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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의 상소 26개 조목 중 4번째는 ‘작은 허물을 가볍게 다루고 오복(五服)을 소중히 여겨서 조정에 충후(忠厚)한 풍도를 세워야 합니다.’ 이다. 이를 읽어보자. “신이 보기에 요즘 음해하고 적발하는 풍조가 점점 늘어나고, 충신(忠信)의 도(道)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정승이 있어서 본래부터 장자(長者)라고 칭송되다가 한 가지 일에 잘못이 있으면 갑자기 간사한 자라 일컫고, 어떤 명사(名士)는  평소 깨끗한 선비로 칭송되어 오다가 한 가지 흠만 있으면 갑자기 소인(小人)으로 지목하여, 아침에는 교유하는 자리를 같이 하다가, 저녁에는 공박하는 글로써 사사로운 일을 적발하여 자못 실없고 경솔한 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은 명암이 있고, 생각은 득실이 있고, 재질(材質)은 장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허물은 용서하고 모두 다 잘하기를 바라지 말라.’라는 선사(先師)의 교훈입니다. (후략) 100%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조금만 허물은 용서하고 관용의 정치를 하라는 김일손의 간언이다. 안 그러면 서로 헐뜯어서 인재는 고갈되고 말 것이다.    다섯째 조목은 ‘조종의 법을 복원시켜서 해당 관서에게 법을 지키도록 단속하실 것.’이다.  “대저 《원육전(元六典)》과 《속육전(續六典)》은 조종의 법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논의하는 자는 반드시 조종의 법은 고칠 수 없다 하는 데, 이는 조종께서 우려하는 마음이 깊고 일을 고쳐 본 경력이 많아서 법을 제정하는 데 주밀(周密 : 허술한 구석이 없고 세밀하다)하지 않은 점이 없기 때문이라 합니다. 생각해 보건대, 원·속 두 법전은 태조께서 처음 제정한 것이 아니고, 태종(太宗)께서 고려의 옛 법에서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어서 제정한 것으로, 마치 명나라 법이 당나라 법에 의거한 것과 같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대전(大典)》이 원·속 두 법전에서 나왔으나, 때에 따라 빼고 넣었기 때문에 그 본진(本眞)이 점점 없어져서 조종의 좋은 법과 거룩한 뜻이 더러 소멸되어 남아 있지 않고, 또한 유사(有司)가 백 년이 지난 문서를 판독 하려 해도 의거할 곳이 없습니다. 신은 청컨대, 원·속 육전을 인출(印出 인쇄)하여 각 지방 관서에 반포하여 《대전》과 함께 참고하여 쓰도록 하소서. 원 · 속 두 법전을  <대전>과 함께 참고하여 법을 집행하라는 상소는 지금의  사법부도 참고할만한  사항이다. 김일손의 상소는 이어진다.   “신이 보기에는 선왕의 정사는 인(仁)과 서(恕)를 숭상하고 무릇 사람을 치죄(治罪)할 때에는 정상과 법을 여러 번 참작하다가 유사(有司 형을 집행하는 관서)의 논죄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법사(法司 형조)는 그 실정은 가벼운 죄인 줄 알면서 고의로 그 율(律)을 무겁게 정하여서 상부의 처분에 맡겨 마침내는 감형을 따랐는데, 그것이 점차 관습이 되고 의금부 옥사도 더욱 심하게 되었습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유사들이  속이지 않도록 질책하시고, 법집행을   옛날 장석지(張釋之)처럼 엄하고 공정하게 하며, 임금의 의사에 따라  경중을 정하는 일이 없도록 하신다면 모든 옥사(獄事)가 매우 다행스러울 것입니다.” 장석지는  중국 한나라 때 관리로 법을 엄격히 지키고 논의가 공정한 사람으로 이름났다.   여섯째 조목은 “제조(提調)를 없애고 도당(都堂 의정부)에 통합해야 합니다.”이다. “삼공(三公)이 육경(六卿)을 통솔하고, 육경이 모든 관리를 통솔하여야 체계가 서로 유지되고 정사가 한 곳에서 나올 것인데, 요즘에는 삼공이 하는 일 없이 도당에 앉아 있어 산관(散官)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으며, 관청마다 각기 제조(提調)를 두고 저마다 따로 법을 만들어 정사가 여러 곳에서 나오기 때문에 통섭(統攝)할 도리가 없습니다. 내수사처럼 미미한 관아에서도 역시 자의로 <속전(續典)>외의 교령(敎令)을 시행하니, 공문서가 어지러워져서 다른 관원이 받들어 이행하기가 현란합니다. 신은 원컨대, 제조를 가려내어 모든 관직을 육조에 붙이고, 큰 관직 제수나 큰 정령(政令) 시행이 있을 때에는 육조에서 도당(의정부)의 명령을 들어서 시행하여 조정의 체계를 세우게 하소서. 이것이 조종의 법입니다.” 제조(提調)는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없는 사(司)·원(院)등 관아에 겸직으로 배속되어 그 관아를 통솔하는 중앙 관직의 하나이다. 비변사, 선혜청, 승문원, 봉상시(奉常寺), 내수사, 전의감(典醫監)등 중앙 관아에 설치되었다. 제조는 해당 관아에 상시 출근하여 관아를 통솔하고 저마다 정령을 시행함으로써 문제가 생겼다.   김일손은 제조의  폐단을 막고자 육조가 지휘하여 조정의 체계를 세울 것을 건의한다.  사진 1  탁영연보 (청도박물관 소장)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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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1810년에 다산 정약용은 전간기사(田間紀事) 6편을 지었다. 즉 다북쑥, 뽑히는 모, 메밀, 보리죽, 승냥이와 이리, 오누이 시이다. 전간기사 6편에는 다산의 서문이 적혀 있다.   “기사년(1809년)에 나는 다산초당에 머물고 있었다.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어 지난 해 겨울부터 봄을 거쳐 금년 입추에 이르기까지 들에는 푸른 풀 한 포기 없이 그야말로 붉은 땅이 천리에 연했다. 6월초가 되자  유랑민들이 길을 메워 6월 초가 되자 유랑민들이 길을 메우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아프고 보기에 처참하여 살고 싶은 의욕이 없을 정도였다. 죄를 짓고 귀양살이 온 이 몸으로서는 사람 축에 끼지도 못하기에 오매초(烏昧草)에 관하여 아뢸 길이 없고, 은대(銀臺)의 그림 한 장도 바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그때 본 것들을 시가(詩歌)로 엮어보았는데, 그것은 처량한 쓰르라미나 귀뚜라미가 풀밭에서 슬피 우는 것과 같은 시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울면서 올바른 이성과 감정으로 천지의 화기(和氣)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오래 써 모은 것이 몇 편 되기에 이름 하여 ‘전간기사(田間紀事)’라 하였다.” 여기에서 오매초는 고사리의 이칭(異稱)이다. 송나라의 범중엄이 강회(江淮) 지대를 안무시키고 돌아와서 가난한 백성들이 먹고 있는 오매초를 올리면서, 그것을 육궁(六宮)의 척리(戚里)들에게 보임으로써 사치를 억제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은대(銀臺 : 신선이 사는 곳)는 《후한서》 장형전(張衡傳)에, “왕모(王母)를 은대에서 보았더니 옥지(玉芝)를 먹으며 굶주린 배를 채우네."에 나온다. 하였다. 그리고 보니 오매초와 은대의 그림 모두가 굶주림의 상징이다.   그러면 전간기사 제1수  ‘다북쑥 (채호 釆蒿)을 음미해보자.  다산은 이렇게 적었다. 원주(原註)에 나온다.     “다북쑥은  흉년을 슬퍼한 시다. 가을이 되기도 전에 기근이 들어 들에 푸른 싹이라곤 없었으므로 아낙들이 쑥을 캐어다 죽을 쑤어 그것으로 끼니를 때웠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이 아니라 새발쑥이네.      양떼처럼 떼를 지어            저 산등성이 오르니            푸른 치마에 구부정한 자세       붉은 머리 숙이고               무엇에 쓰려고 쑥을 캘까          눈물만  쏟아지네.               쌀독엔 쌀 한 톨 없고             들에도 풀싹 하나 없는데       다북쑥만이 자라서                무더기를 이뤘기에               말리고 또 말리고            데치고 소금 절여           된 죽 묽은 죽 쑤어 먹지 달리 또 무엇하리.         쌀 한 톨 없어서 다북쑥으로 죽 써 먹는 백성들, 참으로 불쌍하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이 아니라 제비쑥이네.        명아주도 비름나물 다 시들었고      자귀나물은 떡잎은 나지도 않아     풀도 나무도 다 타고   샘물까지도 말랐네.      논에도 우렁이  없고     바다엔 조개도 없다네. 높은 분네들 살펴보지도 않고    기근이다 기근이다 말만 하면서 가을이면 다 죽을 판인데   봄이 와야 구휼이네       이렇게 민생 현장을 살피지도 않고 말로만 하는 관료들. 지금은 어떤가? 유랑 걸식  떠난 남편   그 누가  묻어줄까       오호라  하늘이여            어찌 그리도 무정하시나이까.  백성들은 하늘도 무정하다고 한탄한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캐다가 보면 들쑥도 캐고         캐다가 보면 쑥 비슷한 것도 캐고 캐다가 보면 다북쑥을 캐네.       푸른 쑥이랑 흰 쑥이랑  미나리 싹까지         무엇을 가릴 것인가     모두  캐도 모자란데    그것을 뽑고 뽑아       바구니에 쓸어 담고     돌아와서  죽을 쑤니    아귀다툼 벌어졌네.       형제간에 서로 뺏어      온 집안이 떠들썩하네.     서로 원망하고 욕하는 꼴들이   마치 올빼미들 같네.            여기서 올빼미란 아귀다툼하는 간악한 사람을 비유한다. 하기야 배고프면 나만 살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 아닌가. 사진 1. 실학박물관(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유적지)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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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이제 김일손이 상소한 이익과 병폐 26가지를 조목조목 살펴보자. 첫째, 상제(喪制)에 관한 일이다.   “한 문제(漢 文帝)가 단상(短喪)에 대한 조서를 내린 이래로 역대에 삼년상을 이행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천 여 년 동안에 오직 진 무제· 위 효문제·송 효종 세 임금뿐이었으니, 이 세 임금은 어찌 전하께서 본받을 바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중국에서도 이행하지 아니하나 우리 조종(祖宗)은 능히 삼년상의 제도를 이행하였으니, 우리 왕조의 가법(家法)이 백왕(百王)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극한 슬픔을 당하여 면복(冕服)으로 즉위한 것은 강왕(康王)의 실수이었습니다. 왕위를 이어받는 날에 비록 신하들의 권함에 이기지 못하여 최복(衰服)을 벗고 면복을 입으셨으나, 전하께서는 필시 더 애통하실 것이니, 효도로써 사방의 백성을 가르치기 위하여서는 최복을 입고 신하에게 임하는 것이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면복(冕服)은 국왕이 제례 때 착용한 제복(祭服)이다. 왕은 종묘(宗廟)· 사직(社稷) 등에 제사하고, 조회(朝會)등에 대례복으로 삼았다. 최복(衰服)은 거친 생마포로 아랫단을 접어서 지은 상복이다. 따라서 최복을 입는 것이 더욱 효성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이 예가 답습되어 온 지 이미 오래였고, 특히 오늘날에만 시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삼군(三軍)이 희게 입는 것은 의리에 틀리는 것이 아닌데, 지금 군진(軍鎭)에서 초상에 임하지 않고, 음악을 그쳐야 할 때를 당하여 북·나팔 소리가 평상과 같음은 무슨 까닭입니까? (후략)” 김일손은  성종 상을 당하여 군진에서 북 나팔을 부는 등 적절하지 못한 행동에 대하여 꼬집고 있다. 두 번째 사항은 “자주 사면(赦免)하지 말 것이다.”이다. “제갈공명이 촉나라를 다스릴 때에 사령을 함부로 내리지 않았으니, 제갈공명이 어질지 않은 사람이 아니지만 함부로 간사한 무리에게 혜택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왕께서 병환이 계실 때에 신하들이 선왕의 오래 사실 것을 비는 뜻으로 극형의 죄수까지 모두 놓아 주었으니, 사령 전지가 본도에 도착하였을 때는 선왕께서 승하하신 뒤였으니 미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감히 청하지 못한 것은 명령이 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민간에 도둑이 많은 까닭도 이 때문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도둑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종이 주인의 아내를 간통하고 아우가 형을 구타한 자 또한 면하니, 강상(綱常)에 있어서는 어찌하리까. 신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사령을 자주 내리지 마시고 내리더라도 보통 사령에서 용서하지 않는 것만은 제외하시면 양민에게 큰 다행이겠습니다.” 사면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지금도 참고할 만한 사항이다. 셋째는 “토지 소출의 다과를 참작하여 진상(進上)을 삭감하고 몸소 절약하고 검소할 것”이다. “신이 보기에는 각 지방에서 진상하는 공물 중에 토산물 아닌 것이 많은데, 관리들은 이를 분별하여 처리하지 못하고 민간에게 강제로 할당시키니 민간은 베[布]·곡식[粟]을 가지고 생산지를 찾아다니면서 곱절이 넘는 값을 주고 사서 바칩니다. 진상할 물건은 언제나 말[斗]로 주고 되로 받고 섬으로 주고 말로 받게 되며, 또한 대소 관리들은 장부에 의거하고 침탈하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니, 민간이 어찌 곤궁하지 않겠습니까. 의견을 말하는 자들이 국가에서 포루(布縷 베와 실)의 세는 곡물의 세를 공제하여 바치기 때문에 민간의 부담은 맥도(貊道 : 토지 소출의 20분의 1을 내게 하는 아주 가벼운 부세) 보다도 더 가볍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장부에 기록된 것 외에 거둬들이는 것이 끝도 없이 많고, 명년에 바칠 것을 금년에 독촉하는 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국가에도 벌써부터 저축해 오던 것이 모두 바닥이 드러났는데 민가에 어찌 저축할 것이 있겠습니까. 금년 재정을 국휼(國恤)과 중국 사신의 왕래로 인하여 명목 없는 물품이 모두 관청으로 하여금 준비케 하니, 관청에서는 제대로 준비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민간에게 거두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명목 없이 잡다한 과세가 곡물 조세의 10배나 될 것이니, 백성이 어찌 정신을 차리고 숨을 쉴 수 있겠습니까. 신은 원하옵건대, 명년부터 인자하고 너그러운 중앙 관원을 각 지방에 파견시켜서 토산물을 자세히 조사한 다음 공안(貢案)을 작성하게 하소서.” 김일손은 공납(貢納)의 폐해를 상세히 밝힌다. 상소는 이어진다.  “신은 원하건대, 전하께서 몸소 근검절약하시어 잘 살피고 판단하시어  사방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기어코 구하여 바치려고 애쓰지 말도록 하소서. 요즘 사대부들이 제 몸 봉양에 너무 사치스럽고, 토지는 척박하건만 풍속은 문란하며, 백성은 가난한데 조세는 촉급하니, 진실로 불미스러운 일입니다. 그 원인은 위에 있으니, 먼저 전하께서 음식과 의복에 좋아하는 것을 삼가서 백관에게 본을 보이소서.” 김일손은 임금이 솔선하여 근검절약할 것을 건의한다. 사진 1.  청도박물관의 탁영 김일손 유품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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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고양이 시는 정약용의 대표적인 우화시(寓話詩)이다. 남산골 늙은이는 백성, 쥐는 도둑, 고양이는 도둑을 잡는 포도군관(捕盜軍官)을 우화했다. 도둑을 잡아야할 포도군관(捕盜軍官)이 도둑의 뒷배인 세태를 고발하고 있다.       다산은 1818년 봄에 지은 『목민심서』 <이전(吏典) 6조 / 제2조 관속들을 통솔함에서> 아래와 같이 적었다.   “무릇 포도군관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모두 큰 도둑이다. 포도군관은 도둑질하는 무리들과 결탁하여 장물(贓物)을 나누어 먹고, 마음대로 도둑질하게 하는 한편 도둑질 방법을 일러 준다. 수령이 도둑을 잡으려 하면 기밀을 누설하여 도적으로 하여금 멀리 도망가게 하고, 수령이 도둑을 죽이려 하면 슬며시 옥졸(獄卒)을 사주하여 옥졸로 하여금 도적을 고의로 놓치게 한다. 그들의 갖은 죄악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한편  『목민심서』 <형전(刑典) 6조 / 제6조 제해(除害 : 피해를 제거함)>에는 갈의거사(葛衣居士 : 칡넝쿨로 만든 옷 한 벌만 입고 지내는 거사) 이야기가 나온다.     “갈의거사는 남쪽의 호걸이었다. 일찍이 쌍교(雙橋)의 거리를 지나다가 군관이 한 도둑을 잡아서 포승으로 결박하고 뒤로 고랑 채우고 가는 것을 만났다. 갈의거사는 앞으로 다가가 손을 잡고 엉엉 울면서 위로하여 말하기를 ‘원통하다 자네여! 어찌하다 이런 욕을 보게 되었는가?’ 하니, 온 저자 사람들이 크게 놀라며 둘러싸고 구경하였다. 군관이 크게 놀라며 군졸을 명하여 갈의거사를 함께 결박하라고 하니, 갈의거사가 말하기를 ‘자네가 나를 결박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들과 같이 도둑질을 하였다는 말인가? 어찌 내 말을 들어 보지도 않고 결박하려 하는가?’ 하였다.   군관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거사가 말하기를 ‘지금 온갖 도둑이 이 땅 위에 가득 찼다. 토지에서는 재결(災結)로 도둑질하고, 호구(戶口)에서는 부역을 도둑질하고, 기민 구제에서는 양곡을 도둑질하고, 창고에서는 이익을 도둑질하고, 송사에서는 뇌물을 도둑질하고, 도둑놈에게서는 그 장물을 도둑질한다. 그런데도 안찰사와 병사ㆍ수사가 서로 짜고서 숨겨 주고 들추지 않는다. 그 지위가 높을수록 도둑질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그 녹이 후할수록 도둑질의 욕심은 더욱 커진다. 이들은 향락을 누리고 훔친 좀도둑만이 큰 욕을 되니 슬픈 일이 아닌가? 내가 이래서 우는 것이지, 다른 일이 아니다.’ 하니, 군관이 말하기를 ‘선생의 말이 옳습니다.’ 하고, 술을 권하며 사과하여 보냈다.” 그런데 고양이를 포도군관이 아닌 감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다산은 『감사론(監司論)』에서 좀도둑, 강도, 화적은 도둑이 아니고 감사야 말로 큰 도둑이라 하였다.    “밤에 담 구멍을 뚫고 문고리를 따고 들어가서 주머니를 뒤지고 상자를 열어 의복ㆍ이불ㆍ제기(祭器)등을 훔치기도 하고 가마솥을 떼어 메고 도망하는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굶주린 자가 배고픈 나머지 저지른 것이다. (중략) 그렇다면 누가 큰 도적인가? 토호(土豪)와 간사한 아전들이 도장을 새겨 거짓문서를 만들고 법률 조문을 멋대로 해석하여 법을 남용하여도 “이것은 연못 속의 물고기이니 살필 것이 못 된다.”하면서 감싸 숨겨준다. (중략) 수령이 곡식을 판매하고 부세(賦稅)를 도적질한 데도 용서하여 그냥 둠은 물론, 고과를 제일 좋게 매겨 임금을 속이니 어찌 큰 도적이 아니겠는가. 이 도적은 야경꾼도 감히 심문하지 못하고, 의금부에서도 감히 체포하지 못하고, 어사(御使)도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재상(宰相)도 감히 성토하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감사가 멋대로 난폭한 짓을 해도 아무도 힐문하지 못하고, 엄청난 전토를 차지하여 종신토록 안락하게 지내지만 아무도 이러쿵저러쿵 헐뜯지도 못하니 이런 자가 어찌 큰 도적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군자(君子)는 이렇게 말한다.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이 모두 다 죽을 것이다.” 이렇게 다산은 고양이 우화시로 도둑놈  세상을 고발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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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에 실려 있는 김일손의 상소는 계속된다. (1495년 5월28일자) “전하께서 초상을 당한 슬픔에 지쳐서 정신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셨고, 또 자전(慈殿 임금의 어머니)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우선 설재(設齋 불교에서 행하는 수륙재)를 허락하셨으니, 비록 ‘하지 않는 극진한 선’ 만하지는 못하나, 역시 이는 인효(仁孝)의 허물이니 마침내 손상될 것은 없습니다. 다만 태학생(太學生)의 우직함을 너그러이 용납하지 않고 귀양 보내고 정거(停擧)시키시매 여러 대부(大夫)가 모두 옳지 않다 하되, 전하께서 한 결 같이 거절하고 듣지 않으셨는데, 설재는 경(輕)한 일이고 태학생들을 죄주는 것은 중한 일이며, 태학생에게 죄주는 것은 경한 일이고 여러 신하의 의논을 거절하는 것은 중한 일이니, 이것은 신정(新政)의 큰 누(累)가 됩니다. 성종이 돌아가시자, 연산군은 자전들의 청에 의해 불교의 제례인 수륙재를  올리자, 성균관 유생들이 반대하였다. 연산군이 이들을 죄주려 하자, 대간과 홍문관이 유생을 죄주는 것이 타당치 못함을 논계하였으나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 연산군은 1495년 1월27일에 정희량을 해주로, 이목을 공주로, 이자화를 금산으로 귀양 보내고, 생원 조유형 · 임희재 등 21인의 과거시험  응시를 정지시켰다. 김일손은 연산군의 이런 처사에 대해 간언한다. “국민은 다만 태학생이 물리쳐짐을 보고 전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불교를 좋아하고 유교를 미워하는 것이 아닌 가 의심하여서, 자만(自慢)하여 좋은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사방에 들리고, 전하께서  간하는 말을 거절하신다고 생각들 하니, 신 또한 놀라움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또한 곧이어 들리기를, 전하께서 간하는 말 따르기를 물 흐르듯이 하시어 길종의 일은 다시  법으로 처단하셨다 하오니, 이른바 ‘마치 일·월식(日月蝕)과 같아서 허물을 고치매 백성이 모두 우러러 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길종의 일은 월산군(月山君)의 종 길종(吉從)이란 자가 시골에서 폭력을 부렸는데도 월산군 부인이 공공연하게 단자(單子)를 올려서 종을 두둔하였고, 연산군이 그 청을 특별히 들어준 일을 말한다.  그런데 연산군은 이를 다시 바로잡아 법으로 처단했다. “이 마음을 확충하여 잘못을 아시거든 능히 뉘우치고, 뉘우치거든 반드시 고치셔서, 만사를 모두 그렇게 하신다면 태갑(太甲)·성왕(成王)과 같기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을 알면 뉘우치고, 뉘우치면 고치라는 김일손의 간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국정이 잘못되었으면 고쳐야 한다.  상소는 이어진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은 다음에야 집안 또한 다스려질 것이고(心正身修, 而家亦齊矣), 집안이 다스려진 뒤에야 비로소 치국(治國)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家齊然後, 始可與言治國矣)” 우리가 잘 아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이 말의 원전은 4서의 하나인 『대학(大學)』이다. 『대학』은 송나라 때 유학자 주자(1130∽1200)가 『예기(禮記)』 속에 있던 것을 따로 떼어 내어 대학을 편찬했다. 주자는 대학을 경(經) 1장, 전(傳) 10장으로 편집하여 주석을 달아 『대학장구(大學章句)』를 냈다. 그러면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 치국’의 관련 글을 읽어보자. 먼저 수신정심(修身正心)이다.     “몸을 닦는 것(修身)이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正心) 있다는 것은, 마음에 노여움이 있으면 올바름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올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한 마음에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올바름을 얻지 못하며,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올바름을 얻지 못한다.    이처럼 마음이 감정에 따라 움직이면 마음이 몸에서 떠난 것처럼 눈을 떴어도 보이지 않고, 귀를 열었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몸을 닦는 것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대학 전(傳) 7장) 다음은 수신제가(修身齊家)이다. “이른바 ‘그 집안을 다스림은 그 몸을 닦는데 있다’고 한 것은 사람이 그 친애(親愛)하는 이에게 편벽되고, 자기가 천히 여기고 미워하는 이에게 편벽되며, 자기가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이에게 편벽되며, 자기가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이에게 편벽되며, 자기가 거만하고 게을리 대하는 이에게 편벽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좋아하면서고 그 악을 알며, 싫어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아는 자는 천하에 드물다.” (대학 전(傳) 8장) 이어서 제가치국(齊家治國)이다. “이른바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집안을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함은 집안을 능히 교화시키지도 못하면서 남을 능히 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 한 집안이 어질면 한 나라가 어질게 되고, 한 집안이 겸양되게 되면 한라가 겸양으로 가득 차며, 한 사람이 탐욕스럽고 도리에 어긋나면 한 나라에 어지러움이 일어나게 된다. 모든 동기가 이와 같은 것이다. 이를 두고 ‘한 마디의 말이 큰일을  그르치고,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대학 전(傳) 9장)  제가치국의 글은 이어진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어질게 다스리니 백성들이 그를 따라서 어질게 되었다. 걸과 주가 천하를 폭력으로 다스리니 백성들이 그를 따라서 포악하게 되었다. ...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에게 있는 다음에 남에게서 구하며, 자기에게 먼저 없앤 다음에 남을 꾸짖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내 집을 다스리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대학 전(傳) 9장) 사진 1 중국 산동성  곡부의 공묘(孔廟) 대성전 사진 2 공묘 배치도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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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서 지낸 정약용은 1810년에 ‘고양이[貍奴行]’시를 지었다. 시를 읽어보자. 남산골 한 늙은이 고양이를 길렀는데       해묵고 꾀 들어 요사하기 늙은 여우로세    밤마다 초당에 둔 고기 뒤져 훔쳐 먹고.    항아리며 단지며  술병까지 다 뒤지네.        어둠 타고 살금살금 못된 짓 다하다가      문 박차고 소리치면 그림자도 안 보이나     등불 켜고 비춰보면 더러운 자국 널려 있고  이빨자국 나 있는 찌꺼기만 낭자하네.       해묵고 요사한 고양이는 쥐 잡을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주인 집 고기를 훔쳐 먹고 항아리를 엎는 등 못된 짓을 하고 있다.  늙은 주인 잠 못 이뤄 근력은 줄어가고      백방으로 생각해도 나오느니 긴 한숨뿐      생각하면 고양이 죄 극악하기 짝이 없어      당장에 칼을 뽑아 목을 치고 싶지마는       하늘이 너를 낼 때 무엇에 쓰려고 했던가.     너 보고 쥐를 잡아 백성 피해를 없애라 했지.  들쥐는 구멍 파서 벼 싹 물어다 쌓아두고   집쥐는 이것저것 안 훔치는 물건 없어    백성들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       기름 말라 피 말라 피골이 상접이라      그래서 너를 보내 쥐 잡이 대장 삼고     마음대로 찢어 죽일 권력 네게 주었으며  황금같이 반짝이는 두 눈도 네게 주고    칠흙같은 밤중에도 올빼미처럼 벼룩도 잡을 만큼 두 눈 밝혔지.  보라매같이 예리한 발톱 네게 주고       호랑이처럼 톱날 같은 이빨도 네게 주고  펄펄 날고 내리치는 날쌘 용기까지 네게 주어  쥐들이 너를 한번 보면 옴짝달싹 못하고 몸을 바치게 않았더냐.                                          쥐 잡으라고 고양이에게 온갖 권한을 주었는데 엉뚱한 짓 하고 있으니  늙은 주인은 한숨만 나온다.   날마다 백 마리씩 쥐 잡은들 누가 말리랴         보는 이들 네 기상 뛰어나다고 연거푸 칭찬만 할 텐데  그래서 팔사제(八蜡祭)에도 네 공로 보답하려고   누런 의관 차리고 큰 술잔에 술을 부어 제사 않더냐. 팔사제(八蜡祭)는 매년 농사가 끝나고 농사에 관계되는 여덟 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여덟 신은 신농씨(神農氏 농사를 처음으로 가르쳤다는 중국 전설의 황제)  후직(后稷 농사를 관장하는 장관), 농(農), 우표철(郵票畷 권농관이 농민을 독려하기 위해 밭 사이에 지었다는 집), 고양이, 제방, 도랑, 곤충이다. 이렇게 고양이는 농사에 도움을 주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데 너는 지금 한 마리 쥐도 잡지 않고       도리어 네 놈이  도둑질을 하다니               쥐는 원래 좀도둑이라 피해도 적지마는          너는 지금 힘도 세고 세도 높고 맘씨까지 거칠어  쥐들이 못하는 짓 제멋대로 행하여        처마 타고 뚜껑 열고 담 벽 무너뜨리니     그러니 쥐떼들이 꺼릴 것이 없어            구멍 밖에서 껄껄대고 수염을 흔드네.        쥐들은 훔친 물건 모아다가 너에게 뇌물로 주고 태연히 너와 함께 돌아다니니                 쥐들은 고양이에게 뇌물을 주고, 고양이 비호아래 물건을 훔친다. 고양이는 쥐들과 한 통속이다.    호사자들 때때로 너를 그리는데            무수한 쥐떼들이 하인처럼 너를  호위하고   나팔 불고 북치고 떼를 지어서는      대장기 높이 들고 앞장 서 가네.        네 놈은 큰가마 타고 교만  부리면서   쥐들의 떠받듦만  좋아하고 있구나.     내 이제 붉은 활에 큰  화살 메워 네놈 직접 쏴 죽이리.              만약에 쥐들이 행패부리면 차라리 무서운 개 불러내리라.                                                다산의 대표적인 우화시(寓話詩)이다. 그러면 남산골 늙은이 그리고 고양이와 쥐는 누구일까? 남산골 늙은이는 백성, 쥐는 도둑, 고양이는 도둑 잡는 포도군관(捕盜軍官)이다. 다산은 도둑을 잡아야할 포도군관이 도둑의 뒷배를 봐주고 뇌물을 받는 현실을 ‘고양이’시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어떤가? 쥐 뒷배 봐주는 고양이는 없나?   사진 1.  다산초당 전경 사진 2.  다산초당 안내판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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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의 상소는 이어진다. “『예기(禮記)』에 ‘거상 중에 병이 있으면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되 병이 나으면 전대로 한다.’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속(嗣續, 대(代)를 이을 후손)이 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임금의 몸에는 종묘사직의 중함이 달려있으니 더 말 할 나위이겠습니까.” 예기(禮記)는 유가(儒家)의 경전인 오경(五經)의 하나로, 예법(禮法)의 이론과 실제를 풀이한 책이다. 상복(喪服), 예(禮)의 해설, 예악의 이론 등을 담고 있다. “옛적에 임금이 돌아가매 새 임금이 3년 동안 말을 하지 아니하고, 여러 백관이 총재(冢宰)에게 모든 정사를 묻는 것인데, 지금의 원상(院相)이 곧 총재입니다. 신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졸곡(卒哭) 이전에는 다만 원상으로 하여금 승지와 함께 편의에 따라 정무를 처리하게 하시어 전하께서는 마음을 가라앉혀서 몸을 보존하시고, 신하들의 말하는 것도 또한 오래 거절하지 마시어 생각을 안정시키소서. 산릉(山陵)이 정한 기한이 있어서 빈전을 모실 날이 많지 않으니, 몸을 살피시고 힘을 헤아리시어 다시는 애태우지 마시고, 편찮으시면 속히 양음(涼陰 상려 喪廬)으로 돌아가시어 큰 효도를 마치소서. 이것이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는 큰 효도입니다. 비록 자잘한 것을 처분하지 않더라도 삼가 침묵하는 가운데에 조화가 절로 유행할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비록 침묵하실 때에도 대신을 가까이 하시어 환후를 보살피는 의원을 감독하게 허락하소서. 송나라 영종(英宗)이 재궁(梓宮) 앞에서 병을 얻었을 때에 한기(韓琦)가 옆에 없었더라면 위태하였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 점을  경계하소서.” 북송의 제5대 황제  영종(英宗 1032~1067, 재위 1063~ 1067)은 제4대 황제 인종의 사촌 형제인 조윤양의 13번째 아들이다. 1063년에 인종이 후사 없이 붕어하자 그는 영종으로 즉위하였다. 영종은 파탄 상태의 재정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에 착수하려고 했지만,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강하였고, 영종 자신도 병약하여 재위 4년 만에 병사(病死)하여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상소는 이어진다. “대신을 가까이 하고 환관(宦官)을 멀리 하는 것이 또한 수신(修身)하는 급무(急務)입니다. 옛날에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던 이는 반드시 먼저 집을 다스렸습니다. 대저 위로는 삼전(三殿)으로부터 아래로는 구족(九族)까지, 안으로 환관(宦官)·궁첩(宮妾)으로 부터 밖으로 복례(僕隷)까지도 모두가 전하의 한집안입니다. 전하께서 위로 삼전께 효도를 다하여 삼전으로 하여금 선왕의 돌아가심을 잊게 하시고, 아래로 구족에게 돈독하게 하여 구족으로 하여금 전하의 인자함을 받게 한 뒤에야 백성에게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의 모후(母后)는 흔히 생모(生母)가 아니어서 이간하는 말에 동요되어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수가 있는데, 지금 전하께서는 삼전께 효도를 하시되 대비에게 생모와 똑같이 효도를 다하고서야 하늘에 계신 선왕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효도란 순(順)함을 위주로 하나 어버이의 영을 따르지 못할 수도 있고, 은혜란 후(厚)함을 위주로 하나 의리와 합치하지 못할 때가 있으니, 구차스런 효도를 할 수도 없습니다. 안으로 궁중의 청(請)을 막고 밖의 사사로움을  끊어서, 환관과 궁첩이 감히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고, 복례와 하천(下賤)이 감히 법을  범하지 못하게 하시고서야 집안이 다스려질 수 있습니다. 한나라 명덕황후(明德皇后)는 친정에 수레와 말이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을 뼈저리게 꾸짖었고, 송나라 선인태후(宣仁太后)는 친정인 고씨(高氏)를 검찰한다고 스스로 일컬어 감히 사사가 있을 수 없었으니, 이것은 만세의 중궁(中宮)이 본받아야 할 바입니다. 근자에 월산군(月山君)의 종 길종(吉從)이란 자가 시골에서 폭력을 부렸으니, 법으로 보아서는 마땅히 변방에 귀양 보낼 것인데, 부인이 공공연하게 단자(單子)를 올려서 종을 두둔하려 하여 국법을 범했으되, 전하께서는 그의 청을 특별히 들어 주셨으니, 이것은 측근 종실에게는 법이 시행되지 않는 것입니다. 김일손은 임금이 궁중과 종친의 청탁을 배제할 것을 간언한다.   홍산현(鴻山縣)에서는 내수사(內需司)의 억센 종 열두어 명이 함께 밤에 공해(公廨)를 습격하여 공공연히 물건을 가져간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전하께서 미처 모르시는 것입니다. 이 무리들은 세력을 믿고 법을 어지럽히고 고을 관가를 업신여겨 못할 짓이 없을 것이오니, 전하께서 사령(赦令)을 거쳤다 해서 아니 다스리지 마소서. 대저 임금은 사사로운  재산을 둘 수 없으니, 내수사에서 재산을 늘리는 것도 그만두셔야 합니다. 선왕께서 초년에 없앴다가 중년에 다시 둔 것은 자손이 번성하여 여기에서 가져다가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지금 없애신다면 무엇이 누(累)가 되겠습니까. 특히 선왕의 초년 뜻을 계승하시는 것입니다. 김일손은  임금은 사사로이 재산증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간언한다.   내수사가 재산을 늘리는 것을 경계한다. 사진 1 자계서원 정문 (경북 청도군 소재) 사진 2  자계서원 전경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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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4월 초에 정약용은 다산초당으로 이사했다. 다산초당의 모습은 정약용의 후손 정규영이 1921년에 지은 『사암선생연보』에 잘 나와 있다.   “1808년 (순조 8, 무진) 47세 봄에 다산(茶山)으로 옮겨 거처했다. 다산은 강진현 남쪽에 있는 만덕사(萬德寺) 서쪽에 있는데 처서 윤단의 산정이다. 공이 다산으로 옮긴 뒤 대를 쌓고 못을 파고, 꽃나무를 열 지어 심고, 물을 끌어 폭포를 만들고, 동쪽 서쪽에 두 암자를 짓고, 서적 천여 권을 쌓아놓고 글을 지으며 스스로 즐기고 석벽(石壁)에 정석(丁石) 두자를 새겼다. 이때에 다산은 여러 제자들에게 주역을 가르쳤다.” 다산초당의 모습은 ‘다산 4경’시 4수,  ‘다산팔경사 (茶山八景詞)’ 8수 그리고 다산화사(茶山花史) 20수에도 잘 나타나 있다.  먼저 다산 4경은 다조(茶竈), 약천(藥泉), 정석(丁石), 석가산(石徦山)이다.   다조는 초당 앞마당에 있는 우람한 너럭바위인데 이곳에서 차를 끓였다. 약천은 초당 뒤 약수가 흐르는 샘이고, 정석은 초당 왼편 석벽(石壁)에 새긴 정석(丁石)글씨인데 다산이 썼다. 석가산은 연못 안에 돌로 쌓은 산이다. 사진 1  정석 글씨 사진 2 정석  안내판   다산 팔경사는 다산초당 주변의 풍경 8곳을 노래한 것이다. 산허리엔 담장이 둘러져 있고, 담장에는 산 복숭아나무 가지가 바람에 일렁인다. 초당 주렴에는 버들 그림자가 어리고, 따뜻한 날에는  꿩 소리가 들린다. 가랑비 속에 물고기에 밥을 주고, 단풍나무는 비단 바위위에 얽혀 있고, 국화는 연못에 그림자를 비친다. 언덕에는  대나무가 푸르고, 작은 시냇가에는 소나무가 우뚝 서있다.  이중 몇 수를 읽어보자.  제1수 산허리를 경계로 널따랗게 쳐진 담장    붓으로 그린 듯 봄빛이 그대로네     봄비가 내린 뒤라  산골짜기 더욱 사랑스럽고 산 복숭이  몇 가지엔 붉은 꽃이  예쁘네.   제2수 산집의 드리운 발 물결에 어른어른 다락 머리에선  흔들대는 버들가지 그림자라. 산골짝에 눈발이 날리고 있는 게 아니라 봄바람이 버들 솜 불어 맑은 꽃을 희롱하네.   한편 다산은 다산화사(茶山花史) 20수도 지었다.  제1수는 초당 전경이다.  귤동 마을  서편에 깊숙하고 그윽한  다산      천 그루 소나무 속에  시냇물 한줄기           시냇물이 시작되는 바로 그곳에               깨끗한 바위 사이에 조용한 집 있다네.        2수는 연못 모습이다. 작은 못이 참으로 초당의 얼굴인데            그 중앙에 돌을 쌓아 봉우리 셋을 만들고는     철 따라서 피는 백화 섬돌을 둘러 있어       아롱다롱 자고무늬가 물속에 늘 어른거리지    3수는 초당 생활이다. 대밭속의 부엌살림 중(僧)에게 의지하니         가엾은 그 중 수염이며 머리털 날마다 길어지네. 이제 와선 불가 계율 따윈  모조리 팽개친 채   싱싱한 물고기 마구 잡아 국까지 끓인다오.      정약용이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초기엔  산정에 식사 준비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백련사 주지 혜장선사는 젊은 중 한사람을 보내어 다산의 밥 시중을 들게 했다. 제4수 이후 17수 까지는 꽃과 나무에 관한 시이다. 다산 초당 근처에 있는 복숭아꽃, 차나무, 모란꽃,  작약, 수구(繡毬)꽃, 치자 · 백일홍 · 월계화 · 해바라기 · 국화 · 자초 · 포도나무 등이다.   이어서 제18수는 미나리 밭이다. 사랑채 아래다 세외전(稅外田)을 새로 일궈      층층이 자갈을 쌓고 샘물 흘러 보냈네.       금년에야 처음으로 미나리 심는 법을 배워   성 안에 채소 사는 돈 들지 않게 되었다네.   세외전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농토이다.   다산은 미나리를 직접 재배하였다.  제19수는 초당의 모습이다. 산정에 서적이라곤 쌓여 있는 게 전혀 없고      있는 것이라곤 화경(花經)과 수경(水經)이네.     좋은 것은 귤림에 비가  지나간 후           바위샘 손으로 퍼서 찻잔을  씻는 일이지      마지막 20수이다.  하늘이 나를 보내 이 동산에서 살게 하니      이 봄에 자고 또 취하느라 문마저 열지 않네.  산속 뜨락 온 마당에 이끼 푸른데         때때로 지나가는 사슴 발자국 뿐.          다산은 하늘이 이 동산에서 살게 했다고 흡족해 한다. 이제 학문 연구에 몰두하겠다는 다짐 같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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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등록일 : 2019-11-24 / 뉴스공유일 : 20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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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김지영‘, 이 영화를 보려고 나갔다가 극장 측의 엉성함으로 엉뚱한 영화를 본 웃지 못 할 사건(?)도 있었다.   예매순위 1위에서 3위로 밀려난 11월 18일에야 다시 찾아(관객수 3,491,867명) ‘82년 김지영‘을 본 이유는 나이들어 익어감에 그러니까 그 시대에 태어난 국민들의 애환과 또 다른 한 켠을 욕심내어 들여 다 보고 싶었던 것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후 ‘82년 김지영‘ 그 당시 민주화가 시작되어 2년 후라면 별로 아름다운 사회가 전개되지 않을 무렵으로 나름 처절했던 그 사회의 암울했던 자화상과 민낯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렬했다.   문화의 탄생 국민이 잘 먹고 잘살고 여유가 있어야만 문화가 존재한다. 나라의 경제가 좋아져야만 문화가 생기고 역사를 논할 수 있다는 맥락과 같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문화를 향유하고 여성에 대해 관대하고 여성만을 바라보며 오로지 여성의 관점에서 가정을 누리고 여유롭게 살았던가?!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으로 이런 종류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이 사회가 가면 그 끝이 과연 어디에 다다를까하고 망연자실(茫然自失)에 빠진다.   영화속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가능한 한 모든 걸 해가며 아내를 잘 챙겨주는 헌신적인 장대현을 보여줌으로서 대부분의 남성에 대한 잘못된 일반화와 여성 상위를 넘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보여주는 모순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까지 너무도 어색하게 조명되어 보였다.   심지어 영화의 맥락자체를 어색하게 만드는 무리수를 두며 페미니즘영화 특유의 일방적 성대결 구도를 포기하지 못한 부분이 매끄럽지 못하게 계속 도출되어 무척 아쉬웠다.   ‘82년 김지영‘책과 영화의 한계 전체 영화의 전개 자체가 상당히 지루했고 제작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는 생각을 내내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것은 원작처럼 중심적인 축 또는 극적인 전개나 극단적인 갈등이 없이 오직 김지영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지고지순한 사건을 따라가는 방식이어서 더 그랬다.   이런 스토리 전개방식이 ‘82년 김지영‘ 영화의 한계로 보였다. 반면에 관객 입장에서 특정 캐릭터에 이입하기에 좋으나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중심 축이 전혀 없어 클라이맥스부분이 엉거주춤식으로 전개되고 눈물연기로 끌어 들이는 듯 하나 그 부분이 매우 어색했다. 그러니 더 지루한 인상을 쉽게 지을 수 없다.   최소한 등장인물끼리 갈등과 충돌을 하며 이야기 안에서 팽팽하며 서로의 이해관계, 불완전한 인간적인 면들로 얽혀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인물들 대부분은 전부 자기 생각들은 안 하고 이타적이며 매우 착한 편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두루뭉술하게 넘어만 간다.   물론 남편과도, 가족인 아버지와 형제들간에도 충돌과 갈등이 있긴 하지만 서로가 먼저 이해하고 양보하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인물간의 심층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관객에게는 상당한 지루함을 주고 남았다.   게다가 기본적인 갈등이 '육아와 경력단절'에 있지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현대"의 사회문제와 "과거"의 시대문제를 엮는 과정에서 산만해짐과, 뜻밖에 나타나는 스토리전개가 문제다.   주인공이 단번에 맘충이 되고, 갑자기 회사 내에서 대화를 통해 어프로치되는 몰래카메라 등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장면들은 관람과 어울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이해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기에 충분했다.   또 김지영이 겪는 현상이 ‘빙의’식 표현도 나오지만 정말 죽은 사람의 영혼이 들어간 초자연적 현상인지 아니면 단순히 의학적인 정신 장애인지 명확한 설명없이 끝나는 부분도 관객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앞 서 밝힌바와 같이 클라이맥스부분에서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만 있는 것처럼 여기고 눈물을 흘리는 남자(공유 분)의 모습에서도 쉽게 공감을 끌어내기가 어려웠다.   다만 페미니즘 영화답게 개봉 첫날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대부분이 20, 30대 여성으로 채워졌다는 게 현실적으로 보면 수긍이 가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반면 영화를 관람한 남성들의 비율은 20%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수치에 놀랍고. 2019년 11월 14일 오전 네이버 영화 기준 성별·나이별 관람추이 기준으로는 남성 28% 여성 72%으로 남성 비율이 다소 높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여성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를 알만하다.   결코 ‘82년 김지영‘은 남성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고, 요새 2~30대 여성들만의 공감을 크게 얻을 수 있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을 뿐이다.   혼족이 늘고 하나인 외톨이 가정이 느는 사회에서 앞으로 이들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현실속에서 심지어 부부나 커플 들 간의 갈등과 싸움만을 유발했다는 이야기들도 간간히 들리는 것도 다 그러한 맥락의 흐름으로 엿보인다.   함께 관람한 한 가정의 여성도 그 무렵에 태어난 사람들과 지금 현재 견딜 수 있을 만큼 아파하고 당면한 이성 문제를 갖고 가슴으로 풀어가며 충분히 부대끼고 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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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의 상소는 계속된다.   “『상서(尙書, 서경(書經)의 별칭)』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려운 데에 들게 된다.’ 하였습니다. 여러 신하가 전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전하께서는 반드시 노하여 죄주실 것이거니와, 만약 전하께서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면 하늘이 어찌 전하를 돌보겠습니까.   여러 신하가 전하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전하께서는 하늘을 두려워하시어 멀다 하지 마소서. 하늘을 두려워한 뒤에야 만사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김일손은 연산군에게 하늘을 두려워하라고 간언한다.   한 번 하늘의 도(天道)를 멀다 하시면 하늘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하늘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만물을 맡아보면 이 마음이 방자 하여져서 막을 수 없을 것이니, 여러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가 전하의 몸 아래에 물건인데, 두려울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대신을 공경할 필요가 없고 대간(臺諫)을 믿을 필요가 없으며, 시종(侍從)을 친근하게 대하지 않고 ‘내 말은 어기지 못한다.’, ‘내 명은 거슬리지 못한다.’하시면, 내가 잘 낫다는 마음이 날로 쌓이고 달로 자라나서 다시는 용납해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현인과 군자는 머뭇거리며 속으로만 아파하고 다시는 진언(進言)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어찌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두려워하면 마음이 바르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뭇 신하에 임하시고, 또한 하늘을 본받아서 전하의 마음을 비우소서. 오직 마음이 비워야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진실로 주일(主一 : 마음을 오로지하여 잡된 것을 들이지 않음.)하여 마음을 비우신다면, 마음이 하늘과 통하여 탕탕(蕩蕩) 평평(平平)한 중정(中正)의 도(道)가 점점 이루어져서 제왕의 법도가 세워질 것입니다.   중정(中正)의 도라. 지나치게 모자람이 없으며 치우침이 없는 곧고 올바른 도를 행하는 것이 바로 치국의 길이다.   상소는 이어진다. “만약에 마음을 비우지 않으신다면, 대신에게 정사를 맡길 적에 그가 총애를 믿고 권세를 휘두르지 않을까 의심하여 간섭하고, 대간을 대우하는 데는 그가 명예에 마음을 두고 책임만 면하려 한다고 의심하여 물리치고, 청론(淸論 : 맑은 말과 고상한 논의)을 들으면 그것이 너무 옛것에 얽매어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의심하여 가볍게 여기며, 전조(銓曹)에서 사람을 쓰는 데는 제 사정(私情)을 따르는 가 의심하고, 형관(刑官)이 법을 다루는 데는 사정(私情)을 쓰는 가 의심하게까지 되어, 여러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가 사정이 있다고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하의 마음은 날로 고달파지고 신하들은 의사를 펴지 못 할 것입니다. 한 선제(漢 宣帝)와 당 선종(唐 宣宗)은 명목과 실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대권을 모조리 장악하여 명찰(明察)한 임금이라 칭송받았으나 지덕(至德)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사람을 알아보아서 잘 맡기고 인재 얻기를 잘하며, 마음을 비워 간하는 말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곧 임금 된 이의 훌륭한 절제(節制)입니다.”   임금이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고 인재 얻기를 잘하며, 간언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임금의 훌륭한 절제(節制)라는 김일손의 상소는 지금도 되새길 만하다.   “전하께서 세자로 계실 때는 한 마디 말씀도 실수가 없으시고 한 가지 행실도 이지러짐이 없으셨으므로, 숨긴 덕과 감춘 빛을 남들이 추측할 수 없었으며, 즉위하시어서는 집상(執喪)을 애통하게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되게 하고 첫 정사를 밝게 시행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을 깨우쳤습니다.     안팎의 신하 백성들은 한 집안의 오랜 종들과 같아서 가장(家長)이 살았을 때에는 그 아들이 마음대로 처리하는 법이 없으므로 그의 뜻이 어떠한지 몰랐으나, 가장을 잃고 나서는 당황하여 우러러 의지할 곳이 없어서, 문득 상속한 맏아들의 행동이 법도에 맞는가를 보아 기뻐도 하고 슬퍼도 합니다. 다행히 가업이 더욱 융성하면 서로 경축하고 칭송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에 한마디 말씀과 동작 하나하나의 관계됨이 무거우니, 전하께서 삼가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집안의 가장처럼 한 나라를 이끌 임금 노릇의 막중함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삼년상(三年喪)은 천자(天子)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것이라, 어찌 귀천의 다름이 있겠습니까. 처음 초상을 당해서는 목소리는 다시 못 들어도 유체(遺體)가 상(床)위에 있으니 그래도 붙들고 울 수가 있으나, 염(斂)하게 되어서는 모습마저 한 나무관 속에 거두니 애간장을 찢듯이 망극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초빈(草殯)하게 되어서는 그일이 아득해지되 오히려 평일에 거처하던 곳에서 아침 저녁으로 곡림(哭臨)하여 생시처럼 봉양하니, 또한 스스로 위안할 만하나, 장사하게 되어서는 어둡고 어두운 구덩이 속에 아주 묻으니 울부짖어 봐도 미칠 수 없으니 영원히 버린 것이며, 이에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잃은 자는 3년이 지나고서는 상복을 다시 더 입어 볼 수 없음을 생각하고, 장사하고 나서는 빈소에 계실 때를 생각하고, 빈하고 나서는 염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고, 염하고 나서는 편찮았을 때를 생각하나, 일이 때와 더불어 지나가서 날로 멀어지매 소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진 1 김일손 부친 남계공 김맹(1410∽1483)의 묘소 (경북 청도군 김일손 묘 위에 있다)   사진 2 영모제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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