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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대해 일본의 경제보복조치가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까지 승부수를 띄우려고 하는 1일 재광 00군 향우회장으로부터 역사적인 사실이 기록된 파일이 제보되었다. 일본이 일제 침략 36년사의 야욕이 불타 오르기전부터 아주 오래된 역사적 펙트를 이번 기회에 우리는 한번 쯤 생각해 봐야하겠기에 가감없이 원문 그대로 게재하기로 했다. "대마도'가 한국 영토이며 한국이 반환 받는데 국제법상 문제될 것 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인 '구기'가 제작한 '조선팔도총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져있고 '대마도'가 경상도 에 속한 것으로 그려져있습니다.   또한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국도'에도 울릉도,독도, 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스페인, 영국 등 서구 근대 세력들의 해양 영토 약탈 시기인 임진년과 식민지 시기에 연이어 한국 의 불행한 소용돌이를 이용해서 '대마도'를 슬그머니 도둑질한 후 1871년에 일방적으로 '이스하라현'으로 그 후 1876년에는 '나가사키현'에 편입후 아예 자기들 영토 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신라 때 '이사부' 장군이 점령 접수 했고,일본 메이지(明治)때 태정관지령(太政官指令) 에서도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님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일본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왜 이렇듯 독도 시비를 멈추지 않고 있을 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대마도'가 한국영토로 거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작전인 것입니다.  '대마도'가 한국영토라는 사실이 거론되는 것이 두려운 일본은 이것 을 막기 위해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죠.    '對馬島本是我國之地' ('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 라고 '세종대왕'이 선언한 것을 실록에서 기록하고있는 글귀이며 '대마도' 란 지명은 마한(馬韓)과 마주보는 땅 이라 하여 우리 선조는 '대마도' 라 명명하였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조선 조정(한국)은 어떤 형태로든 일본에 '대마도'를 넘겨준 일이 없습니다.  도둑질한 '대마도'를 두고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그들 후손 자신에게도 세뇌(洗腦) 당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세뇌 작전과 특히 조작된 일제 식민사관에 젖어 지금까지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여기고 살았던 것이죠.  미치고 팔딱뛰고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불과 사흘 후 8월 18일,    "역사의 진실은 어쩔 수 없다.  '대마도'는 우리 땅이므로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천명 했습니다. 6.25직전까지 3년여 동안 60여 차례나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역사학회, 고고학회등으로 하여금 '대마도'에 관하여 왜곡된 논문들을 발표케 하면서 변명했습니다.   쓰시마의 역사적위치(1949), 대마문제(1951) 논문 등 이 그 예입니다.    1950년 6,25가 발발하고 미,소가 대립하자, 일본은 "이때다"하고 미국에 읍소 로비를 했고,1951년, 미국은 한국을 배제한 채 일본과 같이 전후(戰後)처리 협정인 '샌프란시스코 협정'을 이렇게 체결해 버렸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도서는 한국에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이 '샌프란시스코 협정'에서 미국은 '독도'와 '대마도'에 대해 영토 속국을 명백히 하지 않고 빼버린 것입니다.    '이승만'대통령은 이에 불복하고 우선 평화선 선포를 통해 우선 '독도' 라도 어족(魚族)보호 명분을 들어 '독도' 를 실효 지배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지난 2005년에 확인된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27일 한국 '이승만'대통령은 '대마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요구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치, 청구를 분명히 포기하고 그것을 한국에 돌려줄 것을 요청한다." (In view of this fact the Republic of Korea request that Japan specifically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the Island of Tsushima and return it to the Republic of Korea)  여기에서 "specifically renounce"귀절을 주시해야 합니다. 이는 외교문서로서는 최고로 강력한 의사표시 였습니다. '대마도' 반환 문제는 남북통일과 마찬가지로 우리 7,000만 민족의 숙원입니다.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회복하는 문제에 있어 국제관례 의 관점에서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1862년에 미국의 영토가 된 일본 남부 '오가사와라'(小笠原) 군도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일본 영토로서 인정받고 반환 받았던 이러한 국제적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마도' 반환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 입니다.  그때 일본이 내놓은 지도 ‘삼국 접양 지도'하야시 시헤이' (林子平)제작, 프랑스어판이 그 근거입니다.    미국이 '오가사와라' 군도가 일본 영토임이 맞다고 판단 하게 한 그 지도에 '오가사와라'가 일본 영토로 되어 있었 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영토인 일본 남부 '오가사와라' 군도가 이 지도에 일본 영토 라고 표기 되어 있었기에 미국은 아무소리 못 하고 이 미국 영토를 일본에 반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도에 '독도'와 '대마도'가 분명히 한국 영토로 표기 되어 있는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까?  최근에 이에 준하는 증거가 또 발굴되었습니다.    지리학자로 영국에서 활동하였던 이태리인 'J.H.Kernot'씨가 1790년에 작성한 "일본과 한국"이라 는 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뿐만 아니고 '대마도'도 한국 영토로 그려져 있는 사실이 발굴(견) 되었다는 사실 입니다.    이 지도에는 '대마도'가 'STRAIT OF COREA'로 표시 되어 있고 특히 '독도'와 '울릉도','대마도'의 관할 국가를 표시하는 지도 바탕 색깔을 한국 본토와 같은 황색으로 나타내 이들 섬이 한국령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에서 해적질하며 살고 있는 왜구를 토벌하고 확실하게 한국령 경상도에 예속시켰습니다. 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 (백두산은 머리고, 대관령은 척추며,영남의 대마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  이 글귀는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 있는 글귀 입니다.    이렇게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고 우리 민족의 한쪽 다리 인 것입 니다. 그런데 일본이 그 '대마도'를 자기들 멋대로 자기영토로 편입 시켜 버렸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잘라간 그 한쪽발 (嶺南之趾)을 되찾아 야 합니다.    일본은 이러한 일련의 사실이 부각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독도' 시비를 계속하며 분칠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마도'는 명백한 한국영토입니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49km,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139km 입니다. 이 '대마도'에는 고대로부터 한국인이 건너가 살았습니다.  일본의 속셈이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라고 '세종대왕' 이 선언한 이 확실한 증거를 두고도 우리는 독도 시비에 말려 들고 '대마도'를 일본 땅 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권에선 젯밥에 눈이 멀어 나 몰라라 하고 있고, 입만 살아 잡 소리나 하는 잘난 역사 학자들만 믿지 말고 우리들이라도 이 글을 여러 밴드에 퍼 날라 여론을 형성 하고, '독도'를 떠나서 '대마도' 반환 운동의 초석이 되었 으면 합니다.    우리가 못하면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라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전 국민 모두가 다 이 사실을 잘 알고 널리 알리도록 합시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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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광주시민과 방문객이 민주의종 타종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광주광역시는 5·18민주광장에 위치한 민주의 종의 역사성과 가치를 공감할 수 있도록 시민을 대상으로 타종 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이번 타종체험 행사는 2019세계수영선수권대회와 프린지페스티벌 기간인 7월6일부터 8월17일까지 매주 토요일 민주의 종각에서 진행된다. 타종은 일일 4회 운영되며, 체험시간은 오후 4시18분, 오후 5시18분, 오후 6시18분, 오후 7시18분이다.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무료다. 참가자는 8명 이내로 조를 구성, 민주의종 유래와 역사성을 듣고 민주화 영령에 대한 묵념 후 5회 타종한다. 민주의종 타종 체험 신청은 시 자치행정과(062-613-2914/월~금 오전 9~오후 6시)로 하면 된다. 타종체험 예약은 선착순이며, 접수가 취소되거나 미달되는 경우 현장에서도 신청해 타종할 수 있다. 민주의종은 임진왜란과 한말의 의병정신, 일제강점기의 광주학생 독립의거, 5·18민주화운동 등 광주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2005년 10월 건립됐다. 종 정면에 보이는 몸 전체에 새겨진 ‘민주의종’ 글씨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썼다. 종 높이는 4.2m, 무게는 8150(팔천백오십)관으로 8·15와 5·18을 함께 기리고 조국 통일을 바라는 의미를 담아 제작됐다. 공식 타종은 ‘광주광역시 민주의 종 관리·운영’ 조례에 따라 3.1절, 5·18 민주화운동기념일, 8·15광복절, 제야행사 총 4회 실시하고 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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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강대의 칼럼> 2019년 수은 강항선생 일본 교토 국제학술세미나 2 동영상뉴스

[호남학산책] [선비, 길을 열다] 사람의 길 그리고 하늘 세번째 이야기가 수은강항선생 일본교토국제학술세미나(이하 :  국제학술세미나)출발을 하루 앞두고 17일 아침에 (재)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메일로 보내와 느낌이 남달랐다.((재)한국학호남진흥원 홈페이지에서 사업성과 메뉴바 안의 호남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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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등록일 : 2019-06-22 / 뉴스공유일 :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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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책

꽃비 내리네  김연하 노래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싱그럽게 풀향기가 피어오르고 눈부시도록 아 름다운 오월입니다.   우리 생활에 음악은 청각 예술이며 동시에 감성예술입니다. 음악을 듣는 것은 음악 교육에 있어서 가장 기본 행위이고 음악 감상은 음악의 아름다 움에 눈을 뜨고 음악적인 각을 자극하며 음악적 개념의 형성을 촉진 시킬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노래가 있습니다. 사람 들이 노래가 좋아서 천년이 더 되도록 전해오는 가하면 얼마가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잊히는 노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노래들 중에는 그 수명이 참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 작업을 추진하는 데에는 작사, 작곡, 편곡 등 여러 가지 과정을 걸쳐 연주 되거나 CD를 통하여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좋은 노래를 만드는 데에는 좋은 작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노래 가사는 예부터 정형화된 형태와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시조에서 글자 수를 중시하여 7, 5조(4, 3, 5 혹은 3, 4, 5) 와 7, 7조(3, 4. 3, 4 혹은 4, 3. 3, 4 또는 4, 3. 4, 3)의 형태를 받아들여 노랫말로 발전하여 작곡이 이루어 젖습니다.   본 노래시집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표현 방법에서 시詩와 노래를 동일시 보기 때문에 음율이 정해져 있는 비교적 짧은 정형시를 골라 노래 가사로 쓰여 졌습니다.   이번 출판되는 노래시를 이용하여 좋은 작곡을 하고 연주가 이루어 지기를 기대 합니다. ― <머리말>       - 차    례 - 머리말  721 〮  가을 나그네  722 〮 가을 달밤  723 〮  경복궁  724 〮  전등소  725 〮  가을 밤에  726 〮  괜찮아  727 〮  꽃피는 봄  728 〮  구철초 피는 날  729 〮  감꽃의 추억  730 〮  그리운 사람  731 〮  개나리 동산  732 〮  갯바위  733 〮  그때 그 사람  734 〮  겨울 철새  735 〮  꽃비 내리네  736 〮  기분 좋은 날  737 〮  가을의 회상  738 〮  고향의 봄  739 〮  가난의 극복  740 〮  가파도 보리밭  741 〮  눈 오는 밤  742 〮  나는 행복한 사람  743 〮  눈물의 상봉  744 〮  낙엽을 밟으며  745 〮  내 마음은  746 〮  도전해 봐  747 〮  동백꽃 연가  748 〮  들국화 연정  749 〮  달맞이꽃 연가  750 〮  떠오르는 태양  751 〮  대청봉에 올라  752 〮  떠도는 구름아  753 〮  통일의 염원  754 〮  달빛 소나타  755 〮  달이 뜬 호수  756 〮  달빛 아내  757 〮  대청마루  758 〮  등대  759 〮  동반자  760 〮  메밀꽃 연가  761 〮  모란꽃 연정  762  〮  북악성벽  763 〮  백조의 비상  754 〮  바람아 불어라  765 〮  봉선화 연정  766 〮  복사꽃 연가  767 〮  배꽃 연정  768 〮  불꽃놀이  769 〮  봄 바다  770 〮  백조의 날개  771 〮  바람의 날개  772 〮  바람 속에서  773 〮  부부 사랑  774 〮  백록담 연가  775 〮  부부 인연  776 〮  밤바다  777 〮  별이 뜨는 밤  778 〮  손을 잡아요  779 〮  서초연가  780 〮  살구꽃 연가  781 〮  사랑을 불태우네  782 〮  싸리꽃 연가  783 〮  새벽강  784 〮  속 깊은 바다  785 〮  사랑은  786 〮  순간의 행복  787 〮  새만금의 아침  788  〮  사랑도의 밤  789 〮  서귀포의 봄  790 〮  영광을 위하여  791 〮  오늘 하루  792 〮  외로운 인생  793 〮  애상의 기도  794 〮  우리는 하나  795 〮  우리 함께  796 〮  아름다운 강산  797 〮  안개꽃 연가  798 〮  억새꽃 바다  799 〮  양귀비꽃 연가  800 〮  언덕 위의 하얀 집  801 〮  어머니  802 〮  이산가족  803 〮  올림픽 성화  804 〮  안개 속에  805 〮  음악 분수  806 〮  아침햇살  807 〮  옹이  808 〮  인연의 세월  809 〮  일출  810 〮  옥구평야  811 〮  산정호수의 가을 812 〮  유채꽃 바다  813  〮  재회  814 〮  진달래꽃 바다  815 〮  자운영 꽃반지  816 〮  잡초 인생  817 〮  청산도로 가려네  818 〮  천내 강에서  819 〮  춘란 연가  820 〮  춤추는 동백  821 〮  창문을 열면  822 〮  천지연 폭포  823 〮  포기 하지 마  824 〮  평화통일 염원  825 〮  풍란  826 〮  풍차  827 〮  평화통일 실현  828 〮  폭포의 낙하  829 〮  행복하다고 말해요  830 〮  함박꽃 여인  831 〮  흐르는 강물  832 〮  해돋이  833 〮  흐르는 세월  834 〮  호수의 밤  835 〮  한탄강  836 〮  희망을 주는 빛  837 〮  황소의 눈물  838 〮  항해  839 〮  한라산  840 〮  향수  [2019.06.25 발행. 131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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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등록일 : 2019-06-16 / 뉴스공유일 : 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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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전남본부(공동 상임대표 고진형․민점기)는 15일 영암 덕진면 통일쌀 경작지에서 도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15공동선언 19주년 전남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선 역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이 만나 화해와 협력을 다짐했던 6․15 남북공동선언 19주년을 맞아 도민과 함께 한반도 평화 실현과 남북 민간교류 확대를 다짐하고 통일시대가 빨리 오길 기원했다.   기념식과 함께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의장 권용식) 주관으로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다양하게 추진됐던 남북 농민 품앗이운동을 실현하고 민간교류 확대 촉구를 위한 통일쌀 모내기 행사도 열렸다.   고진형 상임대표는 “하루 빨리 대북제재가 풀려 통일쌀로 대표되는 전남의 농수산물이 북측에 전달되고 도민의 평화통일 염원이 한반도 전체에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9년 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씨앗이 뿌려진 이후 평화의 여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와 발맞춰 도민과 함께 다양한 분야의 남북 교류를 하나하나 실현해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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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등록일 : 2019-06-15 / 뉴스공유일 :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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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전라남도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김대중평화캠프조직위 주관으로 6월 1~2일, 전국의 20여개 평화‧인권단체 6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목포와 하의도 등지에서 김대중 평화캠프를 개최했다.   올해 6회째 열린 김대중 평화캠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민주 ‧ 인권 ‧ 평화의 김대중 정신 계승을 위해 전국의 20여개 단체가 참가해 함께 뜻을 기리며 즐기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첫날 1일에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관람과 김대중 전 대통령 발자취 답사(영신여관, 북교초등학교, 목포상고 등), 근대역사문화공간 탐방, 평화버스킹, 김대중 평화콘서트 순서로 진행됐다.   주 행사인 ‘김대중 평화콘서트’는 이해동 명예위원장의 인사말과 이낙연 국무총리의 영상메시지, 김영록 전남도지사를 대신해 박병호 행정부지사 축사, 박우량 신안군수의 환영사와 상임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설훈, 최경환 국회의원 등이 대통령을 회고하는 시간으로 진행됐고 이어 가수 신형원, 소프라노 권소라, 테너 유기수의 노래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김영록 도지사는 축사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님은 평생을 민주주의의 발전과 남북평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분으로 그분의 치열하고 숭고한 삶은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이자 전남인의 자랑이다”며 “전라남도는 200만 도민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님의 정신을 기려 민주와 인권의 가치를 뿌리내리고 전남의 번영을 일구는 데 더욱 노력하면서 남북교류도 차근차근 준비해 한반도 평화통일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올해 평화캠프 2일차에는 김대중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고 하의도 섬을 답사하는 일정으로 진행됐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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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등록일 : 2019-06-02 / 뉴스공유일 : 20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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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책

귀촌 일기  이성남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강변에 하늘 높이 치솟은 미루나무를 의지하고 아버지는 원두막 집을 지었다.   개울에 흐르는 물로 쌀을 씻고 원두막 아래 자갈밭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냄비 밥을 끓이고 국을 끓여 다섯 식구가 먹고 살았다.   1947년 겨울 일곱 살 때 삼팔선은 막혀 있었다.   월남한 피난민들은 곧 전쟁이 터질 것이라 짐작하였다.   1948년 1월 1일 아침 나는 의정부 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주는 음식을 줄서서 받아먹었다.   큰 오라비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입북했던 어머니도 큰 오라비와 수용소에서 재회를 했다.   피난민을 위한 무료승차권은 대구까지였고 김천을 거처 점촌까지는 기차로 올 수 있었다.   아버지는 벌목 삼판이 있는 가은으로 들어왔다.   산촌 사람들은 함경도 사투리 말씨를 쓰는 우리 가족을 품어주지 못하였다.   서른 살 초반의 아버지는 강가에 큼지막한 돌들을 모아 화장실로 사용하게 하고 메뚜기를 잡아 오라 하였다.   초가을이라 메뚜기는 벼논 가에 많이 있었다.   나는 강아지풀 기다란 대공에 잡은 메뚜기를 매달았다.   아버지가 강변 자갈더미에 불을 지펴 구워주는 메뚜기는 참 고소했다.   강물 위쪽은 나무기둥으로 세운 외나무다리가 있고 우리 원두막 집께는 얕아서 무릎 위로 속옷을 걷어 올리면 건널 수 있었다.   강 건너 도리실은 커다란 느티나무들 사이로 집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외나무다리를 기준으로 사람들은 아랫담 위 땀 이라 불렀다.   아랫담에 사는 우 씨 영감님이 마나님이랑 같이 아침마다 원두막 집을 찾아 왔다.   원두막 집은 꽤 넓어 우리 집 식구와 강 건너 영감님 내외랑 같이 앉아도 비좁지 않았다.   마나님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발가락 사이를 벌리며   “요놈 봐라 또 여기 붙었네, 요놈....”하며 살에 붙어 고불 탕 거리는 거머리를 손가락으로 떼어내곤 하였다.   강 가 얕은 물에는 거머리가 많아 발가락에 붙어 피를 빨았다.   “사람 사는 동네에 와서 이러고 살면 되나.... 앞으로 날씨도 추워질 터인데.... 어린 것들 데리고 ..... 어서 우리 집으로 옮기세....사랑방을 비워 놓았네...”   영감님은 산에 큰 나무를 벌목하는 중간 목상이었다.   두 번 세 번 거듭 요청하는 아랫담 영감님 권유를 받아들여 아버지는 원두막 집을 떠나기로 하였다. 1948년 초가을이었다.   평생 고달픔에 시달렸을 아버지 영전에 “귀촌일기”를 올립니다.   ― <머리말>           - 차    례 - 저자의 말  제1부  귀촌(歸村) 일기 귀촌일기  옛집  전설  유년시절  어머니 단상 1 – 함흥 성천강 부역  어머니 단상 2 - 봇도랑에서  어머니 단상 3 - 세 번째 탈출  어머니 단상 4 - 남조선이요  내가 넘은 삼팔선  시냇가 집  앙친 문학서실  귀촌일기 1 - 환영사  귀촌일기 2 - 여름과일  귀촌일기 3 - 민들레 차  귀촌일기 4 - 돗나물  귀촌일기 5 - 물청소  보랏빛 라일락  출가 1 – 생모  출가 2 – 스님 방에서  출가 3 – 백련암 행자 생활  출가 4 - 삭발식  불 자 손님  파말마  날개  벽난로  북한강  제2부  고향 소식 고향 소식  금강산 상팔 담  산수유 꽃으로  예학동 아기  문경 도리실 길  오미자 연리지  백일기도 옥동자  문경 황토 온천  가은역에서  샛별 도령   소장품 분실  군자삼계  아카시아  마흔 살 불혹  통일 막걸리  봄눈  문경  술도락  겨레의 서시  님 생각  가은  삼독  임종  입북(入北) 시조 할 배  휴가  유산  제3부  가을 블랙홀 가을 블랙홀  패랭이 꽃  삼림욕  추억  오서산 나들이  금강산 길섶  삼매  화살나무  금진옥액 사혈  고별식  탄금대 정령  봄 아지랑이  장 담그는 날  춘설  씨방머리  아버지 날  위령제  석별  천둥소리  고로쇠나무  강냉이 밭  친구 다람쥐  비단풀  우리네 나침판  초간 선비 옛터  가창오리 떼  ● 작품해설 이성남의 존재의 틀 _ 박태준   은유시군 _ 이수화  [2019.05.20 발행. 125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http://dsb.kr [ repoter : 안무월 ]

뉴스등록일 : 2019-05-13 / 뉴스공유일 : 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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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대구 북구 칠곡에서 승용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동명면 4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우측 팔공산 순환도로를 따라 5분 정도 달리면 송림사(松林寺: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가 나온다.   신라시대 진흥왕 5년(544년)에 진(陳)나라에서 귀국한 명관(明觀)이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동화사의 말사)이다.    이후 고려 선종 9년(1092년)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의해 중창됐으나 몽골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뒤 1597년과 1858년 두 차례 다시 중창한 절로 대웅전과 명부전(冥府殿) 및 요사채가 소재한다. 이곳의 오층전탑(보물 제189호)은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송림사를 상징한다. 1959년 탑을 수리하기 위해 해체할 당시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 (출처:투어저널: http://www.itfocus.krhttps://bit.ly/2ThVy5l )이 뉴스는 아이티포커스(www.itfocus.kr) 공유 뉴스입니다.

http://www.itfocus.kr [ repoter : 안정민 ]

뉴스등록일 : 2019-05-10 / 뉴스공유일 : 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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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1882년 3월14일 이토 히로부미(1841∽1909)가 인솔한 ‘유럽헌법조사단’이 요코하마 항을 출발했다. 이토를 포함한 10명은 5월 2일에 이탈리아 나폴리 항에 도착하여 5월16일에 독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프로이센 헌법학자 루돌프 그나이스트와 면담 후 5월25일에서 7월29일 사이에 그나이스트의 제자 알베르트 모쎄에게서 헌법관련 강의를 들었다. 조사단은 8월8일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보수적 사회정책론을 주장한 로렌츠 폰 슈타인을 만났다. 이윽고 이토 일행은 파리에 잠시 머문 후 다시 빈으로 돌아와서 9월18일에서 10월31일까지 슈타인의 강의를 들었는데 보통선거제와 정당정치의 폐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어서 조사단은 베를린에서 11월14일에서 1883년 2월9일까지 모쎄의 강의를 들었다. 3월에는 런던에 도착해 5월까지 머물렀으며, 6월26일에 나폴리를 출발하여 8월3일 요코하마에 귀향했다. 1년 5개월 만이었다. 이토는 유럽 현지조사를 통해서 프러시아 헌법이 일본에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다. 반면에 영국이나 프랑스의 공화제 민주주의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천황주권을 강화해야 대국굴기 · 부국강병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토는 헌법 제정을 위한 준비로서 각종 제도의 개혁부터 단행했다. 먼저 1884년 7월에 화족령을 제정하여 사족 출신의 메이지 공신들을 화족에 포함시켰다. 화족을 중심으로 한 귀족원(貴族院)에서 국민이 선출한 중의원(衆議院)을 견제해야 한다는 정치적 포석이었다. 화족에게는 공(公) · 후(侯) · 백(伯) · 자(子) · 남(男)등 5등급의 작위가 세습적으로 수여되었다. 1885년 12월에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내각제도가 발족되었다. 총리대신이 내각을 주도하며 각 성의 대신을 통제해 정무의 통일성과 능률을 강화하도록 했고, 각 성은 외무 · 내무 · 대장 ·육군 ·해군 ·사법 ·문부 ·농상무 · 체신으로 이루어졌다. 초대 총리대신은 하급 무사출신에 불과하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발탁되었고 각 성의 대신은 사쓰마 · 조슈 출신이 거의 차지하였다. 이어서 1886년에는 관리임용시험을 제도화했고, 관리 복무규정도 정해졌다. 아울러 궁내성을 내각에서 분리했다. 황실과 정부를 명확히 구분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1886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헌법 초안의 기초 작업을 진행했다. 초안 작성에는 이노우에 고와시, 이토 미요지, 가네코 켄타로가 참여했다. 정부의 법률 고문인 독일인 뢰슬러와 1886년에 헌법 관련 법률 고문으로 초빙된 독일인 모쎄가 법률 자문을 하였다. 헌법 기초 작업을 주도한 이노우에 고와시는 1887년 초에 갑안, 을안을 작성했으며, 뢰슬러의 「일본제국 헌법 초안」도 탈고되었다. 1887년 6-7월 중에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고와시, 이토 미요지, 가네코 켄타로는 가나자와 현 나쓰시마(夏島, 요코스카시)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별장에서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 한편 이토는 헌법 심의에 집중하기 위해 1888년에 총리 직에서 물러나 추밀원 의장이 되었다. 1888년 4월에 완성된 헌법 초안은 헌법 심의를 위해 설치된 천황의 고문 기관인 추밀원에서 비밀리에 심의가 진행되었고 메이지 천황도 심의에 모두 참석하였다. 1889년 2월11일에 37세의 메이지 천황은 내각 총리대신에게 수여하는 형식으로 「대일본제국헌법」(일명 메이지헌법)을 공포하였다. 천황이 공포하는 형식을 취한 흠정헌법이었다. 이 날 메이지 천황은 이토 히로부미의 그간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이토에게 최고의 훈장을 내렸다. 그리고 이토가 1909년에 죽을 때 까지 천황의 신뢰는 계속되었다. 메이지 헌법이 공포된 날, 일본은 나라 전체가 축하로 들뜬 분위기였다. 의례용 양복이나 모자, 구두 주문이 쇄도했고 일장기는 동이 날 정도였다. 숙박업, 마차영업, 요리 집은 '헌법 특수'로 큰 재미를 봤다. 한편 해외에선 '헌법 내용도 모르고 열광하는 일본인들이 우스꽝스럽다'고 비꼬기도 했다. 실제로 메이지 헌법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었다. 국민들은 그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진 1 메이지 헌법 발포식   (참고문헌) o 구태훈 지음, 일본제국 일어나다. 재팬리서치 21, 2010 o 함동주 지음, 천황제 근대국가의 탄생, 창비, 2009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김세곤 ]

뉴스등록일 : 2019-04-29 / 뉴스공유일 :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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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수도(首都)란 넓은 의미로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통일, 여성, 복지, 교육, 문화 등)를 포함하는 한 나라의 통치기구가 있는 도시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판소리사에 있어 첫 수도는 어디라고 할 수 있을까? 고창에는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논평가, 후원가로서 대한민국 판소리 성립과 전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동리 신재효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그는 판소리 흥망성쇠의 책임을 오롯이 혼자 짊어지고 있다 할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는 독보적 인물이다. 고창이 판소리의 첫 수도라는 몇 가지 이유를 들면 아래와 같다. 첫째, 판소리 규범을 정립하였다. 신재효는 단가 〈광대가(廣大歌)〉를 통해 판소리의 이론적인 측면을 밝히는 한편, 판소리 창자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의 4대 법례를 (입법)제시했다. 또한 흩어져 구전으로 내려오는 가사를 채집해 조선역사 최초로 판소리 여섯마당을 개작 정리하여 당시와 후대 창자들이 교범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판소리 창자를 평했다. 조선후기 전국 소리꾼들은 판소리 규범에 어긋남은 없는지와 그릇됨이 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고창을 방문하여 신재효의 (사법)판단을 청했다. 일례로 당시 “어전광대가 되려면 고창 신재효 문하를 거쳐와야 한다”는 이야기와 “전주대사습놀이에 참여하려 오는 광대는 먼저 고창에 들러 신재효의 평가를 받아야 장원할 수 있다”라는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셋째, 판소리 창자 등에게 각종 행정지원 했다. 신재효는 판소리가 천한 소리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양반 정서를 가미하고,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단점을 조화시켜 이론을 정립하므로써 민족예술로 (통일)승화시켰다. 또한 판소리를 남성만의 전유물로 알고 여자를 소리꾼으로 인정하지 않던 시대에 첫 여류 명창인 진채선과 허금파 등을 배출하여 (여성)권위 신장에도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신재효는 근검절약으로 모은 많은 재산을 활용, 전국의 창자와 연습생 등을 불러모아 숙식을 제공하고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써 창자들의 (복지)증진에 힘썼으며, 동리정사에 전국 최초로 판소리 집단(교육)환경을 조성하여 전문 소리꾼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가르쳤다. 특히, 그는 춘향가를 남창, 여창, 동창으로 분화시켜 맞춤형 예술을 육성하는 등 판소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므로써 (문화)행정이 해야 할 일을 이미 100년 이상 앞서 실천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신재효가 있어 고창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된 판소리의 첫 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창군에서는 올해 신재효와 관련하여 산재되어 있는 모든 자료를 총망라한 신재효 총서 발간을 시작으로 동리정사 복원에도 첫 발을 내디딤으로써 판소리의 학문적 중심지와 문화 선도지로서 위상을 드높일 계획이다. 민중들의 숨결과 애환이 녹아있어 동학정신의 토대가 되어왔던 판소리가 첫 수도인 고창에서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http://edaynews.com [ repoter : 전민중 ]

뉴스등록일 : 2019-04-18 / 뉴스공유일 : 20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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