 쉽게난다. 현대사회야 직업에 귀천이 없고 그야말로 황금 만능주의라 돈이면 장땡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직업을 갖지않는 선비였고 진성골의 양반의 자손이다. 실례로 1900년 초까지만 해도 며느리가 소나기가 내리자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널어놨던 곡식이 비에 젖어들고 있는데도 조부께서는 태평스럽게 그 모습을 바라만보고 계셨단다. "아니 아버님, 벼가 비에 젖는데 왜 멍석도 안 겉고 계셔요??" "선비는  그런걸 하는게 아니란다!!" 단호히 말씀하셨댄다.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 그리고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마침내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이 겹치면서 조선에 평화가 흐르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살던 선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손들은 느닷없이 반상이 없어져버리고 항상 살갑게 챙겨주던 하층민 가족과 같은 성씨를 쓰는 가족 아닌 가족이 되어갔다. 일제강점기에서 토지정리, 경작으로 땅을 뺏기고 근대화물결에 이 선비들은 파도처럼 밀려나고 있었다. 입이 많아진 썰물의 파도같은 대가족이 살아가는 고통이란 왜에 의해 나라가 흔들리면서 더 큰 문제를 양산하고만 있었다. 전국민의 6-8%계층이 고작 양반이었는데 이젠 모두가 양반이 되고만 개벽된 세상에서 DNA만 외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후손들은 양반의 굴레에서 억지로 벗겨지고 척박한 땅을 경작하고 산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물레방아간을 돌리게 되고 신 문물에 항복하듯 사회 파장의 수렁텅이에 고스란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허겁지겁 세월에 떠밀려 우리 7남매는 여기까지 오게된 것이다. 불과 400여년 전만하더래도 직계 조부인 사숙제선생은시서화 삼절로 세종대왕과 함께  민초들을 위해 기꺼이 한글 창제를 도왔고 백성들을 위해 '금양잡록', '촌담해이' 등을 편찬했다. 그런 위대한 가문의 혈맥이 이어져 우리는 그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이 피의 흐름으로 시와 글 그리고 그림 등을 예사롭게 마주하지 않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선친 백산선생께서는 하 젊은 시절 기분 좋을 실 때는 자식들앞에서도 시조를 곧잘 읊조리셨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없건마는..."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고 아른거린다. 오늘 이 기분으로 살아 생전 추억을 회상해 보는 것도 선친의 큰 광영이고 자식으로서 축복이다. 그래서 가신날보다 오신날을 매년 정성스럽게 기려보고자한다. 그게 필자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큰 은혜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이며 도리로 영원히 이어지는 부자지간의 소통의 출발이기 때문이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강연은 ]

뉴스등록일 : 2020-02-08 / 뉴스공유일 : 2020-02-08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충청도사 김일손의 상소 26개 조목 중 16번째는 “선비를 기용하는 데는 먼저 수령으로 시험 삼아 쓰고, 권선징악의 법을 밝히소서”이다.  “예전에 처음 벼슬에 나아가는 선비를 반드시 먼저 수령으로 부임시킨 것은 모든 어려운 것을 두루 경험해 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은 초야(草野)에 있을 때 제 딴에는 백성의 일을 갖추어 안다고 여겨왔으나, 본도(本道 충청도)에 부임해 와서 보니, 지난날 미처 알지 못한 바가 역시 많은데, 하물며 부귀한 가문에서 벼슬길에 나간 자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신은 원하옵건대, 대소 관료를 반드시 먼저 수령으로 시험 삼아 임용하고, 승문록(承文錄)에 구애됨이 없이 백성의 일을 두루 알게 한 뒤에 쓰도록 하소서. 한나라의 황패(黃霸)는 고을[郡]을 잘 다스려 재상(宰相)이 되었고, 송(宋)나라의 전약수(錢若水)는 원옥(冤獄)을 잘 다스려 통판(通判)으로서 일약 참정(參政)에 승진되었으니, 옛날에는 다 그러하였습니다. 우리 조선에 임수창(林壽昌)이 밀양(密陽) 고을을 다스리는 데 공적이 있어, 선왕께서 일찍이 부제학(副提學)을 임명하고자 하여 옥서가 있는 문서로 표창하였고, 덕망으로 잘 다스린 손창(孫昌)에게는 건너뛰어 품계를 올려주었고, 신담(申澹)은 백성들이 생사당을 지어주었으니,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염능오인(廉能 청렴하고 재능있는 사람을 우대함)의 법은 폐하고 십고승자(十考陞資 10가지를 고려하여 높은 품계에 오름)의 법을 세웠으나,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함께 침체되었습니다. 선왕께서 한 번 감사에게 명령하여 근무성적 평정 외에 별도로 승진 또는 파면하기도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이런 것으로써 법을 삼아 청렴하고 공평하여 백성에게 혜택을 준 자가 있거든 비록 낮은 벼슬에 있더라도 발탁하고, 탐욕이 많아서 법을 범하는 자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관리들이 분발하기를 다툴 것이며, 백성들은 그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왕의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승진에 있어 청렴과 능력을 강조한 김일손. 혜안이 놀랍다. 상소 17번째 조목은 “금령(禁令)을 완화하고 외관(外官)을 넉넉하게 대우하소서”이다. “우리 조선의 법이 엄하긴 하나, 법을 준행하는 관리가 없으므로 그 법이 행하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행하지 못하는 것은 금령이 너무 엄하여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마음먹고 받들어 시행하고자 하는 자도 한 번 법을 어기게 되면 꼭 하간(河間) 여자의 음행과 같아서 다시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하간(河間) 여자의 음행은 당나라의 유종원(柳宗元 773∼819)이 지은 《하간전(河間傳)》에, "하간 땅에 사는 계집이 당초에는 정조를 지켰으나, 일가 계집의 꼬임에 빠져서 한 번 실행(失行)한 후에는 다시 개과하지 못하고, 점점 심하여 몸을 망쳤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여자가 한 번 몸을 망치면 백번 천번도 망친다는 의미이다.    상소는 이어진다. “수령(守令)의 사사 노비는 그 수를 넉넉하게 하여줌이 마땅합니다. 옛날 군대가 전쟁에 나갔을때 그들의 처가 몸소 북채를 잡고 북을 쳐서 패전을 면하게 한 예가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장수와 사졸이 비록 멀리 떨어진 지역에 가더라도 처를 데리고 갑니다. 남녀가 동거하는 것은 사람의 큰 욕정이니, 능히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질이 모진  병졸들이 장수를 가볍게 여겨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끼치는 해가 매우 클 것입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3년 뒤에 장관(將官)이 사처(私妻)를 데리고 가는 것을 금하지 마소서. 중국 북위(北魏 B.C 386∼534)는 녹봉을 주지 않으므로 탐학(貪虐)한조사(朝士)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만호(萬戶)는 전함을 타고 바람과 물결 위에서 변방을 지키니, 그 직책은 가장 고되나 아무 수입이 없어서 처자를 부양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난폭한 자가 궁핍한 처지에 맞닥뜨리면 어찌 막 된 짓을 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생각컨대, 별시(別侍)는 갑사(甲士)보다 높은데 녹(祿)만 있고 보포(保布)는 없으며, 갑사(甲士)는 별시(別侍)보다 재능이 못하나 녹도 받고 보포도 받으니, 어찌 한쪽만 우대하십니까. 사람을 박해하면서 군포를 빼앗고 또한 후한 녹봉도 먹으니, 여러 부류 가운데 가장 넉넉한 자는 갑사(甲士)입니다. 갑사 6품 이상은 퇴직후 녹봉을 조금 받는 자리로 돌리고 그 재원에서 취하여 만호(萬戶)의 녹(祿)에 표준하여 주고, 그 남는 것을 미루어 갑사의 재주 있는 자에게 주면, 국비의 결손이 없고, 만호(萬戶)가 청렴해 질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사진 이화장 (성종이 김일손에게 살도록 빌려준 집인데 김일손은 1495년 충청도사를 한 후에 반납했음)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김세곤 ]

뉴스등록일 : 2020-02-03 / 뉴스공유일 : 2020-02-03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1809년과 1810년 두 해에 걸쳐 전라도 지역에 극심한 흉년이 계속되었다. 유랑민들이 길을 메웠고 버려진 아이들이 길거리에 넘쳤다. 전염병마저 창궐하여 시신(屍身)들이 언덕을 메웠다.     이러함에도 탐관오리들은 사태를 수습할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수탈만 일삼았다.   다산은 분개하였다. 그리하여 탐학만 일삼는 아전을 고발하는 <용산리(龍山吏)> · <파지리(波池吏)> · <해남리(海南吏)>, 소위 3리(三吏) 시를 지었다.  <용산리>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석호리(石壕吏)>, <파지리>는 <신안리(新安吏)>, <해남리>는 <동관리(潼關吏)> 시를 차운하였다.    그러면  3리(三吏) 시를 살펴보자. 먼저 <용산리>이다. 1810년 6월에 지은 이 시는 용산촌에 들이닥친 아전의 횡포를 고발한 시이다. 강진군 도암면 용흥리 용산마을이란 지명이 있는데 이곳이 용산촌인 것 같다. 다산은 두보의 <석호리> 시의 운을 차운하여 <용산리>시를 지었다.  두보는 안녹산의 난이 한창인 759년에 낙양에서 돌아오면서 석호촌(石壕吏)에 하룻밤 묵었는데, 하양의 역사(役事)를 위하여 징발에 끌려가는 할머니를 목격하고 시를 지었다. 그러면 <석호리> 시부터 감상하자. 시는 5언 4구, 6수이다.   석호 마을에서 해질녘 석호촌에 투숙했는데      暮投石壕村 한 밤중에 사람 잡는 관리들      有吏夜捉人 영감은 담장 넘어 도망치고       老翁踰墻走 할멈 있어 대문 열고 내다보는데  老婦出門看 관리는  어째서 화내는고?                   吏呼一何怒 할멈은 또 얼마나 섦게 우는가               婦啼一何苦 할멈이 앞에 나가 사정하는 말 들으니.        聽婦前致詞 “세 아들이 업성에서 수자리 사는데          三男鄴城戌   한 아들이 편지 부쳐왔네           一男附書至 두 아들이 새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二男新戰死  산 사람이야  모진 삶 살겠지만      存者且偸生 죽은 자는 다시 못 돌아오네.        死者長已矣 집안엔 사나이는 하나도 없고         室中更無人 오직 젖먹이 손주만 있어             惟有乳下孫 손주의 어미는 아직 남아있지만       孫有母未去 멀쩡한 나들이 옷 조차 없습죠.       出入無完裙 이 늙은이 기력은 떨어졌지만         老嫗力雖衰 이 밤에 나으리를 따라가              請從吏夜歸  급히 하양의 부역에 응하면            急應河陽役 아침밥은 지을 수 있을 것이외다”     猶得備晨炊                                       밤이 깊자 말소리가 끊어졌는데       夜久語聲絶 흐느껴 우는 소리 잠결에 들은 듯.    如聞泣幽咽 날이 밝아 내가 길 떠날 때에는       天明登前途 늙은 영감 혼자와만 작별하네.        獨與老翁別 다산은 두보의 시를 차운하여 <용산리>시 6수를 지었다. 차운은 각 수의 1, 2구 마지막 글자이다. 따라서 1수의 차운은 촌과 인이고, 2수는 노, 고이다. 용산리(龍山吏) 두보(杜甫) 운에 차운함. 경오년(1810) 6월  아전들이 용산촌에 들이닥쳐서      吏打龍山村 소 뒤져 관리에게 넘겨주는데       搜牛付官人 그 소 몰고 멀리멀리 사라지는 걸   驅牛遠遠去 집집마다 문에 기대어 보고만 있네.  家家倚門看 사또님 노여움만 막으려 하니     勉塞官長怒 그 누가 백성 고통 알아줄 건가.  誰知細民苦 유월에 쌀 찾아 바치라 하니                      六月索稻米 모질고 고달프기 수자리(국경을 지키는 일)보다 더하네. 毒痡甚征戍 좋은 소식은 끝내 오지 않고          德音竟不至 만 목숨 서로 포개고 죽을 판이네     萬命相枕死 제일 불쌍한 건 가난한 백성이라      窮生儘可哀 죽는 자가 오히려 팔자 편하네        死者寧哿矣 남편 없는 과부와                    婦寡無良人 손자 없는 늙은이들                  翁老無兒孫 빼앗긴 소 바라보며 엉엉 우는데     泫然望牛泣 눈물 떨어져 베적삼을 다 적시네     淚落沾衣裙 촌마을 모양새가 이렇게 피폐한데    村色劇疲衰 아전 놈 왜 가지 않고 앉아있을까    吏坐胡不歸 쌀독은 바닥난 지 이미 오랜데      甁甖久已罄 무슨 수로 저녁밥 짓는단 말인가    何能有夕炊 죽치고 앉아 남 못살게 구니        坐令生理絶 온 동네 사람들 목메어우네.         四隣同嗚咽 소 잡아 포를 떠서 세도가에 바치면  脯牛歸朱門 재주꾼 솜씨가 이로써 드러나네.     才諝以甄別 흉년에 먹을 것도 없는 마을에 들이닥쳐 세금안 낸다고 소마저 가져 가는 아전. 죽치고 앉아 밥 얻어먹고 가려는 아전. 이런 승냥이의 횡포에 분노가 치민다.  사진  다산초당 (강진군 소재)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김세곤 ]

뉴스등록일 : 2020-02-02 / 뉴스공유일 : 2020-02-02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1495년 5월28일에 충청도사  김일손이 올린 상소 26조목 중 14번째는 “인재 천거를 열 개의 과목으로 할 것입니다.”이다.  “옛날 사마광(司馬光)의 건의로 송조(宋朝)에서는  십과(十科 열 개의 과목)를 두어 선비를 천거하였는데, 요즘 우리 조정에는 천거하는 법이 거의 폐지되었습니다. 대전(大典)에는 동반(東班)·서반(西班)에서 해마다 수령(守令)과 만호(萬戶)될 만한 자를 천거하고, 정부에서는 육조와 대간(臺諫)이 함께 관찰사와 절도사(節度使)가 될 만한 자를 천거한다하였는데, 이는 법만 있을 뿐 실시함이 없었습니다. 또한 홍문록(弘文錄)·사유록(師儒錄)·승문록(承文祿)이 있어, 십과를 모방한 규정이 있기는 하나 실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해마다 의정부에서 육조와 대간과 시종(侍從)과 함께 십과로써 선비를 천거하고, 천거되어 들어온 자가 물망에 만족하지 못할 때에는 대간이 논박하여 바로잡으면 공정한 도리가 행하여질 것입니다. 선왕(先王) 성종께서 26년 동안 인재를 양성하여 무성하게 배출되어 서울과 지방에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이 천거하여 올리지 않으면 전하께서 어찌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賢否)을 알아서 쓰겠습니까.” 상소의 15번째 조목은 “선비를 시험 보이는 데는 전공한 경서(專經)를 쓸 것입니다.”이다. “일찍이 살펴보니, 중국에 과거보는 자는 사서(四書) 외에 다만 한 가지 경전(經傳)만  전공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국자감(國子監)에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두고 있습니다. 대개 한(漢)나라 이래로 양구하(梁丘賀)·하후승(夏侯勝)·이대(二戴 : 한(漢)나라 예학자(禮學者) 대덕(戴德) 및 그의 조카  대성(戴聖)을 대소대(大小戴)라 칭하는데, 대덕이 지은 예학은 대대례, 대성이 지은 예학은 소대례라 칭함.)·왕필(王弼)·정현(鄭玄)등 제자명가(諸子名家)의 학문이 다 그러합니다. 그러나 지금 국가에서는 과거시험을 보는 데 있어서 반드시 삼경(三經)을 쓰고 오로지 암송하는 데만 힘쓰는데, 심한 자는 성경(聖經)의 여러 자료를 모아 엮거나 요점을 추려 엮어 입과 귀에만 익혀 빨리 과거할 준비를 삼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선비를 구한다면 필요한 인재 얻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과거에 합격 된 후에는 아예 전제(筌蹄)가 되어 버리는데 유사(有司)가 전공할 경전을 억지로 지정해 주어도 묘유(卯酉 : 관원의 출퇴근 시간. 묘시 곧 아침 5시부터 7시 사이에 출근하였다가, 유시 곧 저녁 5시부터 7시 사이에 퇴근함)의 여가에 다만 구두(句讀)를 떼어 읽는데도 오히려 까마득한데, 하물며 전문으로 공부하기를 바라겠습니까. 신 같은 무리들이 모두 그러합니다.” 여기에서 전제(筌蹄)의 전(筌)은 고기 잡는 통발이요. 제(蹄)는 토끼 잡는 창애인데 이미 고기와 토끼를 얻은 다음에는 창애와 통발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에, "고기를 얻은 다음에는 통발을 잊어버리고, 토끼를 얻은 다음에는 창애를 잊어버린다."라 하였다. 김일손의 상소는 계속된다. “신은 원하옵건대, 이제부터 과거 보는 자는 오로지 한 경전(經傳)만 전공하게 하되, 전공한 경전에 통달하지 못할 경우는 기용하지 않으면 경전에 통달한 선비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자성(資性)은 각기 적소(適所)가  있으니, 이미 명경과(明經科)를 설치하였으면, 마땅히 굉사과(宏辭科)도 설치하여 과거 때마다  한 두 사람을 겸하여 뽑으면  장차 인재를 빠뜨리는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왕정(王政)은 인재를 근본으로 합니다. 고사(故事)에 임금이 즉위할 때 반드시 별시(別試)가 있었으니, 대개 별시는 식년(式年)에 비할 것이 아니므로, 인재를 구하기는 마땅히 널리 하되 원점(圓點 성균관 유생의 출석을 알기 위하여 식당에 들어올 때 출석부에 점을 찍게 하던 일)에 구애되지 않아야 옳을 것입니다. 전 날에 귀양 보내거나 과거 응시를 정지시킨 선비들은 다 선왕께서 수십년 간 교육시켜 전하에게 물려준 사람들입니다. 비록 그들의 날카로운 기백은 꺾을지라도 마땅히 광간(狂簡)한 재주는 다듬어서 써야 합니다. 인재는 제한되어 있고, 하루 이틀에 길러내는 것이 아니므로 신은 매우 아쉽게 여깁니다. 신은 원컨대, 전하께서 속히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성균관에 나아가서 학문을 연마하게 하고 밝으신 교지를 기다리게 하면, 사림(士林)의 다행인 것입니다.” 연산군은 성종이 돌아가시자 불교의 제례인 수륙재를 올렸다. 이에 성균관 유생들이 반대하였다. 연산군이 이들을 죄주려 하자, 대간과 홍문관이 유생을 죄주는 것이 타당치 못함을 논계하였으나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 연산군은 1495년 1월27일에 정희량을 해주로, 이목을 공주로, 이자화를 금산으로 귀양 보내고, 생원 조유형 · 임희재 등 21인의 과거시험 응시를 정지시켰다. 김일손은 연산군의 이런 처사에 대해 간언했다.   사진 1  청계서원 (경남 함양군 소재, 1498년 7월 초에 김일손이 붙잡혀 간 곳) 사진 2  청계서원 편액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김세곤 ]

뉴스등록일 : 2020-01-28 / 뉴스공유일 : 2020-01-28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1810년(순조 10) 여름에 정약용은 ‘파리를 조문하는 글(弔蠅文 조승문)’글을 지었다. 이 때에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하여 산과 골짜기까지 가득하였다. 파리들은 일찍이 동사(凍死)하지 않더니 술집과 떡 가게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 하고, 소년들은 소탕전을 폈다. 그리하여 혹은 구통(笱筒)을 설치하여 거기에 걸려 죽게 하고, 혹은 독약을 쳐서 전멸하게 하였다. 이에 다산이 말하였다. “아! 이는 죽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는 굶주려 죽은 자의 전신(轉身)이다. 아! 기구하게 사는 생명이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고 또 겨울의 혹한을 겪었다. 그로 인해서 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 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하여 수많은 시체가 길에 즐비하였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그 피부가 썩어 문드러져 옛 추깃물과 새 추깃물이 고여 엉겨서 그것이 변해 구더기가 되었고, 구더기가 파리로 변해 민가로 날아드는 것이다. 아! 파리가 어찌 우리의 유(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서로 기별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자.” 이어서 다산은 ‘파리를 조문하는 글’을 지어 올렸다. “파리야, 날아와 차린 음식 소반에 모여라. 소북이 담은 흰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 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파리야, 날아와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거느리고 와서 실컷 먹어라. 그대의 옛집을 보니, 쑥대가 가득하고 뜰은 무너지고 벽과 문짝도 찌그러졌으며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되었다. 파리야, 날아와 이 기름진 고깃덩이에 앉아라. 살진 소 다리와 농어 생선회도 갖추어 놓았으니, 그대의 굶주린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활짝 펴라. 그리고 또 도마에 남은 고기가 있으니 그대의 무리에게 먹이라. 그대의 시체를 보니 이리저리 언덕 위에 넘어져 있는데, 옷도 못 입고 모두 거적에 싸여 있다. 장맛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모두 이물(異物)로 변하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구물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이 놀라곤 한다. 그래도 어린아이는 어미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그 젖통을 물고 있다. 마을에서 그 썩는 시체를 묻지 않아 산에는 무덤이 없고, 그저 움푹 파인 구렁 창을 채워 잡초가 무성하다.” 썩은 시체는 길가에 나둥그러져 있고 파리는 휘날린다. 참으로 참혹하다. 다산의 조문은 계속된다. “파리야, 날아서 고을[縣]로 들어가지 마라. 굶주린 사람만 엄격히 가리는데 서리(胥吏)가 붓대 잡고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대나무처럼 빽빽이 늘어선 사람 중에 다행히 간택된다 하여도 물 같이 멀건 죽 한 모금 얻어 마시면 그만인데도, 묵은 곡식에서 생긴 쌀벌레는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돼지처럼 살찐 건 위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보리만 익으면 진장(賑場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 구호소)을 거두고 연회를 베푸는데, 북소리와 피리소리 요란하며, 아리따운 기생들은 춤추며 빙빙 돌고 교태를 부리면서 비단부채로 가린다. 비록 풍성한 음식이 있어도 그대는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단다. 파리야, 날아서 관(館)으로 들어가지 마라. 깃대와 창대가 삼엄하게 나열하여 꽂혀 있다. 돼지고기, 소고기 국이 푹 물러 소담하고 메추리구이와 붕어 지짐에 오리국, 그리고 약과를 실컷 먹고 즐기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단다. 호랑이 같은 문지기는 철통같이 막아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안에선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 놈은 주막에 앉아 제멋대로 판결하면서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고 태평하여 걱정이 없다고 한다. 파리야, 날아와 환혼(還魂)하지 말라. 죽어도 앙화(殃禍)는 남아 형제에게 미치게 되니, 6월에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두드리는데, 그 호령은 사자의 울음 같아 산악(山岳)을 뒤흔든다. 가마와 솥도 빼앗아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간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고가서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맥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죽어 가지만,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다.” 이렇듯 다산은 백성들의 참상에 마음 아파하면서 부패한 관료와 아전을 질타했다. 사진 1, 2  여유당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김세곤 ]

뉴스등록일 : 2020-01-27 / 뉴스공유일 : 2020-01-27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생활/문화 > 문학 > 칼럼

以怨報德 /이원보덕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작업이고 정의로운 일이다. 그 글이 그 어떤 내용을 담고 표현하더라도 그렇게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아름답고 정의가 강물처럼 넘쳐야만 민주적이고 만인에 의한 평화와 정의가 가득한 세상이 된다.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음양의 조화가 있듯 좋은 양지가 있으면 습한 음지, 더러운 음지가 있으며 선하고 좋은 사람이 많은 반면에 교활하고 인간미가 없고 배은망덕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데 악의 구렁텅이인 이 곳에서 꼭 문제와 사건이 야기된다.   일본 동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북이 우라시마타로-은해를 원수로 갚는 거북이 이야기. 출처 http://edaynews.comhttps://zomb80.blog.me/99884245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은해를 갚는 답시고 던져주는 떡밥을 덥석 물면 인간은 그 누구나 낚인는 게 세상사라는 것이다 . 중국 동화 유우지 - Tinder Box 부시통 http://edaynews.comhttps://blog.naver.com/doctor_t/220423772289   은해를 원수로 갚은 괘씸한 고양이들의 이야기 역시 동물의 세계이니 그렇다. 부시통이 없어서 완벽한 힘을 발휘할 수 없어서 부시통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고양이의 말을 듣고 주인공 아이삭은 어떻게든 부시통을 가지려고 덤벼든다.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동물들의 세계 속에 인간이 휩싸이는 걸 즉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전한다. 과연 속이는 놈이 나쁜 것인가 속은 놈이 나쁜 것일까? 이건 당연히 속인놈이 인간미가 없고 이원보덕(以怨報德)을 말하는 경우이다. 좋은 사람끼리 모여 살기도 한평생 고작 100년도 못 사는데 왜 나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걸까? 그건 동물의 세계인 적자생존(適者生存)‹š문에 그럴 수밖에 없으나 우리 주변에 이런부류가 있는지 없는지를 비교해 가면서 살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서두를 동물과 인간의 우화같은 사례를 제시하면서 길게 늘여 뜨렸다.   부(富)를 어떻게 축적했느냐가 가장 중요한 인간미 형성의 마인드가 된다. 물론 속담에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건 그만큼 정승처럼 사용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속담이 나온 것이다. 어떻게 개같이 벌었는데 그 개같이 번 돈을 정승처럼 쓸 수 있겠는가를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즉각 답이 나온다. 특히 서민을 울려 번 돈 고리(高利)악덕(惡德) 사업, 사채(私債)로 돈을 번 인간은 결코 돈을 사회에 환원을 못 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사용을 못 한다. 오로지 자기 얼굴과 체면을 앞세워 돈을 사용한다. 또, 그야말로 속된 말로 매사에 짜고 찔끔거린다. 이런 인간이 아무리 사업을 크게 성장해 간다 해도 가정이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항상 자신의 위기관리의식으로 허장성세(虛張聲勢)가 된다. 대부분 차량을 소유해도 외제차를 갖고 다니며 차량으로 만족감을 대변한다. 뿐만 아니라 위장하듯 비영리단체를 운영해도 정상적이지 못하고 자기 체면에 집중하여 얼굴 알리는데 급급하고 만다. 거의 취미생활도 골동품이나 세계에서 진귀한 걸 갖고자하는 허무맹랑한 욕심으로 가득하다. 사채업도 경영학으로 보고 학위를 가지더라도 꼭 그쪽에만 집중하고 은혜를 절대 알바 없는 동물적인 인간이 되고 만다. 모든 게 쩐의 철학으로 사고방식이 협착화 되다보니까 고마움과 감사함 그리고 은혜로움의 햇빛을 오로지 쩐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런데 참으로 세상이 공평한건 이런 종류의 인간들이 꼭 허점이 아주 쉽게 노출되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사회생활에서 주변사람들은 당연시하게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가 인과응보(因果應報)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종류의 인간이 주변에 있다면 꼭 경계해야만함을 감히 아름답지도 않은 글로써 표출함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너무도 자신을 감추고 이 지구상에 살고 있음에 개과천선을 위해 용서와 화해도 용서와 화해가 될만 한 인간과 결코 되지 않을 인간이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이런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함께 숨쉰다는 것이 약간은 결이 다른 사안이지만 전두환은 12.12 및 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 총기사용명령 즉 발포명령과 쿠데타 및 학살을 범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http://edaynews.com [ repoter : 강연은 ]

뉴스등록일 : 2020-01-27 / 뉴스공유일 : 2020-01-27

무료유료 FREE

신고하기 공유받기O 신고하기

1

선택한 뉴스공유받기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