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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기도의 바람 성령의 불 3  박성락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2012년부터 한소망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중심으로 감사특밤, 특별새벽 기도 때 설교 내용을 소재로 시를 써 “성령의 불 기도의 바람”이란 시집을 세 번째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16.12.26~17.12.31까지 1년 동안 주일마다 그리고 신년특별 새벽기도 때 위임 목사님의 명 설교에 감동되어 부족하지만 그 때 받은 은혜를 시로 표현하여 다시 한 번 성도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 도와주신 류영모 위임 목사님과 4속 윤성필 부목사님 외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 <머리말>      - 차    례 -    시인의 말  추천사  제1부 신년 특별새벽 기도 주 뜻대로  율법과 은혜  아버지의 사랑  승리한 싸움  용서  송구영신  율법에서 자유를  새 힘을 공급 받는 삶  즐거운 교환  죄책감으로부터 자유  우울증 치유  약한 자를 강하게  선한 싸움  제2부 주일 설교 약점도 아름답다  목양  네 나이 몇 살이냐  말 한마디  반석 위 교회  오직 복음으로  복음  이 나라를 살려 주소서  십자가 영성  전환점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흔적  부활이 없으면  그래도 주 사랑  성령과 거듭남  내 아이를 받으소서  에덴의 가정  먼저 가시는 하나님  판단  연약해서 도우신다  보리떡 교회  반반세기 하루같이  눈물로 메고 가는 법퀘  시간을 아껴라  심연 깊은 감사  은혜 위에 은혜라  동행  하나님 사랑  혈루증  불공평  좁은 길로 가라  바람이 전할 수 없는 복음  할까 말까  본향 가는 사람들  이 도시를 정복하라  핵무기  주 앞에 내가 섭니다  열매  내 실수를 선으로  임마누엘 하나님  신앙의 명가문  믿음의 명가문  능력과 무능  복의 근원  엘사다이  야훼 이례  [2018.12.10 발행. 71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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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4일 목포 샹그리아비치호텔에서 해상풍력 지역 상생 및 주민 참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제5회 전남 풍력산업 육성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는 성진기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해상풍력팀장, 전응철 코람코자산운용 사장, 오시덕 블루이코노미전략연구원 대표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포럼에선 세계 풍력산업 현황과 국내 해상풍력 전망 및 추진전략, 해상풍력 PF 사례 및 진단, 전력계통 수용 확대 방안과 신․증설 계획, 해상풍력 지역상생 모델 및 주민 참여 방안이 발표됐다. 지자체와 기업체의 애로사항 수렴과 정책 발굴을 위한 토론도 진행됐다.   주제발표에 나선 성진기 에너지기술평가원 팀장은 세계풍력산업 동향, 국내 해상풍력산업의 도전 과제와 추진 전략 등을 설명했다. 오시덕 블루이코노미전략연구원 대표는 풍력사업과 관련한 주민 갈등과 수용성 제고 국내외 사례를 발표하고 주민 참여 및 지역 상생을 통해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건섭 전라남도 에너지신산업과장은 “풍력사업에 민선7기 김영록 도지사의 역점시책인 도민발전소를 도입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도민 소득도 확대되도록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으며 이번 포럼은 해상풍력발전에 대한 관심과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라남도가 역점 추진하는 풍력산업 육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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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김세곤 · http://edaynews.com
7월13일에 김일손은 노산대군(단종 1441∼1457, 재위 1452∼1455)의 일에 대하여 공초하였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3일 3번째 기사)    “사초(史草)에 이른바 ‘노산(魯山)의 시체를 숲속에 던져버리고 한 달이 지나도 염습(斂襲)하는 자가 없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서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와서 시체를 짊어지고 달아났으니,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 것은  최맹한(崔孟漢)에게 들었습니다. 신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쓰기를 ‘김종직(金宗直)이 과거하기 전에, 꿈속에서 느낀 것이 있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하고, 드디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썼습니다.” 노산대군의 시신에 관한 김일손의 공초는  신숙주 · 한명회가 편찬한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1457년(세조 3) 10월21일자 세조실록에는 “이유(李瑜 금성대군)는 사사(賜死 임금이 독약을 내려 자결하게 하는 일)하고, 송현수(단종의 장인)는 교형에 처했다. 노산(魯山)이 이를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산대군이 스스로 자살을 하여 예로써 장사를 지냈다는 것이 조정의 공식 입장인데, 김일손은 사초에 노산의 시신이 한 달 이상 방치되었다고 적었으니 이는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연산군 입장에서 보면 세조를 욕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면 김일손의 사초와 세조실록 중 어느 기록이 진실일까?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1457년 6월 말에 정국은 또 다시 들끓었다. 6월27일에 안동의 관노 이동(李同)이 경상도 순흥에서 유배중인 금성대군(세종의 여섯 째 아들)의 모반을 고변했다. 7월9일에는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한 것이 발각되었다. 이러자 9월10일에 신숙주·정인지 등은 금성대군과 노산대군을 사사(賜死)토록 세조에게 청했다. 10월16일에는 종친, 충훈부(忠勳府)·육조에서 노산대군과 금성대군의 처벌을 청했고, 10월18일에는 양녕대군·효령대군까지 나서서 노산군과 금성대군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이어서 10월21일에는 양녕대군과 영의정 정인지가 주동하여 종친과 대신들을 모두 동원시켜 노산대군과 금성대군 · 송현수 · 영풍군 등을 사사(賜死)하기를 청하였다. 이러자 세조는 금성대군은 사사하고, 송현수를  교형에 처했다. 노산(魯山)이 이를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지냈다는 것이 세조실록 1457년 10월21일의 기록이다.  그러면 세조실록이 사실일까? 단종이 자살한 것이 맞는가? 세조가 단종의 시신을 예(禮)로서 장사지낸 것일까? 후세 사람들은 단종은 자살 안 했다고 말한다. 중종 때 문신 이자(1480∼1533)는 『음애일기(陰崖日記)』에서 “실록에서 ‘노산군이 금성대군의 실패를 듣고 자진(自盡)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여우나 쥐 같은 무리들의 간악하고 아첨하는 붓장난이다. ‘실록‘을 편수한 자들이 모두 세조를 던 무리들 아닌가?”라고 혹평했다. 중종 때 문신 호조참의 이맥도 ‘단종은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일찍이 듣건대, 노산이 세조께 전위(傳位)하였는데 세조께서 즉위한 뒤 인심이 안정되지 않으므로, 부득이 군(君)으로 강등하여 봉하였다가 이어 죽임을 내렸다 합니다.” (중종실록 1516년 11월23일) 또한 인조 때 문신 나만갑은 『병자록(丙子錄)』에서 세조실록과 전혀 다르게 적었다.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나장(羅將)이 시각이 늦어지다고 발을 굴렀다. 왕방연은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으나, 왕방연은 대답을 못하였다. 통인(通引) 하나가 항상 단종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겼다. 그 때 단종의 나이 17세였다. 통인이 미처 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하였다. 시녀와 시종들이 다투어 고을 동강(東江)에 몸을 던져 죽어서 둥둥 뜬 시체가 강에 가득하였고, 이날에 뇌우(雷雨)가 크게 일어나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고 맹렬한 바람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검은 안개가 공중에 가득 깔려 밤이 지나도록 걷히지 않았다.” 한마디로 비운의 왕 단종은 1457년 10월24일 영월 관풍헌 앞마당에서 죽임을 당했다. 사진 19-1   단종의 묘, 장릉 (강원도 영월군)    아울러 세조실록에 “예(禮)로써 장사지냈다”는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단종의 시신은 방치되어 있었는데 고을 향리인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는 아들 3형제와 함께 미리 준비한 관을 지게에 지고 단종의 시신을 염습하여 영월 엄씨의 선산인 동을지산(冬乙旨山 현재의 장릉)으로 향했다. 주위 사람들이 역적을 비호했다고 화를 입을 것을 염려하여 간곡히 말렸으나,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가 그 어떤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라고 말하면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 이때는 음력 10월 하순이어서 산에는 이미 함박눈이 쌓였고, 날씨는 추웠다. 엄흥도는 잠깐 쉬려고 하는데, 갑자기 노루 한 마리가 사람들의 인기척에 놀라 달아났다. 노루가 달아난 자리를 보니 눈이 녹아 있었다. 엄흥도는 이곳에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조금 있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깊은 산속으로 가려고 하자 관이 얹혀 있는 지게가 움직이지 않았다. 엄흥도는 ‘이곳이 명당인가 보다’고 생각하면서 노루가 앉아 있던 그 자리에다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묻고서 종적을 감추었다. 19-2  엄흥도 정려각 안내문    19-3  엄흥도 정려각 한편 현종실록 1669년 1월5일자는 단종 죽음에 관한 진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노산군이 살해당한 후 아무도 시신을 거두어 돌보지 않았었는데, 그 고을 아전 엄흥도가 곧바로 가서 곡하고, 관곽을 준비해 염하여 장사를 치렀으니, 지금의 노산군 묘가 바로 그 묘입니다.” 역사기록을 너무 믿지 마라. 가짜도 있다. 조선왕조실록도 때로는 사실(Fact)을 왜곡하기도 한다. 한편 노산대군의 시신에 대하여 공초한 김일손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신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쓰기를 ‘김종직(金宗直)이 과거하기 전에, 꿈속에서 느낀 것이 있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하고, 드디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썼습니다.” 조의제문은  서초패왕 항우에게 살해된 초나라 의제(義帝)를 조문하는 글인데 김종직이 1459년 과거에 급제하기 전인 1457년 10월에 지었다. 조의제문의 첫 부분을 읽어보자. ‘정축 10월 어느 날에 나는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踏溪驛)에서 자는데, 꿈에 신(神)이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손자 심(心 의제)인데,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에게 살해 되어 빈강(郴江)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김일손은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고 사초에 기록하고는 조의제문 전문을 수록했다.    충분(忠憤)은 충의분발(忠義憤發) 즉 충의로 인하여 일어나는 분한 마음 이다. 김일손이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했으니 유자광이 눈치 못 챘을 리 없다. 유자광은 ‘충분’에 착안하여 조의제문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드디어 2일 후인 7월15일에 조의제문이 전면 등장한다.       19-4 밀양 예림서원 19-5 예림서원 안내문   19-6 예림서원 입구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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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책
안무월 · http://dsb.kr
가시버시의 굴레  초연 김은자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개천절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조교로 있다가 고등학교 교사를 초빙하러 온 마산교장선생님을 만나 처음으로 제일여고에 부임한 날이라 잊지 않고 있다. 남편을 잃은 날이 이상하게도 개천절 날이다. 문병선 교수님이 외아들을 소개하시며 나를 일본 교토대학에 유학시켜 주시면서 맺어진 그를 하늘나라에 보낸 날이다. <가시버시의 굴레>를 대한민국에서 홀로 남겨진 여인이 문자로 묶은 열 번째의 시집이다. 대한민국의 대(大)는 크다는 뜻이고 한(韓)은 무한대의 의미를 담고 있듯이 슬픔도 무량하다.   그의 유학시절의 애환을 회상하면 가슴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모든 고생을 이겨내며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곳에서 정년을 마치고 79세를 살다가 모교의 장례식장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제자들과 지인들의 추모를 받으며 이승을 떠난 나의 지아비다. 그의 동료들은 아직도 살아있건만 그렇게 오랫동안 투병을 하면서 떠나야만 했던 그를 돌보던 나에게 그 고통이 문학으로 승화되는 터전을 마련하고 갔다. 포항제철의 석좌교수를 지내면서 충분한 연구비로 모교에 기여한 후광을 추모객 중에서 읽을 수 있었고, 조문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남자 분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사는 동안 잘살아온 남편이라 생각했다.   지금 49제를 지내면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도하는 중간이 되는 4제되는 아침이다. 날씨는 점점 싸늘해지는데 제단에 있는 영정사진은 이마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 보인다. 정을 떼려고 마지막 두 달은 참으로 힘들게 했던 그는 공휴일 낮에 작은 아들 부부가 문안 온 후에 임종을 지킬 수 있게 했다. 큰 아들은 전날에 왔었는데, 그렇게 싫어하던 병원이 아닌 집에서 희망하던 대로 부처님의 품으로 갔다. 그의 성품대로 좋은 날씨에 저 세상으로 갔고 주말이라 모든 일정이 순조로웠다. 자식 삼남매가 모두 짝을 맺었고 손자 손녀들이 있고, 나는 아직 건강하니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을 게다. 명복을 빌어주는 화환이 복도에 넘쳐 사회각층의 리본을 벽에 붙이는 작업을 해야 했고, 밤이 이슥토록 문상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머리 숙여 합장하며 감사드린다. 이제 창작하는 글을 지아비 삼아 남은 생을 살아야하는 숙명을 시집으로 낳는다.  ― <머리말>         - 차    례 - 머리에 두는 글  제1부 가시버시의 굴레 가시버시의 굴레  그대 사랑  그이가 남겨준 것  기도의 피안  가을의 전언  가을이 만지고 간다  곡기를 끊다  만추의 가시버시  어울림의 능선  슬픈 전동 침대  제2부 윤석환 박사의 6행시 윤석환 박사의 6행시  거짓 없는 고백  길상사 새벽기도  나를 덜어내다  마주침  오이냉국  작은 행복을 찾아  코 베어 가는 자  호박 능력  푸새하는 마음  제3부 기다립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을  혼자  임의 자리  임은 가셨다  어느 명절에  초제  바람이 스치듯이  솔릭 태풍  아들이 다녀가면  위로를 휘감고  제4부 불꽃이여 불꽃이여  수상의 기쁨  가을 통증  그가 떠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대에게  그들의 말  눈을 못 감는다는 말  단풍잎 악보  모두 멀리 있다  덫칠  제5부 빈말 빈말  묵시적 약속  비우러 간다  반갑던 손자들  산수傘壽의 문우  삼제를 지내며  수안보 온천  시아버님  언어의 두께  ‘정 구업’ 진언  제6부 수다로 때우는 고독한 가을밤 수다로 때우는 고독한 가을밤  재화의 덫  자랑 질  정포瀞浦  오늘은 2제  중간에 온 사십 구제  하나  나의 보람이 피는 아침  흑다우 성찬  해킹의 상처  ●  서평  [2015.12.05 발행. 100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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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 http://edaynews.com
대구시는 2017회계연도 결산에 대한 시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민이 알기 쉬운 결산요약보고서’를 작성하여 시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 올해 지방선거와 제8대 시의회 구성으로 9.18.자로 결산승인  이번 결산요약보고서는 기존 결산서의 복잡한 구성과 체계를 벗어나 그림이나 그래프를 활용하여 시민들이 결산 핵심정보를 한눈에 볼수 있도록 하고, 어려운 회계용어는 사례를 통해 쉽게 설명하였다. 대구시는「시민이 알기 쉬운 결산보고서」를 통해 우리시 살림살이 규모와 재정운영 성과를 시민들에게 알려 보다 많은 시민들이 市 재정운영에 관심을 가지고 한 단계 더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추진한‘시민이 알기 쉬운 결산보고서 공모’에서 대구시가 인천, 대전, 경기, 충남과 함께 5개 우수 광역자치단체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대구시 진광식 자치행정국장은 “결산담당자가 아니면 공무원들조차 복잡한 체계와 방대한 분량의 결산서를 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권리가 있는 시민에게 이해하기 쉬운 결산자료를 제공하고, 내년에는 온라인 게재는 물론 소책자를 제작․배부하여 시민 스스로 지방재정 운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대구시는 ‘제1회 한국 지방자치단체 회계대상’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시상식은 오는 12일 행정안전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될 예정이다.        회계대상은 지방자치단체 결산서 품질향상과 공공부문 회계투명성 제고 및 지방재정을 모범적으로 운용하고 그 결과를 지역민에게 투명하게 알린 자치단체를 적극 발굴‧홍보하기 위해 지난 두 달간 추진되었다. 각 지자체별 결산관련 환경분석, 결산결과 공시품질, 결산서 활용 및 관심도 등을 설문과 구두 질문, 결산서등 공개자료 확인 등을 통하여 6개 광역, 11개 기초 자치단체를 선정하였다.   ※ 대상(제주), 우수(경기), 장려(대구, 강원, 충남, 전북) 대구시 이상길 행정부시장은 “이상 두 개의 우수기관 선정으로 우리시가 효율적 재정운용과 회계 투명성 확립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어 열악한 재정환경에서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앞으로도 회계운용 결과를 시민이 이해하기 쉽게 작성하고 알려 행복한 시민 자랑스런 대구 건설에 적극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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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농업박물관(관장 이종주)이 오는 8일 영산호관광지 농업테마공원에서 일반인과 다문화가족, 초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전국 민속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연날리기 대회’는 남도의 전통 민속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농업박물관을 널리 알려 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식전행사, 개막행사, 본 행사, 부대행사 등으로 나눠 진행된다. 식전행사에선 서울, 경남 등 전국의 전통 연 연구가 10명을 초청, 줄 연과 단독 연 5종의 창작 연날리기 시연을 벌인다.   액막이 연날리기에서는 초청 내빈 가운데 약 10여 명이 ‘내 삶이 바뀌는 전남 행복시대’나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문구가 새겨진 액막이 연을 날리며 올해의 나쁜 액을 보내고 새해 복을 기원한다.   이어 가장 관심을 끄는 연날리기 경연에선 일반부와 다문화·학생부로 나눠 일반부는 연줄 끊기, 다문화·학생부는 멀리․높이 날리기를 실시해 순위를 결정한다. 각각 A․B조로 나눠 단판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시상금은 일반부 1위 100만 원, 2위 50만 원, 3위(2명) 20만 원, 장려상(4명) 10만 원이며 왕위전(일반부) 1위는 30만 원이다. 또한 다문화부와 학생부는 1~3위 각 1명씩 10만 원 상당의 상품권과 상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부대행사로 전국에서 참여한 초등학교 1~6학년생 약 50명을 대상으로 ‘연 만들기 체험’을 한다. 이순신 신호연을 비롯한 전통 연, 호남 연 등 총 100점의 다양한 종류의 연 전시회도 열린다.   참가 접수는 개인 또는 단체로 대회 당일 현장에서 하며, 참가비는 일반부 1만 원, 다문화부·학생부는 무료이며 자세한 사항은 전라남도농업박물관 누리집(www.jam.go.kr)을 참조하거나 농업박물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이종주 관장은 “해마다 전국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우리 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전국 연 애호가는 물론 도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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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김세곤 · http://edaynews.com
러시아 에르미타시 박물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림은 렘브란트(1606∼1669)의 ‘돌아온 탕자’이다.  렘브란트가 죽기 직전인 1668-1669년에 그렸다. 1) ‘돌아온 탕자’는 『신약성서』 누가복음 15장에 근거한다. 세리(稅吏)들과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 들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죄인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는 것에 못 마땅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세 가지 비유로서 말씀하셨다. 첫째는 백 마리 양에서 다시 찾은 양 한 마리, 둘째는 은전 열 닢 중 되찾은 한 닢, 셋째는 돌아온 탕자이다. 2)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을 미리 받아서 고향을 떠났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흉년까지 들어 알거지가 되어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그는 못 견디고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라고 말하며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누가복음 15장 11-25절) 그러면 그림을 자세히 보자. 빛은 아버지와 돌아온 탕자에 집중되어 있다. 소위 렘브란트 조명이다. 나머지는 거의 어둠으로 처리되어 있다. 사진 15-1 돌아온 탕자 돌아온 탕자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  누더기 옷을 입고 닳아진 신발 뒤축으로 물집 잡힌 시커먼 발바닥을 드러낸 아들의 모습은 오갈 데 없는 처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붉은 망토를 두른 늙은 눈 먼 아버지는 아들을 감싸 안으려는 듯 앞으로 몸을 굽히고 아들의 등과 어깨에 두 손을 대고 있다. 아버지 모습에는   부정(父情)과 관용이 느껴진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옷의 색상은 비슷하여 화합과 일치의 순간을 보여준다.   사진 2  탕자와 아버지 (확대 사진)   한편 맨 오른편에 붉은 망토를 하고 두 손에 지팡이를 집고 서 있는 사람은 큰 아들이다. 그는 동생을 환대하는 아버지가 매우 못 마땅한 표정이다.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항의를 했다. “아버지, 저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에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잔치를 베풀다니요!”(누가복음 15장 29–31절) 3) 한편 그림에는 세 명이 어둠 속에서 탕자와 아버지의 재회를 지켜보고 있다. 앉아서 가슴을 치고 있는 모자 쓴 남자, 뒤 쪽에 서있는 여자, 그리고 컴컴한 어둠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여인. 이들의 시선은 담담하다. ‘돌아온 탕자’의 주제는 회개와 용서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렘브란트의 삶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림은 렘브란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절제 하게 방탕하게 살다가 1656년에 파산 선고를 받아 비참하게 지낸 렘브란트. 말년의 식사는 빵과 치즈 그리고 절인 청어가 전부였다. 더구나 그는 1663년에 사랑하는 여인 헨드리케를 잃고, 1668년에는 외아들 티투스마저 죽었다. 1669년 10월4일에 렘브란트는 63세의 생을 마감한다. 그의 이젤에는 ‘아기 그리스도를 안은 시몬’이 미완성인 채로 걸려 있었다. 10월8일에 렘브란트는 조문객 없이 암스테르담의 베스테르케르크 묘지에 쓸쓸히 묻혔다. (계속됩니다.) 1) 이 그림은 예카테리나 여제(재위 1762 ~1796)가 1767년에 프랑스 파리 아메쥬네 백작으로부터  구입했다.    2)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사람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한다.  (누가복음 15장 7절) 3) 큰 아들의 투덜거림에 아버지는 말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5장 31-32절)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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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강연
무라까미쓰네오 · http://edaynews.com
 방금 소개받은 무라카미 츠네오입니다. 이번에 저와 함께 온 저 분은 다나에 츠토무씨입니다. 일본 에히메현 오즈시에서 왔습니다.  지난해 상사화가 한창이던 내산서원에서 심포지움을 끝내고 오즈시로 돌아온 지 1주일 뒤에 한국에서 26명의 단체가 오즈시를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오즈성에 있는 강항선생 현창비를 안내하였습니다. 그 단체는 영광군의 농업관련 종사자들로 일본의 농업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일곱 번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지요. 방문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서로를 배우고 교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국제교류 및 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강항선생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고달팠지만, 교토에서 만난 후지와라 세이카로 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가르쳐드리죠"라고 답한 것은 유학자 강항선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오늘 한국 방문이 여덟 번째입니다. 모든 것이 낯익은 풍경입니다만 올해는 각별한 감격이 있습니다. 그 것은 금년이 일본에 유교를 전한 수은 강항선생이 돌아가신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항선생을 알게 된 것은 34년 전인 1984년 6월입니다. 오즈 시청에서 교육위원회 문화계를 맡고 있을 때 오사카에 사는 재일교포 신기수씨를 대표로 하는 그룹에서 강항선생 기념비를 오즈성에 세우고 싶으니 부지를 제공해 주었으면 한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강항이라는 사람이 교토에서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유교를 전한 그의 업적이 간단하게 쓰여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즈시에서 발행하는 잡지 ”'오즈시지'를 읽어보니 한자 이름은 '쿄우코'라고 일본식 후리가나가로 되어 있었으며, 오즈성 토도 다카도라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조선을 침략했을 때 포로로 잡혔던 인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오즈시내에서 제일 비싼 땅인 오즈성터의 일부분을 제공하려면 나름대로 현저한 공적이 있는 인물이어야만 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기념비 건립에 적합한 인물인지를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난처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 박물관에서 복사를 했다며 서류를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4세기 전에 강항선생이 쓴 '간양록' 이었습니다.  어려운 한문은 사전을 참고하면서 읽는 도중 내 등골이 오싹함을 느낄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인물이야말로 일본에 유교를 전파하고 일본 교육·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공로자임을 알게 된 것이죠. 저는 '유학자 강항과 오즈'라는 논문을 써서 기념비를 오즈성에 세우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강조를 하였으며 부지제공을 승인해야 한다고 기안했습니다. 다행히 시장, 교육장 그리고 의회도 이것에 찬성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기념비 건립의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건립비 모금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987년 7월 뜻밖에 한국 경주의 동국대 교수인 오영진, 장충식 교수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한일 문화교류에 대해 연구하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강항선생과 관련된 자료를 건네주고 유적을 안내하자 일본어과 오교수로부터 한국방문을 권유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여권을 발급받고 다음달 8월 대학교수의 안내로 서울에서 전주, 광주, 영광, 경주로 5일간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광주 박물관에서 이을호 관장을 만났고, 영광에서는 강씨 후손 분들을 만나 내산서원을 찾았습니다. 뒷산 있는 강항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일본 교육 문화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에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서원에 비치된 방명록의 명단을 넘기자 일본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일본에는 강항선생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한편, 현창비 건립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1990년 3월 11일, 벚꽃이 만개한 오즈성에서 한국인 참석자 32명을 포함 약 160명이 참석해 제막식을 하였습니다. 마스다 요이치 오즈시 시장은 축사를 통해 “강항선생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두 나라의 인연을 맺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즈시가 이렇게 한일 양국의 친선을 도모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공무원의 숙명으로 그 때에 발령이 나 다른 부서로 전근이 되어 다른 업무를 하였습니다만, 강항선생 연구자로서 기념식장의 맨 끝자리라도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강항선생이 여기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했다는 기록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됐습니다.  이 기념비 건립을 계기로 강항선생의 이름이 일본의 매스컴에 소개되는 일이 잦아졌으며, 한국에서도 큰 화제 거리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즈성 기념비를 찾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한국에서도 강씨 가문, 영광군, 광주시 등의 고향사람들과 학자, 연구진 등 많은 사람의 방문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윤홍식씨가 계십니다. 바로 이분이십니다.  강항선생이 쓴 일본에서의 포로생활(日本幽囚)의 기록을 편집해 출판한 제자 윤순거씨의 13대 후손이 되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윤씨는 조상의 뜻을 이어 강항선생의 공적을 현창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해 오즈시장에게 한국을 방문하도록 권했습니다. 시대를 뛰어넘고 해를 거듭하여도 은사를 현창 하려는 師弟간의 깊은 정의 모습에 감동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 도착한 편지가 이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큰 글씨로 된 초대장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글은 읽을 수 없습니다만, 이 한자라면 압니다. "明春靈光春享擧行, 責任案內安心來韓 -- 내년의 봄 영광에서 춘향제가 거행됩니다. 책임지고 안내할 테니 안심하고 한국에 오세요. 라고 읽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오즈시장이 한국행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이전의 침략자, 토도 타카토라의 출신지 사람의 방문을 받아 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보고 처음으로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동행은 시의회 대표의 오모리 부의장, 교육위원회 대표의 쿠보타 교육장, 그리고 먼저 한국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던 시민 과장인 저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인 1991년 봄 4월 15일, 저희는 김포공항에 내렸습니다. 거기에 '환영 오즈시장님'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마중을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진주 강씨 종회 회장 강기천씨로 부터 그날 밤 서울에서 환영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차로 광주시에 도착해서 코리아나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호텔 경영자이자 강자희선생의 후손인 강대직씨가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환영인사가 있었습니다. 모두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하면서도, 즐거운 밤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날 공교롭게도 비가 왔지만, 승용차로 영광군을 향해 군청을 방문했습니다. 정말 긴장의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다음 순간 우리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커다란 탁자 한가운데에 한국과 일본의 국기가 굳게 묶여 장식되어있는 것을 보았어요. 정 군수님으로 부터 환영의 인사말씀을 듣고, 간담회를 마친 후 내선서원으로 서원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에는 유림복장차림으로 참배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매스컴의 기자들도 기다리고 있어 취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식이 시작되자 우리들은 익숙해지지 않는 예법에 당황하면서도 확실한 것은 지난 400년 동안 일본인으로써 처음 참가한 식을 끝냈습니다.  마스다 시장은 답사를 하기 위해 일어나서 “일찍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오즈성 토도다카토라가 이 땅을 침략한 과오를 사죄하고 강항선생이 일본의 교육 화의 발전에 공헌한 공적을 기리고, 향후 교류를 하자고 호소했습니다. 이 말은 윤홍식씨의 통역으로 참가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인사가 끝났을 때 는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여행 중에 일본어로 안내하던 한국의 젊은 여성 가이드는 마스다 시장의 인사를 듣고 일본인을 오해했어요. 부끄럽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마스다 시장의 방문은 당일 테레비젼에 방송되고, 그 후엔 각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봇물 터지듯 한국 방문이 시작돼 행정단체, 시내학교장 등 교육관계자, 청년회의소와 함께 온 어린이 스포츠클럽, 오즈고등학교 수학여행 단체, 그리고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는 이마지시, 미에현 쯔시의 상공회의소 등등 방문이 이어졌습니다.   저에게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일본에 강항선생의 공적을 소개하는 책자가 없으니 신기수씨로 부터 제의를 받아 공동으로 집필을 하고 1991년에 “유생 강항과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아카이시출판사에서 출판했습니다. 중앙 언론에도 소개가 되어 갑자기 바빠지고, 공무원의 일과 양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해인 1992년 3월, 3년 남은 정년을 기다리지 않고 시청공무원을 의원 퇴직했습니다.    갑자기 직업도 없어지고 수입도 없어져 마누라한테 몹시 혼났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역사의 작가로써 감동과 흥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1999년, '강항·유교를 전한 포로인의 발자취'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이번을 포함해 한국을 8번 방문했지만, 2년 전에는 예상치 못한 명예를 얻었습니다. 앞서 발행했던 책이 번역되어 한국에서 출간된 데 이어 '서울언론인 클럽 상'에서 외국인 특별상'으로 선정됐습니다. 저가 이 영예로 인하여 강항선생의 공적이 한국 내에서도 널리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시상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오즈 시에서는 중학교 부독본을 제작해 일본 유학의 영향을 미쳤다는 강항선생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지방의 작은 시에서의 일입니다만, 언젠가는 일본의 교과서에 그리고 역사책에 빛나게 등장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저는 시청 직원으로써 평범한 삶의 끝자락에서 강항선생을 만나고 작은 연구를 계속하면서 오즈시와 영광, 나아가 일본과 한국의 우호친선에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더욱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2001년 3월 영광에서 개최된 심포지움 때 내빈으로 참석한 국회의원이 유창한 일본어로 저에게 말을 건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이낙연 의원님이었습니다. 저는 기쁘게도 일본어가 능숙한 분이면 읽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일본어로 된 책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 권 더 넣고, 이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드려 달라고 부탁한 결과, 이런 대답이 왔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굉장히 기뻐하셨다고 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 의원은 그 후 전라남도 지사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오즈의 강항선생 현창비를 두 번이나 방문하셨고 제가 안내를 했습니다.  고향의 대한 자부심으로 존경받고 계시리라 짐작됩니다. 그때 오즈성에서의 사진입니다.  그 지사님이 작년 5월의 정변에 의해 수상에 취임하게 된 것입니다. 국제관계가 힘든 시절이지만 언젠가 일본에 다시방문 했을 때 이 총리로부터 어떤 말이 나올까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혹시 3번째 오즈를 방문하는 일이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되면 강항선생도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날을 꿈꾸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한 번 일본의 교육, 문화를 위한 대 은인이신 수은 강항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그 고장 영광군이 평화롭고 풍요롭게 발전하기를 기원하며 여러분의 복을 기원하며 저의 인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鴻儒 睡隱 姜沆先生 顯彰碑 建立 背景 村上恒夫會長(睡隱姜沆先生日本硏究會)  御紹介いただきました村上恒夫です。一緒に参りましたのは田苗勉さんです。日本の愛媛県大洲市から参りました。  昨年、彼岸花が真っ盛りの内山書院でのシンポジュームから帰ってわずか1週間後、韓国から26人の団体が大洲を訪問され、私が大洲城の姜沆先生顕彰碑を案内しました。その団体は霊光郡の農業関係の方々で、その目的は日本の農業技術を学ぶためと聞きました。  私はこれまでに7回韓国を訪問しております。歴史を学ぶためです。目的は様々ですが、お互いに学びあって交流する――。まことに喜しい現代の国際親善の姿であります。  かつて姜沆先生が日本に渡ったその過程は、まことに悲しいものでありましたが、京都で藤原惺窩から「教えてください」と求められたとき「教えましょう」と答えた、儒学者としての姜沆先生の心が理解できるところです。  さて、今日8回目の韓国訪問を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見慣れたこの風景でありますが、今年は格別の感激があります。それというのも、本年は日本に儒教を伝えた睡隠姜沆先生が亡くなられてからちょうど四〇〇年の記念の年であるからです。  私が姜沆先生を知ったのは、34年前の1984年6月のことであります。大洲市役所に勤め、教育委員会の文化係りを担当しているとき、大阪に住む在日韓国人の辛基秀さんを代表とするグループから、姜沆先生の記念碑を大洲城に建てたいので土地を提供して欲しいとの手紙が届きました。手紙には姜沆という人物について、京都で藤原惺窩に儒教を伝えたとその業績が簡単に書いてありますが、細かな内容は分かりません。  『大洲市誌』を読むと、名前の文字に「きょうこう」と日本語読みの振り仮名がついて、大洲城主藤堂高虎が豊臣秀吉の命令で朝鮮を侵略したとき捕虜にした人物として、わずか九行の記事が載っていました。   市内の一等地である大洲城跡の一角を提供するには、それなりの顕著な功績のある人物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知る限りの資料では記念碑を建てるにふさわしいかどうか説明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私は困りました。  そこへ、韓国のソウル博物館でコピーをしたとして、この書類を持って来た人がありました。4世紀年前に出版された姜沆先生が書いた『看羊録』であります。むつかしい漢文の文字を辞書を参考にして読むうち、私は背中に冷たい水を浴びせられたような衝撃を受けました。この人物こそ日本に儒教を伝え、教育・文化の発展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功労者であることを知ったのです。  私は『儒者姜沆と大洲』と題する論文を書いて、記念碑を大洲城に建てるのは意義のあることと強調して、土地の提供を承認するよう起案しました。幸いに教育長・市長、そして議会もこれに賛同しました。こうして、記念碑建立の機運は一気に高まり、資金の募集活動が始まったのです。  その後1987年7月、思いがけなく韓国から、慶州の東国大学教授の呉英珍・張忠植両教授の訪問がありました。韓日の文化交流について研究に来られたとのことでした。私が姜沆先生について書いた資料を渡し、遺跡を案内すると、日本語科の呉教授から、韓国訪問を促されました。私は初めてパスポートを取得して、翌8月、大学教授の案内で、ソウルから全州・光州・霊光・慶州と5日間の旅に出ました。光州博物館で李乙浩館長に会い、霊光では姜家の子孫になる方と会い、内山書院を訪ねました。裏山の姜沆先生の墓を参拝して、日本の教育文化の淵源の地はここであったかと感慨深いものを覚えました。しかし、書院に備えられた見学者名簿をめくると、日本人らしき名前を見る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残念ながら、まだ日本には姜沆先生の名は知られていなかったのです。  一方、顕彰碑建立事業は順調に進み、1990年の3月11日、満開の桜が咲く大洲城に、韓国からの出席者32名を含む、およそ160名が参加して完成を祝いました。桝田与一大洲市長は祝辞を寄せ、  「姜沆先生は時代を越えて、今も両国のきずなを結ぶ役目を果たしておられるものと思います。――大洲市がこうして日・韓両国親善のはしわたしの役をになうことのなり得るならばまことに光栄なことであると思います」 と述べました。  私は公務員の宿命で、そのときには転勤になり別の職場に変わっていましたが、姜沆先生研究者として式典の末席に連なることができ、かつて姜沆先生がこの場所から西の空を眺めて慟哭した記録を思い、万感胸に迫るものを覚えました。  この記念碑建立を機会として、姜沆先生の名が日本のマスコミに取り上げられることも多くなりました。また、韓国でも大きな話題となったと聞かされました。そして、大洲城の記念碑を訪ねる人がありました。韓国からも一族の方、霊光郡、光州市など故郷の人々、学者や研究グループなど多くの来訪がありましたが、その中に尹洪植さんがありました。この方であります。  姜沆先生が書いた日本幽囚の記録を編集して出版した、弟子の尹舜擧さんの13代子孫になる方と聞きました。  尹さんは、先祖の意志を継いで、姜沆先生の功績を顕彰しようと日本を訪れ、大洲市長を尋ねて韓国を訪問するよう勧められました。時代を越え、年代を重ねて恩師を顕彰しようとする師弟愛の姿に感動させられます。  その後に届いた手紙がこれであります。私はこれまで、このような大きな立派な字の招待状を受け取ったことがありません。残念ながらハングル文字は読めませんが、この漢字であれば分かります。  「明春霊光春享挙行、責任案内安心来韓――来年の春、霊光において春の祭りが挙行されます。責任をもって案内しますから安心して韓国へ来て下さい」 と読めます。  実はそれまで、大洲市長は韓国行きをためらっておりました。かつての侵略者、藤堂高虎の出身地からの訪問が受け入れられるか、という不安があったからであります。しかしこの手紙を見て、初めて韓国行きを決心しました。同行は市議会代表の大森副議長、教育委員会代表の久保田教育長、そして先に韓国を訪問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市民課長の私も加わることになりました。  翌年、1991年春4月15日、私達は金浦空港に降りました。そこに「歓迎大洲市長様」と書いた紙を持つ人の出迎えに驚きました。晋州姜氏宗会会長姜起千氏で、その夜はソウルで歓迎を受けました。  そして翌日、車で光州市に到着してコリアナホテルに入りました。そこにはホテルの経営者であり、また姜沆先生の子孫と聞く姜大直氏が夕食の席を設けて待っていてくださいました。そして暖かい歓迎の挨拶がありました。何もかも予想外のことに戸惑いながらも、楽しい夜を過ごしました。  翌日、あいにくの雨となりましたが、車で霊光郡に向かい、郡役所を訪問しました。まさに緊張の一瞬でした。  しかし次の瞬間、私達の心はなごみました。大きなテーブルの中央に、韓国と日本の国旗が固く結んで飾ってあるのを見たのです。  丁郡主から歓迎の言葉を受け、懇談のあと内山書院に向かいました。そこには儒服で参列する人があり、また、マスコミの記者が待ち構えていて取材が始まりました。そして式が始まり、私達は慣れない作法に戸惑いながらも、まさに四〇〇年を経て、初めて日本人が参加する式典を終えました。  桝田市長は挨拶に立ち、かつて豊臣秀吉の命令で大洲城主藤堂高虎がこの地を侵略した過ちを謝罪し、姜沆先生が日本の教育文化の発展に貢献した功績をたたえ、今後の交流を呼びかけました。この言葉は尹洪植さんの通訳で参加者に伝えられました。挨拶が終わったとき、参加者から大きな拍手がありました。  私達の旅行中、日本語で案内をしていた韓国の若い女性ガイドは、桝田市長の挨拶を聞いて 「日本人を誤解していました。恥ずかしいです」 と言って涙を流したことを覚えております。  この桝田市長の訪問は当日のテレビジョン、その後の新聞で大きく報道されたと聞きました。  その後、堰を切ったように韓国訪問が始まり、行政の団体、市内の学校長など教育関係者、青年会議所に引率された子供のスポーツクラブ、大洲高等学校の修学旅行の団体、また、朝鮮の役に関係のある今治市、三重県津市の商工会などが、次々と訪問していることを知りました。  私の身にも変化がありました。まだ日本に姜沆先生の功績を紹介する図書がないとき、辛基秀さんに促されて共同で執筆して、1991年に『儒者姜沆と日本』と題して明石書店から出版しました。中央のマスコミにも紹介されたことからにわかに忙しくなり、とても公務員の仕事と両立することが不可能と知り、翌1992年3月、3年後の停年を待たずに市役所を依願退職しました。   たちまち無職無収入となり、女房には大変怒られました。しかし後悔はしておりません。歴史作家として感動と興奮の毎日を過ごしております。  そして1999年、2冊目として『姜沆・儒教を伝えた虜囚の足跡』と題して出版致しました。  先にも申し上げました通り、私は今回を含めて韓国を8回訪問しましたが、2年前には予想もしていない名誉を受けました。先の著書が翻訳されて韓国で出版され、さらに「ソウル言論人クラブ賞」の「外国人特別賞」に選ばれたのです。私はこの栄誉を受けることにより、姜沆先生の功績が韓国内にも広く認められることになると思い、喜んで授賞式に出席致しました。  大洲市では中学校の副読本を作り、「日本儒学に影響を与えた」として姜沆先生を大きく取り上げました。地方の小さな市の取り組みですが、やがて日本の教科書、そして歴史書に輝かしく登場されることを夢見ているところであります。  私は市役所の職員として平凡な人生に終わるはずのところ、姜沆先生に出会い、ささやかな研究を続けるうち、大洲と霊光、さらには日本と韓国の友好・親善にも寄与することができ、感謝をしているところであります。  さらに喜しい出来事がありました。2001年3月霊光で開催されたシンポジュームのとき、来賓として出席された国会議員から流調な日本語で話しかけられたことがありました。それが李洛議員でした。  私は喜しくなり、日本語の堪能な方なら読んでいただけると、日本語の本を送りました。そしてさらに1冊を加え、これは金大中もと大統領に差し上げて下さいとお願いしたところ、このような返事がありました。「もと大統領が大変喜ばれたそうです」と書いてあります。まことに光栄なことであります。  李議員はその後全羅南道知事になりましたが、その間、大洲の姜沆先生顕彰碑を2回尋ねられ、私が案内をいたしました。郷土の誇りとして、姜沆先生を尊敬されておられるものと拝察しました。  そのときの大洲城での写真であります。  その知事が、昨年五月の政変により首相に就任されたのです。国際関係で大変な時代ですが、いつか日本に来られたとき、李首相からどのようなお言葉があるのか楽しみです。そして、もしかすると、3度目の大洲への訪問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そうなれば姜沆先生もどんなにか喜ばれることでありましょう。その日を夢見ているところであります。  改めて、日本の教育・文化の大恩人、睡隠姜沆先生医業をたたえ、そのふるさと霊光郡が平和で豊かに発展することを願い、皆様のご多幸をお祈りして私の挨拶を終わります。カムサハムニダ。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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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 · http://edaynews.com
1. 조선 중기의 학파들  조선조 유학은 程朱의 道學을 수용하여 치밀한 개념 분석과 엄격한 실천 행위를 강조했는데, 특히 중기에 배출된 知的 巨人들을 중심으로 학문의 활동과 내용에서 일정한 연관성 혹은 공통성을 지닌 집단을 양산하였다. 이를 ‘학파’라고 부른다면, 花潭학파·退溪학파·南冥학파·栗谷학파는 이 시기를 대표한다.   趙光祖(靜庵, 1482~1519)가 道學의 뿌리를 확고하게 내린 이후, 경기도 개성에서는 徐敬德(花潭, 1489~1546)이, 파주에서는 成渾(牛溪, 1535~1598)이, 황해도 해주에서는 李珥(栗谷, 1536~1584)가, 영남 동쪽에서는 李彦迪(晦齋, 1491~1553)이, 영남 북쪽에서는 李滉(退溪, 1501~1570)이, 영남 남쪽에서는 曺植(南冥, 1501~1572)이 학파를 형성하여 도학을 전수하였다. 호남에서도 북쪽에서는 李恒(一齋, 1499~1576)이, 남쪽에서는 金麟厚(河西, 1510~1560)와 奇大升(高峰, 1527~1572) 등이 독특한 학풍을 내세워 영향력을 발휘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항·김인후·기대승 사후에도 17세기 초, 중반에 도학을 강론하여 제자들을 양성한 一群의 유학자들이 호남지역에 흩어져 있었다. 예컨대 담양 대산의 金大器(晩德, 1557~1631), 영광 유봉의 姜沆(睡隱, 1567~1618), 임실 덕촌의 趙平(雲壑, 1569~1647), 보성 우산의 安邦俊(隱峯, 1573~1654)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호남의 유학이 기축옥사와 임진·정유왜란을 거치면서 점차 학문적 기반이 약화되고, 더구나 17세기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학인들이 경기와 호서지역으로 유학을 떠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강학의 촛불을 끄지 않았다.   강항은 영광군 남쪽 불갑산 아래 유봉리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가까운 雲堤 마을로 이사했는데, 관직생활과 포로생활을 뺀 나머지 생애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강학하였다. 그는 팔대(八代) 문헌가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이미 뛰어난 문장 실력과 해박한 역사 지식을 인정받았고, 3년여의 포로생활 중에 보여준 탁월한 氣節은 일본인도 존경할 정도였다. 강항의 수제자 尹舜擧는 스승의 학행을 挽詩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아름답고 밝은 문장은 지금의 屈原이요, 추상같은 높은 절개는 옛날의 蘇武로다.” 그는 포로생활에서 탈출하여 귀국한 이후에도 죄인으로 자처하고 벼슬을 멀리한 채 스스로 불갑산에 갇혔다. 강항은 찾아주는 詩友들과 담론하는 한편 그의 문장과 기절을 흠모하여 찾아온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52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강항은 17세기 초반에 호남 유학을 이끈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간 강항에 대한 연구는 주로 시문학과 『看羊錄』, 일본에 유학전수 등 몇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으나, 아직까지 교사로서의 강학활동은 깊이 있게 탐색되지 못하였다. 필자는 강항에 대한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연구가 진행되려면, 그에게 영향을 준 스승들, 교유한 친구들,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관련 유적과 유물들까지, 그 학문적 연관성을 폭넓게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발표는 이러한 관심 하에 강항의 제자들에 관한 기초적인 정보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2. 牛溪학맥의 계승  강항은 문과에 급제한 이듬해인 1594년(28세) 校書館 正字로 있을 때에 경기도 파주로 牛溪 成渾을 찾아가 기호유학의 한 맥인 우계학맥을 계승한다. ◎ 安珦(晦軒) → 權溥(菊齋) → 李穀(稼亭) → 李穡(牧隱) → 鄭夢周(圃隱) → 吉     再(冶隱) → 金叔滋(江湖) → 金宗直(佔畢齋) → 金宏弼(寒暄堂) → 趙光祖(靜     庵) → 成守琛(聽松)/白仁傑(休庵) → 成渾(牛溪) → 姜沆(睡隱) →  성혼의 학문은 도학적 성격이 매우 짙은데 그것은 일상에 체질화되어있을 만큼 강한 실천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강항이 성혼의 문하를 찾았을 때, 그는 동인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정치적인 입지가 약화되어 제자들을 내보낸 채 은둔하고 있었다. 이러한 곤경을 잘 알면서도 자기의 문하를 찾아온 강항에게 성혼은 단아하고 진실한[端諒] 몸가짐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강항은 왜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그것도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져있던 성혼의 문하를 찾아갔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전해져오는 성혼과 강항의 문집 속에서 이 물음을 해명할만한 자료를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흔한 시 한 수, 편지 한 통, 제문 한 장, 어록 한 구절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메마른 자료 속에서 눈에 번쩍이는 글을 한 통 만나게 된다. 강항이 쓴 「坡山四賢書院察倫堂上梁文」이라는 글이다. 이 글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된 坡山書院의 察倫堂을 재건할 때 지은 상량문이다. 여기에서 강항은 파주지역은 魯나라처럼 현인이 많이 배출되어 학문 활동이 융성했던 곳임을 강조하고, 정주철학에서 발원한 조광조의 도학이념과 실천정신을 成守琛·成渾·白仁傑·李珥 등 네 현인이 이어받아 학행을 성취한 업적을 열거하고 있다. 이들 중 성수침과 백인걸은 조광조의 문인이고, 김굉필의 도통을 조광조가 잇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강항의 스승 성혼은 부친 성수침과 백인걸에게 학문적 영향을 깊게 받았고, 성혼의 道友 李珥는 성수침과 백인걸의 학행에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였다. 이 서원은 네 현인이 김굉필­조광조 계통의 도학이념을 강론했던 신성한 공간이었는데, 강항이 성혼을 찾아가 수학했던 牛溪書室과는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강항은 이 글의 말미에 자신의 소망을 다음처럼 피력하고 있다.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한 것[入孝出悌]으로 모든 행실의 근원을 삼고, 비근한 사물을 배운 뒤에 깊은 學理에 나아가는 것[下學上達]으로 평생의 일을 삼으며, 사방의 학생들이 모두 귀의할 곳으로 여기게 하고, 높은 벼슬아치와 백성들이 모두 본보기로 삼게 하며, 소인의 변덕을 배우지 말게 하고, 유학의 哲理를 이루게 하소서.  강항은 ‘입효출제’와 ‘하학상달’이라는 유교의 윤리와 학문방법이 파산서원을 통해 끊임없이 강론되어 발현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서원의 中軸인 스승 성혼을 조선조 도학의 전통을 걸머진 학자로 여겨 한평생 귀의처로 삼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항 자신의 도학에 대한 인식과 실현의 욕구가 강렬했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을 성혼의 문하로 옮기게 했고, 그 문하에서 수학함으로써 “道脈의 올바름을 얻어 마침내 大儒로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3. 衛道정신과 道義실천  강항이 태어날 무렵, 조선의 사상계는 성리학의 핵심 문제 곧 四端七情과 人心道心 등을 둘러싸고 李滉­奇大升, 成渾­李珥가 치열한 논변을 진행하여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미 거두고 있었으나, 강항은 이러한 성과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흔한 성리학의 용어들마저 추출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성리학의 이론을 철저히 분석하려는 학구적 태도에서 비껴서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항이 성리학 세계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거나 무지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조선조의 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주자학의 經學的 철학체계로 훈련을 받았고, 강항의 학문 활동도 조선조 주류 학문인 주자학의 범주 속에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문집이나 일본에서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더라도, 성리학의 주요 텍스트나 흐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성리학의 이론체계가 거의 결핍된 것에 비해, 강항의 道學에 대한 사유는 그 편린이나마 문집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다음은 강항의 道와 道學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道란 천하에 편재하여 소멸된 적이 없다. 중국이라 해서 남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외국이라 해서 부족한 것도 아니다. 오직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 드러내 밝히고 열어서 발현하기에 달려있을 뿐이다. 우리 동방에 나라가 선 지 유구하여 그 사이에 도량이 넓은 선비가 많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 중 道學으로 명분을 삼아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앎의 극치에 이르고, 뜻을 참되게 하여 마음을 바로잡는 것[格致誠正]을 공부로 여기고, 군주를 존중하여 백성을 보호하는 것[尊主庇民]을 임무로 삼은 사람을 찾는다면, 겨우 몇몇이나 있을 정도이다.  이 글은 강항이 호남 유생을 대표하여 李彦迪(1491-1553)을 공자 사당에 배향하기를 청하는 상소문의 첫 부분이다. 여기에서 강항은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道의 보편성을 시사하고, 탁월한 지혜를 갖춘 자들이 이를 천명하여 역사와 사회 속에서 진리를 실현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道를 자신의 학문으로 삼은 사람이라면, '대학'에서 제시한 조목을 따라 지식을 탐구하고 심성을 도야하는 공부를 수행하며, 이를 토대로 '資治通鑑'에서 말한 것처럼 관직에 나아가 자신의 포부를 펴서 세상을 구제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는 道學을 내면의 도덕철학과 외면의 정치철학을 결부시켜 논의하려고 하는 사유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낸 대목이다.    강항에게 道의 표상은 경전과 역사서이다. 강항은 문인 辛思孝에게 보낸 편지에서 “道를 행하고 세상을 구제하며 군주를 보필하고 사람을 살리는 방도는 본래 典·謨·訓·誥를 놓아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여, 중국 고대에 역대 제왕들의 정치철학이 들어있는 󰡔서경󰡕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맹자의 ‘호연지기’나 曾點의 ‘詠歸’하는 뜻도 六經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 억지로 짜내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또한 詞章을 통한 과거시험 응시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六經을 방치하고 앞사람의 문장에서 尋章摘句하거나 표절이나 일삼는 것은 유학자가 할 일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강항에게 六經에 기반을 둔 經學은 유학자라면 반드시 걸어야할 최선의 길이요 최고의 강령이었던 셈이다. 다시 말하면 육경은 비록 고대에 형성된 경전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진리는 그것 속에 더욱 명료하게 나타나있기 때문에, 고전의 학습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과 사회현실을 조화하고 통일시킬 수 있는 표준이요 원천이 되는 것이다.   강항은 경전 공부에 못지않게 역사서의 학습을 중시했다. 강항의 뛰어난 문인 尹舜擧(1596-1668)는 󰡔綱鑑會要󰡕(강항의 역사 저술, 17권 19책)의 서문에서 스승의 학문을 “경학에 근본을 두고 사학에서 참조했으며, 먼저 이치를 인식한 뒤에 문장으로 나아갔다”고 요약하고, 이 저술의 가치를 평론하여 “󰡔資治通鑑󰡕에 비교하면 겨우 5분의 1정도의 분량이지만 참으로 미묘한 뜻을 밝혀낸 定案이요 크게 완성한 良史이니 온 나라가 공유해야만할 것이다”고 극찬했다. 8세 무렵에 이미 '通鑑綱目'에 통달하여 茂長지역에 ‘綱目村’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렇다면 강항이 이처럼 역사서를 즐겨 읽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문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史學은 반드시 판단에 밝고 治亂에 통달해야 한다. 말하고 듣는 자료로만 활용하여 몸과 마음에 무익한 것은 우리 道가 아니다. 대개 글자가 만들어진 이후 곧 역사가 있었으니, 역사가 아니면 성인의 발자취를 고증하고 옛일을 징험할 수 없다.” 강항이 역사를 연구한 주목적은 과거의 사실 중에서 기억해둘 가치가 있는 사례와 피해야할 사례를 찾아내어 현실정치의 선악을 판별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통찰을 얻는 데 있었다. 그가 역사에서 얻고자 했던 道의 모습은 유희적인 관념이 아니라, 현실을 이끌어주는 실제적인 사례와 본보기였던 것이다.   유학이 제시한 도덕준칙을 따라 正道를 걷는 삶을 살고자한 강항의 신념과 의지는 이른 시기에 확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항은 9세에 지은 「幼成若天性賦」에서, 어려서부터 성인의 교훈에 입각하여 심성의 근원을 밝혀 천성의 덕을 바르게 배양해야 군자가 된다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讖緯策」에서는 緯說이 경전을 어지럽히고 妖言이 대중을 현혹시키는 폐단을 경계한 뒤, 그 원인을 道가 미약하고 교화가 밝지 못한 데서 찾아, 오래 전부터 이러한 사악한 언행을 배격하여 ‘옛 성인의 道를 지키기로[閑先聖之道]’ 다짐했음을 밝히고 있다. 강항은 道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다음처럼 말했다.   군주가 위에서 중심을 잡아 기준을 세우고 안으로 정밀히 살피고 오롯한 마음을 지녀, 六經을 드러내 밝히고 百家를 배격하되, 六藝의 설명이나 孔子의 학술과 관계없는 것들을 단호히 차단할 수 있다면, 교화가 곧 밝아지고 풍속이 저절로 바르게 되며, 집집마다 孔孟을 이야기하고 방마다 鄒魯를 전하게 되며, 선비가 先王의 法言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않고 聖人의 正經이 아니면 감히 읽지 않게 될 것이니, 九流·七略의 책이나 雜家·衆技의 학문은 대낮의 무지개요 한여름의 우박일 뿐이다.  강항도 한때는 博學을 추구하여 경전과 史書 뿐만 아니라, 제자백가서·천문·지리·篆刻 등을 두루 연구하여 獨得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용문에서 보듯이 강항은 자기 성찰을 거쳐 六經과 六藝로 회귀하여 孔孟의 근본정신을 국가와 사회에 실현하려는 강인한 신념을 키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강항은 포로생활 중에 만난 친구 宋檣에게 준 편지에서 “점술가의 책들이 서로 모순이 많아 열에 예닐곱은 틀린 것을 보고 그 책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운명의 길흉이야 이미 태어날 때에 정해져있는 것이니, 正道에 몸을 두어 正命을 받을 뿐이다”고 말하여, 자신의 체험을 통해 점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正道에 의탁하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강항이 자기 성찰의 체험을 통해 緯說의 기만과 결별하고 六經의 正道로 복귀하게 되는 하나의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강항의 道에 대한 인식과 관련시켜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개념은 義이다. '주역'에서는 “군자는 경건함으로써 속을 곧게 하고 의로움으로써 밖을 바르게 한다[義以方外]”고 하여 義가 내면의 곧음을 근거로 외면을 바르게 하는데 까지 관철시키는 원리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맹자가 梁惠王 앞에서 이익을 거부하고 의리를 내세웠을 때의 義는 세속적 가치를 부정하는 칼날의 예리함을 지니는 것이었다. 강항은 억류생활 중에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이 일본에 귀화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그들의 부당성을 알리는 격문 속에서 “(공자가) 管仲이 아니었다면 左袵할 뻔했다고 말한 것은 모두 왕도를 존중하고 이적을 물리친다[尊王攘夷]는 뜻을 알게 함이니, 멀리 남의 나라에 귀화하려 하지 말고 세 번 사는 것보다는 ‘義가 소중함’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여,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義라는 고귀한 윤리적 가치임을 밝히고 있다. 흔히 道義라고 불리는 것처럼, 강항의 관념 속에서도 義는 유학의 진리[道]와 이상[善]을 다양하게 변화하는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할 때에 나와 타인을 관철하는 보편적인 원리가 되는 동시에 正과 邪를 가르는 분별의 원칙이 되고 있는 것이다.   4. 강학활동과 제자들  강항은 우계 성혼의 학맥을 계승하여 강인한 道義 정신으로 무장한 관료학자였다. 그는 왜란 중인 1593년(27세)에 광해군이 전주에 주둔하면서 시행한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28세에 교서관 정자, 춘추관 기주관을 거쳐 29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30세에 성균관 전적으로 옮겼다가 공조좌랑을 거쳐 형조좌랑이 되었다. 1597년(31세) 여름에 이광정의 종사관이 되어 군량을 모집했으나 남원성이 함락되어 영광 앞바다에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 1600년(34세) 5월에 포로에서 풀려 부산에 도착한 뒤 선조 임금을 뵙고 고향으로 돌아와 칩거에 들어갔다. 강항은 포로의 신분이었으나 조선 선비의 기개를 잃지 않고 관료로서 일본의 정치 동향과 지리 환경 등을 조정에 보고했으나, 동인들의 비방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한 때 포로였다는 자괴감을 떨치지 못했다.    1600년 9월에 고향으로 돌아온 강항은 대구교수와 순천교수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함으로서, 관직생활을 통해 자신의 도학을 구현하려던 꿈을 스스로 접어버렸다. 대신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운제 마을의 서당에서 집안과 향촌의 자제들, 친구들의 자질들을 받아들여 강학활동을 시작하였다. 강항은 이곳에서 다수의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그의 뛰어난 문장과 고고한 기절은 제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강항은 일본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藤原惺窩(1561~1619, 후지하라 세이카)와 赤松廣通(1562~1600, 아카마쓰 히로미치)에게도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맡은 적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    그러나 현재 강항의 문집에는 정돈된 제자들의 명부인 ‘門人錄’이 실려 있지 않아 학맥의 전승과 교육의 파급 정도를 가늠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근 20여 년간 강학활동을 하면서 다수의 제자들을 배출했을 터인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문인록’이 문집에 실리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다행히 근래에 강항의 문하에서 배출된 제자들의 정보를 알려주는 일종의 ‘문인록’들이 성첩 문서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    첫째, 1824년에 후손 姜台煥이 작성한 『誾侍錄』(종손 강진성 소장)이다. 강태환은 발문에서, 일찍이 『晉山世考』를 기록하다가 제자들의 후손가에 탐문하기도 하고 『수은집』 속에서 뽑아 적어서 삼가 명단을 만든다고 하였다. 이 문서에는 제자로 추정한 69명의 성명, 字號, 과거시험, 관직, 본관 등 짧은 정보를 기록해 두었다.   둘째, 작자 미상의 『수은문인록』(필자가 임의로 붙임, 후손 강재원 소장)이다. 이 기록 역시 성첩 문서인데 아쉽게도 앞쪽 몇 장이 떨어져 나갔다. 누락부분을 빼고 62명의 성명, 자호, 과거시험, 관직, 거주지 등이 적혀 있고, 그 뒷부분에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지은 挽詩와 스승이 제자들에게 준 시와 만시를 『수은집』 원집과 부록, 별집에서 뽑아 사제 관계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제 관계라고 확증할 수 없는 글들도 많이 추출이 되어 있다.     셋째, 1941년에 윤영선이 편찬한 『朝鮮儒賢淵源圖』(동문당 간행)이다. 윤영선은 강항을 성혼의 학맥에 배열하고 그 문하에서 배출된 것으로 추정한 41명의 성명, 호, 본관, 관직과 품계, 생년 등을 나열하였다. 윤영선은 호남의 읍지를 위주로 강항의 제자들을 추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세 가지 자료는 모두 강항 사후 2, 3백년 뒤에 작성된 것들이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기초적인 문서이지만 문집에 문인록이 실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나마 소중한 자료들이다. 세 자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면 많은 숫자가 겹치는데 대략 85명 정도 된다. 그러나 앞으로 좀 더 세밀하게 방증자료를 대조해 보면 이 중에 강항의 제자로 볼 수 없어 삭제해야 할 인물이 약 2, 30명 정도 될 것으로 판단한다. 아래에서 인명에 밑줄을 친 인물들은 선, 후배이거나 동문, 친구, 벗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1) 강락(姜洛)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만은(晩隱)이다. 임진왜란에 의병장 고경명과 최경장에     게 의병과 군수품을 모아 보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 강시견(姜時見) : 1589~?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선세(善世)이다. 진사?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 강시량(姜時亮)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비명(丕明)이며 호는 취송정(翠松亭)이다. 진사?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 강시만(姜時萬)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동강(東岡)이다. 강항의 아들이며 참봉에 제수되었다. 병자호란에 창의하였다. (연원도에 보임) 5) 강시억(姜時億) : 1600~?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천뢰(天賚)이다. 강준(姜濬)의 아들이고 강항의 조카이다. 163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교관과 찰방을 지냈다. 병자호란에 창의하였다. 영광, 순천에 거주하였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 강시언(姜時彦)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백영(伯英), 호는 하월당(荷月堂)이다. 강계오(姜繼吳)의 아들이며 무송(茂松)에서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 강시열(姜時說) : 1625~?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은경(殷卿)이며, 호는 죽은(竹隱)이다. 강영(姜泳)의 아들이며 1651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연원도에 보임) 8) 강시회(姜時晦)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강항의 종질이다. 진사?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9) 강영(姜泳) : 1574~?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양원(養元)이며 호는 시시당(是是堂)이다. 강항의 아우이다. 1613년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영광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0) 고부립(高傅立) : 본관은 장택(長澤)이고 자는 군회(君晦)이다. 고종후(高從厚)의 아들이며 경기 전참봉에 제수되었다. 정묘·병자호란에 창의하였고 광주에 거주했다. (은시록에 보임) 11) 고부민(高傅敏) : 1577~1642. 본관은 장택(長澤)이고 자는 무숙(務叔)이며 호는 탄음(灘陰)이다. 고성후(高成厚)의 아들이며 문집으로 『탄음고(灘陰稿)』가 있다. 광주에 거주했다. (연원     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2) 구용(具容) : 1569~1601.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대수(大受)이며 호는 죽창 (竹窓)이다. 부친은 구사맹(具思孟)이며 1590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김화현감(金化縣監)을 지냈다. 『죽창유     고』가 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3) 김경철(金景哲) : 1573~?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윤보(允甫)이며 호는 은송당(隱松堂)이다. 부친은 김상(金常)이며 남원교수(南原敎授)에 제수되었다. (연원도에 보임) 14) 김기(金夔) : 본관은 서흥(瑞興)이고 호는 죽헌(竹軒)이며 강항의 사위이다. (연원록,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5) 김남수(金楠壽) : 본관은 상산(商山)이고 자는 등로(滕老)이다. 임진왜란에 종사관으로 출정했으며 영광 불갑 원당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6) 김담(金䃫) : 1599~?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자는 백석(伯石)이며 호는 백산(栢山)이다. 병자호란에 창의하였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7) 김덕수(金德秀) : 1548~?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득심(得心)이다. 부친은 김적(金適)이며1576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무안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8) 김상경(金尙敬) : 본관은 상산(商山)이고 자는 질부(質夫)이며 호는 죽재(竹齋)이다. 병자호란에 창의하였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19) 김상돈(金尙敦) :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김상경(金尙敬)을 잘못 쓴 듯하다. (문인록에 보임) 20) 김약여(金躍麗) : 본관은 상산(商山)이고 호는 원당(圓堂)이다. 부친은 김남수(金楠壽)이며 영광 원당(元塘)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1) 김여경(金餘慶) : 1577~?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호는 창주(滄洲)이며 참봉에 제수되었다. (연원도에 보임) 22) 김우급(金友伋) : 1574~1643.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사익(士益)이며 호는 추담(秋潭)이다. 부친은 김대성(金大成)이며 1612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목릉참봉에 제수되었다. 변이중(邊以     中)의 문인이고 문집으로 『추담집(秋潭集)』이 있다. 장성 황룡에 거주하였다. (은시록, 문인록     에 보임) 23) 김이강(金以剛) :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연원도에 보임) 24) 김정발(金廷潑) :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계암(桂菴)이다. 임진왜란에 창의하였다. (연원도에 보임) 25) 김지수(金地粹) : 1585~1639.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자는 거비(去非)이며 호는 태천(苔川) 이다. 조부는 김제민(金齊閔)이며 1616년 문과에 급제하고 종성부사를 지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고 『태천집(苔泉集)』이 있다. 고부에서 거주하였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6) 김진(金瑱) : 1599~?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미중(美仲)이며 호는 간촌(簡村)이다. 부친은 김인택(金仁澤)이며 1635년 생원시에 급제하고 사복시 정에 제수되     었다. 영광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7) 나봉서(羅逢緖) : 1570~?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자는 언장(彦章)이며 호는 매월당(梅月堂)이다. 부친은 나덕전(羅德全)이고 증조는 나세찬이다. 1609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영광 삼서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8) 나준서(羅遵緖) :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부친은 나덕전(羅德全)이며 나통서의 아우이다. 진사?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29) 나통서(羅通緖) : 1572~1637.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자는 사장(士章)이며 호는 계봉(桂峰)이다. 부친은 나덕전(羅德全)이고 나봉서의 아우이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하고 경성판관에 제수되     었다. (연원도에 보임) 30) 나해구(羅海龜) : 1581~1660.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응주(應疇)이며 호는 석호(石壕)이다. 부친은 나덕양(羅德讓)이고 나해봉의 형이다. 나주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1) 나해륜(羅海崙) : 1583~1659.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응숙(應淑)이며 호는 송도(松島)이다. 부친은 나덕겸(羅德謙)이며 1624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효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이괄의 난     과 병자호란에 창의했으며 문집으로 『송도유적(松島遺蹟)』이 있다. 나주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2) 나해봉(羅海鳳) : 1584~1638.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응서(應瑞)이며 호는 남간(南磵)이다. 부친은 나덕양(羅德讓)이며 1606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경기전참봉, 별제(別提)에 제수되었     다. 『남간집(南磵集)』이 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3) 민희(閔喜) :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자우(子愚)이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4) 박륜(朴淪) : 문과에 급제한 것으로 적혀 있으나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5) 박숙(朴俶) : 1609~1674. 본관은 무안(務安)이고 자는 여발(汝發)이며 호는 용와(龍窩)이다. 부친은 박제(朴悌)이다. (연원도에 보임) 36) 박안제(朴安悌) : 1590~1663.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계심(季心)·계순(季順)이며 박안효의 아우이다. 1621년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영광군수, 병조참의를 지냈다. 묘는 예산현(禮山縣) 돈절리(敦節里)에 있고, 후손은 충청도 영동 거주했다. (은시록에 보임) 37) 박안효(朴安孝) : 1587~?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백심(伯心)·인백(仁伯)이며 부친은 1603~1608년에 영광군수를 지낸 박정현(朴鼎賢)이다. 1616년 문과에 급제하고 남원부사, 전라도도사를 지냈다. (은시록에 보임) 38) 박호(朴濠) : 1586~?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백유(伯遊)이다. 부친은 박동열(朴東說)이며 김장생의 제자이기도 하다. 1609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39) 반여경(潘汝慶) : 1600~?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자는 백유(伯有)이며 호는 연강(硯江)이다. 부친은 반정(潘淨)이며 1624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장성에 거주했다. (연원도에 보임) 40) 변충원(卞忠元) : 1568~?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신초(藎初)이며 호는 강음(江陰)이다. 부친은 변희겸(卞希謙)이며 160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경기도 부평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     에 보임) 41) 변효윤(邊孝胤) : 본관은 황주(黃州)이고 자는 자원(子元)이다. 부친은 변이중(邊以中)이며 장성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2) 송식(宋軾) :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자는 여첨(汝瞻)이며 호는 발산(鉢山)이다. 송흠(宋欽)의 5대손이며 병자호란에 창의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3) 신사효(辛思孝) : 본관은 영월(寧越)이고 자는 공칙(公則)이며 호는 회우(晦迂)이다. 부친은 신응순(辛應純)이며 영광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4) 신엽(辛曄) : 1598~? 본관은 영성(靈城)이고 호는 도은(桃隱)이다. 부친은 신유일(辛惟一)이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5) 신응망(辛應望) : 1595~1654. 본관은 영산(靈山)이고 자는 희상(希尙)이며 호는 한사(寒沙)이다. 부친은 신장길(辛長吉)이며 1624년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장령, 파주목사를 지냈다. (연원도에 보임) 46) 신천익(愼天翊) : 1592~1661.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백거(伯擧)이며 호는 소은(素隱)이다. 증조는 신희남(愼喜男)이고 부친은 신인(愼諲)이다. 1612년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냈다. 『소은유고』가 있다. 조찬한(趙纘韓)의 문인이며 영암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7) 신해익(愼海翊) : 1592~1616.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중거(仲擧)이며 호는 병은(病隱)이다. 신천익과 쌍둥이 형제이다. 1613년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예조좌랑을 지냈다. 흥덕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8) 신희상(辛希尙) : 희상은 앞쪽에 나오는 신응망(辛應望)의 자(字)이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49) 심광세(沈光世) : 1577~1624.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자는 덕현(德顯)이며 호는 휴옹(休翁)이다. 조부는 심의겸(沈義謙)이고 부친은 심엄(沈俺)이다. 1601년 문과에 급제하고 부안군수,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휴옹집』이 있다. (은시록에 보임) 50) 안희적(安希勣) : 1587~1626.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자는 무중(懋仲)이며 호는 권유자(倦遊子)이다. 함평 나산에 거주했다. 진사?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1) 양만용(梁曼容) : 1598~1651.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자는 장경(長卿)이며 호는 오재(梧齋) 또는 거오(據梧)이다. 부친은 양산축(梁山軸)이며 1633년 문과에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을 지냈으며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에 봉해졌다. 『오재집』이 있으며 박동열의 문인이기도 하다. (연원     도, 은시록에 보임) 52) 양인우(梁仁宇) : 본관은 제주(濟州), 호는 낭호당(朗湖堂)이다. (연원도에 보임) 53) 오정남(吳挺男) : 1563~1626.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자영(子英)이다. 부친은 오천수(吳 天壽)이며 1610년 생원시에 합격했다. 『연강집(蓮江集)』이 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4) 오희도(吳希道) : 1583~1623.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득원(得原)이며 호는 명곡(明谷)이다. 부친은 오언표(吳彦彪)이며 1623년 문과에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을 지냈다. 『명곡유고』가     있고 창평에 거주하였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5) 오희일(吳希一) : 1578~1604.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백원(百原)이다. 고인후의 사위이고 오희도의 형이다. 나주 도림(道林)에 거주했다. (연원도에 보임) 56) 오희일(吳喜馹) : 본관은 낙안(樂安)이며 귀호정(龜湖亭)을 세웠다. 나주 남평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7) 유지원(柳之元) : 진사라고 하는데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8) 유흥세(柳興世) : 1589~? 본관은 고흥(高興)이고 자는 기지(起之)이다. 회동(會洞)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59) 윤순거(尹舜擧) : 1596~1668.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노직(魯直)이며 호는 동토(童土)이다. 부친은 윤황(尹煌)이며 1633년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금구현령, 영월군수를 지냈다. 김장생의 문인이기도 하며 『동토집』이 있다. (은시록에 보임). 60) 윤민헌(尹民獻) : 1562~1628.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익세(翼世)이며 호는 태비(苔扉)이다.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609년 문과에 급제하고 전라도 도사, 공조참의를 지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1) 윤훈거(尹勛擧) : 1591~1639.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백용(伯庸)이다. 윤순거의 형이며 고산현감, 사축서별좌를 지냈다. (은시록에 보임) 62) 이덕현(李德顯) : 본관은 양성(陽城), 함평 장동에 거주했다. (문인록에 보임) 63) 이덕형(李德亨) : 본관은 양성(陽城)이고 함평 장동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4) 이덕후(李德厚) : 본관은 양성(陽城)이고 함평 장동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5) 이란(李灤) : 1582~1628.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자하(子河)이다. 부친은 이규빈(李奎賓)이며 1613년 무과에 급제하고 전라우수사,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영광 남산에 거주했     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6) 이상원(李尙元) : 1597~?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순경(舜卿)이며 호는 제월정(霽月亭)이다. 부친은 이설(李渫)이며 1624년 진사시에 급제하고 의금부도사를 지냈다. (연원도에 보임) 67) 이소(李昭) :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부친은 이홍간(李弘諫)이며 강항의 사위이다.     생원?(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68) 이안눌(李安訥) : 1571~1637.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자민(子敏)이며 호는 동악(東岳)이다. 1599년 문과에 급제하고 담양부사, 예조판서를 지냈다. 『동악집(東岳集)』이 있다. (은시      록, 문인록에 보임) 69) 이율(李瑮) :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자는 문진(文縝)이며 호는 오휴(五休)이다. 이은(李誾)의  증손이며 영광 보촌서원에 배향되었다. 『오휴당유고』가 있고 보촌(甫村)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0) 이장(李壵) : 1594~?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농아(聾啞)이다. 조부는 이응종(李應鍾)이며 병자호란에 창의했다. (연원도에 보임) 71) 이전(李㙉) : 1583~?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초당(草堂)이다. 벼슬은 충위(忠衛)이고 능주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2) 이진명(李晉明) : 본관은 양성(陽城), 함평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3) 이춘영(李春英) : 1563~1606.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실지(實之)이며 호는 체소재(體素齋)이다. 부친은 이윤조(李胤祖)이며 1590년 문과에 급제하고 예천군수를 지냈다. 성혼(成渾)의 문인이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체소집(體素集)』이 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4) 이홍간(李弘諫) : 1574~?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자는 사직(士直)이다. 부친은 이옥(李玉)이며 조부는 이만영(李萬榮)이다. 161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찰방에 제수되었다. 남산에 거주했다.(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5) 이홍심(李弘諶) :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자는 백신(伯信)이다. 부친은 이곤(李琨)이며 조부는 이장영(李長榮)이다. 남산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6) 이홍열(李弘說) : 1603~?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자는 사필(士弼)이며 호는 우수(迂叟)이다. 부친은 이광(李珖)이며 조부는 이만영(李萬榮)이다. 찰방에 제수되고 남산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7) 이훤(李晅) :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부친은 이홍간(李弘諫)이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8) 이휘(李暉) : 1597~?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자는 국서(國舒)이다. 부친은 이홍간(李弘諫)이며 164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영광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79) 임련(林堜) : 1589~1648.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동야(東野)이며 호는 한호옹(閑好翁)이다. 부친은 임서(林㥠)이고 임담의 형이다. 사헌부장령, 우승지를 지냈다. (은시록에 보임) 80) 임담(林墰) : 1596~1652.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재숙(載叔)이며 호는 청구 (淸臞)이다.  부친은 임서(林㥠)이며 1635년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판서를 지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며 박동열의 문인이기도 하다. (연원도, 은시록에 보임) 81) 정덕원(鄭德遠) : 누구인지 모르겠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82) 정수(丁燧) :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호는 영모정(永慕亭)이며 의병을 모집하였다.(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83) 정제원(丁濟元) : 1590~1647. 본관은 영성(靈城)이고 자는 백인(伯仁)이며 호는 취우당(醉愚堂)이다. 부친은 정건(丁鍵)이며 김장생의 문인이기도 하다. 『취우당집』이 있다. 정묘호란에 창의하였고 영광 용두(龍頭)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84) 정협(丁鋏) : 1565~1618.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자는 자장(子長)이며 호는 성경재(誠敬齋)이다. 정건(丁鍵)이라고도 한다. 부친은 정희맹(丁希孟)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성경재집』이 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85) 최계조(崔繼祖) : 본관은 삭녕(朔寧)이고 자는 비승(丕承)이다. 부친은 최준문(崔濬文)이다. 성혼의 문인이다. 남원에 거주했다.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앞으로 많은 고증과 증보 과정을 거쳐 강항의 제자를 정돈해 간다면 좀 더 충실한 문인록이 작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 강항의 제자로 볼 수 있는 60여명만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먼저 지역적으로 보면, 강항의 제자들은 호남과 충청도 일부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그가 20여 동안 강학했던 거점을 영광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함평과 나주 출신의 제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강항의 제자 중에는 강항 사후에 발발한 정묘·병자호란에 창의하여 구국의 깃발 아래로 달려간 실천적 유학자가 매우 많았다는 점이다. 제자들이 스승의 道義 정신과 氣節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된다.   과거 합격의 숫자로 보면, 소과에 응시하여 생원·진사에 오른 제자들이 20여 명이고, 대과에 급제한 제자들도 7, 8명 되며, 관직에 진출하여 고위직에 오른 제자도 적지 않다. 문집을 내지는 못했지만 관료로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박안제·박안효 형제와 신응망, 임련과 임담 형제는 향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문집의 유무로 보면, 현재까지 약 9명의 제자들이 남긴 9종의 유고가 간행되었다. 고부민의  『灘陰稿』, 나해륜의 『松島遺蹟』, 나해봉의 『南磵集』, 신천익의 『素隱遺稿』, 양만용의 『梧齋集』, 오희도의 『明谷遺稿』, 윤순거의 『童土集』, 이율의 『五休堂遺稿』, 정제원의 『醉愚堂集』은 앞으로 강항과 그 제자들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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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 · http://edaynews.com
1. 머리말   강항(姜沆)은 본관은 진주, 자가 태초(太初), 호가 수은(睡隱)으로 영광에서 1567년(명종 22)에  태어났다. 1593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 공조좌랑,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지인들이 수은에게 준 시 속에 ‘원외(員外)’가 나오는데 이는 ‘랑(郞)’을 역임하여서 그런 것이다(원외는 원외랑의 준말).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피랍되어 일본에서 억류 생활하다 1600년에 돌아왔다. 이후부터 1618년(광해군 10) 생을 마칠 때까지 영광에서 19년간 살며 독서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이에 반해 정홍연(鄭弘衍)은 본관은 동래, 자는 덕일(德逸), 호가 죽창(竹窓)으로 서울에서 수은보다 2년 앞서 1565년(명종 20)에 태어났다. 그는 1593년에 “余避亂于海隅 僑居一巷”이라 하여 왜란을 피해 영광으로 내려왔다. 둘째 아들이 1580년 생인 점으로 보아 가족과 함께 왔다가 영광군 백수읍 지산리에 정착하였다. 광해군 때에 선공감 감역, 제용감 판관, 거창현감, 양천현령, 동복현감, 익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1624년부터는 관직을 그만두고 영광에서 살다 1639년(인조 17)에 생을 마쳤다. 함평 출신의 유학(幼學) 정색(鄭穡)이 죽창 만사에서 “금서(琴書)를 스스로 즐김은 타고난 소질이고, 시주(詩酒)를 무단히 바쁘게 하였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죽창은 영광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은(睡隱)과 죽창(竹窓)은 수은이 일본에서 돌아온 1600년부터 수은이 생을 마감한 1618년까지 영광에서 교유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의 교유에 관한 연구는 당시 영광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수은의 영광에서의 활동과 아직 학계에 소개되지 않은 죽창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점을 알게 해줄 것이다. 특히 수은은 일본에 주자학을 전파한 인물로 알려져서 그에 대한 연구는 꽤 많은 편이지만, 지역활동에 대해서는 연구가 일천한 수준이다. 그리하여 그의 많은 제자들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켰던 점 등 많은 사실들이 밝혀져 있지 않다. 그리고 죽창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거의 없고, 󰡔영광읍지󰡕 본조음사 조항에 “호가 죽창으로 동래인이며 대제학 사(賜)의 후손이다. 군수를 지냈으며 지산(芝山)에 사당이 세워졌다.”고(사당이란 芝山祠를 말한다), 그리고 아주 짧은 󰡔죽창집󰡕 해제만이 참고 될 따름이다.   수은과 죽창은 깊게 교유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치적으로 두 사람 다 서인(西人)으로 당색이 같았다. 수은의 제자로 서인의 대표 인물 윤순거(尹舜擧, 1596~1668)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죽창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기뻐서 지은 시가 있다. 수은과 죽창이 교유하였던 변충원, 임서, 임전, 김우급 등도 반광해군 인물이어서 한 때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지기로서 교유하였다. 이 점에 대해 수은의 큰 아들 강시만(姜時萬, 1603~1673)이 죽창의 죽음을 애도한 만사에서 “昔我先君友 追隨金石堅 習池同醉月 金谷共華筵”이라고 하였다. 즉, 죽창은 나의 아버지 친구로서 서로 상종하시기를 금석과 같이 하셨고 달빛 아래에서 흥겨운 주연을 함께 즐기셨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두 분이 매우 가까웠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두 사람의 깊은 교유는 우선 서로의 제자⋅지인을 상호 격려하고 지도하였다. 그리고 집안 간의 결혼으로도 이어졌는데 죽창의 손녀 사위, 즉 죽창 둘째 아들 광신(廣紳)의 사위로 강시경(姜時儆)이 들어왔다. 두 분이 교유한 흔적은 두 인물의 문집 속 창화 시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분석해 보겠다. 그러나 그 정도만 가지고는 교유의 폭과 내역을 밝혀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필자는 두 분의 문인록(門人錄)이나 만사록(挽詞錄)을 교차 검토하는 작업도 진행해 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은⋅죽창 지인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대외활동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 아직까지 기초적인 인적 사항마저 정리되어 있지 않아, 이 글은 후일의 수정⋅보완이 필요함을 미리 밝혀둔다. 2. 문인록 속의 교유    1) 수은 󰡔은시록(誾侍錄)󰡕과 죽창   수은은 일본에서 돌아온 후 관직 제수에도 불구하고 나가지 않고 영광에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 점과 관련하여 6대손 강태환(姜台煥)이 ‘崇禎紀元後三甲申’ 입춘일에 작성한 󰡔은시록(誾侍錄)󰡕을 살펴보자. 󰡔은시록󰡕은 수은 문인록으로 현재 수은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다. 강태환은 󰡔은시록󰡕 발문에서 일찍이 󰡔진산세고(晋山世攷)󰡕를 쓰면서 유집(遺集, 󰡔수은집󰡕) 중에서 초록하여 적고 문예가(門裔家)에 물어서 기록하여 삼가 안(案)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은시록󰡕은 수은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강태환이 󰡔진산세고󰡕를 쓰면서 수은 문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뽑아서 해당 집안에 확인한 후 만든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더러 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이 󰡔진산세고󰡕가 무엇이고 현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 하였다. 1476년(성종 7) 강희맹(姜希盟)이 편집⋅간행한 강회백(姜淮伯), 강석덕(姜碩德), 강희안(姜希顔) 등의 3대에 걸친 문집 진산세고(晉山世稿)와는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은시록󰡕에는 모두 69인의 수은 문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죽창집󰡕 속의 시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강시언(姜時彦), 박안제(朴安悌), 변충원(卞忠元), 신응망(辛應望), 유흥세(柳興世), 정제원(丁濟遠) 등이 확인된다. 그리고 수은의 󰡔은시록󰡕 속 69인 가운데는 죽창 만사록에 강시억, 강시언, 김우급, 김진, 박안제, 박안효, 신응망, 유흥세, 이율, 임련 등 10인이 보인다. 이 중에서 신응망과 정건⋅제원 부자에 대해서만 수은⋅죽창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겠다.   먼저, 신응망에 대해 알아보겠다. 신응망(辛應望, 1595~1654)은 본관은 영산, 자는 희상(希尙), 호는 한사(寒沙)로 영광에서 태어났다. 그는 “임진왜란 뒤로 가산이 탕진되었으므로 어머니가 식량을 꾸어주어 수은 강항의 문하에 가서 수업하였는데, 학문이 날로 진취되었다.”고 할 정도로 수은의 독실한 제자였다. 수은 문하에서의 수학을 토대로 1617년 사마시, 1624년 증광시 급제 후 승문원 주서를 거쳐 흥양현감(興陽縣監, 1628~1629), 공조정랑(工曹正郞), 예조정랑(禮曹正郞), 경상도사(慶尙都事, 1631), 함평현감(咸平縣監, 1634~1635), 황해도사(黃海都事, 1642), 공홍도사(公淸都事, 1645),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1646~1647), 파주목사(坡州牧使), 1649),  장흥현감(長興縣監, 1652~1654) 등을 역임하였다. 신응망의 형이 신응순(辛應純, 1572~1636)이다. 신응순은 자는 희순(希淳), 호는 성재(省齋)이고, 1603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성재집󰡕과 󰡔성재만록󰡕을 남겼다. 그의 아들 신사효(辛思孝)가 󰡔은시록󰡕에 수록되어 있으니 수은 문인이었음에 분명하다.   죽창은 신응망에게 많은 시를 지어주고 서로 창화하였다. 「送寒沙佐幕嶺南」, 「次希尙在洛韻述懷」, 「別贈辛正郎赴闕」, 「送辛希尙佐幕嶺南時赴闕之行仍述自懷」, 「送辛都事之京」, 「寄辛都事獨賞雙溪竹」, 「與寒沙及諸公唱和」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送寒沙佐幕嶺南」, 「送辛希尙佐幕嶺南時赴闕之行仍述自懷」는 신응망이 1631년(인조 9)에 영남도사로 나가는 것을 축하해준 시이다. 이는 비록 수은 사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죽창이 수은의 제자들과 널리 교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죽창과 신응순 사이에 오고간 시도 적지 않게 있다. 동생 신응망이 죽창 집에 가서 여러 날 어울리며 지은 시의 첩(帖) 형에게 보여주자, 형인 신응순이 차운한 시가 󰡔성재집󰡕에 여러 편 실려 있다.   이어, 정건⋅제원 부자에 대해 알아보겠다. 정희맹(丁希孟, 1536~1596)은 본관은 영성(영광), 자는 호연(浩然), 호는 고산(孤山)⋅선양정(善養亭)이다. 성수침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영광 수호를 위해 의병을 일으켰고, 문집으로 󰡔선양정집󰡕을 남겼다. 그의 둘째 아들이 정건(丁鍵, 1565~1618)이다. 정건은 본명은 정협(丁鋏)으로, 자는 자장(子長)‚ 호는 성경재(誠敬齋)이고, 문집으로 󰡔성경재집󰡕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하였고, 광해군 계축년에는 분산(粉山) 아래에 축실(築室)하고서 두문불출하였다고 한다. 정건은 수은보다 2년 선배인데 󰡔은시록󰡕에 수은 제자로 기록되어 있다. 정건이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자, 수은이 가을까지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겠다는 답장을 보낸 적이 있어서(「자장 정협에게 답하다」), 󰡔은시록󰡕에 수록된 것 같다. 윤운구(尹雲衢)가 영광 연흥사에서 수은과 정건이 함께 어울린 적도 있다(「연흥사에서 장보의 시를 차운하다가 정자장이 먼저 돌아감으로 끝귀절에 희롱하다」). 정건의 아들이 정제원(丁濟遠)인데 자가 백인(伯仁)으로, 역시 󰡔은시록󰡕에 수은 문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수은집󰡕에는 그와 관련된 글은 발견되지 않는다. 󰡔은시록󰡕 첫 페이지 󰡔은시록󰡕 발문    죽창은 정건에 대해 ‘經世之才’라고 평하였다(「묘갈명」). 그리고 정제원이 대곡(大谷)에 새 집을 짓자 가서 하룻밤을 자면서 축하해 주었다(「丁伯仁大谷新軒夜吟」). 그리고 정제원의 어머니 강씨(姜克讓의 딸)가 죽자 만사를 지어 애도하였는데, 평생 펼친 부도(婦道)가 자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였다(「挽丁伯仁母夫人」). 또한 정제원이 늦게 아들을 낳자 축하해주었는데, 그대 집에 경사가 겹쳐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였다(「賀丁伯仁晩得奇男子」).   󰡔죽창집󰡕을 보면, 선양정(善養亭)을 읊은 시가 꽤 많다. 선양정이란 정희맹이 용산(龍山) 북쪽에 있는 용수(龍水) 위 산록에 수칸으로 지은 누정 별서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씨들과 관련된 시 또한 다수 눈에 띈다. 󰡔성경재집󰡕에 죽창에게 보낸 편지가 4편 수록되어 있다. 죽창은 정희맹의 아들 정건의 만사를 지었다.     2) 죽창 만사와 수은   󰡔죽창집󰡕 부록에는 70 평생을 살다간 죽창에 대한 36인의 만사(挽詞)가 수록되어 있다. 만사란 가까운 사람이 읊은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만사록 수록자는 죽창의 절친이나 제자였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은시록󰡕에 이름이 수록되어 있는 인물이 여럿 있다. 강시억(姜時億), 강시언(姜時彦), 김우급(金友伋), 김전(金瑱), 박안제(朴安悌), 박안효(朴安孝), 신응망(辛應望), 유흥세(柳興世), 이율(李慄), 임련(林堜)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박안효⋅안제 형제는 본래 서울 사람이다. 박씨 형제가 수은의 제자가 된 계기는 그의 아버지 박정현(朴鼎賢)이 영광군수를 역임한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박정현은 1603년부터 1608년까지 6년간 영광군수를 역임하였다. 박안효가 1639년 죽창 만사에서 오성(筽城, 영광 별호) 고을에서 상종한 지 40여 년 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수은이 일본에서 돌아온 1600년 이후에 수은 문하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동생 박안제는 동헌(東軒)에서 다시 만나 남루(南樓)에서 헤어진 지 10여년이 지났다고 하였다. 박씨 형제가 수은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박정현의 이임으로 영광을 떠나자, 수은은 「박백심⋅계심 형제를 보내며(안효⋅안제)」라는 시에서 “총각 시절 서로 만났던 곳에서, 이제 보니 두 장부가 되었구나”라고 말하였다.    한편, 죽창이 박씨 형제와 만난 때는 수은이 세상을 떠나고, 박안제가 영광군수로 온 1628(인조 6)~1630년(인조 8)이다. 이 시기에 죽창이 박씨 형제에게 주거나 창화한 시가 상당히 많다. 「次朴使君季順韻仍呈雲錦亭中」, 「與朴使君連衾奉別」, 「朴使君季順九峀少時會」, 「次朴使君季順會風香亭韻」 등이 있다. 죽창이 박안제 군수와 운금정(수은 기문), 구수사(군 서 20리 구수산), 풍향정 등지에서 함께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與朴使君連衾奉別」을 보면, 3년 우로(雨露) 아래에서 인정(仁政)을 베풀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함께 자며 이임식까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대부분은 영광이나 그 인근 출신이다. 그 가운데 이율은 만사에서 죽창으로부터 평생 과분한 권장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죽창 문하에서 수학을 하거나 교화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우급(金友伋, 1574∼1643)은 만사에서 죽창에 대해 죽창이 동복현감(1621~1622)으로 부임하던 날 본인은 궁려(窮廬, 폐모론 반대로 유적 삭거)에 있었지만, 10년 만에 편지(만사) 한 장 보낸다고 한 것으로 보아, 친하지만 중간에 다소 소원하였던 것 같다.   여기서 한 가지 특징적인 점은 죽창에 만사를 보낸 사람 가운데는 수은 제자 외에, 강시억(姜時億, 수은 형 姜濬의 큰 아들), 강시만(姜時萬, 수은의 큰 아들), 정명달(丁名達, 수은 동생 姜泳의 사위) 등 수은 집안사람들이 상당수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강시억은 만사에서 ‘自我連家歲二周, 忘形幾度樂同遊’라 하여 이웃으로 산지가 2년이나 되었고 그 기간 동안 함께 노닌지가 여러 번이라고 하였다.   󰡔죽창집󰡕 서문 죽창 만사   이 외에 수은 친인척 가운데 죽창과 가까이 보낸 이가 있다. 󰡔수은집󰡕을 보면, 수은의 종숙인 사추(士推) 강극서(姜克恕)가 나온다. 종숙과 만나서 서울 이야기 하였다고 하니, 그는 서울 출신인 것 같다. 데릴사위가 되어 살면서 쇠미함을 퍽이나 개탄하기에, 수은이 시로써 위로해 준 적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재력을 모았는지, 한강 양화도 경치 좋은 곳에 집도 지었다.   이런 강극서에 대해 죽창 또한 많은 시를 주고받았다. 그 가운데 죽창이 양천현감일 때 꿈속에서나 보았던 강극서가 기약도 없이 배를 타고 방문하였다가 돌아갔다. 서울에서 남쪽 객들이 만나니 밝은 달빛이 양천 하늘 정자 위에서 비친다고 하였다. 동헌에서 같이 잠을 자며 객지 생활 이야기를 많이 하였던 것 같다. 이처럼 죽창에 만사를 보낸 사람 가운데 수은 문인들은 물론이고 친족들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교유도 활발하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수은과 죽창 두 분 사이의 교유가 두터웠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3. 문집 속의 교유   1) 󰡔수은집󰡕과 죽창   󰡔수은집󰡕 속에는 죽창과 교유한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죽창이 직접 거명된 시 두 편을 살펴보자. A - 鄭益山欲以醉仙弟妹試我戲寄 B - 舟中次鄭益山弘衍韻 小橋家在九峯西。聞說春魂未解迷。 居士不知雲作夢。禪心已似絮黏泥。 自慙山鳥驚檀板。忍許靑鸞伴木鷄。 茹藘縞衣聊樂我。半生曾擧案眉齊。 風輕海闊暮帆斜。已落殘陽又月華。 躑躅成山君莫算。滿船淸唱盡名花。   A는 「정익산(鄭益山)이 취선(醉仙)이란 제매(弟妹)로 나를 시험하고자 하여 희작(戲作)하여 보내다」이다. 정익산이란 익산군수를 역임한 정홍연이란 말이다. 정홍연이 익산군수를 역임한 때는 1622~1623년이다. 이때는 수은이 죽고 없는 시기이다. 따라서 본래는 정홍연의 자나 호가 적혀 있었을 텐데 후손이 문집을 편집할 때에 ‘익산’이란 말을 추가하였을 것 같다. 내용을 보면, 수은이 구봉(九峯, 구수산?) 쪽으로 놀러왔다. 구수산은 정홍연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때 죽창이 ‘여동생’(기생?)으로 하여금 수은의 수청을 들어주라고 했는데 그것을 수은이 반평생 동안 밥상 차려준 아내 생각에 거절한 내용이다.    B는 「배 안에서 정익산의 운을 차하다」이다. 수은은 영광군수의 부름을 받고 서포(西浦, 법성포)에 갔다. 때는 봄철 단오쯤 되었던 것 같다.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선유(船遊) 놀이도 예약되어 있었다. 그때 수은은 죽창과 한 배에 탔다. 죽창이 선창을 하자, 수은이 그에 차운한 것이다. A와 B는 동일 시기에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수은이 구수산이나 법성포 등 영광 서쪽 지역을 자주 방문하였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죽창과의 교유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죽창은 거명되어 있지 않지만, 죽창과 함께 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는 시도 󰡔수은집󰡕 속에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長沙의 읍재 子愼 林복(㥠로 개명)이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감을 보내다」라는 시를 검토해 보자. 장사(長沙)란 무장의 별호이고, 자신(子愼)은 임서(林㥠, 1570~1624)의 자호이다. 임서는 무장현감으로 1604년(선조 37) 부임해 와서 1609년(광해군 1)까지 6년간 근무하였다. 그 사이 수은은 임서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자주 만났던 것 같다(「사군 임자신이 이름난 미녀를 별원에다 두고 소오로 이름하였다」). 따라서 위 시는 임서가 무장을 떠나는 1609년에 수은이 지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수은은 임서의 두 아들 임련(林堜, 1589~1648, 자 東野, 호 閒好⋅夢坡), 임담(林墰, 1596~1652, 자 載叔, 호 淸臞)을 문인으로 두었다. 임련은 1604년에 아버지의 명에 의해 강항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수은 사후일텐데, 임련은 강수백(姜壽伯, 누구의 자일 것 같음)을 대하고서 스승이 살았던 운제(雲堤)를 떠올렸다. 임담의 경우 9세이던 1604년에 아버지를 따라 무장현에 가서 그곳 거사(居士) 한흡(韓洽)에게서 수학하였다. 그리고 14세이던 1609년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교관(敎官) 김경선(金慶先)에게 취학(就學)하였다.    임서가 무장현감으로 있으면서 수은을 만날 때 죽창도 함께 하였다. 죽창은 이 인연을 계기로 임서에게 「임자신이 진현(陳玄)을 보냄을 사례하다」라는 시를 지었고, 그의 아들 임련이 죽창 만사를 보냈다. 이때 수은이 「松沙 別館에서 鳴皐의 운을 차하여 거문고 퉁긴 자에게 주다」라고 하였듯이, 임전(任錪, 1560~1611. 본관 풍천, 문집 󰡔명고집󰡕)과도 교유하였다. 마찬가지로 이때 죽창 또한 임전과 교유하였다.     2) 󰡔죽창집󰡕과 수은   󰡔죽창집󰡕 속에는 수은에게 주거나 수은과 함께 한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일화를 살펴보자. 승려 현상인(賢上人, 󰡔수은집󰡕에는 義玄으로 나온다)이 봄에 수은을 찾아와서 시축(詩軸) 서문을 요청하였다. 가을에 사미승을 보내서 재촉하며 두류산⋅금강산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수은은 서문을 지어주었다. 이와 관련된 시문이 󰡔수은집󰡕 속의 「贈玄上人用玄洲韻」, 「題義林詩軸」, 「僧義玄求詩」, 「送義玄入頭流序」이다.    죽창도 수은의 ‘軸詩序’ 끝에 수은 시를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太初 姜友의 운을 차하여 賢上人 軸詩序 끝에 쓰다」라는 시에서 종소리에 암자에서 새벽잠을 깨고 보니, 스님은 향불 피워 예불을 올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죽창도 ‘軸詩序’를 썼다. 사연은 이렇다. 죽창이 영남에 있었다. 영남에 있었다는 말은 거창현감(居昌縣監)을 말한 것 같다.   󰡔거창읍지󰡕에 ‘丙辰來 丁巳去’라고 적혀 있으니, 죽창은 1616~1617년 재임하였다. 그때 현상인이 방장산을 유람하면서 찾아왔다. 죽창이 보니 총명하고 단아한데다 유학경전과 역사서까지 조금 알고 있어 가히 대화할만 하였다. 그러고 죽창은 영광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상인이 옛 정을 잊지 않고 죽창이 살고 있는 적막한 바닷가를 찾아왔다. 죽창은 그와 한담을 나누었다. 그 끝에 소매에서 수은의 편지를 내 보이니, 죽창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현상인이 스스로 율시 한편을 읊어 주면서, 죽창으로 하여금 그에 대해 창화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죽창은 인정과 의리상 안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니 사양하겠다고 말하였다. 더군다나 대선비 수은 필적 옆에 자신의 글을 댄다는 것은 더더욱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당시 수은은 문장과 인물이 높아 그의 글을 받아가려는 사람이 많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아 사양하였지만 수은의 편지까지 내보이며 간곡히 요청함을 저버릴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글을 적는다고 하였다. 󰡔죽창집󰡕에는 이 현상인에게 지어준 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4. 수은과 죽창의 지인들   수은과 죽창의 지인을 보면, 몇 가지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하나는 수은⋅죽창의 지인 가운데 영광군수가 들어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한 제자를 두 사람이 지도하였다는 점이고, 그리고 두 사람의 지인들이 호란 의병을 일으켰다는 점 등이다. 하나씩 살펴보겠다.   첫째, 영광군수는 물론이고 인근의 무장현감, 무안현감, 광주목사 등과 어울린 글이 두 문집에 많이 수록되어 있다.   󰡔수은집󰡕을 보면, 무안군수 정념(鄭恬)⋅鄭운, 무장현감 성계선(成啓善, 1602~1603 재임)⋅임서(林㥠, 1604~1609 재임) 등이 보인다. 그리고 영광군수로는 경섬(慶暹, 1600~1601 재임), 이춘기(李春褀, 1602~1603 재임), 박정현(朴鼎賢, 1603~1608 재임), 윤황(尹煌, 1609~1613 재임), 유석증(俞昔曾, 1613~1615 재임) 등이 확인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은은 1609년부터 1613년까지 5년간 영광군수로 재임한 윤황과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시기적으로는 일본에서 돌아온 후 마음이 안정된 때여서 그랬을 것 같고, 수은과 윤황 같이 우계 성혼의 제자이고, 윤황은 우계의 사위이기도 하다.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윤황에 대해 「尹侯를 보내면서」라는 시에서 수은은 윤황을 ‘斯文의 正脈’이라고 하였다. 윤황은 윤훈거(尹勳擧, 尹勛擧), 윤순거(尹舜擧), 윤상거(尹商擧), 윤문거(尹文擧), 윤성거(尹成擧), 윤선거(尹宣擧) 등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첫째와 둘째 아들 윤훈거⋅순거가 수은의 제자이다. 수은은 영광을 떠나는 윤훈거⋅순거 형제에게 내외가 명가의 후예로서 똑같이 귀한 기풍 남아 있다고 하면서, 전날에 글을 읽던 곳에서는 물소리만 졸졸 들린다고 말하였다(「윤여시⋅여관 형제와 작별하다」).   󰡔죽창집󰡕을 보면, 무장현감 임서가 보인다. 그리고 영광군수로는 정양필(鄭良弼, 1624~1628 재임), 박안제(朴安悌, 1628~1630 재임), 임광(任絖, 1630~1631 재임), 박황(朴潢, 1631~1632 재임), 윤효영(尹孝永, 1634~1635 재임), 송몽석(宋夢錫, 1635~1637) 등이 확인되고 있다. 정양필 등 영광군수는 모두 수은 사후에 재임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 영광군수를 매개로 해서는 수은 사후여서 수은과 죽창이 교유할 수는 없었지만, 무장현감 임서를 통해서는 상호 교유가 있었다. 박정현⋅안제 부자의 경우도 박안제를 통해서는 시기적으로 수은과 죽창이 교유할 수는 없었지만, 박정현을 통해서는 상호 교유가 가능하였다. 특히 󰡔수은집󰡕이나 󰡔죽창집󰡕을 보면, 영광⋅무장 두 수령과 함께 어울린 적이 있었다.     둘째, 한 사람에 대한 격려와 지도 내용이 두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한 인물로 변충원(卞忠元, 1568~?)을 들 수 있다. 변충원은 수은보다 1년 뒤 1568년(명종 22)에 태어나서 1603년(선조 36)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는데, 그 좌목에 거주지가 경기도 부평으로 기록되어 있다. 1615년(광해군 7) 7월에 반광해군 역모 혐의로 문초를 받고 10월에 영광으로 유배되었다(󰡔응천일록󰡕). 이때 수은 문하에 와서 수학을 하였을 것 같다. 유배 생활은 1624년(인조 2) 갑자년까지 이어졌다. 갑자년에 의병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쌀을 바쳤다. 해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624년 정도 추정할 수 있다. 해배 이후 김포현령을 역임하였다. 도임년은 알 수 없지만, 이임년은 1627년 또는 이 이전이다. 그런데 또 영광에 왔다가, 정묘년(1627) 10월에 영광 우사(寓舍)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따라서 변충원은 영광에서 유배 생활하고 있던 1615~1624년 또는 재차 내려온 1627년 무렵에 수은과 죽창을 따랐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은시록󰡕에 수은의 문인으로 나와 있는 인물인데, 󰡔죽창집󰡕을 보면 죽창의 문인으로도 보여진다.   󰡔수은집󰡕을 보면, 변충원과 관련하여 다섯 편의 시가 있다. 수은은 「卞江陰의 운을 차하다」에서 나도 3년 동안 이역만리에 있었다고 하면서 현재를 너무 탓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보아, 변충원은 영광에서 유배 생활 중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벽지에 오는 이 없는 터에 일부터 찾아오니 고맙다고 말하였다. 「藎初가 찾아와 그 운을 차하다」에서도 앞 시와 비슷한 내용을 읊었다. 「변신초의 시를 차운하다」에서는 밤에 연회가 있었고, 「변신초의 운을 차하다」에서는 북객(北客)이 가려 한다고 보아, 수은 생전에 해배 시도도 있었던 것 같다.   󰡔죽창집󰡕에도 변충원과 관련된 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변시초에게 차운하여 주다」를 보면, ‘昔年交契在皇州, 此日重逢碧海頭’라고 하였다. 전에 서울에서 만난 적 있었는데, 오늘 바닷가 영광 땅에서 다시 본다고 하였다. ‘聖代卽今多雨露, 願君休道逐臣愁’라고 하였다. 성대, 즉 광해군이 물러나고 인조가 즉위하여 지금 은혜(사면복권)가 많으니, 곧 해배될 것이니 축신, 즉 유배객이라고 신세를 한탄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변군 운에 차하여 重陽을 읊으다」를 보면, 바닷가 산봉우리에 올라간 것 같다. 총상인(聰上人)도 있었으니, 장소는 어느 절(구수사?)이었을 것 같다. 바다입구 흰 모래에 석양이 비추니 더욱 밝게 보이는 좋은 경치였다. 잔을 주고받아 취기가 오르자 시를 지었던 것 같다.    셋째, 수은과 죽창을 따랐던 사람들은 나중에 의병을 일으킨다. ①이괄의 난 때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사람들을 수록한 문건이 󰡔호남모의록󰡕이다. 여기에는 영광 출신으로 신유일, 신응순, 이극람, 정박, 이인영, 정전, 이홍겸, 이홍기, 이민겸, 정의달, 정제원, 이극찬, 이경운, 신응망, 강시윤, 정서, 정수, 신사효, 신종효, 이훤(李晅), 이휘(李暉), 신순거, 신엽, 신준, 정신달, 이돈, 이치순, 김섬, 김적, 박후립, 진효신 등이 수록되어 있다. ②󰡔정묘거의록󰡕을 보면,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켰던 영광인으로 강환(姜渙), 김여경(金餘慶), 김진(金瑱), 신유일(辛惟一), 신응순(辛應純), 이홍기(李弘記), 정전(丁錢), 정제원(丁濟元) 등이 있다.   ③󰡔호남병자창의록󰡕을 보면,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영광인으로 이희웅, 김여옥, 이척, 이민겸, 이구, 송식, 김담, 강시억, 정명국, 강시만, 강시건, 이휘, 김경백, 김상경, 나통서, 박담련 등이 보인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총 48인이 창의에 나섰다. 이 가운데 강시건, 강시만, 강시억, 김담, 김상경, 김진, 송식, 신사효, 신엽, 신응망, 이극람, 이홍겸, 이훤, 이휘, 정명국, 정수 등 16인이 수은의 문인이거나 죽창에게 만사를 보낸 사람이다. 이 외에 무장의 강시언, 고창이 유철견, 고부의 김지수, 함평의 정색⋅정적 등도 수은⋅죽창의 지인들이다. 이렇게 보면, 정치적으로는 서인계인 수은⋅죽창의 지인들이 중심되어 인조 정권 아래에서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에 영광에서 의병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5. 맺음말 : 수은과 죽창   죽창에게 수은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죽창 선생 사우 축문」을 지은 강진 출신의 동강 이의경(李毅敬, 1704~1778)은 죽창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면 그 친구를 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사(寒沙, 신응망), 이송(二松, 김인흡), 성재(省齋, 신응순), 수은(睡隱, 강항) 등 4인을 들었다. 죽창이 이들 4인과 도의로 사귀었다고 하였다. 김영한(金甯漢, 1878~1950)이 지은 「지산강당중건기(芝山講堂重建記)」를 보면, 광해군의 정치가 혼란에 빠지자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서 강수은, 임명고 등의 선비들과 왕래하며 시를 주고받았다고 하였다. 비슷한 내용은 이종택(李鍾宅)이 지은 「지산강당중수기」에도 들어 있다.    이상을 보면, 객지에 새 터전을 잡은 죽창에게 수은은 매우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사실 만력33년(1605, 선조 38)에 작성된 영광 향안(鄕案)에 죽창은 들어가지 못하였고, 5년 뒤 향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영광 내 지인들은 모두 향안에 입록되어 있는 상황에서 죽창은 수은에게 크게 의지했을 것 같다. 이는 죽창이 보인당(補仁堂) 주인 김주천(金柱天)에게 준 연작시 속에 들어 있는 다음의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다.       나이 칠십 되가는데 친구는 없고(年來七十故人空)     수은은 어디 갔나 물만 동쪽으로(睡隱何歸水浙東)     오직 그대만 있어서 어울렸더니(唯有吾君同調友)     생각하니 응당 꿈에서나 만나겠지(相思應想夢魂通).     이 시는 죽창이 수은 사후 본인 말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다정한 친구 수은이 없음을 허전해하며 지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죽창 사우 상량문에 죽창이 가지산(歌芝山)에서 노래하면 강수은이 화답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은과 죽창이 가까웠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생각된다. 또한 수은이 새 터전으로 일군 불갑면 운제(雲堤) 마을 이름을 죽창이 지어주었다는 문중 전언도 두 분 사이의 돈독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문헌> 󰡔거창읍지󰡕 󰡔김포시사󰡕 󰡔노사집󰡕(기정진) 󰡔동래정씨문집󰡕 󰡔석촌유고󰡕(임서) 󰡔선양재집󰡕(정희맹) 󰡔성경재집󰡕(정건) 󰡔성재집󰡕(신응순) 󰡔소은유고󰡕(신천익) 󰡔수은집󰡕(강항) 󰡔영광속수향안󰡕 󰡔영광읍지󰡕 󰡔은시록󰡕 󰡔익산군지󰡕 󰡔정묘거의록󰡕 󰡔죽창집󰡕(정홍연) 󰡔한정유고󰡕(임담) 󰡔호남모의록󰡕 󰡔호남병자창의록󰡕   김경숙, 「이괄의 난과 󰡔호남모의록󰡕」, 󰡔숭실사학󰡕 28, 숭실사학회, 2012. 김경옥, 「수은 강항의 생애와 저술활동」, 󰡔도서문화󰡕 35,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2010. 김덕진, 「전라도 광양 수월정의 기문 지은이 분석」, 󰡔남도문화연구󰡕 30, 순천대 남도문화연구소, 2016. 김덕진, 「정묘호란과 호남의병」, 󰡔전쟁과 전라도 지역사󰡕, 선인, 2018.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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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박윤정 · http://www.itfocus.kr
  홍콩관광청(HKTB)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제10회 ‘Great Outdoors’ 캠페인을 공동 전개한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캠페인에는 권위있는 가이드북과 함께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속 포토그래퍼 및 트레일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담은 협업 콘텐츠가 포함될 예정이다. 홍콩관광청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관광객들이 ‘다채로운 매력의 홍콩’이라는 시각으로 홍콩을 바라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자연 속 동식물이 함께하는 푸른 산과 전통 마을들에 대한 대조적인 시각을 통해 홍콩이 가진 환상적인 양면을 보여준다. 캠페인에서는 홍콩 전 국토 가운데 3/4이 시골 지역이고 홍콩 어디에서나 하이킹 트레일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공개된다.     </center>   앤서니 라우 홍콩관광청장은 “여행과 모험을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강력한 브랜드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협력하게 되어 기쁘다”며 “이번 캠페인은 환상적인 포토그래피와 더불어 세계적 포토그래퍼들이 담아내는 인상적인 스토리를 통해 홍콩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새롭고 신선한 시도다. 이를 통해 1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이어지는 하이킹 시즌을 맞아 방문객들이 세계적 도시인 홍콩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아시아 및 중동 지역 사업을 총괄하는 콘 아포스톨로폴루스 부사장은 “우리는 끝없는 호기심을 가진 용감한 탐험가들이 모인 집단인 만큼 항상 전 세계 곳곳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여주고자 한다”며 “홍콩관광청과의 협업을 통해 훌륭한 포토그래퍼들과 탐험가들의 시선을 토대로 도시 및 농촌 지역의 대조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홍콩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환상적인 기회를 가졌다”고 설명했다.[자료제공:뉴스와이어](ITFOCUS ⓒ www.itfocus.kr)    이 뉴스는 아이티포커스(www.itfocus.kr) 공유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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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신평강 · http://edaynews.com
강진군보건소가 신혼부부와 예비부부를 위한 건강검진 지원사업을 추진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강진군과 전라남도가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신혼(예비)부부 건강검진 지원사업은 결혼연령 상승과 고령 출산의 증가에 따라 임신과 출산에 미치는 질병을 조기발견하고 건강한 출산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신혼부부와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임신관련 건강검진비를 지원해주는 사업.     신혼부부 건강검진은 부부의 건강은 물론 임신부 태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건이 있는지 미리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신혼부부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는 건강한 결혼 생활과 앞으로 태어날 2세의 건강까지 생각해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살펴야 한다. 여성 대상 검진 항목으로는 초음파를 통한 자궁, 질, 유방관련 검사와 풍진 및 A형, B형, C형간염 검사, 당뇨, 단백뇨 등의 소변검사, 매독 에이즈 등 성병검사, 결핵, 등 폐질환을 알 수 있는 흉부 엑스선 검사 등이 있으며, 빈혈, 갑상선, 신기능 검사 등이 있다.     남성대상 검진 항목으로는 A형, B형, C형간염 검사와 당뇨, 단백뇨 등의 소변검사, 매독 에이즈 등 성병검사, 결핵 등 폐질환을 알 수 있는 흉부 엑스선 검사와 정액검사, 간기능, 신장기능, 전립선수치 검사 등이 있다.     건강검진을 계획하고 있는 결혼 3년 이내의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는 강진군에 소재한 검진기관(산부인과 등)에서 검진지정 항목의 검진을 실시하고 진료비 계산서와 영수증 등을 첨부하여 보건소로 청구하면 보건소에서는 대상자에게 건강검진비 본인부담금을 지원한도액(남성 9만원, 여성 17만원)내에서 지급하게 된다.     김영일 보건소장은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꿈꾸는 예비부부나 신혼부부는 누구나 보건소에 문의하여 건강검진을 반드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강진군은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동시에 출산친화적 환경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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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강연
강대의 · http://edaynews.com
광주광역시는 광주 북구·담양군과 공동으로 1일 전남대학교 인문대 3호관에서 ‘풍류남도 나들이’ 사업의 하나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소쇄원, 양산보의 이상’을 주제로 ▲‘철학사상의 실현, 미술사적 관점에서 본 소쇄원’(독일 베를린 대학 이정희 교수) ▲‘양산보의 생애와 교유인물’(광주교대 김덕진 교수) ▲‘양산보의 학문과 사상’(광주대 고영진 교수) ▲‘‘소쇄원사실’ 불완전하게 열린 책‘(전남대 이향준 교수) 등의 발제로 문을 열었다.   이어서 서울대 장진성 교수, 전남대 김신중 교수, 광주여대 임준성 교수,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김경호 교수가 토론자로 나서 각 발제자의 연구과제에 대한 의미 있는 문답과 보충 질의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세미나의 발제자 진행은 전남대문화전문대학원 정경운교수가 좌장으로는 전남대 사회과 김병인교수가 좌중을 차분한 분위기로 이끌면서 노련미를 과시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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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강대의 · http://edaynews.com
‘강진~광주’ 고속도로 건설로 조망권 훼손, 통풍 침해 등 피해를 우려하던 광주광역시 남구 대지마을 주민들의 고충이 해소된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박은정, 이하 국민권익위)는 11월 30일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주민센터 회의실에서 신청인 대표와 한국도로공사, 광주광역시 등 관계기관이 참석한 현장 조정회의를 열고 대지마을 주민 196명이 제기한 집단민원을 해결했다. 한국도로공사는 ‘강진~광주’ 간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수립하면서 고속도로가 대지마을을 근접하여 통과하도록 설계했다. 광주 대지마을 등 인근 주민들은 마을 앞에 약 10m 높이의 흙쌓기 공사가 진행되면 조망권이 저하되고 소음·먼지 등으로 환경 피해가 우려된다며 마을 앞 구간을 교량으로 변경하는 등 교통안전시설을 설치해 달라고 한국도로공사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는 해당구간을 교량으로 변경할 경우 사업비가 과다하게 소요돼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지마을 주민 196명은 올해 2월말 국민권익위에 집단으로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국민권익위는 수차례 현장조사와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30일 오후 14시 30분 광주광역시 대촌동사무소 회의실에서 국민권익위 권태성 부위원장 주재로 신청인 대표 등 주민들과 한국도로공사, 광주광역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 조정회의를 열고 조정안을 최종 확정했다.    이날 조정에 따라 한국도로공사는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과 총사업비 변경협의가 완료되면 흙쌓기 구간 중 마을 입구 부분을 교량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또한 교량 밑에 체육시설(게이트볼장 또는 족구장)을, 흙쌓기 구간 밑으로는 농로를 연결하는 통로박스를 설치하고 고속도로 주변에서 농경지 진입이 가능토록 부체도로*를 설치하기로 했다. 특히 마을주민들의 조망권 확보를 위해 방음벽을 투명하게 설치하고 흙쌓기 구간 일부에 나무를 심어 녹지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광주광역시는 대지마을 앞 도로의 교통량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도로폭을 확장하기로 했다. 국민권익위 권태성 부위원장은 “‘강진~광주’ 간 고속도로 건설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한 주민들의 걱정이 해결돼 다행이다.”라며 “앞으로도 국민권익위는 국민의 불편 현장을 찾아 고충민원을 적극 해소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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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시상식
강대의 · http://edaynews.com
교육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2018년도 대한민국 인재상’에 전남에서는 고교 분과 2명, 대학생‧청년일반 분과 3명이 수상 영예를 안았다.   수상 부문별로 고교 분과에 김승환(장흥 정남진산업고 3년), 장재형(해남고 3년), 대학생‧청년일반 분과에 송호영(전남대 4년), 여다솔(순천대 3년), 윤영찬(동신대 4년) 씨가 수상했다.   대한민국 인재상은 창의와 열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 발전에 기여한 인재를 매년 100명씩 발굴해 국가의 주축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도입됐다. 2001년부터 교육부가 주최하고 있다.   김성훈 전라남도 희망인재육성과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다른 열정과 도전정신, 공동체를 배려하는 인성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라며 “수상자들이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을 넘어 세계적 인재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에게는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과 상금 200만∼250만 원이 수여되고, 창의역량과 리더십 함양을 위한 연수 기회가 주어진다. 시상식은 30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렸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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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김종영 · http://edaynews.com
영광군(군수 김준성)은 지난 28일 영광군청에서 (유)영광교통 대표 최주태와 단일요금제 시행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번협약은 2019년 1월 1일부터 영광군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는 모든 주민 및 방문객들은 탑승거리에 상관없이 어른 1,000원, 초‧중‧고 학생들은 500원의 요금만 내면 영광군 농어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 현재 영광군 버스는 기본요금 1,300원에 운행거리 10km 초과 시 km당 116.14원의 초과 운임을 추가해 최고 3,000원(영광⇒두우리)까지 요금을 내야한다.   이번 협약으로 1,000원만 지불하고 전 구간을 이용할 수 있어 군민의 교통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단일요금제 시행에 따른 운수업체 수입 감소분은 영광군에서 보전하고, (유)영광교통 대표 최주태는 안전한 운행과 시간준수, 노약자 장애인 승객보호, 친절봉사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김준성 영광군수는 군민들의 발이 되어 주는 대중교통 이용의 편의성을 높이고 교통약자 보호를 위해 그동안 장애인 콜택시, 100원 택시 등을 운행해 왔다면서 이번 협약 체결로 군민들의 농어촌버스요금 부담을 덜어주고 대중교통 활성화로 영광읍 내 주차난 해소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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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남대학교와 광주광역시가 공동으로 오는 11월 30일(금) 전남대학교 용지관 광주은행홀에서 ‘공공기관과 지역사회혁신, 리빙랩에서 만나다’라는 주제로 ‘제11차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을 개최한다.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KNoLL) 포럼은 지역사회혁신을 위한 리빙랩 활동 경험이 있거나 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한다. 이를 통해 전국의 대학, 지자체, 공공기관, 연구기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사회혁신과 리빙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정보와 경험을 공유한다.  실제 생활 현장에서 사용자와 생산자가 공동으로 혁신을 만들어가는 실험실을 의미하는 리빙랩(Living Lab)은 다양한 사회 주체가 연계(Public – Private – People – Partnership)하여 과학기술, 지역사회 및 스마트시티 등에서 최종수용자인 시민의 참여 및 주도를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 대안으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는 ▲농촌마을 혁신 사례(김명일 한국농어촌공사 농촌개발처 농촌계획부장) ▲청춘창고(이재성 순천시청 경제관광국 경제진흥과장) ▲ICT를 통한 착한상상 및 다문화가족 공동체 프로젝트(이보현 ㈜엔유비즈 대표) ▲대학타운형 도시재생 사업(이경주 전남대 LINC+사업단 교수) 등을 각각 발표한다. 주제발표 후에는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좌장으로, 곽현미 광주광역시 일자리노동정책관, 권석원 한국정보화진흥원 디지털문화기획팀 팀장,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정일 광주북구사회정경제연합회 회장, 정은희 경남대학교LINC+사업단 지역사회혁신센터장, 황석연 행정안전부 정책협력팀 과장의 패널토론이 이어진다. 이번 포럼의 총괄 책임자인 김재국 전남대학교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육성사업단장은 “이번 포럼은 다양한 공공기관이 지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더 발전적인 협업전략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리빙랩을 통한 지역사회혁신과 발전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 사전등록: http://naver.me/I5lmBpnm * 문의: 062-530-0357 (전남대학교LINC+ 육성사업단)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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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28일 도청 서재필실에서 응급환자 헬기 이송체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산림청 영암산림항공관리소 등 3개 유관기관과 함께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전남지역 헬기 운영 기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보다 신속하고 안전한 응급환자 이송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했으며 참석 기관은 헬기 보유 현황, 이․착륙장 등 인계점 정보를 공유하고, 현장에서의 애로사항, 효율적 응급환자 이송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이보라미 전라남도의원이 참석해 현행 응급환자 이송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해 현장에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현재 응급환자 이송이 가능한 헬기는 전라남도의 닥터헬기 1대, 소방헬기 2대, 서해지방해양경찰청 5대, 영암산림항공관리소 3대 등 3개 기관 총 11대다.   유영후 전라남도 식품의약과장은 “각 기관 헬기의 특성과 업무를 고려해 헬기 공동 활용체계를 구축하고, 정기적인 실무 협의로 협력 방안을 계속 논의해 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인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갖춰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라남도는 2011년 9월 22일부터 응급의료 전용헬기 1대를 운용해 2018년 10월까지 섬지역을 중심으로 총 1천746회 출동하고, 1천632명의 응급환자를 이송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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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박윤정 · http://www.itfocus.kr
  홍콩관광청(HKTB)이 주관하는 각종 축제가 11월 29일부터 2019년 2월 24일까지 펼쳐진다. 올해 첫 선을 보이는 홍콩 최대 야외 조명 축제 2018 홍콩 펄스 라이트 페스티벌(Hong Kong Pulse Light Festival 2018)은 방문객들에게 놀라운 시각적 성찬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축제는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기존의 ‘심포니 오브 라이트(A Symphony of Lights)’ 행사를 한층 강화, 전 세계 예술가들이 제작한 휘황찬란한 설치품과 예술적으로 눈부신 조명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며 올겨울 홍콩 전역을 환하게 밝힐 예정이다. ◇윈터 원더랜드 전 세계 예술가들이 올겨울을 환하게 밝힐 조명 관련 설치품을 빅토리아 하버 곳곳에 선보이며 관람객들에게 매혹적으로 눈부신 경험을 선사하게 된다.   국제 라이트 아트 디스플레이(International Light Art Display) 행사는 전 세계 각종 라이트 페스티벌에서 공개되었던 최고의 작품 14점과 더불어 현지 출신 예술가들이 홍콩을 상징으로 삼아 제작한 4점의 작품을 함께 공개한다. 이를 통해 홍콩 전역은 인터랙티브 라이트 아트 플레이 그라운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밤하늘을 수놓다 빅토리아 하버 인근에서 펼쳐지는 세계적 라이트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 심야 조명쇼는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더욱 풍성하게 밝혀줄 것이다. 사전에 지정된 날 저녁마다 펼쳐질 올해 합동 공연과 옥상 불꽃놀이에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빌딩이 참여, 축제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서로 다른 크리스마스 트리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트리를 예술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품이 대관람차 인근에 설치된다. 프랑스 예술 작품 제작팀인 1024 Architecture의 ‘XTree’는 나뭇가지들을 상징하는 금속 재질 스캐폴딩을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각종 조명 장식으로 정교하게 꾸몄다. 한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 대표적 명소인 황후상 광장에는 홍콩을 상징하는 전통적 형태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마련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이밖에도 다양한 행사가 각 명소에서 펼쳐질 예정이며, 축제 시즌 이벤트와 야간 관광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자료제공:뉴스와이어](ITFOCUS ⓒ www.itfocus.kr)이 뉴스는 아이티포커스(www.itfocus.kr) 공유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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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강대의 · http://edaynews.com
“죽어가는 환자도 못 살린 000 당신이 醫師(의사)냐?!” 예전에 어느 지방병원 천막 농성텐트에서 잘못된 誤診(오진)으로 인해 사람을 죽게 했다는 보호자의 絶叫(절규)를 보고 들은 적이 기억난다. 병원 창가에 기대어 서서 보면 모든 사람들이 환자들로만 보인다. 마땅하고도 당연한 논리가 병 고치는 사람이 진정한 의사다. 누구나 병 잘 고치면 존경받고, 병 못 고치면 제 아무리 유명의사도 유명병원도 소용이 없다. 이렇듯 인간의 생명은 가장 尊貴(존귀)하다. 병으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병 잘 고치는 방법이 가장 절실한 것이다. 또 어느 부장판사가 재판에서 밝혔듯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진정한 의사라며 민간요법의 필요성과 病魔(병마)앞에서는 그 어떤 처방이나 치료의 동원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쿨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면허 있는 의사라 할지라도 병 못 고치면 의사가 아니며, 면허가 없는 사람도 병을 고치는 사람이 진정한 의사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라이센스가 중요한 게 아니고 여느 환자에게나 맞는 치료조건을 찾아내 그 환자에게 필요충분조건을 처방전으로 내려 흡족하게 짚어 줘야만 한다. 물론 처방전이나 투약하지 않고 자연선식이나 자연치료요법, 민간요법으로 남은 餘生(여생)을 편안하게 즐긴 사람도 의외로 많다. 자랑이라면 30년이 다 되어가는 쑥뜸 인생이다. 그렇지만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쑥뜸에 대한 깊이 있는 학문으로 접근해 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 시나브로 일어났다. 다만 미리 고백하건데 가장 주변에 미치는 영향중에 뗄 수 없는 게 하나있다. 쑥뜸냄새이다. 혹자는 아주 좋아라 하는 편도 있지만 무슨 담배냄새로 생각해 아주 불쾌하게 惡臭(악취)로 받아들인다. 사실 앞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쑥뜸냄새는 곧 후라보노 효과를 가져와 담배와 달리 고질적인 감기로 고생했던 사람까지 치료효과를 가져온 실험적 사례가 있는데도 말이다. 암튼 괜한 이여기가 길어질 수 있어서 생략하고 근거리 장거리를 불사하고 無煙(무연)無臭(무취) 쑥뜸을 개발해 냈다는 사람을 찾아가 직접 그 효능과 효과를 측량해봤지만 우주의 이치가 양과 음이 존재하듯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건 진리가 아닐까싶다. 단언컨대 無煙(무연)無臭(무취) 쑥뜸의 효과는 거시기하다!!! 어린시절 그렇게나 학문에 전념하라고 成火(성화)이셨던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울 때로 태우고 이제야 철이 드는지 서울 모대학교 대학원에서 晩學(만학)도 로 석사과정을 사회복지학으로 마치고도 타오르는 晩學(만학)의 갈증으로 뭔가 불만족스러워 대체의학 박사과정을 유심히 살펴서 보고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게 되고 궁하면 통하는 게 인생이 아닐까 싶다. 2018년 올해 초 광주 모대학교 대학원 대체의학 통합의학과 박사과정에 잠깐 발을 딛기도 했다. 좀 더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했고 논리를 秩序整然(질서정연)하게 정리해 들어가려면 학문적인 缺陷(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至論(지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김 모 대체의학과장이 중국에서 20년 동안 한의학을 해 온 분이고 중국통으로 배꼽테라피의 大家(대가)였다. 모든 기운이 인간은 배꼽에서 나온다고 해도 過言(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최초로 배꼽테라피를 개발해 내 통합의학의 도시인 장흥과 영광 그리고 고창 등 각 지역에 건너 가 대학생들과 무수히 많은 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고인돌마라톤대회'로 유명한 고창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배꼽호흡테라피와 주로 다리의 뭉친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스포츠 마사지 등 대체요법을 제자들과 함께 선봬이기도 했다. 어느 광고 카피에서 그러했듯이 ‘쑥뜸이 분명히 모든 질병에 다 좋은데 뭐라고 딱 집어 증명해 줄 수가 없고 어떻게 좋다고 표현해 말할 방법이 없네!!’ 그렇게 항상 홀로 고민하다가 아주 慢性病(만성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만나게 되거나 가장 신뢰가 형성이 되는 고질병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입에 거품을 물고 쑥뜸에 마치 미친 사람처럼 매주 확인하고 항상 전화통에 불이 나듯 무료상담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해 주고 있다. 이런 적도 있다. 인터넷에서 쑥뜸이야기 연재 글을 봤노라고 말하며 ‘오늘 눈 먼(?) 돈이 들어온 게 있으니 점심을 함께 하자’는 느닷없는 전화도 一面識(일면식)도 없는 女性(여성)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황당하고 無禮(무례)함을 느껴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마음이기도 해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성격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지나간 적도 있다. 28 ~ 29회에서 언급한 바 있는 강 모법무사는 오늘도 통화를 했다. 아직도 명현현상을 느낀다고 해 지난주부터는 아예 무거운 머리에 백회혈판 쇳덩어리를 하지 말고 머리 훈만 강조했다. 그 뒷말에 이제 쑥뜸이 좋은지 나쁜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매일 습관처럼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인간이란 게 곧 그렇다. 공기와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공기의 어마 무시한 파워를 느낄 사이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 물은 어떠한가?! 급하게 운동을 해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나 격한 운동으로 2% 부족할 때만 찾는 게 물이다. 부모도 매양 중요한 걸 못 느끼는 건 마찬가지이다. 주자십해(朱子十悔)에 보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후에 뉘우친다 不孝父母  死後悔(불효부모 사후회)곧 부모도 공기와 물과 같은 존재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소중한 분들이다. 그런 연유로 부모님께서 돌아가셔봐야 소중함을 깨닫는 이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언필칭 그 법무사에게 용기와 계속 쑥뜸을 하라는 말씀으로 ‘쑥뜸이 분명히 다 좋은데 뭐라고 말할 수가 없네!!’라는 말로 갈음하고 말았다. 앞으로 소박한 꿈이 학문적 체계화이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요즈음 100여일 가까이 전공과 전혀 관계없이 배우고 있는 게 있다. 그것도 주 5일내내 매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속된말로 빡세게 드론을 배우고 있다. 드론에 앳띠 모드가 있는데 그게 쑥뜸요법과 흡사하다. 공기와 바람의 저항을 이겨내야지만 앳띠 모드를 아주 쉽고 편리하게 조정자의 의도대로 조정이 가능해 위험수위를 좁힐 수 있다. 공기와 바람의 저항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 함부로 대하면 그냥 망쳐버리고 만다. 異姓(이성)을 대하듯 스로틀과 로더, 엘리베이터와 에일러론 조작이 부드럽고 조심스러워야만 하고 조장자만의 감각이 살아나야만 한다. 그러고 보니 四方(사방)이 통하면 八方(팔방)인데 사방을 갖고 조작하는 것이 드론이 된다. 쑥뜸요법에는 陰陽五行說(음양오행설)이 존재한다. 어기지로 맞춰 들어가지는 않겠다. 다 느낌의 차이가 존재하니까... 다만 이렇게 좋은 쑥뜸을 뭐라 표현말할 수가 없어 정말 안타깝다. “쑥뜸이 참 몸에 좋은데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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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 http://edaynews.com
1498년 7월13일에 김일손은 권람·남효온 등의 일에 관하여 공초하기를, “노산(魯山)의 숙의(淑儀) 권씨의 노비와 전산(田産)을 권람(權擥)이 다 차지했다.’고 한 것은, 권씨는 바로 권람의 족종(族種)인데도 종 한 사람, 밭 한 이랑조차 나누어 주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신은 그 사람됨을 경박히 여겨서 쓴 것이옵니다.” 1) 단종의 후궁 권씨는 1457년 6월 21일에 백성 김정수의 고변으로 역적이 된 권완의 딸이다. 2) 백성 김정수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데도 세조는 일개 백성의 말만 믿고 단종의 장인 송현수와 권완을 의금부에 즉시 하옥시키고 7월5일에 권완을 능지처사했다. 이러자 숙의 권씨도 노비가 되었다가 1464년 4월18일에 방면되었다.  3)   권람(1416~1465)은 한명회와 함께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1453년 계유정난 때 김종서·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세조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세조가 즉위하자 이조참판에 발탁되고, 1456년 2월에는 이조판서가 되었으며, 3월에 역신(逆臣)들이 가졌던 연안·전주·충주·양주의 토지를 하사받았다. 1457년 2월 난신(亂臣)들의 노비를 하사받았고, 3월에는 김문기·성승 등의 토지를 하사받았다. 권람은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남산 아래에 화려한 집을 소유하였다.  이어서 김일손은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이 졸(卒)하다.’고 쓴 것은, 신이 남효온과 더불어 본래 교분이 없사온데, 다만 신의 스승 김종직(金宗直)이 일찍이 남효온의 재주와 행검을 칭찬하였으므로 들은 바에 따라서 쓴 것이옵니다.”라고 공초했다.    김일손은 남효온과 교분이 두터웠다. 그런데 그는 본래 교분이 없다고 진술했다. 『탁영선생연보』에 의하면 1478년 4월15일에 25세의 성균관 유생 남효온은 소릉(단종의 모친 현덕왕후의 능) 복위 상소를 올렸다. 김일손은 그해 9월에 서울로 돌아가 성균관에 들어갔다. (『탁영선생연보』 p 688) 이윽고 김일손은 18세인 1481년 7월에 남효온과 함께 용문산을 유람하였고, 8월에는 남효온과 함께 원주의 원호를 방문해 사육신의 말을 듣고 「자규사(子規詞)」를 주고받았다. 1482년에 김일손은 남효온 · 홍유손과 함께 수락산에서 지내는 김시습을 만났다. 생육신 김시습은 1456년 6월에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에 묘를 세운 이이다. 김일손은 1486년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1487년 8월 추강 남효온과 함께 파평 남곡의 성담수를 방문하여 10일간 지냈다. 1488년 8월에는 남효온 · 홍유손 등과 함께 청도 운문산을 유람하였고, 9월에 운계정사를 완공했다.  남효온은 1489년 겨울에 경상도 의령에서 박팽년 ·성삼문 · 이개 ·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의 절개를 기록한 『육신전』을 지었다. 1490년 4월에 김일손은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六臣傳)」 초안을 사관(史館)과 『승정원일기』에 의거해 다시 고쳐 짓고 집안에 깊숙이 갈마 두었다. 4) (『탁영선생문집』 p 691) 사진 1  서울 노량진 사육신 공원의 신도비각 사진 2  신도비에 적힌 「육신전」 기록. 신도비 중간에 ‘남추강효온 병자 육신열전’이란 글귀가 있다. 9월에 남효온은 김일손과 함께 삼각산 중흥사에 있는 김시습을 방문하였다. 중흥사는 과거공부를 하던 김시습이 세조즉위 소식을 듣고 똥통에 빠진 뒤 책을 불사르고 떠난 곳이다. 5)    그런데 안타깝게도 1492년 10월에 남효온이 별세했다. 김일손은 부음을 듣고 달려가서 곡을 하였다.  이렇게 김일손은 남효온과 교분이 두터운데도 왜 교분이 없다고 진술한 것일까? 이는 6년 전에 죽은 남효온이 피해가 입을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후전곡을 연주한 이총이 남효온의 사위이니 이총에게 불똥이 안 튀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으리라. 안타깝게도 남효온은 1498년 무오사화에는 잘 넘어갔지만  1504년 갑자사화 때는 1478년에  소릉복위를 상소하였다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했다. 한편 7월13일에야 김일손의 스승 김종직(1431∼1492)의 이름이 실록에 처음 등장한다. 김종직은 아버지 김숙자의 도통을 이어받은 도학의 연원이다. 그런데 그는 1459년 벼슬하기 전인 1457년 10월에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는데, 이 글을 김일손이 사초에 실어 사건이 확대되었다.       사진 3 김종직 선생 생가 안내판 (경남 밀양시) 사진 4  추원재  안내판 사진 5  김종직 동상 (추원재 입구) 사진 6  추원재   이윽고 김일손은 “진사(進士) 권작(權綽)의 일은 이종준(李宗準)에게 듣고 졸(卒)이라 쓰고, 드디어 기사(記事)를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권작은 김일손과 친한 이종준의 장인이다. 권작은 아마도 단종을 위하여 절개를 지켰나 보다.  이어서 김일손은 “문묘(文廟)의 축사(祝史)는 차마 못할 일이 많다는 등의 말은, 신이 헌납(獻納)이 되었을 적에, 동료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되, 자고로 종묘(宗廟)에는 독주(獨主 홀로 있는 신주)가 없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상소하여 소릉(昭陵)의 복구를 청하고 드디어 사초 쓴 것”이라고 말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3일 2번째 기사) 종묘에 문종의 신위만 있고 단종의 모친 현덕왕후의 신위는 없으므로 사간원 연명으로 소릉 복위를 청한 것은 연산군 1년(1495년) 12월30일이었다. 헌납 김일손은 대사간 김극유, 사간 이의무, 정언 한훈 · 이주와 연명으로 소릉의 복위를 헌의(獻議)하였다.    연산군은 이 헌의를 예조에 내려 보냈다. 예조는 “예로부터 종묘에 배위 없는 독주(獨主)가 없는데도 문종은 종묘에서 홀로 제향을 받으니 의리에 온당치 못합니다. 그러나 소릉을 조종에서 폐위시킨 지 이미 오래되어 경솔하게 복위하기가 어려우니 거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연산군일기 1495년 12월 30일) 1) 나중에 이목도 역시 공술하기를, “노산군의 숙의 권씨는 바로 권람의 친족입니다. 그 논밭과 집과 노비를 권람이 다 차지하고 주지 않아서 숙의를 굶주리게 한 까닭으로 신이 일찍부터 권람을 하찮게 보았습니다.” 하였다.( 『연려실기술』에 적혀 있다.)  2) 숙의 권씨는 1454년 1월8일 경복궁 사정전에서 세 명의 단종 비 후보로 뽑혔고, 송현수의 딸이 왕비로 책봉되자 그녀는 숙의(종2품)로 책봉되었다. (지두환, 단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 p 294)    3) 권완의 딸 권중비(權仲非)를 방면하였다. 대개 노산군의 후궁이었기 때문에 일찍이 공신(功臣)에게 내려 주어 계집종[婢]으로 삼았는데, 이 때에 이르러 방면하였다. (세조실록 1464년 4월18일) 4)  남효온은 『육신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래와 같이 사찬(史贊)을 지었다.   태사씨(太史氏)는 말하노라. 누군들 신하가 되지 않겠는가마는 육신(六臣)의 신하됨이여! 누군들 죽지  않을까마는 장하다 육신의 죽음이여!  살아서는  임금 사랑의 신하 도리를 다했고, 죽어서는 임금에게 충성하여 신하된 절개를 세웠으니, 충분(忠憤)은 백일(白日)을 꿰뚫고 의기(義氣)는 추상(秋霜)보다 늠름하다. 백세(百世)의 신하 된 자로 하여금 한 마음으로 임금 섬기는 의리를 알아 절의(節義)를 천금처럼 여기고 목숨을 터럭처럼 여김으로써 인(仁)을 이루고 의(義)를 취하게 하였다. 5) ‘세 사람은 밤새 담소하고 백운대에 등정하고 닷새간 같이 보냈다. 그 때 담론이 모두 없어지고 전해지지 않는다.’ 김일손의 조카 김대유가 꾸민 『탁영선생연보』에 나온다. (이종범, 사림열전 2 순례자의 노래, 아침이슬, 2008, p 146)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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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패션/뷰티
강한빛 · http://edaynews.com
영암군(군수 전동평)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생활하는 부부에게 웨딩사진을 촬영하는 프로그램인 ‘어느 부부의 웨딩’을 기획 · 추진하여 지역사회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가을단풍이 절정에 이른 지난 27일, 영암 청풍원 웨딩홀에서는 시종일관 상기된 표정의 부부 4쌍의 웨딩사진 촬영이 진행되었는데, 참여자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뒤로 말없이 눈물을 훔치는 참여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주위를 숙연케 했다.   ‘어느 부부의 웨딩’은 여러 가지 사정 등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동고동락해온 부부에 웨딩사진을 촬영하고 앨범 및 액자를 제작해줌으로써 부부간 사랑과 정을 확인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자 기획되었으며 특히, 이날 웨딩사진 촬영을 비롯한 전 과정이 자원봉사자 개인과 단체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어 더욱 훈훈한 미담거리를 제공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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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공모전소식
김종영 · http://edaynews.com
전남 나주시(시장 강인규)는 조선시대 최고의 침의(鍼醫)로 꼽히는 ‘허임’(許任)의 생애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마무리 짓고, 이를 활용한 문화관광콘텐츠 육성에 나선다.   시는 지난 20일 시청 이화실에서 강인규 시장, 김선용 시의회의장, 동신대 교수진, 용역 관계자(동신대 산학협력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침구 명의 허임의 역사적 가치 재조명을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고 28일 밝혔다.   ‘허임’은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준과 동시대 인물로 조선 14대 왕 선조부터 16대 인조까지 어의를 지낸 인물로 말년에 자신의 침구 기술이 담긴 ‘침구경험방’을 편찬해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침구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허임의 나주 연고설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해군 2년(1610)에 ‘침의 허임이 전라도 나주 집에 가있다’고 기록돼있다.   7개월간에 걸친 연구용역에서 동신대 산학협력단은 허임의 나주 연고설을 뒷받침할 가계보 및 사적조사, 학술논문 검토를 진행하는 한편, 허임 침구술의 특징과 의의, 나주에서의 활동상 재조명, 허임 전후의 나주의 의약인물 및 의약문화 조사 등을 통한 관광·문화콘텐츠화 활용 방안을 도출했다.   허임 콘텐츠에 대한 구체적 활용 방안으로는 △한방치료분야 나주시 발전계획, 전남도 상위계획 등에 반영추진, △나주읍성권 도시재생뉴딜사업과 연계한 허임기념관 등 체험시설 건립, △한국한의학연구원 전남센터 연계협력 추진, △국내 지자체 및 일본, 중국과의 한방산업 클러스터 구축, △허임기념사업 추진 및 스토리텔링 발굴 등이 제안됐다.   강인규 나주시장은 “신숙주, 최부, 나대용 등 나주를 대표하는 역사 인물 콘텐츠 활용 사업은 오랜 연구와 고증 절차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며, “이번 연구 용역이 좋은 결실을 맺어, 침구명의 허임을 통한 우리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다시금 높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결과물을 토대로 기념관, 전시관 설립, 자료전시, 허임 거리 조성 등 보다 다양한 관광문화콘텐츠 개발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 시가 역점 추진 중인 도시재생뉴딜사업과 허임 콘텐츠를 연계한다면 원도심 재생사업에 있어 더욱 큰 시너지를 얻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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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강대의 · http://edaynews.com
영광 수성 방위와 전란극복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신 순국선열의 위훈을 기리기 위한 ‘제426주년 영광임진수성 추모행사’가 지난 25일 영광 임진수성사에서 봉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기관사회단체장, 55현 후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선조들의 우국충정의 정신을 본받고 향토 사랑의 결의를 다지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영광 임진수성사는 임진왜란 당시 고을의 우국지사들이 자체수비와 병참임무를 수행하여 영광읍성을 지켜낸 곳으로 그 숭고한 희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매년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김준성 군수는 추모사에서 “임진수성사에서 열리는 추모행사가 의향의 고장인 우리 지역의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주민화합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55현 같은 지역의 훌륭한 인물 발굴 및 보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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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광역시는 광주 북구·담양군과 공동으로 12월1일 전남대학교 인문대학에서 ‘풍류남도 나들이’ 사업의 하나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소쇄원, 양산보의 이상’을 주제로 광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에서는 ▲‘철학사상의 실현, 미술사적 관점에서 본 소쇄원’(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동양미술사 이정희 교수) ▲‘양산보의 생애와 교유인물’(광주교대 사회교육과 김덕진 교수) ▲‘양산보의 학문과 사상’(광주대 관광학부 고영진 교수) ▲‘‘소쇄원사실’ 불완전하게 열린 책‘(전남대 철학과 이향준 교수) 등의 발제가 진행된다. 광주시·광주 북구·담양군 공동 주최, 광주문화재단 주관 이어지는 토론에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장진성 교수, 전남대 국문학과 김신중 교수, 광주여대 교양학부 임준성 교수,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김경호 교수가 참여해 소쇄원과 양산보의 가치와 사상을 공유한다. 또 이날 세미나에서는 2016년부터 3년 사업으로 추진해 올해 종료되는 ‘풍류남도 나들이’ 사업의 결과물인 누정총서시리즈가 공개된다. 누정총서시리즈는 총 6권으로 누정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많은 사람들이 누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 시리즈는 소쇄원, 면앙정, 식영정, 송강정, 독수정, 명옥헌, 환벽당, 풍암정, 취가정 등 광주와 담양 인근 누정 9곳에 대한 누정연구자의 누정 소개글, 여행전문가의 누정답사 안내글, 누정의 현판을 번역하는 글 등으로 구성됐다. ‘풍류남도 나들이’ 사업은 우리나라 대표 명승이자 가사문학의 산실인 광주 환벽당과 취가정, 담양 소쇄원과 식영정 등 무등산 자락 누정과 인근 마을을 중심으로 누정·가사문화를 활용한 관광자원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행복생활권 선도사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특히 매주 토요일 누정별 상설프로그램 510여 회 운영으로 3만2000여 명 방문, 매월 보름달 뜨는 시기에 한국가사문학관에서 개최된 명품국악공연 ‘풍류달빛공연’ 17회 6800여 명 관람, 누정문화 콘텐츠 운영과 연계한 관광활성화를 위해 운영한 ‘누정문화기행단’ 34회 790여 명 참여, 누정문화자원을 활용한 주민참여형 축제 ‘누정문화제’ 3회 9000여 명 방문 등의 성과를 거뒀다. 더불어 누정마을 문화공동체 연계를 위해 북구 충효마을과 남면 지실마을 2곳에서는 마을 경관 개선, 주민문화예술교육, 소득창출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광주문화재단은 내년에는 무등산 생태탐방원과 협력해 가사문화자원과 무등산권 명품마을, 지질공원자원을 중심으로 한 체류중심 탐방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 및 도시브랜드이미지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용승 시 관광진흥과장은 “‘소쇄원, 양산보의 이상 학술세미나’를 통해 ‘풍류 남도나들이’의 결과물을 공유한다”며 “앞으로도 누정·가사문화를 활용한 관광자원화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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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맛집
신평강 · http://edaynews.com
‘2018 강진 뿜뿜 막걸리 나눔축제’가 누적방문객 8천여 명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 23일 개막한 막걸리 나눔축제는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개막식과 함께 진행된 미니 콘서트, 스템프투어, 김장 나눔행사, 블랙프라이데이 등 풍성한 행사가 진행됐다.   이틀간의 막걸리 나눔행사에서는 강진지역의 대표 주조장인 병영주조장과, 도암주조장의 고급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강진의 맛을 선사했다. 24일 김장 나눔행사는 군민과 관광객이 함께 김장김치 100박스를 만들어 강진자비원 등 6개 단체에 기부해 그 의미를 더했다.   이번 행사에는 상권활성화사업 등 대규모 공모사업 선정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의 유명 가수들이 강진으로 달려왔다. 축제 첫 날에는 록가수 김경호, 이튿날에는 김종서와 DJ DOC가 축하 공연을 하여 군민들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한편, ‘2018 강진 뿜뿜 막걸리 나눔 축제’는 차별화된 축제진행을 통해 관광1번지 강진의 이미지를 제고했다. 작년에 도로를 통제하고 행사를 진행해 군민 불편을 야기한 점을 바로잡아 강진읍 상가전용주차장을 주무대로 활용하여 교통을 최소화했다. 또, 행사성 예산으로 군비를 충당하는 축제가 아닌 전남도 공모사업비 확보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동순천 서강진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국도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강진읍 상권활성화에 투자되는 대규모 개발사업비가 확보되었으니 지역경제 활성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금번 2018 강진 뿜뿜 막걸리 나눔축제는 상인의식을 향상하고 지역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개최되었으며, 직간접 경제 파급효과는 94백만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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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무엇으로 사는가  나광호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자신에게 묻는다. 시와 수필, 문학평론까지 조작거리다가 소설까지 넘보았기 때문이다. 얕은 문력은 종국적으로 생산한 글에서 향기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실망을 드릴뿐이다. 더 나아가 문단의 품격마저 폄하시키는 무례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한 우물을 파라고 했다. 오래도록 숙성된 묵은지가 웅숭한 깊은 맛을 내듯이 문학 또한 그럴 것이다.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시 창작에 매진을 했다. 퇴고할 때마다 매너리즘에 빠지고 레토릭의 모순에 빠지기도 하였다.    산고 끝에 네 번째의 시집을 발간하게 된다.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지만 조심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盡人事待天命 하는 마음뿐이다. ― <머리말>       - 차    례 -     시인의 말  제1부  끝물 앞에서 공정사회로 가는 길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끝물 앞에서  상사화는 겨울밤에 피었다  소통의 주문  영욕의 그늘에 갈등이 자란다  희망을 주소서!  사명을 다하라  양심  군사부일체  팔자의 근본은 성실이다  국제시장과 변호인  신 장유유서(新 長幼有序)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의미  보수 아이콘으로 바라본 세상 읽기  헬조선, 말이 되는 소리인지  벚꽃 그늘 아래에서  수선화  가로등 혹은 조등  욕심 하나쯤 떼어내고  제2부  기운 구두 뒤굽 천리향  친구의 부음  아름다운 소회  비 오는 날의 서정  홍엽  개기월식  감(感)의 어깃장  인생은 또 하나의 레시피  고통과 고통 사이  기운 구두 뒤굽  생뚱맞다  별이 된 눈물  우주로 떠난 빈자  인생다큐 자연인  터의 보은  나중이란 말  생애(生涯)  봄밤의 소란  몸에 낀 때(이자)  무엇으로 사는가  제3부  오르막 끝에 있는 것들 곰국  부용꽃  철마의 꿈  오르막 끝에 있는 것들  그대 그리고 나  치유  두 손을 꼭 잡아주고  첫사랑이 그림자  아파보니  아미타불 꽃  유월 하늘이여  푸른 하늘 가만히 올려다보면  가장의 무게  입도  왕해국  부지갱이 전설을 먹는다  신 별주부전  나리분지  마음먹기 달렸다  마음 고쳐먹기  제4부  거절이 주는 아픔 나는 누구인가  절물풍경  백문이 불여일견  물수리 일생  연산홍  세월  틀을 깨다  거절이 주는 아픔  저문 가을을 쓸어낸다  여행하기 좋은 때  오만과 편견  문풍지 소리에 긴긴 겨울밤이 섧다  어머니란 말  해갈  외로움  비릿한 건 어디 물뿐이랴  빙하  똬리  기일  지난 겨울밤 이야기  고향집   제5부  그렇게 해 드리지요 뼝대 할미꽃  황사바람 부는 날의 단상 이이제이(以夷制夷)  파도의 함성 갈대의 절규  보라색 비  우정의 불꽃  동행  그렇게 해 드리지요  공원길 교훈 하나  효석문학관  송도삼절로  그리움이 화산처럼 타오르면  화진포의 전설  백화산의 서정  마산봉 호연지기  달이 머물다 간 흔적을 찾아  천관산을 가슴에 품다  가을비에 젖어보는 하루  추일(秋日) 단상  선물  지장계곡  오월 장태산  ● 후기  [2018.11.15 발행. 203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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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맛집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영양교사회(회장 김경화)는 11월26일부터 12월7일까지 2주간 광주 관내 초중고생 3300여 명이 참여하는 ‘함께 배우며 나누는 김장김치 체험교육’을 식생활교육 광주네트워크의 후원을 받아 추진한다.   광주영양교사회는 관내 각 학교에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과 정규 교과시간 등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김장김치 체험 교육을 실시한 후 직접 만든 김치를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나눠 먹게 할 예정이다. 특히 김치 일부는 인근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함으로써 나눔과 배려를 몸소 체험하는 기회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광주영양교사회 김경화 회장은 “이번 김장 김치 체험행사를 계기로 학생들이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바른 식생활의 중요성을 알고, 함께하는 나눔과 배려에 대해 몸소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향후에도 매년 김장철엔 광주 관내 학교에서 채소와 친해지기 교육활동 주간을 운영해 학생들의 바른 식생활 습관 형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영양교사회는 지난 11월24일엔 매년 나눔 실천 차원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던 ‘애일의 집’에서 영양교사들이 손수 김장 김치를 담가 전달했다. 광주영양교사회는 ‘애일의 집’뿐만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와 노인타운 등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사회 취약 계층을 직접 찾아가 식생활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 지역사회와 연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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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김세곤 · http://edaynews.com
이제 에르미타시 박물관 투어 마지막인 램브란트(1606∼1669)방이다 (254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부터 보았다. 1634년 작품인데 알렉산드르 1세가 1814년에 구입한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의 컬렉션이다. 사진 1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그런데 그림은 루벤스와 사뭇 다르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비추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실신 상태로 두 여인의 부축을 받고 있다. 어떤 종교사학자는 이것이  화려한 루벤스와 수수한 렘브란트의 차이이고, 카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1)  다음으로 본 그림은 ‘플로라 옷차림을 한 사스키아’이다. 1634년 작품인데 렘브란트는 이 해에 사스키아와 결혼했다. 2) 렘브란트는 사스키아를 제피로스(서풍의 신)의 부인 플로라(꽃의 여신)로 그렸다. 그녀의 머리는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꽃으로 치장한 지팡이를 들고 있어 마치 봄의 여신 같다. 옷의 우아한 자수는 동양풍(일본풍)으로 화려하며 얼굴은 소녀같이 붉다. 3) 사진 2  플로라 옷차림을 한 사스키아 한편 렘브란트는 1636년에 그린 ‘선술집의 방탕아’(일명 ‘돌아온 탕자의 옷을 입고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에서 자신을 묘사했다.  그림은 술집에서 청녀들과 놀아나며 유산을 다 탕진한 탕자를 연상케 한다.  안타깝게도 사스키아는 1641년에 아들 티투스를 낳은 후 1642년에 죽었다. 이때부터 렘브란트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사진 3 선술집의 방탕아 (독일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이어서 ‘다나에’를 보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에는 아르고스 국왕 아크리시우스의 딸이다. 아크리시우스는 손자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다나에를 청동 탑에 가둔다. 그런데 다나에를 보고 사랑에 빠진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하여 찾아오고, 그녀는 페르세우스를 낳는다. 예언은 맞았다. 페르세우스가 창던지기 대회에서 던진 창이 우연히 아크리시우스를 꿰뚫는다.   이 그림은 다나에와 제우스가 만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제우스는 황금빛 햇살로 다나에의 방에 스며든다. 그런데 나체의 다나에는 오른 손을 들어 황금 햇살을 맞이하지만 그리 관능적이지는 않다. 4) 주목할 것은 다나에의 머리위에 있는 에로스의 동생 안테로스이다. 양손이 묶인 채 울고 있는 안테로스는 응답 없는 사랑의 상징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그림의 주제를 ‘아브라함을 기다리는 사라’로 보기도 한다.     사진 4. 다나에 (1636년 작품)  한편 ‘다나에’ 그림은 수난을 당했다. 1985년 6월15일에 한 남자가 그림에 염산을 뿌리고 칼로 두 번 난도질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나에의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는데 12년간이나 복원작업을 하였다. 이후 박물관 측은 물이나 액체를 반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이윽고 ‘돌아온 탕자’ 그림 앞으로 가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천사와 늙은이가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여호와에게 제물로 드리는 장면일 줄이야. 5) 사진 5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다. (1635년 작품) 렘브란트는 구약성서에 충실하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칼로 이사악을 막 내려치려는 찰나에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손을 잡는다. 칼은 떨어지고 천사의 소리가 들린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도다.”(창세기 22장 9-13절) 아브라함은 행동하는 믿음이었다.(야고보서 2장). 렘브란트는 역시 영혼을 비추는 빛의 화가답다. 빛이 이사악의 알몸에 집중되어 있다. 1) 패트릭 콜린슨 지음 이종인 옮김, 종교개혁, 을유문화사, 2005, p 89 2) 사스키아는 아버지가 시장을 지낸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다. 3) 당시 네델란드는 일본과 교역을 하고 있었다. 나가사키에는 네델란드 상관(商館) 데지마가 있었다. 1602년에 설립된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직원 하멜 일행도 1653년에 제주도에 표류하여 13년간 조선에서 지내다가 1666년에 나가사키로 탈출했다.  하멜은 1668년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하멜보고서』를 출간했다.   4) 다나에 그림은 1656년에 렘브란트가 파산선고를 당했을 때 작성된 재산목록에 들어있을 정도로 렘브란트가 아꼈다.     5) 아브라함은 100살, 사라는 91세에 이사악을 낳았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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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강대의 · http://edaynews.com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분야의 최신 기술동향을 지역에 공유하고, 연구개발 및 기업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대구시-SKT IoT 포럼’이 대구시와 SKT 공동 주최, 경북대학교 주관으로 개최된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기술과 서비스는 모든 사물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학습시키는 지능형 정보기술 및 서비스로, 스마트워치, 스마트홈, 스마트헬스케어, 스마트가전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러한 IoT 기술은 향후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기술로 평가*받고 있으며, 대구시도 중요성을 인식하여 관련 기술의 보급 및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대구시는 2017년부터 경북대 첨단정보통신융합산업기술원(원장 김현덕)에 ‘IoT 아카데미’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주요 사업은 전문인력 양성, 서비스 환경 구축, 신기술 보급과 확산으로, 지금까지 양성된 인력 규모는 5,000여명이다.   이번 포럼은 ‘IoT 아카데미’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시민들에게도 IoT 관련 최신 기술동향을 소개하여 이해도를 높이고, 기업인들에게는 비즈니스 모델 창출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시장 개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본 포럼에서는 ‘What is Next? - AI, BLOCKCHAIN, NEXT MEDIA’를 주제로 AI와 블록체인 기술기반의 새로운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을 소개하고,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조건과 새로운 미디어 트렌드에 대한 전문가 강연이 이어진다. 예비창업자, 기업인, 학생 등 관심 있는 시민들은 누구나 무료로 참석할 수 있는 이번 행사의 참가신청은 온오프믹스 홈페이지(www.onoffmix.com)를 통하여 온라인으로 접수 중이며, 문의사항은 전화(053-214-1767) 또는 이메일(iot@iact.or.kr)로 안내받을 수 있다. 대구시 이승호 경제부시장은 “대구시는 AI, 블록체인 등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에 대비하기 위하여 미래형자동차, 물, 의료, 에너지, 로봇과 함께 IoT를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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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광역시 23일 시청 13층 도시디자인 자문관실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불법 주정차 집중단속을 위한 교통사고 줄이기 관계기관 협업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는 최근 북구 초등학교 인근에서 발생한 수학여행 전세버스 교통사고와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회의에서 광주시, 자치구, 경찰청, 교육청은 26일부터 12월10일까지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실시하는 초등학교 주변에 대한 불법 주정차 차량 합동단속을 집중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이번 단속에서는 어린이 보호구역 내 ▲불법 주정차 견인단속 ▲과속 등 교통법규 위반 단속 ▲야간 사업용 차량의 차고지이탈 밤샘주차 단속 ▲통학차량 안전띠 착용 ▲보호자 탑승 등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중점 단속할 방침이다. 더불어 이 기간 초등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등하교 시 차량 이용을 자제하고 어린이 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및 교차로 부근 정차 금지 등 주정차 질서 확립을 위한 캠페인을 병행한다. 김준영 시 교통건설국장은 “횡단보도, 교차로 등 주정차 금지구간 내 교통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2022년까지 관내 모든 초등학교에 불법 주정차 및 과속단속 CCTV를 설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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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23일 오전 국회의사당 본관 귀빈실에서 1천500여 년 전 고대 왕국 ‘마한’의 실체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영산강유역 마한사회의 여명과 성립’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고고학계·고대사학계 연구자, 지역문화재연구원, 지방자치단체 담당자 등 총 100여 명이 참가했다.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장막에 가려져 있던 마한 문화의 독창성과 교류사를 집중 밝혀냈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전남지역 마한 소국들은 적잖게 존재했지만 아직도 그 정확한 수뿐만 아니라 각 소국의 명칭과 위치,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   백제가 성장하면서 마한 소국은 대부분 병합됐으나, 영산강유역의 마한 세력은 6세기 초반까지 독자적으로 유지됐다. 특히 옹관고분, 해양교류 등 타 지역과 다른 문화양상을 보이는 독특한 지역이었다.   마한과 관련한 문헌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연구자들이 연구를 해왔지만, 그 실체를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따라 전라남도는 그동안 ‘전남지역 마한 소국과 백제(2012년)’, ‘전남지역 마한 제국의 사회성격과 백제(2013년)’, ‘마한 분구묘의 기원과 발전(2015년)’, ‘동북아시아에서 본 마한 토기(2016년)’, 마한의 마을과 생활(2017년) 등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또한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를 대상으로 마한문화 교육 방향을 제시한 ‘역사교사 집중강좌’, 석·박사 교육 과정의 ‘마한 연구인력 집중 양성’, 전문 연구자가 참여한 ‘영산강유역 마한문화권 설정 정책세미나’를 열어 큰 호응을 받았다.   올해는 마한 왕국의 형성 과정, 성격,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문헌 기록과 발굴조사 성과를 종합하고, 비교 검토함으로써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강봉룡 목포대학교 교수의 ‘영산강유역 마한사회의 성격과 전망’ 특별강연을 시작으로, 김진영 문화발전연구소장의 ‘영산강유역 마한사회의 형성과 성립과정, 이정호 동신대학교 교수의 ‘영산강유역 마한사회의 묘제로 본 토호세력의 성격’, 이영철 대한문화재연구원장의 ‘영산강유역 마한사회의 취락으로 본 토호세력의 성격’, 서현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의 ‘영산강유역 마한사회의 물질문화의 유통과 교류’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종합토론에서는 김승옥 전북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발표자와 토론자, 지역 연구자 등이 모두 참여해 학술대회 내용뿐만 아니라 전남지역 마한 문화 정립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열띤 토의를 벌였다.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학술대회 개회사에서 “문화유산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문화·관광·교육자원으로 활용할 좋은 기회”라며 “전문가가 제안해준 의견 하나 하나 귀담아 듣고 정책에 반영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지역 공약에 영산강유역 고대문화권 개발 사업이 포함돼 지역 문화계에서 기대가 크다. 윤영일 국회의원은 고대문화 연구와 조사뿐 아니라 이를 활용한 개발 사업의 법적 토대가 되는 ‘고대역사문화권 연구․조사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앞으로 전라남도는 문화유산의 참된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착실히 준비해나갈 계획이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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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광역시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국제광산업전시회가 독일·미국 등 15개국 107명 해외바이어가 참여한 가운데 2117억원의 수출상담과 354억원의 수출계약 성과를 거두고 21일 폐막했다. 20일부터 이틀간 열린 올해 행사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광융합산업과 연계해 미래 제품의 수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참가한 대기업 LG이노텍의 EP LED와 한국알프스가 데이터센터용 글라스 렌즈 등 미래기술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또한 IoT 광융합관, 광학 및 OLED관, LED융합조명관, AR‧VR 3D체험 홍보관, 한국광기술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술이전 기업 제품, 초정밀 레이저 접합공정기술, 수냉식 LED집어등, 피부미용 마스크 등 117개 업체․기관의 업그레이드 된 신제품이 출품돼 광융합 관련 종사자와 참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AR체험관, VR체험관, 3D홍보관, LED조명식물 키우기 체험관 등 다채로운 광융합산업 체험공간은 참관객들이 광융합산업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는 소통의 장이 됐다. 이번 전시회에 새롭게 구성된 취업홍보관은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활력을 더했다. 해외바이어 초청 수출상담회에서는 독일, 미국, 캐나다,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남미를 비롯한 15개국에서 광융합 관련 바이어 107명이 참가해 고출력 LED투광등, 주유소용 LED고천장등, 태양광세척기, OLED조명, 광통신, 광센서, 광학렌즈, 광의료기기 등 191건, 2117억원의 수출상담과 12건, 354억의 수출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부대행사로 열린 4차 산업혁명 시대 대응 전략 포럼, 빅데이터로 보는 미래 등을 주제로 다음 소프트(Daum Soft) 송길영 부사장 강연 등은 산학연 관계자와 관람객의 시선을 모았다 광주시 관계자는 “이번 국제 광산업전시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 속에 광융합산업의 흐름을 확인하고 미래 먹거리산업이 나갈 방향을 모색한 뜻깊은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지역 기업의 판로개척과 글로벌마케팅 기회를 제공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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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김종영 · http://edaynews.com
영광군(군수 김준성)은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2일간 영광 국제마음훈련원에서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 역량강화를 위한 ‘2018 문화관광해설사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번 워크숍은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들의 역량강화와 사기진작을 위해 마련한 자리로 전문가 특강, 국제마음훈련원 힐링 프로그램 등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해설사들 간의 현장정보 공유 및 관광코스 개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도 가졌으며 해설사들의 전문지식이 관광객들에게 더욱 잘 전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아이스브레이킹 및 스팟기법’과 ‘감성소통 응대 서비스 실무’ 특강은 해설사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 회장은 “앞으로도 영광군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시선과 발길을 사로잡는 유익하고 행복한 해설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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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신평강 · http://edaynews.com
 강진군 고려청자박물관은 오는 28일 오후 4시, 강진군 아트홀에서 ‘청자, 디자인에 기능을 더하다’라는 주제로 2018 민‧관 협업 생활자기 신제품 전시회 개막식을 개최한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2018년 한 해 동안 고려청자박물관과 강진지역 민간요들이 협업하여 개발한 청자 25종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회는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며, 민간요의 다양한 아이디어에 고려청자박물관 관요의 전문성을 더한 다양한 청자 제품과 더불어, 디자인 업체 용역으로 개발한 특화디자인 제품과 경량청자 등의 관요에서 개발한 청자도 선보인다.  또, 중소벤처기업부의 풀뿌리기업육성사업 ‘헬스케어 생활도자 개발 및 지역 도자산업 명품화’ 공모사업을 2년째 추진 중인 고려청자연구소의 헬스케어 기능성 청자 5종도 선보일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고려청자박물관과 강진지역 민간요가 2018년 한 해 동안 협업하여 개발한 청자 신제품 전시회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며, 현대적인 디자인에 기능성을 더한 우리 강진청자가 많은 분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6일간 강진군 아트홀 1층 화랑에서 열린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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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광역시는 21일 오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정부 관계부처, 국회, 지자체, 제작사와 함께 수소버스 시범사업 MOU를 체결하고 내년 수소버스 시범사업의 성공적인 추진과 향후 수소버스 보급 확산을 위해 상호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이번 수소 시내버스 시범사업은 환경부에서 미세먼지 등 도시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2019년부터 2년간 전국 6곳의 도시 시내버스 노선에 수소버스 30대를 투입하는 사업으로, 지자체별로 수소버스 시범사업 참여 신청서를 제출받은 후 수소 충전 기반시설 여건과 지자체의 중장기 수소버스 보급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선정했다. 시범도시로는 서울, 광주, 울산, 서산, 아산, 창원 등 도시 6곳이 선정되고, 세부적으로는 서울 7대, 광주 6대, 울산 3대, 서산 5대, 아산 4대, 창원 5대씩 각각 투입될 계획이다. 광주시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보급한 207대의 수소차와 전국에서 두번째로 많은 수소 충전소를 운영하는 등 타 시도보다 앞선 수소 인프라를 강점으로 시범도시로 선정됐고, 오는 2030년까지 시내버스 150대를 수소버스로 전환할 계획이다. 수소 자동차는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와 물을 생산할 때 외부의 공기를 유입하는 과정에서 필터를 통화하는 공기 정화작용을 통해 미세먼지까지 잡아 줄 수 있어, 수소버스 한 대가 디젤버스 40대 분량의 배출가스 정화가 가능해 광주 도심 대기 환경 개선에 많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광주시는 수소자동차와 수소버스의 원활한 보급을 위한 최우선 해결과제를 충전인프라 확충으로 보고, 수소 충전소 추가 구축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광산에 진곡충전소와 동곡충전소를 운영중이고, 공사 중인 서구 상무CNG에 벽진충전소, 남구 김치타운에 임암충전소를 19년 상반기에 준공 예정이다. 광주시는 이같은 수소차 보급 확대와 충전인프라 확충을 통해 연관 산업을 유치함으로써 광주의 미래 먹거리 산업 발굴에도 박차를 가해 나갈 계획이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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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김세곤 · http://edaynews.com
윤필상 · 유자광 등은 빈청에서 김일손에 대한 문초를  계속했다. 김일손은 사초에 기록된 권람 · 남효온 등의 일에 관하여 공초하였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3일  2번째 기사) 김일손은 공초하기를, "순(舜)임금의 아비 고수(瞽瞍)와 우(禹)임금의 아비 곤(鯀)이 모두 악덕(惡德)이 있었는데, 우(虞)·하(夏)의 사관(史官)이 책자에 직서(直書)를 하였으며, 또 공자(孔子)께서 『춘추(春秋)』를 찬수하시는데 오직 정공(定公)·애공(哀公)에 한하여 미사(微事)가 많았습니다. 세조대왕은 신이 섬기던 임금이 아니시므로 당시의 지나친 처사를 기휘(忌諱)하지 않고 모두 썼습니다.” 중국 신화시대에 순임금 (BC 2255∼2208 재위)은 요임금으로부터 임금 자리를 물려받은 이다. 순의 아버지 고수(瞽瞍)는 장님이었는데 완고하였다. 그는 순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재혼하여 아들 상을 얻었다. 그런데 고수는 후처의 꾐에 빠져 그녀의 말만 믿고 순을 괴롭혔다. 그렇지만 순은 효도와 우애를 다했다. 이 소문이 요임금에게도 들어갔다. 요임금이 임금이 된 지 70년이 되자 그는 후계자를 물색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요임금에게 아뢰었다. “장가도 안 든 사람이 민간에 있사온데 우순(虞舜)이란 사람입니다.” 요임금은 “나도 이야기는 들었소. 어떤 사람이요?”라고 물었다. “장님의 자식으로 아비는 어리석고, 어미는 간사하며, 아우인 상은 오만합니다. 그러나 효로써 잘 화해시키고 성심껏 다스림으로써 간악함을 크게 감화시켰다 합니다.” 이에 요임금은 “내 그를 시험하리라. 그에게 딸들을 주고 두 딸을 통하여 그의 행동을 살펴보리라.”하였다.  사진 17-1 우제묘(虞帝廟) (중국 계림 우산(虞山)공원에 있다) 사진 17-2 우제묘 안내문 요임금은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 순의 품성을 관찰하게 하였다. 그런데 순의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이복동생의 학대는 더욱 심해져서 마침내 순을 죽이려 하였다. 하루는 순의 아버지가 순에게 창고의 지붕을 고치도록 하였다. 순이 지붕위로 올라가자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이복동생은 합세하여 사다리를 치워버리고는 밑에서 불을 질렀다. 이런 일을 예상한 순은 미리 준비해간 두 개의 삿갓을 어깨에 묶고는 날듯이 내려와 위기를 모면했다. 순을 죽이려는 가족들의 시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순에게 우물을 파게 했다. 위험을 눈치 챈 순은 우물을 파면서 옆으로 빠지는 통로를 미리 파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순이 우물을 파고 있을 때 순의 가족들은 돌로 우물을 메워버렸다. 이윽고 이복동생 상은 ‘두 형수들에게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순의 집에 들어섰다. 그랬더니 순이 태연하게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 아닌가. 사진 17-3 우제묘에 있는 아황전 사진 17-4 우제묘에 있는 여영전 두 딸을 통해 순의 행실을 알게 된 요임금은 마침내 순을 요직에 앉혔다. 순의 나이 30세였다. 이후 순은 30년간 요직을 맡았고, 요임금이 돌아가시자 순은 61세에 즉위하여 39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사진 17-5  우임금 영정 사진 17-6 우제묘 전경 사진 17-7 우제묘 입구 이런 일을 우 나라의 사관들은 순임금의 아비 고수에 대하여 미화하지 않고 직서(直書)하였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나온다.  우임금(BC 2205-2198 재위)은 순임금의 뒤를 이은 하나라(BC 2205-1766)의 태조로 곤의 아들이었다. 곤은 순임금 밑에서  9년 동안 홍수를 다스렸지만 성공하지 못하여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순임금은 곤의 아들 우에게 사공(司空)의 벼슬을 내리고 치수를 명했다. 이 날은 그가 혼인한 지 4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 후 우는 13년간 물길을 다스리는 일을 하면서 세 번이나 집을 거쳐 갔으나  한 번도 집에 들르지 않고 오직 물을 다스리는 일에 몰두했다. 그리하여 우는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았고 이어서 그의 아들 계가 왕위를 물려받아 이때부터 왕위 세습제가 이루어졌다. 1) 순 · 우 임금은 중국의 성군(聖君)이었다. 그렇지만 사관은 성군의 못된 아비에 대하여 사관은 직서 했다. 그만큼 사관의 평(評)은 냉엄했다.  이어서 김일손은 “또 공자(孔子)께서 『춘추(春秋)』를 찬수하시는데 오직 정공(定公)·애공(哀公)에 한하여 미사(微事)가 많았습니다.”라고 공초하였다.   『춘추』는 공자(BC 551~479)가 편찬한 노나라의 역사책이다.  『춘추』에는 노나라 은공 원년(BC 722)에서 애공 16년(BC 477)까지의 246년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런데 정공(BC 509∼495)와 애공(BC 494∼477)의 역사에는 미사(微事)가 많았다. 미사란 미언(微言)으로 쓴 일이다. 공자는 기록 의도가 거의 드러나 있지 않은 것처럼 역사를 썼다. 그러면서 행간에 감추어진 기록의 의도를 나타냈다. 이것이 미언대의(微言大義)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애공 4년 봄, 주나라 역법으로 2월 경술일 도적이 제나라의 제후 신을 살해했다.” 이 구절만 읽으면 산적 같은 도적이 제나라 제후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좌구명이 지은 『춘추좌씨전』을 읽으면 제나라 제후는 친척인 공족에 의해 살해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나라 제후는  무늬만 제후이지 실질적인 제후가 아니었기에 공자는 ‘살해당했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렇듯  공자는 개개의 사실에 대하여 단호한 평가를 내렸다. 이런 엄정한 필법을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고 한다. 이어서 김일손은 “세조대왕(1417∼1468 재위 1455∼1468)은 신이 섬기던 임금이 아니시므로 당시의 지나친 처사를 꺼리거나 두려워서 피하지 않고(忌諱) 모두 썼다고 진술했다.   1) 그런데 우임금의 아비 곤의 악덕 관련 자료는 찾을 길이 없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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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손재민 · http://www.itfocus.kr
  TKS Exhibition Services Ltd가 주최하고 중국 문화관광부와 홍콩관광청이 지원하는 ITE Hong Kong 2019(2019 홍콩국제관광박람회/International Travel Expo Hong Kong), 제33회 ITE (레저), 제14회 ITE MICE는 2019년 6월 13일~16일까지 홍콩 컨벤션 전시 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 6월 14일~ 17일까지 홍콩 컨센벤센터에서 개최된 2018 ITE Hong Kong 행사에는  약 20개의 스탠드에 걸쳐 약 2000명의 바이어와 무역 분야 종사자들들이 참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행사는 웨강아오 대만구(Greater Bay Area) 경제권을 관할하는 홍콩 유일의 여행 박람회였다.   웨강아오 대만구는 홍콩, 마카오를 비롯해 중국의 제3, 4의 도시인 광저우, 선전 등 광둥성 9개 도시를 포함하는 경제권을 지칭한다. 이 경제권은 GDP 합계가 1조6900억달러에 달하고 6800만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주강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강주아오대교 홍콩까지 이어지는 고속철도 확장으로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세계적 수준의 도시 클러스터인 웨강아오 대만구는 더욱 강력하게 연결, 통합되었다. 따라서 ITE 행사는 웨강아오 대만구와 중국의 다른 지역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커버할 수 있게 됐다.   UNWTO(세계관광지표)에 따르면 홍콩의 관광객 소비 시장은 세계 10위, 아시아 3위 규모를 자랑한다. 2017년 아웃바운드 관광객 수는 일본 223만명, 대만 154만명, 한국 66만명에 이르렀으며 총 아웃바운드 지출액은 5.8% 증가한 255억달러에 달했다.   이틀 동안의 ITE 행사 거래일(사전 등록자만 입장 가능) 동안 1만2640명의 바이어와 방문객이 찾아왔고(홍콩 73%, 중국 21%, 기타 6%)(6580개의 여행 업체, 2567 MICE/ 기업) 666명의 참여 업체(해외 및 중국 87%)들이 참가했으며 한국관을 비롯한 30곳의 공식 전시장이 설치됐다.   이와는 별도로 이틀 동안 열린 참관일에는 9만명 이상 되는 방문객 중 84%가 개별 여행객이었다. 이들은 높은 교육 수준을 보유하고 있고(42% 대졸, 34% 고졸 이상) 영어를 구사하며 1년에 휴가를 몇 차례 떠난다(13%는 6번 이상, 44%는 3~5회, 40%는 1~2회). 또한 64%는 박람회장에서 예약하는 데 관심을 나타냈고 60%는 공급업체와 직접 온라인 예약을 하고 싶어했으며 19%는 여행지에서 현지 관광을 희망했다.   ITE 행사는 무역과 전문직을 위한 30개 이상의 세미나, 이벤트, 포럼을 개최하고 개별여행객을 위해 100개 이상의 여행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테마 여행을 강조한다. TKS Exhibition Services의 B2B 프로그램과 B2C 프로그램은 사전 e-뉴스레터와 온라인 광고, 비즈니스 매칭, 설명회 주선, 스폰서십 등과 더불어 업체들이 세미나를 열수 있도록 돕는다.[자료제공:뉴스와이어](ITFOCUS ⓒ www.itfocus.kr)  이 뉴스는 아이티포커스(www.itfocus.kr) 공유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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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강연
강대의 · http://edaynews.com
지난 20일 강진군이 주최하고 다산연구소·황주홍의원실에서 주관한‘다산으로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이승옥 강진군수,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황주홍 국회의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윤동욱 다산동호회 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 개최되었다.     이번 세미나는 다산 선생의 해배 200주년과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을 총 정리하는 차원에서 다산정신의 현대적 계승 발전을 위해 다산전문가 3명이 ‘다산시대의 고전, 우리시대의 다산, 다산학 르네상스를 위한 제언, 다산으로 여는 문화 콘텐츠의 미래’ 강의와 토의 및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해배 200주년과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 역사적 의미에서 다산 정신과 사상은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진군은 이번 세미나를 통해 다산 선생의 문화적 업적을 문화콘텐츠로 계승 발전시켜 다산의 대중화에 힘쓸 계획이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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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김명주 · http://edaynews.com
지난 18일 전북 고창군 공설운동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4000여명의 선수들과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제16회 고창고인돌마라톤대회'를 오전 10시부터 10분간격으로 구간종목에 따라 건강코스(5km), 단축코스(10km), 하프코스, 풀코스로 나누어서 개최됐다. 전국 마라톤대회로 급부상한 고창고인돌마라톤대회는 70세 이상 참가자들이 노익장을 과시했으며 단체 참가팀도 정읍시육상연맹을 비롯해 30 여 단체가 참가해 전국규모의 명성을 얻은 대회임을 거듭 확인 시켰다.  남부대 통합의료학과 배꼽호흡테라피 동아리회원들은 마라톤 선수들에게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배꼽호흡테라피와 주로 다리의 뭉친근육을 이완시켜주는 스포츠 마사지 등 대체요법 봉사활동을 하였으며 기다리는 선수들에게 따스한 차 한잔을 주면서 갈증을 풀어주고 몸을 녹이며 선수들을 격려하는 포근하고 건강한 마음을 전했다. 올해로 두 번째 참가하는 배꼽호흡테라피 동아리회원들은 '잠재된 재능과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현장체험활동이 교육적학습의 자극이 되었으며 더불어 재능기부등의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즐겁고 선한 마음으로 채워지는 의료인으로 갖추어야 할 인성교육 함양시키는 좋은 기회였다'고 강조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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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남도의회 민병대 의원(여수3·민주당)이 대표발의 한 ‘수서발 고속철도(SRT) 전라선 운행 및 코레일 고속철도(KTX) 전라선 증편 촉구 결의안’이 20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날 채택된 결의안은 전라선 지역의 공동번영 및 전라선 이용객의 편의 증진을 위해 SRT 운행 및 용산발 KTX를 즉시 증편해 주라는 내용으로 대통령비서실, 국회, 국토교통부 등에 송부할 예정이다. 건의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2013년 SRT 노선 허가와 함께 경부선과 호남선의 KTX는 전폭적으로 증편되었으나 전라선은 왕복 8회 증편에 그쳤고, SRT는 운행조차 되지 않고 있다. 또한, 편도기준으로 하루 평균 KTX와 SRT를 합산한 고속철도 운행현황은 경부선 101회, 호남선 50회씩 운행되는 반면 전라선은 KTX만 15회 운행되고 있을 뿐이다. 민병대 의원은 “전라선 주변에는 여수 해양공원과 엑스포단지, 순천만국가정원, 전주한옥마을 등 관광명소들이 위치하고 있어 매년 3,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갈 뿐만 아니라, 인구와 산업이 집중되어 있어 고속철도가 증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0대 의회에서도 위와 같은 내용으로 결의안을 채택하였는데도 현재까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국정과제 실천을 위해서도 수서발 고속철도의 전라선 운행과 용산발 코레일 고속철도 전라선은 반드시 증편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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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김세곤 · http://edaynews.com
1566년 8월, 인구 10만 명의 상업도시 안트베르펜 밖 벌판에 2만5천명의 군중들이 칼뱅파의 노천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성상(聖像)파괴 난동’을 일으켰다. 이 난동은 8월10일 서부 프랑드르 지방에서 시작하여 2주일도 안 되어 17개 지방에 퍼졌다. 8월20일과 21일 사이엔  안트베르펜의 30개 교회가 약탈당하고 8월22일에는 헨트가 약탈당했다. 성상(聖像)이 파괴되고 성화(聖畵)가 불태워졌다. 이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대중운동이었다. 1) 성상 파괴가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프랑드르 지방을 통치하고 있는 스페인 왕 펠리페 2세(1527~1598)는 1567년에 강력 진압을 통하여 공포정치를 시작했다.  펠리페 2세의 공포정치는 열렬한 칼뱅주의자인 루벤스의 아버지 얀 루벤스에게 영향을 미쳤다. 재판관인 얀 루벤스는 1568년에 스페인이 지배하는 안트베르펜을 떠나 종교적 관용이 보장된 독일 쾰른으로 이사 했다.  여기에서 얀 루벤스는 오라녜 공 빌렘 1세의 부인인 작센의 안나 공주의 법률 고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얀 루벤스는 안나 공주의 연인이 되었는데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아내 마리의 중재로 얀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루벤스 가족은 독일 지겐에 유배되었다. 1574년에 지겐에서 형 필립이 태어났고 1577년에는 파울 루벤스가 태어났다. 유배가 끝나고 쾰른에 돌아온 아버지는 1587년에 죽었다. 이러자  카톨릭에 대한 신념을 간직하고 있었던 어머니는 두 아들과 함께  다시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왔다. 1588년에 프랑드르 북부 지역 7개주가 스페인에 대하여 독립을 선언했다. 그런데 안트베르펜을 위시한 남부 플랑드르 지역은 펠리페 2세에 의해 다시 카톨릭 지역이 되었고 반종교개혁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안트베르펜의 지역 유지들은 교회에 성상 및 성화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는 1563년에 채택된  트리엔트 공의회의 종교미술에 대한 결의문에 고무된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성인들의 성상들은 교회에서 반드시 형상화되고 보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합당한 존경심이 주어져야 한다. 2) 루벤스는 로마에 가서 미술수업을 하고 1609년에 안트베르펜에 돌아왔다. 그는 프랑드르 섭정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종교화 제작에 분주했다.  루벤스는 1610년에 산타 발부르가 교회의 세 폭 제단화 ‘십자가를 세움’을 그렸다. 1612년에는 병기제조업자 조합이 의뢰한 노트르담 대성당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그렸고, 양옆의 ‘마리아의 방문’과 ‘성전에 아기 예수의 봉헌’은 1614년에 완성했다.    사진 13-1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사진 13-2 마리아의 방문 사진 13-3 성전에 아기 예수의 봉헌 1619년에 루벤스는 예수회 성당의 제단 장식을 위해 세 폭 제단화와 39점의 천장화를 주문받았다. 이 중 유명한 그림이 ‘성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이다. 3) 그는 1620년까지 무려 63점이나 되는 종교화를 그렸다.  그의 공방에는 수백 명의 견습생이 지원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는데, 안톤  반다이크도 루벤스 공방에서 일했다.  4)   사진 13-4 성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의 기적 한마디로 루벤스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었다.5) 바로크 미술은 반종교개혁의 열망과 기대에 부응했다. 신자들의 시선을 압도할 만한 극적이고 화려하면서 교훈적인 장면을 연출하여 카톨릭 교리를 강건히 하였고, 미술 그 자체가 신앙고백이었다.  루벤스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를 실신하는 나약한 모습이 아닌, 슬픔을 극복한 의연한 모습으로 그렸다. 요컨대  루벤스는 카톨릭 옹호자였다.       1) 패트릭 콜린스 지음 · 이종인 옮김, 종교개혁, 을유문화사,  2004,    p 240-241 2) 김덕모 블로그, 미술사 박물관, 트리엔트 공의회 · 종교개혁과 바로크 미술(10) 3) 다니엘라 타라브라 지음 최병진 옮김, 루벤스, 마로니에 북스, 2009, p 72-73   4) 한편 루벤스의 종교화는 판화로 만들어져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5) 바로크(Baroque)는 ‘일그러진 진주’ 또는 ‘불규칙하게 생긴 진주’라는 뜻이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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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강대의 · http://edaynews.com
桑田(상전)そうでん 뽕밭에서, 촌상(村上), 무라까미 어느 호젓한 시골 언덕위에서, タナカ (Tanaka(田中), 다나카), 밭 한 가운데에서, なかむら 중촌[中村](나카무라) やまもと [山もと·山下], 木下(기노시타) 나무 아래서, 水上(미나가와) -> 물위에서, 川邊 (가와베) -> 냇가 옆에서.  村井 (무라이) -> 동네 우물가에서,  大竹 (오오다케) -> 큰대나무에서, 麥田 (무기타) -> 보리밭에서, 小島 (고지마) -> 작은섬에서,  市場(이찌바) -> 시장에서 內海(우츠미) -> 안쪽바다에서,  高柳 (다카야끼) -> 높은 버드나무에서, 山野(야마노) ->야마우치, 中曽根康弘나카소네 야스히로... (미시비시 삼릉1)(三菱) 창업자)성씨 산내 등등 거시기한 장소로 일본사람들이 姓氏(성씨)를 만든 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수히 많다. 산이나 뽕밭, 들, 강가, 바다, 숲속 등 장소도 참 다양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민족도 지구상에 그리 흔치 않다. 일본인들을 경제동물이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凌辱(능욕)적이고 치욕적인 衣服(의복)을 기모노라는 이름으로 개량하여 세계에 홍보하듯 널리 알리고 있으니 정말 대단한 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이 인구가 1억 명이 넘고 이 人的(인적) 자원이 이러한 일본 여성들의 헌신적인 희생의 대가로 경제 성장의 주춧돌이 된 것은 그 누구도 否認(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더 나아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후 일본 여성들이 자국의 경제발전과 부흥을 위해서 기꺼이 미군들의 性的(성적) 노리개가 되었고 이로 인한 미화 流入(유입)으로 그네들은 공업을 일으키고 얼마 되지 않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떼돈을 벌어 근대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거듭난다, 여기서 일본 여성의 대표적인 옷 기모노에 대해 일본의 슬픈 역사를 짚어본다,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을 때는 팬티를 입지 않는다,  일본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그네들의 의복을 입을 때는 팬티를 입지 않는다. 굳이 좋게 표현하자면 性的(성적)으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매우 개방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풍습도 치장하여 대단한 문화인양 세계에 홍보하며 禮(예)를 마치 잊어버린 양 동전의 앞만 보고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 또, 우리나라 姓氏(성씨)는 고작 270여개 정도이나 일본의 전국통일이후 이러한 기모노 영향으로 일본은 일만 개가 넘는 姓氏(성씨)가 존재한다, 이는 일본도 15세기 이전에는 300여개가 좀 안 되는 姓氏(성씨) 수였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일본을 통일2)하고 나서 전쟁으로 인해 많은 남자들이 죽고 부족해 奇想天外(기상천외)하게 발상을 떠 올린 게 기모노라는 희안한 의복을 개량하여 일본 여성들에게 성의 무분별한 자유를 허락하였고 그때부터 일본은 성이 문란해져 극심하게 상품화되었던 것을 否認(부인)할 수 없다. 지금도 그러한 자유분망한 성풍속의 무분별함으로 인해 전 세계의 포르노 중에서 가장 저질스럽고 加虐的(가학적)으로 보급되는 경향인 나라가 일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이웃이지만 동양권을 벗어나, 영국과 미국권에서는 職能(직능)별, 전문 직업군으로 姓氏(성씨)를 스미스(대장장이) 스키너(무두장이)와 같이 붙여 뭔가 소박한 姓氏(성씨)들이 많이 존재함도 확인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많은 인류가 살아가고 있다.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세상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문화가 거의 비슷한 이웃나라 일본의 姓氏(성씨) 분류는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그들의 생존전략의 몸부림으로 비춰져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건 그나마 애증일까?!   <편집자 주> 각주1) 삼릉(三菱) : 로고는 3개의 마름모로 미쓰비시의 한자 석삼(三), 식물 마름 릉(菱)의 잎사귀를 그대로 로고로 만들어놨다. 세 개의 다이아몬드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출신 번인 토사 번의 번주였던야마우치 집안의 가몬(일본) 三つ柏紋(세 장의 떡갈나무 잎사귀) 문양 배치를 마름 잎으로 바꿔서 본따 만든 거다. 각주2) 일본의 전국통일 : 오다노부나가가 일본 전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했지만, 일본 열도를 통일을 시킨건 실질적으로 풍신수길(도요토미히데요시)이다. 오다노부나가가 혼노사의 변으로 인해 자기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자, 좌초된 오다노부나가의 세력을 비굴하게 휘어잡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기타 반 노부나가 세력을 억누르고 통일을 한건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한 후 무사출신인 사무라이 세력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조선과 명나라 정복을 계획하고 진두지휘하여 침략해 온게 임진왜란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후 정유재란으로 조선을 다시 침탈하지만, 정유재란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아들 히데요리가 뒤를 잇게 된다. 하지만 아들 히데요리가 너무 어려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7년 후에 와신상담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세키하가라 전투에서 히데요리와 고니시의 군대를 격파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의 선비인 수은강항으로부터 일본 막부의 후지와라세이카에게 四書五經(사서오경)을 배우도록 하였고 제자인 하야시 라잔을 관료로 추천하여 에도막부를 굳건히 건립하게 하였다. 이러하듯 일본의 통일 기반은 오나 노부나가가 마련하고, 통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하였으며, 무를 문으로 대개혁을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명치유신으로 근대일본을 디자인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http://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show_ads.js">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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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시는 16일 시청 9층 미세먼지 종합상황실에서 자치구 등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협업기관 회의’를 개최하고 관리 대책을 논의했다. 광주시는 그동안 초미세먼지가 ‘매우 나쁨’(76㎍/㎥) 수준일 경우 시행했던 비상저감조치를 앞으로 ‘나쁨’(50㎍/㎥) 수준부터 추진하기로 했으며 비상저감조치가 이뤄지면 노후 경유차 배출가스 점검과 공회전 단속을 강화하고 미세먼지 오염이 심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무대로 등 27개 도로에 진공흡입차와 살수차를 긴급 투입한다. 근무시간에는 5개 자치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22대 진공흡입차가 출동하고, 근무시간 이후나 휴일에는 민간에서 보유한 살수차를 임차해 오염이 심한 도로 등을 청소한다. 더불어 광주시 기후대기과와 자치구 환경·청소 관련 부서, 시민들로 구성된 푸른하늘리더단(45명)이 공동으로 노후경유차 운행자제와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캠페인을 전개한다.  ‘미세먼지 안전 시민실천본부’ 발족…민관 공동대응 강화 또 어린이집과 노인요양시설 등에 미세먼지 발생상황을 신속하게 전파하고 야외활동 자제 등의 개인 건강조치를 강화한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76㎍/㎥) 이상으로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면 도로 살수량을 증대하는 등 비산먼지 저감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관급 공사장(14개소) 조업 단축, 민간 공사장(364개소) 조업시간 조정 등을 권고한다. 광주시와 자치구 소속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는 차량2부제가 의무적으로 시행되며 민간부분은 자율 참여를 유도한다. 의무시행 대상인 부제 차량은 광주시와 자치구 등 공공청사 주차장 출입도 제한된다. 특히 광주시는 미세먼지 대책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본청에 미세먼지 종합상황실을 가동하고 미세먼지 발생 농도를 언론매체와 SNS, 전광판, 아파트단지 안내방송 등을 통해 신속하게 전파한다.    이와 함께 도로청소 등 비상저감조치 추진상황을 실시간으로 상황 관리하고 유관기관과 자치구 등은 비상근무체제로 전환 근무한다. 광주시는 시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대기정책분과, 시민기업협력분과, 푸른하늘리더단 3개 분과 70명이 참여하는 ‘미세먼지 안전 시민실천본부’도 구성하고 26일부터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세먼지 안전 시민실천본부는 미세먼지 정책수립은 물론 교육, 거리 홍보와 캠페인, 차량2부제 및 대중교통 이용하기 동참 등 미세먼지 저감사업에 앞장서게 된다. 이 밖에도 광주시는 미세먼지 관리 강화대책을 공공부문에서 우선적으로 시행하고 내년 2월 미세먼지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민간부문 차량2부제 시행, 배출가스 과다 경유차 운행 제한, 미세먼지 다량 배출원 관리 강화 대책 마련 등을 추진한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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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하늘아름 · http://edaynews.com
고양시립합창단이 지난 6일(화)부터 16일(금)까지 진행한 미국 뉴욕·워싱턴 해외연주를 마무리했다. 이번 해외연주는 뉴욕에 위치한 유엔본부에서의 ‘평화콘서트’를 시작으로 뉴욕과 워싱턴 교민음악회 및 거리음악회 등으로 진행됐다.   특히 뉴욕 센트럴파크, 브루클린브릿지와 워싱턴 링컨기념관 등에서 펼쳐진 고양시립합창단의 거리음악회는 아카펠라 형식으로 '아리랑', '고향의 봄'을 아름다운 하나의 목소리로 합창해 지나던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또 미국 작곡가 Mark Hayes가 편곡한 흑인영가 'SWINGING WITH THE SAINTS'를 자유로운 감성으로 관객과 함께 열창해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이번 고양시립합창단의 뉴욕·워싱턴 거리음악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음악으로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직접 시민이 있는 곳에 찾아가 펼치는 공연의 메시지 전달의 파급력을 더욱 기대하게 됐다.     시 관계자는 “현재 한반도 평화의 시작에 발맞춰 진행된 고양시립합창단의 미국 평화콘서트는 각자 다른 목소리와 개성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아름다운 하나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합창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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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68 (개정판) 이영숙 소설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숱한 뜬소문 속에 은둔했던 나 훈아의 복귀 무대는 여전히 그가 전설임을 입증했고 미국 본토 시장에 상륙해 싸이 이후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방탄소년단( BTS)의 성공 소식. 한류가 한류(寒流)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씻고 드라마도 영화도 선전하는데 유독 문학만 빙하기이군요. 우리 국민의 40%는 아예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고 지난해 통계청 자료는 2016년 기준 월평균 도서 구매비는 1만 5335원으로 감소세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곧 위기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제 통섭(統攝)과 융합의 시대를 맞아 선후배 동료 문인들이 결연한 각오와 태도로 창작에 임함으로 다시 한국문학의 르네상스는 오겠죠.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학생과 근로자에 의해 일어난 68혁명의 다른 이름인 5월 혁명으로 인해 그 후의 세계사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합니다. 평가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68혁명은 정치혁명이자 문화혁명이기도 했으니까요. 권위주의와 고루한 관습과 억압된 섹스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1968년은 고요한 나라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부르는 고속성장의 시대가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그해 저는 재수생이었습니다,  방황1과 2, 주홍글씨1과 2 사이에는 집필기간 18년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실낙원의 별은 2000년에 출간된 제 데뷔작 <순례자의 노래>에 실렸던 단편을 개작(改作)한 것입니다     이제 저는 입시전쟁에 취업 전쟁에 인생 이모작을 위한 자격증 따느라 바쁜 당신에게 제가 쓴 책 한권이 작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6, 7세기에 지적 전통이 사라지게 되자 아일랜드의 수도원들의 수도사들이 로마와 그리스 문명의 보존 작업을 시작하므로 600년 후의 르네상스를 꽃피운 것처럼 작품의 보존을 위해 애쓰시는 문학방송의 안재동 주간님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더 많은 작가와 독자의 참여로 발전을 기원합니다. ― <머리말>     - 차    례 -   작가의 말  □ 단편소설 68  그대 이름은  방황  실낙원의 별  주홍글씨  [2018.11.20 발행. 152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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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도루묵과 메구로의 꽁치  나창호 수필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먼 곳에 있는 작은 밭 한자리에 두둑 짓고 비닐 펴고 종일토록 쭈그리고 앉아 마늘 서너 접 놓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서툰 농사짓느라고 몸을 혹사해서 그런지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니 온 몸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차를 세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파트 현관으로 향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피곤한데다 낯선 번호라 받을까말까 망설이다 왠지 받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귀에 댔다. 그런데 아하! 받기를 잘했다. 여자 분의 예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문인협횐데 수필이 당선됐으니 당선소감을 보내달라고 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갑고 기뻤다. 얼마 전인가 수필 세 편을 접수시켜 놓고 설마하며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의외로 좋은 소식이 왔기 때문이다.   아직 글쓰기가 농사일만큼이나 서툰데 큰 선물을 받고 보니 마냥 기쁘다. 설익은 풋과일인데도 값을 후하게 쳐준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 늦게 시작한 글 농사여서 앞으로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이른 새벽에 홀로 등을 켜기도 하고, 산길을 가다 나무그늘에서 머릿속 글도 써봐야겠다. (2017 대전문학 수필 신인상 소감)    박꽃 피던 어릴 적 여름날 모깃불에 달 그을릴 때도, 마당 멍석자리에 앉아 밤하늘 미리내를 올려볼 때도, 이름 모를 풀벌레 울어 서글퍼지던 밤에도 시를 쓰지 못했었다. 인생이 서산마루에 달 걸리듯 할 때쯤에야 시를 써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러던 차 시민작가 공모전을 알게 되었고, 설마 하면서도 용기를 내 응모를 했다.   들판이 누렇게 물들던 어느 날, 옛 시절이 생각나 시골 논둑길을 걷다보니 메뚜기들이 여기저기서 후드득 뛰었었다. 메뚜기를 소재로 3연 시조시를 짓고, 찬 기운 들자 때깔 바꾸며 변해가는 가을 산을 보면서 3연 시조시를 더 짓고, 세상을 비꼬는 단편시를 보태 응모에 필요한 편수를 채워 보내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당선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나이 먹어 거둔 결실이기에 더 기뻤다. 앞으로 지나친 욕심 부리지 않고 맑은 아침이슬처럼 순수한 마음이 들 때, 말 구슬을 더 꿰어봐야겠다. 구절초 꽃잎에 일렁이는 가을바람 같은 여유도 풀어봐야겠다.(2017 시민작가 공모전 시 당선 소감)    그동안 글을 쓰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입문해야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지만, 작년에야 그 꿈을 이뤘다. 그래서 당시의 기쁨이 담긴 당선소감을 여기에 싣는다. 등단 전에 썼던 글과, 이 후에 쓴 글들을 모아 제3집「도루묵과 메구로의 꽁치」를 내 놓는다. 등단 전후 언론에 기고했던 글을 비롯해서 문예지에 실었던 글모음집이다. 따라서 각각의 글 말미에 게재 연월일과 언론사 또는 문예지를 표기해 놓았다. 한편으로 언론사 기고 당시의 글 제목이 너무 길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제목의 뒷부분을 생략하거나, 언론사별로 제목을 달리해 게재한 경우는 그 중  짧은 제목을 이 책에서 제목으로 삼았다. 아울러 최종 퇴고하면서 몇 편의 글은 사족을 떼어 내거나 다소 어색한 표현을 보완하기 위해 일부 덧붙였음을 밝힌다. ― <머리말>              - 차    례 - 작가의 말  제1부  다모클레스의 칼 황희 정승과 밭갈이 농부  공직사회는 맑고, 공직자는 청렴해야  사람은 평생을 배우며 산다  백색소음·흑색소음과 인간생활  관용의 힘과 우분투(Ubuntu) 정신  긍정적인 사고의 힘  국가방위와 ‘송양지인(宋襄之仁)’  인구는 국가존립 기반  좋은 언론·나쁜 언론, 옳은 언론·그른 언론  다모클레스의 칼  제2부  도루묵과 메구로의 꽁치 도루묵과 메구로의 꽁치  신언서판(身言書判)과 6.13 지방선거  제천 화재 참사가 주는 교훈  선진사회로 가려면 시민의식이 깨어야...  일흔이재 의료폐기물 소각장 재고돼야  자연은 건강해야 한다  요산요수(樂山樂水)  인삼은 하늘이 준 선물  잘못 표기된 교통표지 바로잡아야  제3부  최저임금 올려 행복해졌습니까? 초보운전자의 유머인가 부탁인가  대형차 배기통 높이면 어떨까  애견인 1천만 명 시대  저체온증, 자칫하면 죽음을 부른다  최저임금 1만 원 시대의 명암  최저임금 올려 행복해졌습니까?  정부는 나라경제부터 살려야한다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신재생에너지와 자연·생태환경  제4부  감자 꽃 필 때 차라리 기우제라도 지내면...  탈원전 정책은 철회돼야 한다   동성혼(同性婚)과 관련한 소고(小考)  ‘일흔이재’의 추억  한국인들 없는 한산한 장가계(張家界)  중국 남방 여행  선유도 기행  고구마 농사  감자 꽃 필 때  제5부  지방행정과 융통성 어느 여름날 들깨 밭에서  헌책 읽는 재미  가는 해와 오는 해, 그리고 소망  지방행정과 융통성 (1)  지방행정과 융통성 (2)   6급 주사 시절의 추억 한 조각  어이없게 패소한 소송 대처 경험  여유로운 삶과 성급한 삶  [2018.11.20 발행. 277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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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달섬을 품은 시인    DSB앤솔러지 제87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이 책은 한국문학방송(DSB) 회원들이 엮은 앤솔러지 제87집으로, 시인 14인의 시 28편, 수필가 3인의 수필 3편 등이 담겼다.         - 시 -   [김사빈 시인] 꽃과 나비 하루 사이의 대시    [김소해 시인] 꽃구경 도자기 감별법  [김숙경 시인] 시의 바다 달섬을 품은 시인   [나광호 시인] 고향 생각 삼짇날이 되면 [남진원 시인] 산 산집(山家) [문재학 시인] 가을밤 가을이 익어간다 [민문자 시인] 감 하나 내 마음 풍선처럼 부풀어라 [박인혜 시인] 클래식 기타와 바이올린 차 사랑 [배학기 시인] 산골의 겨울 내 고향 사봉리 [이병두 시인] 가을밤 나눔 로또 [전홍구 시인] 77은 66을 선망한다 첫날밤 [조성설 시인] 비대칭 산야 [최두환 시인] 나추 강이 흐르는 이유 목야牧野의 결전     - 수 필 - [초연 김은자 수필가] 주酒여! [박인애 수필가] 특별한 선물 [이규석 수필가] 미소(微笑)   [2018.11.15 발행. 82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전자책은 무료로 열람이 가능합니다(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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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 http://edaynews.com
금년 수능 시험은 작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평이하게 출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등급 구분 원점수는 작년과 비슷한 수준인 국어 93점, 수학가형 92점, 수학나형 92점 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다. 사회탐구영역 역시 매우 어려운 문제는 출제되지 않았으며, 작년과 같이 47점대에서 1등급 컷이 형성될 것으로 보이며 과목에 따라 50점 만점에서 1등급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탐구는 변별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며 선택과목에 따라 유불 리가 달라질 것으로 파악되었다. 결과적으로 문과의 경우 작년과 같이 변별력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상대적으로 이과는 과학탐구 선택에 따라 유불리의 차이가 발생할 것으로 보여 수학과 탐구과목에 의해 변별력이 생길 것으로 파악되었다.   과목별로 살펴보면 국어의 경우 작년과 난이도가 거의 비슷하게 출제가 되었으며, 지문과 문항 구성 및 배점은 전년도 수능의 경향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EBS 연계는 화법과 작문, 문법은 개념 및 원리 위주로, 독서는 소재활용 방식으로 연계되었으며, 평가원 발표대로 70%이상 연계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수학가형의 경우 작년과 비슷하게 출제되었으며, 비교적 최고난도 문제로 여겨지는 21번, 29번, 30번 문제들이 작년과 유사하게 출제되어 여전히 1등급을 가르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고난도 문제들을 제외한 문항들은 다소 쉽게 느껴질 수도 있으며, EBS연계율도 70%를 유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수학나형 역시 작년 수능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출제되었다. 최고난이도 문항인 21번, 30번은 다소 쉬워진 것으로 파악되지만, 그 밖의 문항들 중에서 풀이과정이 다소 복잡한 문항이 복수 출제되어 수험생 입장에서는 체감 난이도가 올라갈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작년과 비슷하게 난이도로 파악되었다.   영어는 주제 추론, 어법, 빈칸추론에서 다소 까다로운 문제가 출제되어 작년에 비해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1등급 비율은 9월 평가원 모의고사와 비슷한 8%대에서 형성될 것으로 파악되었다.   사회탐구는 작년과 학생들이 많이 응시하는 과목인 생활과 윤리, 사회문화 등에서 쉽게 출제되어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과학탐구는 작년과 비슷하게 변별력이 있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과목에 따라서 어려운 문제가 다수 출제된 것으로 보인다.   국어 수학가형 수학나형 영어   작년 6월 9월 금년 작년 6월 9월 금년 작년 6월 9월 금년 작년 6월 9월 금년 1등급 93 91 97 92 92 85 91 92 92 87 92 92 10.03 4.19 7.92 8.5 2등급 88 84 92 88 88 79 88 87 87 82 84 86         3등급 80 75 85 80 84 70 84 83 80 73 73 79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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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 http://edaynews.com
1498년 7월12일에 시작된 김일손의 공초는 7월13일에도 계속되었다. 7월13일자 연산군일기에는 (1) 사초 사건에 관한 김일손의 공초 내용, (2)사초에 기록된 권람 · 남효온 등의 일에 관한 김일손의 공초 내용. (3)사초에 기록된 노산 대군(단종)의 일에 대한 김일손의 공초 내용 (4) 실록 열람에 대한 왕의 전교가 실려 있다.   먼저 7월13일 1번째 기사부터 살펴보자.    연산군이 어서(御書)를 내려 김일손에게 묻기를, “1. 『실록』이라는 말이 무엇을 이른 것이냐? 만약 『실록』이라 한다면 마땅히 사실을 써야 하는데, 너의 사초는 모두가 헛된 것이니, 어떻게 『실록』이라 이르겠느냐? 1. 탄(坦)이라는 선사(禪師)가 정분(鄭苯)의 시구(屍柩)를 보호한 일을 썼는데,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느냐? 1. 소릉(昭陵)을 복구하기를 청하고, 난신(亂臣)들을 절개로 죽었다고 쓴 것은 네가 반드시 반심(反心)을 내포한 것이다. 1. 세조께서 중흥하신 그 공덕은 천지보다 더하여 자손들이 서로 계승해서 지금까지 왔는데, 네가 이미 반심을 품었으면서 어찌 우리 조정에 출사했느냐?” 하였다. 윤필상 · 유자광 등이 어서를 받들고 국문하니 김일손은 답변했다.    연산군은 “『실록』이라 한다면 마땅히 사실을 써야 하는데, 너의 사초는 모두가 헛된 것이니, 어떻게 『실록』이라 이르겠느냐?”고 물었다. 사초가 가짜뉴스이고 허위조작 정보라는 것이다. 김일손은 “신의 사초에, 세조 조에 관한 일은 혹은 허반에게도 들었고 혹은 정여창에게도 들었고 혹은 최맹한 · 이종준에게 들었는데, 이 무리들이 모두 믿을 만한 자들이기 때문에 사실이라 생각하고 쓴 것”이라고 답했다.  허반은 세조와 권귀인 · 윤소훈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알려준 자이고, 일두 정여창(1450∼1504)은 김종직의 문인으로서 그 역시 사관이었다. 김일손은 1488년에 함양에서 정여창을 만나고 1489년 4월에는 같이 두류산(지리산)을 탐방할 정도로 친했다. 김일손이 1498년 7월에 함양 청계정사에서  잡혀 서울로 압송 당했을 때도 김일손은 정여창이 살던 집 근처에서 노후를 보낼 생각으로 청계정사에서 머물렀다.   고(故) 진사 최맹한은  단종복위운동과 관련하여 유배를 살았던 이로 그는 단종 관련 이야기를 김일손에게 전해주었다.(연산군일기 1498년 7월12일자 5번째 기사 참조) 한편 이종준은 김일손과 친했다. 이종준은 김일손이 아끼는 거문고 ‘탁영금’에 학(鶴)을 그려주었다. ( 『탁영선생문집』 p132 참조) 김일손은 이들이 모두 믿을 만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 생각하고 사초에 적었다.    다음에 연산군은 “1. 탄(坦)이라는 선사(禪師)가 정분(鄭苯)의 시구(屍柩)를 보호한 일을 썼는데,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느냐? 1. 소릉을 복구하기를 청하고, 난신(亂臣)들을 절개로 죽었다고 쓴 것은 네가 반드시 반심(反心)을 내포한 것이다.”라고 질문했다. 난신들을 충신이라고 했으니 반역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다고 한 것이다.    김일손은 “신이 한 낫 서생으로서 성종의 후한 은혜를 입었사옵고, 또 성상께서 즉위하신 후에는 외람되이 시종(侍從)의 영광을 입었사온데, 어찌 반심이 있사오리까.”라고 말했다. 김일손은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의 총애를 입었다. 1490년에 성종은 세조 때 영의정을 한 최항(1409∼1474)이 살던 집을 사들여 요동질정관으로 중국에서 돌아온  김일손에게 하사했다. 김일손이 모친 봉양을 위해 사직을 청하자 모친과 함께 기거토록 한 것이다. 이 집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 살았던 ‘이화장’이다. 1493년(성종 24년)에 김일손은 예문관응교에 직을 두고 사가 독서하였는데 성종의 어제(御製) ‘비해당((匪懈堂) 차운 시 48영(詠)’에 화답하는 시를 짓고 발문도 지어 올렸다. 또한 성종은 김일손에게 매화벼루를 하사했는데,   이 벼루는 청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16-1과 2  매화벼루 (청도박물관 소장) 이어서 김일손은 “소릉의 복구를 청한 것과 난신(亂臣) 등을 사절(死節)로 쓴 것은, 황보인·김종서·정분 등이 섬기는 바에 두 마음을 갖지 않았으니, 제왕이 마땅히 추앙하고 권장할 일이기 때문에 정분을 들어 전조(前朝)의 정몽주에게 비하였고, 또 황보인·김종서를 쓰면서 절개로 죽었다 한 것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정분(1394~1454)은 1452년(단종 즉위년)에 김종서의 천거로 우의정에 올랐다. 1453년 10월에 수양대군(首陽大君 나중에 세조)이 주도한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문종의 유명(遺命)을 받아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 인 · 김종서 등이 주살되자 그도 하3도체찰사로 임무 수행 중 충주에서 체포되어 전라도 낙안(樂安)에 안치되었다. 곧 고신(告身)을 추탈당한 뒤 낙안의 관노가 되었다. 이후 대신과 대간의 빈번한 청죄(請罪)가 계속되었지만, 1년 여간 목숨을 보존하다가 1454년에 광양에서 교형을 당했다. 그런데 그의 시신을 수습한 승려 탄이 누구일까? 마치 생육신 김시습이 1456년에 사육신의 시신을 군기시 앞에서 수습하여 노량진에 묻었듯이, 탄이라는 승려도 정분의 시신을 수습하였나보다. 김일손은 정분을 고려 때의 정몽주에 비하여 사초에 적었다. 절개를 높이 산 것이다. 물론 황보인과 김종서도 절개로 죽었다고 기록했다. 나중에 정조 임금은 1791년(정조 15) 2월21일에 장릉에 배식단을 세우고 황보인·김종서·정분을 삼상신(三相臣)으로 추향하였고 (정조실록 1791년 2월21일), 단종에게 충절한 여러 신하의 배향에 대한 교서를 내렸다. (홍재전서 제60권/ 잡저 7) 한편 김일손은 1495년(연산군 1)5월 충청도 도사시절에 단독으로, 1496년 1월 사간원 헌납 시절에는 사간원 연명으로 소릉(문종 비 현덕왕후의능)복구를 청하였다. 그런데 연산군은 이때에는 아무 말도 안하다가 이제 와서 소릉 복구를 청한 것을 반심을 품은 것으로  몰고 있다. 참으로 치사한 군주이다.  이어서 연산군은 “세조(1417∼1468 재위 1455∼1468)께서 중흥하신 그 공덕은 천지보다 더하여 자손들이 서로 계승해서 지금까지 왔는데, 네가 이미 반심을 품었으면서 어찌 우리 조정에 출사했느냐?”고 문초했다. 김일손은 “세조께서 영웅호걸이신 임금으로서 혼란을 잠재우고 중흥(中興)의 업을 이룩하셨고, 성종 대왕께서는 불세출의 영걸한 임금으로 지영(持盈) 수성(守成)을 하셨는데, 전하께서 성종의 업을 계승하셨으니 오늘날 사람들이 모두 조정에 서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충실히 근무하여(恪勤) 직(職)에 죽겠다는 것이 바로 신의 마음이기 때문에 종사(從仕)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일손은 세조를 중흥의 군주로 추켜세운다. 이어서 세조의 손자 성종 의 수성을 이야기하면서 연산군이 성종의 업을 계승했으니 사람들이 조정에 근무하고자 함을 밝힌다. 세조는 왕권과 국방을 강화하고 국정 운영의 기본원칙이 되는 통일적인 법전 체계를 확립한 점에서 중흥의 업을 이룬 임금으로 평가된다. 사진 16-3 세조의 업적  (2018.10.22.- 2019.1.13. ‘세조’ 전시회,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궁중 서화실) 하지만 도덕성과 명분이 결여된 세조의 권력 장악과 즉위과정에 대하여는 비판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는 단종 복위를 시도한 자들을 잔혹하게 처형하고 단종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사육신과 생육신은 절개와 충(忠)의 상징이 되었다. 사진 16-4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 복위 사건의 그늘       사진 16-5  국립고궁박물관의 ‘세조’ 전시회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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